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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추천]]에밀 시오랑의『독설의 팡세』《문학동네》

작성자나쁜녀석|작성시간09.04.02|조회수232 목록 댓글 2

 

 


  ‘생각’을 프랑스어로 팡세(Pansées)라고 한다. 17세기 프랑스의 사상가인 블레즈 파스칼이 죽은 뒤, 1670년에 그의 유족과 친척들이 묶은 책 이름이 '팡세'다. 인간의 불완전한 모순성, 위대함과 비참함을 극한대로 끌어올린 뒤 기독교를 설명하고 전도하려는 목적에서 쓴 글이다.

  20세기의 모럴리스트 작가인 에밀 시오랑은 ‘독설’이라는 단어를 붙여 『독설의 팡세』라는 책을 냈다. 그 또한 파스칼을 좋아했던 게 분명하다. “파스칼은 자신의 심연을 취재하는 신문기자(p.9)"라고 했으며 파스칼과 톨스토이를 비교하는 대목에서 파스칼을 명상가로 비유한데 반해 톨스토이는 물질주의자라고 했다.(p.175)

  독설은 ‘남을 해치거나 비방하는 모질고 악독스러운 말’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진다. 파스칼은 에밀 시오랑의 모든 독설을 피해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책 내용은 비껴가지 못한 듯 하다.

  시오랑은 파스칼을 비방하지 않았지만 그의 책 내용은 모질게 비방했던 게 틀림없다. 인간의 불완전한 모순성과 비참함에는 파스칼과 같은 입장이면서도 종교에 관해서는 다른 입장을 표명하기 때문이다. 


  심한 시련 속에서는 복음서보다 담배가 우리에게 더 효과적인 도움이 된다.------------------------(p.113)


  "주님, 당신 없이 나는 정신병자입니다. 당신과 함께 나는 더 심한 정신병자입니다.“-낮은 곳에서의 실패자와 높은 곳에서의 실패자 사이에 재개된 대화의 결과는 기껏해야 이것이다. ----------------------------------(p.118)


  고독이 필요해서 모든 인간관계를 끊었을 때 공허감이 엄습한다. 아무것도 없고, 아무도 없다……. 또 누구와 관계를 청산할 것인가? 어디에서 계속 희생자를 찾아낼 것인가? 그때의 황망함이 우리를 신에게 인도한다. 신과는 적어도 무한히 절교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으므로. --------------------------------------------------(p.127)


  이렇듯 종교에 가차 없는 독설을 퍼붓는다. 이런 독설은 어쩌면 자신을 버린 것 같은 두려움에서 발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에밀 시오랑은 20세 때부터 불면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잠을 자지 않는 대신 밤거리를 걸으면서 사색에 잠겼다는 그는, 일반 사람들보다 어둠에 익숙했을 것이다. 고요 속에서 찾아오는 외로움과 고통. 그에게 세상은 분홍빛 보다는 암흑에 더 가까웠을 수도.

  하지만 자살하려는 사람이 이 책을 읽고 자살을 포기했다는 일화는 독설이 타인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내가 하지 못하는 말들을 남이 대신해 주는 것. 그것처럼 시원한 쾌감이 어디 있을까.

  나 또한 그의 독설에 무릎을 치기도 했고 웃기도 했다. 간혹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음표를 만들기도 했다. 종교 외에도 언어의 위축, 심연의 도둑, 시간과 빈혈, 서양 사회, 고독의 서커스, 사랑의 생명력, 음악에 대하여, 역사의 현기증, 공허의 근원에서, 가 있다. 나는 줄을 긋고 포스트잇을 붙이다가 모든 페이지에 줄을 긋고 포스트잇을 붙일 거 같아 그냥 읽어 나갔다. 분량은 많지 않지만 아포리즘답게 아무 곳이나 펼쳐 읽어도 좋은 글귀가 바로 눈에 들어온다.


  아부가 만연하는 사회, 시원한 독설을 원하는 당신이라면, 에밀 시오랑의 『독설의 팡세』을 읽어 보는 게 어떨까.  



  저자 : 에밀 시오랑(Emile Michel Cioran, 1911~1995) 

  20세기의 가장 저명한 모럴리스트 작가. 소외, 부조리, 권태, 무익함, 타락, 역사의 압제, 변화의 야만성, 고뇌, 질병으로서의 이성 등 현대적인 테마를 다룬 산문집과 격언집으로 유명하다. 1911년 루마니아의 라지나리라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부쿠레슈티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1934년 발표한 첫 책 『절망의 끝에서』로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작가에게 주어지는 루마니아 왕립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1937년 파리로 이주한 뒤 소르본 대학에 등록하고 프랑스어로 글을 쓰기 시작하여, 1949년 프랑스어로 쓴 첫 책『해체의 개설』을 발표했다. 평론가들은 그의 탁월한 정신세계에 대해 호평을 아끼지 않았지만 대중의 찬탄은 불러일으키지 못한 채 이오네스코, 엘리아데, 베케트, 미쇼 등의 문우와 소수 애독자들의 호응에 힘입어 사유와 집필활동을 이어간다. 『독설의 팡세』(1952)와 『존재의 유혹』(1956)이 인정을 받기 시작하면서 그의 책에 관한 서평이 쏟아졌으며 판매부수도 늘었으나 시오랑은 자신에게 수여되는 문학상들을 사양하고 언론을 피하면서 시대의 현기증, 삶과 죽음, 서구문명의 폐해 등에 대해 특유의 우아하면서도 냉담한 문체로 계속 글을 써나갔다. 1987년 발표한 『고백과 저주』를 마지막으로 절필했으며 1995년 파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역사와 유토피아』(1960), 『시간 속으로의 추락』(1964), 『태어난다는 것의 불편함에 대하여』(1973), 『자아분열』(1979), 『감탄 연습』(1986)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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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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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새벽비 | 작성시간 09.04.02 책도 책이거니와 저자가 더 대단한 분이신듯...문단에 이단아 반항아 그러면서 자기것을 지키고 고집하는분인듯..존경스러울뿐입니다..ㅎㅎ
  • 작성자narcissus | 작성시간 09.04.05 카타르시스 만큼 인간의 충동을 자제시키는 것도 없죠....있을 순 없더라도 있을 법한 허구로 인해 대리만족을 느끼게 하는, 나 자신이 표출 하고자 함을 대신 표출시켜 해소 시켜주는 힘 그것이 문학의 힘이 아닌가 합니다...'독설의 팡세'로 인해 카타르시스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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