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이라고 제목 달았습니다만,
해군 전투 이야기는 많이 보시지 못하셨을 것 같아
오늘 아침내내 '해군일화' 집에 있는 아래 글을 제가 직접 타이핑했습니다.
해군일화 8집(2017년) p.268~276에 있던 글과 글 작성자의 블로그에 있던 전투상보를
제가 시간대 별로 엮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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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낳은 전투 : 북한 무장 간첩선 초탄 격침
-. 심동보(해사 31기,백구-58함 포술장(1980.6~1981.6), 2008년 해군준장 전역
위기는 의외로 가까이에 있을 수 있다.
잘만 대처하면 위기가 기회가 될 수도 있음은 만고의 철칙이다.
그러나 위기 앞에 온몸으로 맞서 지혜롭게 대처하지 않으면 씻을 수 없는 불명예와 함께
죽음을 자초할 수도 있다.
적당히 생각하고 무사안일하게 대처할 경우 개인은 물론 부대의 명예와 부하들의 생명도 보장할 수 없다.
38년 전인 1980년 12월 2일 새벽에 일본 영해에 근접한 대마도 서남방 해역과 남해도에서
각각 해상전투와 육상전투가 벌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북한이 침투시킨 무장 간첩선이 격침되고 특수 공작원 9명이 간첩선과 함께 수장되거나
육상에서 사살되고, 육군 39사단 남해대대의 8중대장을 포함한 아군 3명이 전사하였다.
본인은 당시 백구-58함(PGM-358)의 포술장으로서 작전에 참가하여 무장 간첩선을
격침시키는 전공을 세워 화랑무공훈장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그러나 당시의 작전경과를 회고하건데 보람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한편으로 기적과 같은
전투기록이 널리 공유되어 교훈이 되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1980년 12월 2일(음력 10월 25일) 남해도 침투 무장 간첩선을 색출. 격침하기 위한 대간첩작전 사례다.
침투정보를 입수한 한국함대사령부의 작전명령에 따라 내가 탔던 군함은 진해항을 비밀리에 출항했다.
1980년 11월 29일 토요일 14:00였다.
남형제도 부근 해역에서 자체 사격훈련을 했다.
주포인 76mm 8발과 부포인 30mm 24발을 쏜 후 1800시에 거제도 도장포 근해에 투묘했다.
함장 부임 후 첫 출동에서 사관회의를 소집한 이의근 함장님(해사22기)으로부터
은밀히 출항한 이유와 부여된 임무를 처음 들었다.
구축함 전북함(DD-96) 및 유도탄 고속함 백구-61함(PGM-361)과 함께
외해 차단단대(CTE; 11전대사령관)에 대부분 배속되어
남해도의 고정간첩 접선 예상지점을 다중 포위하는 임무를 부여 받았다.
우리 함정에 주어진 임무는 모선탐색단대에 편성되어 대마도 서남방 모·자선 분리 및 합류지점에서
모선을 탐색, 격파하는 것이었다.
단대장인 11전대 사령관(최율복 대령 해사11기)은 단대장으로서 승함한 구축함인
전북함(박창호 함장 해사15기)과 내가 탄 백구-58함, 같은 유형의 유도탄 고속함인
다른 백구-61함(김원명 함장, 해사22기)을 지휘하게 되어 있었다.
이틀간 해상에 투묘, 정박해 있는 동안 온갖 생각이 내 머리를 꽉 채우고 있었다.
나에게 기회가 올 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접선지점인 남해도 미조리 인근 해역에는 수십 척의 전투함과 해상작전헬기,
해상초계기 등이 밀집하여 다중 포위망을 구축하게 되어 있었다.
확률적으로 접선지점에서 수십 마일 떨어진 우리 배에서 간첩선을 접촉하기란
매우 희박한 것이 사실이었으나 간첩선과 꼭 마주칠 것 같은 생각이 쉽게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몇 가지 예상 시나리오를 구상하여 상황별 사격계획을 치밀하게 세웠다.
포요원들을 소집하여 교육을 시키고 훈련에 돌입했다.
주야를 가리지 않고 강도 높은 팀워크 훈련을 실전과 같이 반복했다.
또한 작전지침을 반복적으로 주입시켰다.
“간첩선을 접촉하면 사격통제실에선 사격통제장비(H-930)를 어떻게 운용하여 추적하고,
30mm는 어떻게 오프셋(off-set) 위협사격을 하고 격침단계에서 어떻게 기동하여 30mm 부포를 쏘고,
여의치 않으면 76mm 주포를 쏜다.
기동 속력은 무조건 전속이고 발사율도 최대다.
내가 이렇게 명령하면 이런 뜻이니 일호의 착오도 용납하지 않는다.”
상황별 시나리오 하에 조건반사식의 일사불란한 팀워크를 맞추었다.
게으른 사람 정월 초하룻날 산에 나무하러 간다는 말이 실감이 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포요원들은 포술장이 당장 간첩선을 접촉한 듯이 다그치니 반신반의 하면서도
힘든 훈련에 잘 임해 주었다.
훈련 수준이 최고도로 올라가고 자신감이 생길 즈음엔 부하들의 표정도
신념이 찬 마음으로 바뀌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훈련 중 함장님께서 날 불러 훈련이 좀 심하지 않느냐는 말씀을 하셨다.
사실대로 보고 드렸다.
“여건상 우리에게 간첩선이 걸릴 확률이 낮다고 해서 철저히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상황별 훈련을 강도 높게 시킬 수 밖에 없습니다.”라는 요지의 보고였다.
함장님께서도 공감하시면서 포요원들의 피로도도 감안하라는 말씀을 하시곤
전적으로 나에게 일임해 주셨다.
모든 전투준비는 끝났다.
가족이 진해시내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내연중사를 불렀다.
전투배치와 동시에 사진기를 지참하고 무조건 내 옆에 대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갑판장에게는 간첩선을 격침하면 모든 부유물을 책임지고 다 건져 올릴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해상상태가 나빠질 수도 있으니 인양도구를 철저히 점검하고 최소한의
당직자를 제외한 총원을 인양요원으로 재편성하여 대비하라고 하였다.
12월 1일 21:00에 양묘. 출항한 후 대마도 서남방 일본영해
바로 외곽에서 서방으로 기동하고 있던 본함에 접선예정시간인 12월 2일 00:01보다
빠른 12월 1일 23:30에 남해대대와 간첩선 간의 교전상황 발생 위급(‘Z’) 전보가 날아왔다.
즉각 총원 전투배치 명령이 하달되고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그러나 상황발생 3시간이 지난 12월 2일 02:30까지 간첩선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포위망이 뚫린 것이었다.
참가세력에 전투배치해제 지시가 내려졌다.
본함에서도 마찬가지로 ‘상황 끝, 전투배치 해제’ 방송이 나왔다.
총 현장 지휘관인 1전단 사령관(준장)은 작전상황 실패로 판단했던 것 같고,
한국함대사령부와 해군본부도 어쩔 수 없는 결과로 받아 들인 것으로 보였다.
나의 임무도 함교 당직사관으로 바뀌었다.
그렇지만 포요원들에게 내 지시가 있을 때까지 현 위치 대기를 명령했다.
그 자리에서 자도 좋으니 내 명령은 들을 수 있게 헤드셋을 벗지말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함장님께 상황이 발생한 접선현장 방향으로 ‘압축수색’ 기동을 건의했다.
함장님께서 바로 우현 변침하여 북쪽으로 우선 기동하면서 단대장님께 건의했다.
‘압축수색’ 시작 후 한 시간여 정도가 경과한 시간인 0408시에 본함으로부터 340도 7,600야드에서
198도 28놋트로 도주하는 의아선박을 레이더로 접촉한 것을
조타실 레이더 리피터로 확인한 함장님의 급박한 목소리가 헤드셋을 울렸다.
“포술장, 함수 전방에 뭐 보이는 것 없나?” 칠흑 같은 밤에 아무런 보이는 게 없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다시 함장님의 다급한 목소리가 내 헤드셋을 울렸다.
“그러면 바로 위협사격을 할 수 있겠나?”
“예. 바로 가능합니다.” 내 지시에 따라 장비 작동 상태에서 대기 중이던 포요원들에게 긴급히 명령했다.
“31포 위협사격준비, 방위 360 거리 3400, 오프셋 10, 준비되면 10발 쏴”
일촉즉발의 순간 30mm HEIT탄 10발이 예광을 그리며 보이지 않는 간첩선 방향으로 순식간에 날아갔다.
항해레이더에서 최초 접촉한 표적을 사통레이더로 추적 중이던 사통장의 다급한 보고가 내 귓전을 때렸다. “포술장님, 지금 의아선박이 290도 30놋트로 역침로로 도주중입니다.”
도주하던 의아선박이 조업 중이던 일본 대구리 어선 두척 사이로 금새 들어가 버렸다.
이에 함장님께 보고 드리고 전속으로 간첩선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물론 ‘총원 전투배치’ 명령이 떨어지고 승조원 총원이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단대장님께도 즉각 보고하여 구축함과 다른 백구함도 전투배치를 하고 동조기동을 시작했다.
본함의 표적정보도 신속히 타함에 전파되었다.
도주하던 간첩선이 조업 중이던 일본어선 두 척 사이로 들어갔다.
0515시엔 외해차단단대 내의 타 함정들이 현장에 도착하여 본함과 함께 포위망이 형성되었다.
북쪽엔 구축함 전북함, 서남쪽엔 백구-61함, 대마도 방향 동남쪽엔 본함이 배치되었다.
세 척 모두 간첩선을 추적하고 있었다.
전투배치 상태에서 등화관제 중이던 함정들에게 점멸등 점등 지시와 함께 의아선박에 접근하여
확인하라는 무모한 지시가 단대장님으로부터 하달되었다.
등화관제 중인 각 함에 점멸등(Warning Light)을 점등하라는 지시였다.
간첩선에 우리를 노출시킬 수밖에 없는 이해할 수 없는 조치였다.
본함만 장비고장을 핑계로 켜지 않았다. 간첩선이 맞는지 접근하여 확인하라는 명령이
본함에 다시 하달되었다.
틀림없으니 확인이 불필요하다고 보고하였으나 다른 백구함에 재지시가 떨어졌다.
의아 선박을 향해 접근 기동 중이던 백구-61함을 향해 의아선박에서 발사한 로켓트탄이
예광을 그리며 날아갔다. 식별된 무장간첩선에 대한 적성이 선포되었다.
전북함이 쏜 수십발의 조명탄이 밤하늘을 밝히면서 아군 함정들을 노출시켰다.
첨단 사격통제체계(H-930 WCS)를 갖춰 조명이 필요 없는 본함의 수없는 조명사격 중지 건의와
점멸등 소등 건의는 묵살되었다.
점멸등을 깜박이며 간첩선에 접근하던 다른 백구함에
간첩선에서 쏜 포탄이 섬광을 그리며 수없이 날아갔다.
정횡에서 지켜보니 간첩선에서 쏜 포탄은 백구함 쪽으로 1/3 거리에도 미치지 못하고 바다로 떨어졌다.
그리고 구축함 쪽으로 몇 발이 섬광을 그리며 날아갔다.
다행히도 아 함정에 맞히지 못했다.
(주: 구축함 전북함은 서해출동임무를 마치고 귀진했지만, 이 작전에 갑자기 참가함으로써 하푼미사일을 그대로 싣고 작전에 임했다. 당시 포술장은 송영무 소령(해사27기, 현 국방부 장관)이었고, 측적관(지금의 사통관)이 임성채 중위(해사33기 현 해군본부 군사편찬과장). 간첩선에서 라켓트단 3발 정도가 전북함 쪽으로 날아왔고, 이때 전북함에서는 20mm 포로 간첩선을 향해 수십발을 발포했다.(임성채 증언)
그러나 정면에서 날아오는 포탄 섬광에 백구함은 급히 반대쪽으로 기동하여 거리를 두었다.
뒤이어 전북함의 5인치 함포 조명사격이 있었으나
자동화된 사격통제체계로 무장된 본함과 다른 백구함의 위치만 노출시킬 뿐
간첩선 식별에는 효과가 없어 보였다.
일출시간이 가까워졌다. 갑자기 사통장의 다급한 보고가 다시 들어 왔다.
“포술장님, 지금 간첩선이 본함 쪽으로 빠져 나오고 있습니다.”
유일하게 완벽한 등화관제를 시행하여 간첩선에 노출되지 않았던 본함을 향해
간첩선이 일본 영해 방향으로 날이 밝기 전에 50노트 고속으로 필사의 도주를 시작한 것이다.
함장님께 보고드렸다. 포축선에 일본어선이 걸리니
간첩선과 역침로인 030˚ 방향으로 전속 기동해 줄 것을 건의했다.
급속히 증속하면서 우현으로 변침하여 정침로를 잡았다.
사통장의 급박한 보고가 다시 내 귓전을 울렸다.
“포술장님 지금 쏘면 좋겠습니다.” 동시에 함장님께 보고드렸다.
“함장님, 쏘겠습니다.”
함장님께서 즉각적으로
“쏘기 시작!” 명령을 내렸다.
“31포, 조준 좋으면 쏘기 시작!” 나의 명령과 동시에 31mm포가 최대 발사율로 불을 뿜었다.
상대속력 60노트, 표적거리 3400야드에서 격파사격 중 재밍(Jamming)에 걸렸다는 보고가 들어 왔다.
이내 재밍에 걸린 30mm 부포를 대체하여 76mm 주포사격을 실시하였다.
훈련시킨대로 76mm 주포가 최대발사율로 불을 뿜었다.
“쾅, 쾅, 쾅, 쾅, 쾅, 쾅, 쾅” HE탄 7발이 나갔을 때 천지가 밝아졌다.
간첩선이 명중되어 붉은 화염이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고폭(HE)탄 7발이 나가자마자 갑자기 칠흑같은 밤이 대낮처럼 밝아졌다.
명중된 간첩선에서 치솟은 화염이 밤하늘 높이 치솟았다.
포탄의 초속(925m/초)과 표적거리를 감안하면 초탄명중으로 보였다.
일본 영해를 얼마 앞둔 거문도 남동방 43마일 해상에서 최초 상황 발생 후 7시간이
지난 12월 2일 0641시에 무장 간첩선을 기적처럼 격침시킨 것이다.
승조원들의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흥분으로 통제가 안 될 지경이었다.
“사격 끝. 각포 발사탄수 및 이상유무 보고” 명령을 내렸다. 총원전투배치도 해제되었다.
그런데 이번엔 승조원들이 부유물 인양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한 듯 흥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부유물 인양 및 증거 수집이 남았다.
그런데 같이 작전에 참가한 다른 함정에서 불타고 있는 간첩선에 포탄을 퍼붓기 시작했다.
인근의 구축함과 유도탄고속함의 함포사격으로 간첩선으로의 접근이 불가능했다.
아무리 사격중지를 외쳐도 막무가내였다.
수백 발의 사격이 끝난 후 간첩선에 접근하려니
바다도 충격을 받은 듯 해상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어
세찬 비바람 속에 풍랑이 일어 백파와 함께 부유물들이 흩어지고 있었다.
총원을 집합시켜 일갈했다.
“실컷 격침시키면 뭣 하느냐. 증거가 없으면 헛수고다” 악천후 속에 전투하듯이 닥치는대로 끌어 올렸다.
북한 해도(미조도 근해), 수첩(통신주파수 및 호출부호 기록), 신호탄(1상자),
500원권 지폐 뭉치(비닐 압착), 우의 등을 건져 올려 후갑판에서 조립했다.
간첩선의 형체가 반 정도 되살아 났다.
일일이 색인표를 매직펜으로 써서 붙였다. 방수커버로 덮은 다음 경계병을 붙였다.
한국함대 사령부에서 전보지시가 날아왔다.
구축함과 다른 백구함은 즉각 귀진하여
‘입항환영행사’에 참석하고 백구-58함은 현장에 남아 모선을 탐색하라는 내용이었다.
의아했다. 작전과정이 중간에서 왜곡된 게 분명해 보였다.
분개한 함장님이 바로 전보를 직접 기안하여 타전했다.
“간첩선 최초 접촉, 추적 및 격파한 함정 승조원 사기 고려, 즉시 입항 조치 바람.”
뒤늦게 함대사령부로부터 지시를 받은 우리 배는 다음 날 09:00에 진해항에 입항하니
이미 환영행사는 끝나버린 상태였다.
언론기자들과 기무사 등 기무요원, 그리고 많은 장병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인양, 조립한 간첩선을 열심히 찍어갔다.
함장님께서는 작전요도, 항해일지, 통신일지 및 녹음테이프, 간첩선 격침장면 사진 등 관련 증빙 자료를
가지고 지휘통제실로 올라가서 이은수 한국함대사령관(중장, 해사6기 제13대 참모총장)께 보고드렸다.
저녁 18:00에 한국함대사령관 주최 축하파티가 해군회관에서 열렸다.
제일 먼저 사령관님께서 함장님과 나를 불러 축하주를 따라주시면서 축배와 함께 격려를 해 주셨다.
얼마 후 환영행사가 열렸던 2부대에서 성대한 포상식이 있었다.
함장님과 나만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포요원 대부분과 승조원들도 포상금과 함께 각종 표창을 받았다.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고 모두가 행복해 했다.
자신이 군인인 것을, 백구-58함의 일원인 것을 너무나 자랑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부하들에 대한 최대의 복지는 승리를 선물로 주는 것이 틀림없었다.
위기에 닥칠 것에 대비하여 시종일관 깨어 있었던 부하들과 그런 부하들을 전적으로 믿고
전투를 소신있게 지휘하신 유능한 지휘관 덕분에 위기일발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 일전이 있다.’는 각오로 철저히 대비하고 끝까지 깨어 온몸으로 맞서 싸우지 않았으면
영원히 작전실패의 불명예를 씻지 못했을 것이다.
기적같은 야간해상전투의 결과와 특이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무장간첩선(공작 자선) 격침 (공작원 6명 수장)
2. 격침 함정(백구-58함) 피해 전무
3. 상부에서도 포기한 해상작전이 끝까지 깨어 있었던 백구-58함에 의해 기사회생
4. 76mm 초탄명중 (발사탄수 7발)
5. 유도탄고속함(PGM) 최초, 유일의 무공 수훈
6. 상대속력 60kts에서의 비정상 야간전투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ellegio 작성시간 18.02.14 그리고 30mm 애머슨도 아니고 76mm HE탄으로 맞추었다는 것도 대단한 사격 실력인 것 같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30mm 쌍포(생긴것은 아바타 해병대가 타던 로봇 같음)의 경우도 뚱캉뚱캉 교대로 발사되면서 연사속도가 빠르지 않은데, 76mm로 펑~펑~ 쏘면서 간첩선을 맞추었던 것은 정말 대단한 실력인 것 같습니다.
제가 군생활할때, 사통사와 병기사가 미사일도 아니고, 76mm롤 항공타킷을 직접 맞춘 적은 있습니다. -
작성자하얀머리 작성시간 18.02.14 00사단 상황실에서(사단 작전장교 재직시) 자선 침투를 (레이더싸이트보고)보았죠 전투지경선을 따라 침투하데요 그이후 인접사단 지역이라
내륙작전 상황만 통보받았는데 자선격침 스토리를 보니 감격스럽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
작성자27사 작성시간 18.02.14 치사하게 남의 공을 가로채거나 숟가락 얹는 놈들은 어디에나 있군요. 그런 놈들은 국가재산 고의망실한 죄로 전부 형사처벌하고 불명예제대시켜야 하는 건데. 이런 분들이 육해공해병대 요소요소에 다 포진하고 계셨더라면 아마도 진작 남북통일 되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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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개뼈(Keith) 작성시간 18.02.14 남해안에서 많이 하는 지대공 합동훈련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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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ellegio 작성시간 18.02.19 정말 끈기있는 분들은 성공하시는 것 같습니다. 직장생활중에도 그런분 만나면 많이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