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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개혁

성경단상-창세기 1장 1절에서-브뤠쉬트[ בראשית = 태초에]

작성자어오내|작성시간08.08.21|조회수458 목록 댓글 5

성경단상-창세기 1장 1절에서-브뤠쉬트[ בראשית = 태초에]

 

 

 

 

창세기 1장 1절의 첫 낱말인 "태초에", 이것은 누구나 잘 알고 많이 이야기하고 여러 가지로 둘러대는 널리 알려진 말이다. 이 낱말을 우리말로 옮기려고 씨름한지 어느 덧 서른 해가 지난다. 참 많이 생각하고 뜯어고치고 지금도 골똘히 따지는 말씀이다. 무엇보다 성경계시를 차름하는 말이라 쉽지 않고, 이 낱말을 이미 다 알아서 더 알 것이 없다고 하기에도 두렵다! 어설픈 사람들은 멋대로 쉽게 생각해버리기도 하고, 요한 복음 첫 마디인 엔 아르헤[εν αρχη]에 견주어 저마다 생각하며 으쓱거린다. 여러 번역본을 보라! 나아가 원문비평가들이 말장난 노는 것을 보시라! 옛 이스라엘 둘레에 있던 여러 나라의 말을 앞세워 알지 못할 소리를 내세우면서 크게 속인다. 언어 사대주의에 빠진 우리 겨레와 한국 신학을 바라보면서 서글프기도 하고 애처롭기까지 하다. 말로는 오직 성경을 누구라도 내세우지만, 무엇이 오직 성경인지 라틴어 쪼가리인 sola scriptura 같은 것을 써먹기도 하지만 마음 편할 턱이 없다. 우리는 "태초에" 를 어떻게 풀어왔고, 가르쳐왔는가? 말한 대로 그 날에 그리스도는 가려내시리라. 한자말로 太 와 初 그리고 우리말인 에 를 어떻게 알고있는가? 일반계시에 대한 정직한 공부와 그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마음을 제대로 지녀야만 특별계시에도 거룩한 인격으로 다가서도록 성령님은 일하시리라.

 

 

공동번역성서 초판에서 선종완과 문익환은 "한 처음에" 라고 옮겼다. 참 많이 따져서 나온 열매이다. 벌써 이 한마디에 성경관에 대한 선입견이 확 달라진다. 로마주의자와 진보주의자가 옮긴 것이라고 막무가내로 여기지 말자. 이들 처럼 우리말을 알려고 마음쓰고, 읽을 사람들을 생각하여 힘쓴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저도 공역본이 나왔을 때 좀 개운치 않았지만 조금 씨름한 뒤라 배달말의 처지만 놓고보면 맞장구친다. 거의 서른 해 뒤에 최의원이 옮긴 "새 즈믄 구약성경"을 보면 "시초에" 라고 나오는데 너무도 우리말에 아무런 힘씀이 통 보이질 않는다. "태초" 만도 못한 것으로 내놓았으니 그 동안 이른바 보수파의 성경관과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단박에 드러내보인 것이리라. 우리말이라는 세상 말만 가지고 모든 것을 따지는 것은 아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공역과 그 밖에 여러 한글 성경역본을 견주어 보았는가? 표준역[새번역]이니 개역개정역이니 해보아야 공역을 울궈먹은 짓에 지나지 않는다. 겉보기에 쉬운 말로 한자투를 많이 손질했다지만 그 뒤에 깔린 속임을 보아야 한다. 이렇게 몇 가지만 생각해보아도 성경의 첫 절에 나오는 첫 낱말부터 얼마나 큰 다름을 담고있는지 잊지 말아야 한다. 선 무당이 사람을 잡는다고 한다. 계시를 하실 적에 그 시절 당대의 언어관을 어떻게 쓰셨는지 조심스레 살펴보아야 한다.       

 

 

 

 בראשית  히브리어 공부할 때 멍멍이가 그 옆에 있었다면 걔도 들어서 알 만큼 "브뤠쉬트" 를 누구나 안다. 그러나 이것을 어떻게 소리내는지 부터 원수는 달려든다. 베레슅, 베레쉬트 ...여러 가지로 저마다 소리낸다. 물론 처음 내던 소리를 지금 알 수 없다. 하지만 언어의 원리로 소리를 내야 한다. 어떻게 읽느냐가 아무 것이 아닌 듯 해도, 신학과 신앙을 비롯하여 히브리어에 대하여 많은 차이를 나타내게 된다. 왜 문익환은 "한 처음에" 라고 했을까? 이 번역이 틀렸는가? 무엇이 문제인지 아는가? 자유주의자라고 섣불리 비판만 하지 말고, 우리도 원문을 다룰 줄 알고, 우리말로 옮길 줄 알고나서 지적해도 늦지 않다! 이른바 보수파 가운데 몇 사람이나 이 번역을 어떻게 제대로 비판하겠는가? 따분하게 개혁교리를 내세워 가려내보겠는가? 개혁교리만 해도 원문주경이라는 작업을 먼저 한 다음에 올바로 쓸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성경관의 한 단면을 생각하는 중이다. "한" 이라는 말은 무엇일까? 숫자를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 부정관사에 해당하는 우리말을 쓴 것이다. 이 말을 쓰는 것과 안 쓰는 것은 조금 다르다. "처음에" 랑 "한 처음에". 벌써 '때' 라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처음을 "한" 으로써 꾸밈으로 단순한 부정관사로만 볼 수도 없다. "한" 이라는 배달말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시라! 이런 자세는 말씀선포를 마련할 때도 우리가 버릇들여야 하리라.

 

 

말이 길어진다. 첫 낱말 "브" 는 명사 계통낱말 앞에 쓰는 낱말이다. 아시다시피 히즈리어는 홀소리가 없는 말이다. 닿소리로만 쓰도록 하나님은 만드셨다. 뒷날 홀소리 구실을 하도록 부호를 만들도록 섭리하셨다. 이 낱말은 자음으로만 이루어진 낱말이다. 게다가 히브리어는 우리말에 있는 "으" 라는 홀소리 부호도 없다. 그러니 이것을 제대로 소리내려면 "브" 도 아니고, "베"는 더더구나 아니고, "버"도 마땅하지 않다. 다만 쉽게 얼른 알려면 "으"에 가깝게 붙여 "브" 로 소리냄이 좋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홀소리가 없다는 표시로 "슈바"라는 모음부호를 붙이면 예사로 그 글자 속에 "다게쉬" 라고 부르는 점을 찍지 않는다고 마쏘라 학파가 정했다. 그런데 창세기 첫 낱말인 "브" 에는 닿소리 속에 점을 찍었다. 그만큼 이 낱말에 힘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문익환은 이런 것을 알고 씨름한 것이리라. 더우기 그 글짜는 다른 글짜보다 크다! 그러니 우리는 그냥 태초 "에" 라고 아무런 생각 없이 읽고 지나칠 것이 아니라, 그 "에" 를 깊이 새기고 새김질해야 한다! 이 "에" 를 이렇게도 하나님은 히브리말로 다듬어서 계시하셨으니 또한 우리는 그에 따르는 말인 "뤠시트" 를 눈여겨보아야만 한다. 태초라고 하건, 처음이라고 하건 이런 얼개를 알고 풀어야 하고 골똘히 새겨야 한다. 이런 버릇은 성경 다른 부분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러다보니 저도 창세기를 스무 차례 넘게 손보고 손보면서 옮기는 중이다. 지금 "처음에" 라고 해서 처음 출판해보았고, 지금은 "처음 안에" 라고도 옮겨본다. 쓸데없는 시간 낭비일까? 이미 자유주의자들이 성경을 갈기갈기 찢어발길 때 바로 첫 낱말부터 뭉개버렸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무엇이 보수이고 개혁신학이라는 것인지 정말이지 깊이 생각해야 하리라! 다른 나라 역본을 참고한다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히브리어 원문성경을 올바로 다루지 못한다면 찜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자칫 나쁜 선생에게 속아서 무서운 마지막을 맞을지 어찌 알겠는가? 말씀을 가르친다는 자리에 있다면 그렇다는 말이다. 지금 보면 성서공회와 성경공회에서 성경을 빙자하여 새로운 번역본이라고 엉터리로 만들어서 밥그릇 싸움을 벌이니 아리송하고도 참으로 간살스럽다. 이를 누가 알리요? 첫 낱말에 대한 이해는 뤠쉬트 라는 낱말에 이어진다. "처음" 이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바른 성경관을 가지고 원문을 신구약으로 통독하여 공부하지 않고 기껏 원어사전이나 역본들이나 교리를 잣대로 얼렁뚱땅 넘어간다면 강도가 아닐까? 말씀을 맡은 사람이라면서 왜 원문 석의와 읽어서 이해하는 훈련을 제대로 하기를 싫어하는지 그런 사람을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신앙의 모든 것은 성경에서 나오고 성경으로 돌아가는데 성경 첫 단어에서 벌써 갈 길이 정해진다. 신학이 내다보인다.   

 

 

원어 한 낱말을 우리 배달말로 고르고 골라서 우리말을 갈고닦아서 직역으로 옮기는 일이란 해본 사람만 안다. 계시의 속성과 내용을 알고, 지금을 알고, 섭리 가운데 교회를 어떻게 주장하시는지 바탕에 깔고 성경번역은 이루어져야 한다. 책상머리에서 일반번역 차원으로 번역하면 안된다. 언어가 세상과 나라와 겨레에게 미치는 힘을 알아야 한다. 말본이나 버릇든 말이나 썩어문드러진 언어정책에 빌빌거리지 않고 선도해나가는 번역이라야 한다. 옮기는 이 자신이 나타나면 안 된다. 어쩔 수 없는 경우를 빼고 객관성을 견지하면서 성경계시의 본질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 어떤 낱말로 옮기느냐는 무척 중요하다. 배달말로써 우리네 얼과 버릇을 깊이 따지지 않는 번역이라면 개나 소나 누구도 시늉낸다. 원어 한 낱말을 그 뜻에 맞게 좋은 우리말로 고르는데 때로는 한 해가 넘는 경우도 있다. 적당히 두루뭉실로 옮긴다면 죄악이다. 말씀 다루는이의 언어관과 말씀 받는 성도들의 언어관도 날마다 뜯어고쳐야만 한다. 말글로써 믿음이 자라남을 갓대야 한다. 그러니 성경낱말의 특성을 힘입어 거룩한 고백을 표시해야 한다. 개혁교회라고 하면 성경관을 전제로 말글살이에서 오롯하게 표현하면서 나아가야 한다. 이 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 개혁신앙이 아니다. 첫 타락에도 말글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나타나 있다.   

 

 

 

성경번역에 교리를 얕보는 사람이 맡는다면 어불성설이다. 성경낱말 대한 자세나 교리어휘에 대한 이해는 뗄 수 없다. 두 방면에 힘을 길러나가야 한다. 사탄은 말글로써 속이고 죽이고 한다. 말글을 무서운 연장으로 둔갑 시켜서 쉬지 않고 다가선다. 누가 말글살이에 잘못이 없는가? 바른 번역관을 통한 성경을 읽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예배 때 낭독할 때나 말씀선포의 본문으로 사용할 때도 어떤 역본을 쓰는가 철저하게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흔히 이미 나온, 많은 사람이 쓰는 개역에 길들여져 있다. 좋은 면도 있지만 이것만 고집한다면 개혁신학과 개혁교회는 멀다! 교회는 번역하는 일을 보편한 사명으로 알고 참여해야 한다. 성경을 읽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 낱말이라는 눈에 보이는 기호가, 낱말이 품는 뜻과 얼이 미치는 힘을 깊이 헤아리자! 배교하는 시대에, 성경비평으로 성경이 파괴된 시대에, 우리는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을 보존시키면서 드러내게 하시는지 번역역사를 교회역사에서 중시해야 한다. 교리사보다도 중요한 것이니 지나치면 안 된다. 성경만 바로 해석하면 되지 않는가 되묻는 경우가 있을지 모르지만 앞뒤가 막힌 말이라 대꾸할 나위를 느끼지 않는다! 계시의 방편이 언어로써 종결했기에 언어관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해서 현대 언어학에 깔린 사탄의 준동을 주목하자!                   

 

 

성경을 배달말로 그것도 직역하는 방식으로 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원어분야 전반에 대한 개혁부터 세상나라에서 맞춤법부터 사전과 언론기관과 학교교육에 이르기까지 곁들여 할 일이 어마어마하다. 겨우 한글로 성경이나 번역한다는 정도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교회 강단의 개혁을 차름하여 모든 방면에 개혁을 요구한다. 중세의 암흑과 독제를 뚫고 성경번역을 이룬 사실을 잊지 말자! 제 나라 말로 성경을 직역으로 옮긴 거룩한 유산을 계승해야 개혁교회를 열매맺으리라! 모든 분야에 관련한 크고 으뜸가는 일이라 성경번역이란 개혁의 열매라 해도 손색이 없으리라. 우리가 보편한 사명에 각성한 교회에 속했다면 바른 성경번역에 마땅히 참여해야만 한다! 이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언제나 수행해야만 한다. 교회에 말씀을 맡기시는데 성경을 계승받았다면 성경번역에 마음써야 한다. 이것이 없다면 무엇이 개혁신앙인지 알 길이 없다. 이 뿌리를 모른다면 곁가지에 치우칠 뿐이다! 가짜들이 번역한다고 설치는데 왜 그네들의 하수인으로 전락하여 아무런 느낌이 없는가? 신학교에서 조차 바른 원문에서 빗나간 때 우리는 바른 신학과 바른 신앙의 기치를 바른 성경번역에서 찾아야 한다. 아! 슬프고도 슬프다! 우리는 이제 깔뱅을 비롯하여 앞서간 개혁자들과 이 방면을 놓고 사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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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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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정용균 | 작성시간 08.08.22 먼저 우리 말법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성경을 보고자 하는 모습에서 반가움을 느낍니다. 그런데 '브레쉬트'를 어떻게 번역하는 것이 좋다는 것인지요? '한 처음에'? '처음에'? '처음 안에'? 제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한 처음에'가 좋군요. 그런 면에서 보면, 진보 진영에 참 멋있는 분이 많습니다. 저는 그것이 부럽고 한편으론 아쉽습니다.
  • 작성자정용균 | 작성시간 08.08.22 이 글과 관련하여, 밑의 글들도 대충 읽어보았는데, 창세기 1장 1절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다"에서 :하나님이"를 "하나님은"으로 하는 것이 낫다고 하셨는데, 그 근거는 무엇입니까? 주격토씨 "이"보다 "은"이 하나님을 더 잘 나타낸다고 하셨는데, 이건 또 무슨 말씀인지요? "가/이"와 "는/은"의 쓰임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이런 말씀을 하는 것 같은데, 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 작성자믿음안에 새 은혜 | 작성시간 08.08.22 샬롬. 귀한 묵상나누어 주심을 감사드리며 반갑습니다. 말씀을 대하여 사신하나님을 뵙는 것이 크게 감동하고도, 한편으로는 그 영광의 진리를 감히 대할 수 있도록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를 인하여 영화를 이미 얻은 사람된 우리가 한없는 엎드림으로 하나님을 크게 경배할 것이 되옵니다.
  • 답댓글 작성자믿음안에 새 은혜 | 작성시간 08.08.22 태초(브레쉬트)를 피조된 사람으로 거슬러 올라보면 '한 처음'으로 번역함이 여러로 공감을 얻겠습니다. 그러나 한편 하나님(영이 말씀과 성령으로 거슬러 올라)으로 본다면, 그리스도로 거듭나 산 영이 창1:1~요1:1을 지나 히브리를 건너 요일1:1(태초)에 이르러 마침내 내 안에 계신 그분의 태초(브레쉬트)가 빛으로 내안에서 어둠을 이기시고 살아, 계시록(결론)에 이르러 태초라는 영이신 하나님(브레쉬트=창조자의 원의)께서 살리는 영으로 내안에 하나로 계셔 그분을 마침내 듣고 보고 주목하여 만진바된 하나님을 진리성령안에서 비밀스런 동행이 느껴집니다.
  • 답댓글 작성자믿음안에 새 은혜 | 작성시간 08.08.22 안팎으로 기록된 것이 생명책이니 이를 성령안에서 진리로 묵상하고 상고할 때에 늘 나자신을 감히로 낮추어 사신하나님의 진리권고(안쪽기록)을 들어 심비의 산 진리로 계셔 나를 조명하시고 살리시는 양식이요 산 말씀으로 모셔야 할것이겠습니다. 크신 겸손으로 말씀올려주신 어오네님께 감사드리며 한 영감으로 나누게하신 주 하나님 우리아버지께 영광돌립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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