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특수전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잘 찾아보면
금방 조회가 될 수도 있는 글이나, 어떤 의미에서
본인이 가장 아끼는 글 중에 한다. 얼핏 본 사람들
은 이게 어떤 글인지 전혀 모른다.
어러 분이 주의해야 할 것은, 길이가 좀 길다는 것.
그러나 이 글은 한번에 읽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재미도 없고 난감할 수도 있습니다.
한 사람의 여행기를 반 쯤 읽고, 나중에 반 쯤 읽을
때와 같이 집중이 떨어지면 별로 재미 없을 수 있습니다.
시간이 없으시다면 지금 보지 마시고,
나중에 차분히 끝까지 읽어 보시기를...
감사합니다.
잇빨중사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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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WEY CANYON,
1969-PRAIRIE FIRE!
By: Rod Burns, Col, US Army (Ret)
불과 몇 년 전에, 나와 같이 CCN에 근무했던 로버트 세굴이,
톰 니콜슨이 쓴 ‘SOG에서의 15개월’ 책 카피본을 보내줬다.
그러나 그의 왜곡된 글에 반감을 느꼈고, 해당 내용에 그는
거기 있지도 않았다. 특히나 내 친구인 피트 맥머리 얘기는
잘못되었다. 진실을 도살하고 그걸 전쟁이야기라고 썼다니.
난 세굴에서 내 감정을 말했고 진실을 써야겠다고 말했다.
시간이 흘러 훌륭한 웹사이트 MACV-SOG에 글들을 읽었고,
특히나 ‘듀이 협곡(Dewey Canyon)작전’ 글을 읽으니 뭔가 써야
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 글 쓰는데 1년이 꼬박 걸렸다. 글을 쓰는
게 나에겐 고통스런 경험이었다. 한 페이지만 써내려가도 내가
과거로 회귀한다. 그러면 난 잠도 못 자고 아무 것도 집중할 수
없다. 가끔은 1-2개월이나 그런 증상이 나타났다.
어쨌든 완성했다. CCN에 관한 전체 기억을 책으로 쓸 작정도
했다. 마치 전기처럼 내 자식들에게 주기 위해. 읽는 사람이
흥미가 있건 없건 상관없다. 마이크로소프트 워드가 없는 사람
은 내가 보내줄 수도 있다. 당신의 관심에 감사를 표한다.
미 육군 퇴역대령, 로드 번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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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00년 3월 15일. 바로 31년 전 오늘, 난 커닝햄 화력
지원진지 근처에서 UH-1 헬기에 올라탔다. 그리고 쓰라린 18
일 간의 작전이 이어져 공포와 쇠약으로 종료된다. 약간의 오류
가 있다면 미안하다. 31년 전 일이다. 오래되고 진부한 표현이지
만 ‘가끔 당신이 곰을 잡지만, 아주 가끔은 곰이 당신을 잡는다,’
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번 건은 곰이 이겼다.
이 Dewey Canyon 작전은 미 해병대 1개 사단이 투입되어
1969년 2-3월에 진행되었다. 작전은 어샤우 계곡과 케산
중간의 모든 월맹군을 격파하는 게 목적.
당시 난 CCN Hatchet Force A중대 1소대장으로 계급은 중위,
중대장은 미첼 밀러 대위였다. 자귀부대는 MACV-SOG의 35호
작전의 일환으로 1969년 1월 CCN, CCC, CCS이 작전에 들어
갔다.
(Hatchet: 자귀, 북아메리카 인디언의 전투 도끼)
1969년 2월 21일, 난 듀이협곡 작전에 대한 조력 임무로 경계태세를
발령받았다. 이후 3일간은 흥분이 고조되었고 작전계획은 계속 변경.
처음에는 1개 소대 작전이었다가 나중에는 중대급 작전이 되었다.
브리핑을 받고 장비를 챙겼고 재보급품까지 준비했다.
다행히도 우리 소대에는 대단한 소대 선임하사 랄프 호킨스 중사가
있었다. 그는 전투로 다져진 능숙한 베테랑이고 흑인이었으며 근육질
이었고 거기다 매우 능률적이었다. 흑인배우 루 고셋(Lou Gossett)의
영화를 볼 때마다 그가 생각난다. 끝도 없는 계획 변경에도 그는 잘 대
처했다. 심지어 작전지역까지 바뀌었다. 원래 작전지역은 케산 남쪽 라
오스 영토 이른바 낚시고리(fishhook)였고 OV-1 버드독을 타고 공중정
찰도 했었다. 그러나 돌아오니 우리 목표는 어샤우 4번 목표로 25마일
밑으로 배정되었다.
2월 24일, 우리 2개 소대는 광트리 이동발진기지로 갔다. 25일, 작전은
우리 자귀부대 A중대와 CCN 정찰팀 1개로 편성되었고 아침에 브리핑을
했다. 그 브리핑에 적어도 해병대 장군 두 명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해병대 장군들은 CCN을 잘 몰랐고 특히나 현지민 대원들은 더욱 몰랐다.
내 소대는 35명이고 미국인은 6명이었다. 미군은 호킨스 중사와 세 명의
분대장, 그리고 나와 의무주특기다. 나머지는 중국계 베트남 사람들인 넝
Nung 대원들로 훌륭한 전사들이었다. 작전구역은 AS-4로 피시훅 남쪽 30
km 지점이고 라오스 국경이 어샤우 계곡 남쪽으로 약 14km 휘어져 있는
곳이다. 목표지역 중앙에 들어가면 라오스까지 6km였다.
이 일대는 라오스 국경과 평행하게 동에서 서로 높은 산들이 능선을
이루고 있었고 그 끝은 어샤우 계곡의 가파른 산들과 연결된다. 우리
임무는 라오스 산악 능선 남쪽에 들어가 능선을 넘은 다음 남베트남
국경으로 향하는 것이다. 그때 남베트남 국경 안쪽, 또한 휘어져 들어
온 라오스 국경 북쪽 6km 지점에 (미) 해병대가 커닝햄 화력지원진지
를 구성하고 있었다. 우리 작전구역은 커닝햄의 155밀리 포 사정거리
안에 있었다.
날씨는 안 좋았으나 우린 2월 25일 오후 2시,
CH-34 킹비 헬기를 타고 투입될 예정.
난 1969년에 내가 작성한 작전후 보고서
복사판을 가지고 있는데 그 보고서를 기초로 이 글을 쓴다.
광트리 기지에는 우리 소대만 태울 정도의 헬기만 있어 나머지 중대는
그 뒤에 투입돼야 했다. 날씨가 좋지 않아 빨리 실행되어야 하는 상황.
헬기는 우릴 내리고 푸 바이로 가서 재급유를 하고 다시 광트리로 가서
나머지 병력을 싣고 와야 했다. 날씨가 좋아지면서 푸르고 아름다운 어
사우 계곡이 드러났다. 죽음과 파괴에도 불구하고 어샤우 계곡은 정말
아름다웠다. 그때가 바로 내가 처음 국경을 넘어 작전을 하는 날이었다.
우린 어샤우를 넘어 라오스로 들어갔다가 남베트남 영토로 들어온다.
엄청난 파노라마였다.
(잇빨 주: 듀이협곡작전을 쉽게 설명하면, 케산 남동부의 월맹군을 싹쓸이하려는
작전으로, 작전의 주 제대는 미 해병대였고, 이 SOG의 부대들이 한 일은 적을 탐침
하고 적을 해병대의 그물로 모는 역할이었다. 그러므로 듀이협곡의 부수적인 내용이
었던 이 작전은, 적을 찾아서 교전을 하는 게 목적이었다. 라오스로 넘어가 아래 611
월맹군사지역 밑에서 남베트남 영토를 향해 북으로 교전하며 기동하는 게 SOG-CCN
이 한 작전이었다. 무력정찰의 형태라고보면 이해가 쉽다.)
1일차
우린 적의 35밀리 대공포 사정거리 위로 날아 국경을 넘었다. 국경을
넘자 작전장교가 지정한 랜딩존을 향해 헬기들이 하강했고 눈앞에 엄청
나게 짙은 삼중차폐정글이 나타났다. 당시 난 정확한 랜딩존을 확인할
수 없었다. 그저 라오스 어디쯤이었고 조종사에 의지해야 했다.
이런 곳에 정찰팀은 매일 들어간다니...
갑자기 헬기는 오른쪽으로 강하게 틀면서 숲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응달로
향해 날아갔다. 1-2백 미터 폭에 5백 미터 길이의 능선이 보였다. 그때 난
그 개활지에서 3-4개 펑펑펑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때는 로터 브레이드
피치가 변하면서 나는 소린 줄 알았으나,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릴 향해 쏜
소총사격이었다. 그 개활지는 회색을 띈 녹색으로 마치 바다가 출렁이는
듯 했다. 헬기는 그곳으로 내려갔고 땅에는 4-5 미터 높이의 어린 대나무
들이 있었다.
갑자기 킹비 헬기가 정지해서 호버링했고 조종사는 밖으로 나가라고 신호
했다. 밑을 보니 3미터는 넘었고 난 머리를 가로저으며 더 내려가라고 했다.
조종사 역시 머리를 가로저으며 안 된다면서 뛰어내리라고 문을 손가락으로
지시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이, 그때 내 전투군장은 250파운드(113kg?)
나 나갔고, 뛰어내리면 내 몸의 모든 뼈들이 부러질 것 같았다.
방법은 하나. 문간에 매달려서 떨어지는 높이를 줄이는 것. 매달리면 내 키인
약 1.8m는 줄일 수 있으니까. H-34 킹비는 스키드바가 없었고 난 문의 끝으로
배를 대고 기어갔다. 한 손은 내 M-16을 들고 한 손은 무언가 움켜쥐었고, 내
넓적다리를 헬기 바깥으로 내보낸 다음 매달려 뛰어내렸다. 그러자 다른 대원
들도 날 따라했다. 그러나 우리 소대는 세 그룹으로 나뉘어 버렸는데, 전체적
으로 약 1마일 가량에 흩어졌다.
다행스럽게 SCU(현지민 특공대원) 딱 한 명만 다리가 부러졌다. 결국 헬기는
밑으로 더 내려와 그 부상 대원을 싣고 떠났다. 다른 킹비 하나는 유독 사격을
더 받았고, 결국 분대장 하나와 SCU 대원 5명은 랜딩을 못했다. 소대가 다시
모이는데 한 시간이나 걸린 기분이었지만 실제로는 약 15분 걸렸다. 되돌아간
부상자 하나와 6명이 랜딩을 못하는 바람에 내 소대는 총 28명이 되었다.
불길한 고요가 찾아왔고, 대나무로 인해서 3미터 앞도 안 보였으나 태양은
빛나 원기를 돋궈주었다. 난 젊고 저돌적이었으니까. 우린 사격을 받았고,
나머지 중대는 오고 있으며, 이제 우리는 ‘over the fence’ 국경 넘어 라오스
에 들어와 있었다.
상황은 빠르게 변했고, 나머지 우리 중대를 위해 우린 랜딩존 안전을 확보해야
했다. 우리 소대 혼자였다. 우린 랜딩존에 대나무를 짓밟기 시작했다. 그런데
헬기에서 안 좋은 뉴스를 보내왔다. 광트리 기지 부근의 기상이 닫혔기 때문에
중대는 오늘 침투가 불가능하며, 우리 소대는 작전을 시작하란 거였다. 킹비는
아마도 케산으로 가버린 것 같았다.
난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고 계속 랜딩존을 다졌다. 결국 깨달은 건 우리가 정찰
을 먼저 시작해야 한다는 거였다. 난 선도 분대를 앞으로 내세웠고 분대장은 찰스
그레이 하사였다. 당시 의무주특기인 리Lee 병장과 난 랜딩하지 못한 분대를 맡았
다. 우리가 중간이고 3분대가 뒤. 난 1분대 무전병과 통역병 뒤를 따랐고 호킨스
중사가 뒤를 맡았다. 우린 북으로 이동했다. 측면 경계는 힘들었고 대나무로 인해
앞에서 밟고 간 길 외에는 아무 것도 안 보였다.
이어 풀이 난 벌판이 나왔고 거긴 사방이 뚫려 불안했다. 1km 북쪽에 (우리가
넘어야 할) 회녹색 능선이 보였다. 멀리 수평선으로 보면 거의 검은색. 서쪽에는
석회암으로 된 가파른 경사면이 보였고 태양은 빛났고 마치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보였고 대나무와 묘목 사이로 우린 계속 이동했다. 그때 포인트맨이 대열을 정지
시켰고, 내가 앞으로 나가서 물어보니 사람 목소리와 움직임을 감지했다고 한다.
민감하게 이동을 하는데 내 앞에는 SCU 대원 둘 뿐이었다. 그리고 그게 내 어리
석음이었음을 곧 깨닫는다.
대나무들이 사라지고 우린 비교적 평평한 젊은 숲으로 들어갔고, 그 위의 산으로
이동하니 점차 나무들이 커졌고 왼쪽에 깊은 도랑이 보였다. 이어 작은 오솔길이
나 있었는데, 내가 한 어리석은 두 번째 실수는 그 길을 따라 이동했다는 것이다.
한 시간 정도 이동했지만, 그 중 30분은 첨병이 정지시켜 대기한 시간이었다.
아드레날린이 느껴지고 내 마음은 방황했다. 개활지에 노출된 곳에서 수풀에
작은 나무들뿐이고 약 60미터 앞의 골짜기가 보이는데, 전투 경험이 없는 내
신경은 마치 어린아이와 같았다.
소리! 내 왼쪽 작은 나무들 사이에서 소리가 들렸다. 내 손가락은 반복적으로
방아쇠를 당겼고 얼굴은 땅에 묻었다. 쾅 다다다다다! 뭔가 내게로 떨어졌다.
파편, 잎사귀, 총성, 메스꺼움... 내 창자엔 물이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모든
신경이 오그라들고 내 모든 땀구멍이 관통당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난 머리를 들어 사방을 둘러봤다. 미끌미끌한 숲 바닥은 마치 검은 자동차
경주장 같았다. 호킨스 중사가 위에서 날 향해 소리를 질렀다. 무슨 소리지?
“중위님, 괜찮습니까?” 그러나 공포로 인한 위축으로 그 말은 마치 인간의
방언처럼 들렸다.
내가 소대를 매복 속으로 몰고 들어갔다. 50미터 길이의 개활지. 그 장소는
매복의 킬링존이 되었고 월맹군이 발포할 때 난 그 중간에 있었다. 그때 난
덩치 큰 호킨스 중사를 보면서 내 마음을 수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상황도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다. 호킨스 중사의 질문에 난 고개를 끄덕
였으나 난 사실 공포로 마비 상태였다.
내가 맞았는지 어쩐지도 몰랐고, 맞지는 않았다. 난 얼마나 바보 같았을까. 내
귀에 으르렁 거리는 소리가 총격소리란 걸 깨달았다. 적은 AK-47을 자동으로
쏘고 단발로도 쐈다. 그리고 날카로운 덜컥거리는 소리를 내는 RPD가 적어도
한 정 있었다. 난 당장 오늘이 내가 죽는 날이구나 생각했다. 내 앞에 있던 두
SCU 대원은 사라졌다. 위치는 알 수 없으나 그 둘은 분명 응사를 하고 있었다.
난 뭘 해야 할지 전혀 몰랐다. 그러나 호킨스 중사가 했다. 그는 소리쳐서 M-79
유탄발사기 사수에게 전방에 쏘라고 했고, 두 발이 날아가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내며 날아가 터졌다. 첫 발이 터지자 소대는 가까운 나무들이 있는 곳으로 퇴각을
시작했다. 후방 약 150미터 거리. 난 마비상태를 극복하고 일어나 소대를 따라 밑
으로 뛰었다. 그리고 몇 분 만에 호킨스 중사가 소대 방어를 구성했다. 그런 상황
에서 어떻게 그렇게 침착한 지 난 믿을 수가 없다.
나무 뒤에 엄폐해 나 자신을 추스르려 노력하고 있을 때 호킨스 중사가 나에게
왔고, 포병 화력을 즉시 요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침착을 되찾았을 때 첨병
두 명이 위 어딘가에 있었다는 걸 어리석게 깨달았다. 난 소대와 같이 있었고
앞의 둘은 앞에 오도가도 못 하고 있었다. 호킨스에게 포병화력을 기다리라고
말하고, 난 두 대원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용기가 아니라 순수한
죄의식이었다. 난 그들을 매복 속으로 데려갔고 방치했다.
그레이 하사가 첨병과 분대무전기로 연락하고 있었는데, 직사각형에 15인치
길이 PRC-8로 전화기보다 약간 컸다. 그러나 통달거리가 짧아서 눈에 안 보
이거나 산을 돌아가면 교신이 안 된다. 난 호킨스 중사에게 15분만 기다리라고
말하고, 돌아와서 포격을 요청하겠다고 했다.
난 소총을 계속 쐈고 떨어지면 탄창을 교환했다. 그러나 탄창을 교환하는데 빼낸
것에 다섯 발이나 남아 있었다. 난 0.1초도 안되어 땅바닥에 얼굴을 대고 엎드렸다.
소총 자물쇠를 반자동으로 놓고 방아쇠를 다섯 번 당겼다. 이어 난 그레이 하사에게
분대 무전기를 건네받고 통역병과 같이 매복지점으로 다시 향했다. 조심스럽게 기
면서 통역병은 무전기로 계속 두 명을 불렀다. 공포로 속은 뒤틀렸지만 힘을 냈다.
소대와 매복장소의 중간에 이르렀을 때 통역병이 한 명과 무전기로 소통되었고,
잠시 후 군복 두 개가 수풀을 통해 나왔다. 그들이었다. 다시 소대로 돌아왔다.
그러나 무전기로 한 포격요청은 또 다른 실수였다. 산이 가로막혀 커닝햄
화력지원진지와 무전이 되지 않은 것이다. 헬기만이 교신이 가능했는데 곧
공중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다행히 우리가 능선 정상에 매우 가까웠기에
결국 포병과 직접 교신이 됐다.
헬기는 랜딩존의 좌표를 내게 주었는데, 사실 확실한 위치는 알 수 없었다.
12개나 되는 작은 능선을 넘어왔기에 정확히 판단이 힘들었다. 그래서 일단
155밀리 지시탄을 쏴서 효력사를 유도하기로 했다. 난 우리 위치에서 3-400
미터 떨어진 능선의 정상을 참고점으로 포격을 요청했다.
첫 포탄이 날아왔을 때, 그건 무서운 게 아니라 당혹감이었다. 포탄은 우리 북동쪽
먼 곳에 떨어져 간신히 소리만 들렸다. 서쪽으로 1km 수정. 그런데도 여전히 포탄
탄착은 너무 멀었고 다시 북동쪽으로 수정. 그 다음 탄에서는 효력사 유도가 가능
해져서 200미터 멀리 좌로 200을 수정했고, 난 속으로 우리 소대에 떨어지지 않기
를 기도했다. 포탄은 북서쪽 300미터 지점에 떨어졌고 매복지점 150미터까지 왔다.
그러나 월맹군은 이미 매복지점에서 이탈해 새로 거점을 구축했을 것 같았다. 결국
큰 나무만 파괴했고, 효력사를 묻는 포병의 말에 소대급 월맹군 근처에 적중했다고
말해주었다.
오후였고 곧 어두워졌다. 우린 훌륭한 방어를 구성했으나 능선 남쪽이어서 커닝햄
진지와 무선 신호는 희미했다. 호킨스 중사와 난 상의 끝에 능선 정상에 야간방어
RON를 구성하기로 했다. 계곡을 따라 능선 정상으로 기동했다. 정상에 이르자 사방
의 풍경은 우리에게 전혀 낯설게 보였다. 거의 3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나무들로
인해 태양빛이 차단될 정도의 정글. 어떤 나무는 직경이 6인치 이상이나 됐고 어찌
된 일인지 거대한 옥석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태양볕이 안 들어 왔기 때문에 땅바닥
은 수풀이 적었다. 그 능선에는 200-300미터 크기의 평지가 있었고 열십자로 길이
나 있었다. 그 중간에 하나는 매우 많이 사용되어 반들반들했다.
소대가 방어구성을 하자 완전히 어두워졌다. 기운을 축척할 시간이었다. 우린
매복을 당했지만 부상자가 없었고 통신은 잘 됐으며 탄약도 충분했다. 그러나
물을 보충할 곳이 없었기에 아침이면 떨어질 것 같았다. 난 그 잘 사용된 오솔길
이 불안했고, 주변에 월맹군이 많이 있다는 증거라고 봤다. 중대의 나머지는
내일 아침에 온다. 밤은 잘 지나갈 것이라 믿었다.
당시 상공엔 ‘블랙버드’가 있었는데, 그것은 매우 특별하게 장비된 C-130 수송기
로 라오스 상공을 은밀히 날면서 우릴 포함해 여러 부대의 통신을 중계했다. 원래
국제법상 우린 거기 있으면 안 된다. 블랙버드의 호출부호가 낮에는 ‘Hillsborough’
밤에는 ‘Moonbeam’이었다. 야간에 문빔은 든든한 친구였고 급하면 조명탄도 투하
해줬다. 그러나 당시는 월맹군에게 노출될 가능성 때문에 조명탄은 불가했다. 그래
서 필요하면 블랙버드는 좀 떨어진 곳에 조명탄을 투하하는 전술도 썼다. 낮에
매복했던 월맹군들은 대충 우리 위치를 알 것 같았고 난 잠에 들지 못했다.
2일차
2월 26일 아침 여명이 텄다. 여명이 트면 습격에 대비해 곧바로 이동태세를 갖
추고 경계한다. 적은 밤에 주시하다가 바로 여명시 주로 공격하는 경우가 많다.
거대한 나무들 때문에 여명의 빛은 느리게 다가왔고 빛도 매우 적었다. 물들이
높은 나무에서 떨어졌는데 비가 내리는 것 같기도 했다. 자세히 보니 하늘이 흐려
진짜 비가 내리는 것 같기도 했다. 이런 날씨에 중대와 규합이 가능할까 불안했다.
불안은 현실로 다가왔다. 커닝햄 진지에는 지상 작전팀과 연결하는 CCN 연락장교
가 와 있었는데, 기상이 안 좋아 중대 나머지의 발진이 지연되고 있다고 알려왔다.
오후 늦게나 가능할 거란다.
늦은 아침, 월맹군이 우릴 발견했다. 소대방어선 북동쪽 분대가 전방에 움직임과
목소리를 목격. 교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죽음의 게임으로 녹초가 됐다. 난 통역관
을 불러 그 분대에서 목소리를 들을 때 대화내용도 들었냐고 물었다. 당시 2-3명의
월맹군이 방어선에 다가오다 정지했고 이후 안 보이는 상태에서 대화를 했다고 한다.
대화 내용을 엿들었는데, 미군이 근처에 있다면서 미군에게 간파되기 전에 일대를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한다. 그들은 명백히 우릴 알고 있었고 같은 장소에 있으면
그들이 또 다가올 게 분명했다. 그들의 대담함에 힘이 빠졌다. 북동쪽 어딘가에
대규모 병력이 우릴 매복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정오가 지나 중대가 오늘 도착하지 못한다는 소식이 왔다. 우린 임무를 계속해야
한다. 호킨스 중사와 상의한 뒤에 북동쪽은 피해 서쪽으로 가기로 했다. 우린 최대
한 조용히 이동했고 항상 후미를 경계했다. 그러나 곧 높은 벼랑을 만나 다시 후퇴
해서 길을 뚫어야 했고, 서쪽으로 2-3백 미터를 가서야 원하는 방향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밑으로 조금 내려가자 나무들이 얇아지고 비교적 개활지인 숲이 나왔다.
물이 떨어져가고 있었다. 기상은 여전히 구름이 끼고 좋지 않았으며 우리에겐
탈수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린 작은 대나무를 잘라 씹었다. 대나무 습기로
갈증을 다소나마 해소할 수 있었다.
오후 늦게 완전히 다른 숲이 나타났다. 깊은 골짜기를 건너 150미터를 가니 북서쪽
으로 향하는 굉장히 높고 폭이 넓은 능선이 나타났다. 숲의 형태는 나타났다 사라졌
다를 반복했다. 그러나 삼중차폐정글보다는 수풀이 무성해서 멀리 볼 수 없었다.
앞의 지형은 날카롭게 밑으로 향하고 있었고 밑을 골짜기였다.
마침내 거기 물이 있었다. 그때 서쪽 능선으로 우리가 노출되었다는 사실은 어렴
풋이 느끼고만 있었다. 그러나 병사들은 모두 물을 뜨러 밑으로 미끄러져 내려가려
했고, 결국 난 몇 명만 수통을 모아 물을 담고 나머지는 열에서 이탈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물을 뜨는 사람 외에 본대는 그 물을 건너고 있었다.
시냇물은 약 1미터 폭이었고 매우 깨끗하고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나도 수통에
물을 채우고 요오드 정제를 넣고 흔들며 냇가 반대편으로 올라섰다. 물을 뜨기
위해 대열은 느리게 이동했다. 난 1분대 뒤에 있었고 소대는 약 100미터에 걸쳐
늘어져 있었다. 물을 건너 75미터 정도를 갔고... 그때 월맹군이 우릴 때렸다.
천둥과 같은 자동화기가 동시에 파열했고 소리는 AK-47이었고 RPD도 있었다.
응사하는 날카로운 소대의 M-16 응사음과 M-60 기관총 소리도 울렸고 M-79
유탄 발사음도 들렸다. 그때 새로운 폭발음이 들렸는데 그건 적의 B-40 로켓.
로켓이 날아와 나무에 충돌하면서 수 백 개의 금속 파편이 날았다. 월맹군은
북서쪽 200미터 위 능선에 있었다. 능선에 숨어 개활지의 우릴 공격한 것이다.
나뭇조각이 사방에 날았고 잎사귀와 쓰레기들이 공중에서 쏟아졌다.
난 움직일 수 없었다. 생각할 수도 없었고 뭘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호킨스 중사는 했다. 중사가 나에게 달려오더니 올라가면 킬링존이니
벗어나야 한다고 소리쳤다. 중사는 내 3-4미터 아래에서 엎드렸다 일어나
모두에게 능선으로 뛰라고 소리쳤다. 사방에서 우리 소대의 사격 섬광이 터
졌고 이어 기관총 예광탄이 뒤에서 날아왔는데, 그 탄들이 여덟 발 정도 서
있는 호킨스 중사의 발 부근을 때렸다. 난 사격을 무시하고 행동하는 중사
에게 움직이라고 소리치면서 앞에 방어할 장소가 있나 보라고 했다. 잠시
호킨스 중사를 쳐다봤는데, 사방에 총알이 떨어지는데도 놀랍게 침착했다.
그걸 보고 나도 일어나 뛰었다.
가파랐다. 그러나 난 평생을 통틀어 그렇게 빨리 뛴 적이 없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공포가 느껴졌으나 이번엔 당황하지 않았다. 난 소대 앞으로 뛰어가
지휘권을 다시 장악했다. 약 200미터 뛰어가니 그레이 하사가 엎드려 1소대와
함께 총을 쏘고 있었다. 지형은 또 바뀌었다. 난 숨을 쉴 수 없었고, 말도 못하고
숨을 헐떡였다. 난 그레이 하사에게 동쪽으로 뛴다고 수기신호를 했다. 그러나
돌연히 숲이 끝나고 돌연 개활지가 나타났다.
난 가슴 높이 풀 속으로 들어갔고, 북쪽을 향해 가파른 내리막으로 떨어졌다.
일대 약 250미터 폭에 길고 빽빽한 숲이었다. 거대한 원형 모양의 능선을 400
미터 돌아서 내려갔다. 이슬비가 내렸다. 다시 위로 100미터를 올라가니 나무가
산재한 지역이 나왔고, 오른쪽 어두운 땅에 보니 작은 토루 같은 것들이 보였다.
속이 뒤틀렸다. 벙커였다. 그러나 거기서 우릴 쏘는 적은 없었다. 벙커지대에
월맹군은 없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우린 벙커지대로 이동했고 눈에 보이는 통로는 그뿐
이었다. 소대에 수기신호로 그 개활지를 건너 숲으로 뛰라고 명령했고, 이동
하면서 보니 정말 월맹군은 없었다. 더 이동하니 100미터 곱하기 100미터
개활지대가 나왔고 거기에도 오래된 벙커가 있었다. 이상적이지는 않았으나
일단 거기 자리를 잡았다.
구름으로 인해서 빠르게 어두워졌다. 호킨스 중사는 날 뒤로 두고 지친 소대원
들을 방어를 위해 그러모았다. 재정비할 시간이었다. 2분대를 맡았던 의무주특기
리 병장은 다리에 총을 맞았고, SCU 대원 세 명이 부상당했다. 그 중 세 명은
중상. 최악은 1명 실종이었다.
그 넝 대원은 나도 알고 있었다. 16-17세 밖에 안 된 친구로 항상 밝고 잘 웃는
게 특징이었다. 그는 후미에서 수통을 들고 물을 뜨러 내려가다 교전이 일어나
버린 것이다. 목격한 대원에 따르면 총격과 폭발 속에 냇가에 앞으로 쓰러졌고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분대원들은 그가 즉사한 걸로 생각했다. 오늘의
최악이었다. 그러나 그를 살펴보기 위해 소대원을 위험을 무릅쓰고 내보낼 수는
없었다. 내 마음에 불안한 점이 떠올랐다. 만약 그가 미국인이었다면 똑같이
가지 않았을까?
굳은 날씨에 지원은 커닝햄진지의 155밀리 포뿐이었다. 적을 만났던 골짜기에
포격을 요청해 퍼부었다. 우릴 추적하기 전에 좀 때려줄 필요가 있었다. 커닝햄
진지의 연락장교에게 상황보고할 시간이었다. 난 CCN의 선임참모인 무어 소령
목소리를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당시 포격요청과 소대가 방어편성을 하면서
상황보고를 하는 건 참 힘들었다. 난 죽음이 두려웠고 추웠으며 젖었고 군화
상태는 비참했다. 코드북 SOI에 따라서 약정된 암호로 보고를 했다. 그 당시
현지민 대원을 뜻하는 암호는 ‘밀짚모자’였고 미군 대원은 ‘하얀모자’였다.
그래서 난
“하얀모자 1명 부상, 밀짚모자 5명 부상, 밀짚모자 1명 실종.”
이라고 전문을 날렸다.
무어 소령은 상황보고가 정확한 거냐고 반문했다. 그래서 맞다고 하자, 소령은
나에게 ‘초원의 불(Prairie Fire)’을 선언할 거냐고 물었다. ‘초원의 불’은 두 가지
뜻이 있었다. 첫 번째는 남베트남 국경을 넘어 라오스 쪽으로 20-30km 들어가는
CCN의 호치민루트 정찰작전 이름이고, 다른 하나는 말하기 쉽지 않은 뜻으로,
정찰팀이 전멸에 이를 정도로 위급한 상황에서 ‘브로큰 애로우’와 비슷한 뜻이
된다. ‘초원의 불!’을 선언하면 모든 육상 공중의 가용한 화력이 총동원되어 지상
에 퍼부어주면서 비상탈출을 시도하게 된다. 그 선언은 엄청난 적으로 인해 죽기
직전에 하는 것. 우린 월맹군을 회피했고 바로 공격당하지는 않았다. 난 상황을
판단해 초원의 불을 선언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비참하게 두려웠고 눈물이 흐르기 직전이었다.
난 무작정 이렇게 말했다. “무어 소령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전기에서 긴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잠시 후 무어 소령이 말했다.
“이봐, 진정해. 아침에 의무헬기를 보내줄 거야.
그리고 무전기 상으로 이름을 부르면 어떻게 하나!!”
나와 호킨스 중사는 큰 나무 아래에서 비참한 기분이었다. 자귀부대 소대장과
소대 선임하사는 원래 같이 있으면 안 된다. 한 명에 유고가 생기면 지휘권을
인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 그가 가까이 있길 바랐다. 침착하고 용감한
그가 있어야 내가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밤은 정말 길었고 잠도 안 왔다.
젖었고 추웠다. 난 미시건 주 북부 출신이고 그런 추운 밤은 평생 처음이었다.
사방은 아무 것도 안 보이는 완벽한 칠흑. 부상자들은 더욱 힘들었고 특히나
복부에 총을 맞은 대원은 가장 심했다. 정말 큰 고통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래도 밤 동안 그는 한마디 비명도 내지르지 않았다.
밤 동안 우린 북동쪽에서 철커덕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우릴 찾는 월맹군들
끼리의 신호 같았기도 했고 바람에 대나무가 부딪치는 소리 같기도 했다.
그게 무엇이든 난 굉장히 긴장했고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러나 호킨스
중사는 잤다. 대담하게도 코를 골면서. 그의 코고는 소리는 전기톱 소리와
같아 1마일 거리의 월맹군도 들을 것 같았다. 잠깐 깨웠지만 다시 통나무
처럼 잠이 들었다.
3일 차
다시 여명 전에 군장을 꾸려 적 내습에 대비했으나 그들은 오지 않았다. 밤
동안 우릴 못 찾은 거다. 난 먼저 부상자들을 후송시키고 중대 나머지 병력이
들어와 연합되길 바랐다. 우린 방어선 일대에 랜딩존을 만들면서 풀을 쳐내고
평탄작업을 했다. 작은 나무들은 C-4를 이용해 날려버렸으나 긴 나무들의
높은 곳에 달려 있는 큰 가지들은 방법이 없었다. UH-1이 진입하기에 너무
타이트했다. C-4를 이용한 그 큰 나무 날리기는 쓸 데가 없었다. 큰 나무는
직경이 1.5m나 된다. 한 분대장이 놀라운 아이디어를 말했다. 6밀리 로켓인
LAW를 사용해 높은 곳의 가지를 날리자는 거였다. 두 번이나 생각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헬기가 떴다는 소식이 들렸지만 놀랍게도 기종은 부상자 후송을 위해 CH-46
이었다. 그 기종은 프로펠러가 두 개라 방법이 없었다. 실제로 헬기가 다가와
보니 정말 방법이 없었다. 결국 부상자는 헬기에서 내린 케이블 승강기(jungle
penetrater)을 이용해서 3명의 중상자를 위로 올렸고 높이는 30미터보다 높았다.
다리에 총 맞은 리 병장, 그리고 복부에 총 맞은 넝 대원이 올라갔고, 그 다음
으로 부상이 심한 대원이 올라갔다.
부상자를 올리는 동안 헬기에서는 노트를 하나 떨어트렸다. 그건 중대장 밀러
대위가 보낸 것이었고, 용기를 북돋는 말과 함께 최대한 빨리 가겠다고 쓰여
있었다. 소부대만 떨어져 있어 중대장은 걱정하고 있었다. 랜딩존을 청소하고
부상자를 후송하는데 아침시간이 모두 흘렀고 월맹군에게 우리 위치를 완벽히
알렸다고 생각했다. 소대는 총 21명이 남았다. 중대가 오늘도 올 가능성도 없고,
모든 게 모진 상황. 곧 적의 공격이 임박했고, 문제는 언제 어떤 식인가였다.
태양이 나왔고 맑아졌다. 우리 북쪽에는 500미터 크기의 가파른 능선이 버티고
있었으며, 그 능선을 넘어 3km를 가면 남베트남 국경선이다. 이어진 정글을 타고
북쪽으로 더 가면 바로 케산. 정글과 수목이 깊어 산들은 회녹색이나 혹은 검은색
으로 보였고 지상이 태양에 노출된 지형은 가끔 적갈색으로 보였다. 풍경은 장관
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바로 그때 미 해병9연대는 월맹군과 혈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 능선 반대편 넘어 우리 입장에서 북쪽, 해병대 2개 중대가 거의 전멸에
가까운 상황. 듀이협곡작전은 미 해병대가 가장 큰 대가를 치렀다.
이후 해병9연대는 ‘The Walking Dead’라는 별명이 생겼다.
월맹군 공격을 기다리는 냉혹한 시간은 참으로 천천히 흘렀다. 모두 최대한 참호를
깊게 팠다. 우린 야전삽을 가져가지 않았기에 우린 대검, 수통컵, 막대기, 맨손으로
딱딱한 땅을 팠다. 물도 없었다. 남아 있는 물도 전날 교전이 발발할 때 뜬 물이었다.
소대원 모두 지쳤고 목이 말랐으며 겁이 났다. 여전히 월맹군은 오지 않는다.
어둠이 찾아왔고 또 다른 불안한 밤이 찾아왔다. 난 육체적인 고갈 속에 어느
정도 잠을 파편적으로 잤다. 다시 새벽이 다가왔으나 월맹군은 공격하지 않았다.
그러나 곧 상황은 바뀐다.
당시 커닝햄 화력지원진지. 원거리 포격을 위해 포들이 고각으로 방열하고 있다.
4일차
2월 28일의 태양이 떠오르고 헬기가 떴다는 소리가 들리며 활발한 무선소통이
이뤄졌다. 그러나 헬기가 이상했다. 뭔가 일어났다. 헬기 무리는 ‘초원의 불'을
선언했다. 헬기가 커닝햄진지와 교신하는 소리를 듣고 약간 알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소대에 다시 죽음과 같은 고요가 찾아왔다. 헬기들은 우릴 향해 날아오다
우리 위치 300-500미터 부근에서 큰 월맹군 무리를 목격했다. 헬기에서 센 숫자
는 300명이 넘었고 우리 위치 북쪽과 서쪽. 난 소대에 경계를 발령했고, 우리 소대
21명은 라오스 산악에서 참호를 파고 적어도 대대 규모의 월맹군을 기다리는 상황
이 되었다. 전쟁의 신은 월맹군에게 격노의 가죽끈을 풀어놓았다.
그건 진짜 전쟁의 신이 아니었다. 월맹군으로 인해 우리 해병대/육군/공군도 모두
같은 폭풍 속으로 들어간다. 몇 시간 동안, 상공엔 온갖 항공기들이 모든 무기를
월맹군에게 퍼부었다. 해병 155밀리포도 지속적으로 산악에 떨어졌고, 해병대와
육군 건쉽들이 날아와 기관총과 로켓을 퍼부었다. 2차대전과 한국전의 오래된
프롭전투기들도 날아와 캐논포와 폭탄으로 지옥을 만들었다. 그들은 잠깐 사라
졌다 다시 돌아와 퍼부었다. 마지막 피날레는 대량학살의 상징 F-4 팬텀 두 대가
장식했다. 팬텀이 사라지자 순간적으로 엄청난 고요의 공포가 우리를 뒤덮었다.
월맹군은 우릴 향해 다가오다 참화를 맛보았고, 정말로 고요 그 자체였다.
월맹군 공격은 산산이 부서졌고 우린 눈으로 월맹군을 볼 수 없었다. 총 한 방
날아오지 않았다. 높은 곳에 헬기가 보였고 적은 안 보인다고 했다. 아마 그 일대
에 있던 적은 전멸했을 정도의 파괴력이었다. 그들이 죽고 우리가 산 것에 대해
신께 감사를 드렸다. 이날은 더 이상 적 활동이 없었다. 그 자리에서 경계상태로
기다렸다. 초원의 불! 선언의 여파로 월맹군은 부서져 물러났다. 우린 이제 물이
떨어졌고 물을 구할 방법도 없다. 갈증은 우릴 허약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밤으로 가는 길목에 커닝햄 진지의 연락장교가 무전기에서 잡음을 냈다. 우릴
공격하려던 월맹군은 북쪽으로 후퇴했으며, 그들은 다시 해병대와 전투를 벌
이다 다시 라오스 쪽으로 후퇴했다고 했다. 보기에 그들은 우리 소대 위치와
북쪽 국경선 중간 어디에 있었다. 그 일대에 월맹군 3개 연대가 있는 걸로 추측
된다고 한다. 어두워지자 곧 이어 B-52 Arc Light 폭격이 그 일대에 있었다. 우린
바짝 쭈그려 자기 몸을 보호해야 했다. B-52들은 우리 전방 1.5km에서 동에서
서로 진행했다.
어둠이 오자 최대한 참호 바닥에 최대한 웅크렸다. 대지가 몸서리치게 전율하고
긴 신음소리가 우리에게 전해졌다. 진동의 시간은 길었으며 소음은 내 머리를
가득 채워, 난 손가락으로 땅바닥을 더 파려고 발버둥쳤다. 그 진동으로 내 몸이
참호에서 튕겨져 나갈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완전한 암흑과 고요가 찾아왔다.
공포와 목마름 속에, 난 약간 잘 수 있었다.
5일차
3월 1일 아침이 태양이 떠올랐다. 하늘은 맑았고 헬기가 온다는 좋은 소식이
들렸다. 나쁜 기상은 남지나해 쪽으로 물러났고 오래 기다려온 우리 중대가
오고 있었다. 밀러 대위와 우리 중대뿐이 아니라 게리 존스 대위가 지휘하는
B중대와 CCN 정찰팀 두 개가 같이 온다고 했다. 작전지휘부는 우리의 위치를
매우 중요하게 보고 있는 듯. 우린 라오스로 퇴각하는 월맹군을 위한 인계철선
이었다. 결국 우리 병력은 총 200명으로 증가했고, 무어 소령이 지휘권을 맡는
다고 했다.
우리 이름은 Task Force Moore가 되었고, CCN에서 유래가 없는 엄청난 규모였다.
밀러 대위가 데려오는 2개 소대는 완편이었고 한 소대는 내가 좋게 생각하는 필
바우소 중위가 맡고 있었다. 바우소 중위는 뉴욕 브롱크스 출신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장교로 입대했고, 임관하자마자 곧바로 특전단에 지원했고 이어
베트남으로 왔다. 그는 저돌적인 장교로 모든 위험한 임무에 자원하는 소대장
중 최고였다. 우리가 작전에 나갈 때 그는 휴가를 떠나 부재중이었다. 다른
소대장 하나는 체격이 큰 윌라드 중위로 작전 1-2일 전에 부임했다.
다른 그린베레 대원 두 명도 이 작전에 자원했다. 내 기억에 보비 블래스윅 대위
와 샌더필드 존스 병장이다. 보비 대위는 참전을 6개월 연장했고 내 용감한 친구
였다. 듀이협곡작전 이전인 8월 23일, 다낭 마블마운틴에 있는 CCN 막사가 월맹군
특공대에게 공격당할 때 거기 보비도 있었다. 당시 그린베레 17명이 죽었고 미군
현지민 대원 다수가 다쳤다. 보비 대위는 죽은 전우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
했다. 당시 그는 지프를 타고 부상자들을 보살폈다. 보비 대위는 무어 중령의 부
-지휘관으로 왔다. 존스 병장은 광트리 기지에 있다 A중대의 분대장으로 자원해
들어왔다. 이후 며칠 간 샌더필드 존스 병장에게 일어나는 일은 여전히 기억한다.
병력은 5일 전에 우리가 내렸던 랜딩존으로 들어왔고 똑같은 어려움을 겪었다.
대나무들로 인해 3-4미터 상공에 정지한 것이다. 이때 윌라드 중위는 다리가
부러져 1-2일만 작전하고 후송되었고 보비 블래스윅 대위가 소대장을 인수했다.
또 누구를 잃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본대는 랜딩해 우리 쪽으로 오고 있었고, 우린 무전기로 유도하며 기다려야 했다.
우린 물이 없어 좀 초라한 꼴. 물은 없었으나 5일치를 휴대했기에 식량은 많았다.
그리고 5일 동안 하루에 한 끼 밖에 먹지 못했기에 더욱 남아돌았다. 우린 LRRP
용 식량과 베트남군 레이션을 섞어서 휴대했는데, LRRP용은 그냥 고기요리를 탈수
시킨 것이었고, 베트남 레이션은 같은 탈수식량이었지만 쌀과 새우 생선 등이 들어
있었다. 문제는 물이 있어야 부어 먹는다는 것. 그래서 우린 5일간 하루 한 끼, 많아
야 두 끼를 먹었다. 우린 허약해지고 끔찍한 갈증에 시달렸다. 내 입술은 말랐고
혀가 굳으면서 무얼 삼키기도 힘들도 무전기에 대고 말하기도 힘들었다.
가끔 그레이 하사는 자신의 분대 경계선 남쪽에 움직임이 포착된다고 보고했다.
병력이 탄 헬기는 우리와 2km 근방이었는데, 그레이 하사 말로는 갑자기 없던
수풀더미가 나타나 이동한다고 했다. 머리칼이 곤두섰다.
우리 A중대장 밀러 대위는 우리의 곤경을 이해하고 있어 이날 꼭 랜딩하려고
노력했다.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결국 밀러 대위는 본대가 그 위치에서 야간
방어를 구성할 것이니 내일 만나자고 했다. 본대와 우리 소대는 여전히 1-1.5
km 거리. 우린 다시 밤을 보내야 했다. 밀러 대위는 무전기로 아침이 되면 우리
소대가 본대 쪽으로 이동하라고 했다. 그러나 하루 종일 우리 주변에 움직이는
것들이 있어 불안했다. 결국 작전의 주가 된 것은 우리 소대가 아니라 본대였다.
본대는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아 했다.
6일차
3월 2일의 동이 튼 직후, 우린 군장을 꾸려 3일 동안 밤과 낮을 보내며 이동한
역방향으로 기동을 시작했다. 우리 소대 모두는 월맹군이 기다리고 있다고 확신
했고 바로 응사할 마음에 준비를 했다. 매우 천천히 기도비닉으로 이동했다. 특
히나 측면공격을 예상해 엄폐된 적을 주시하며 이동했다. 우린 적 지역에서 5일
간 어떻게 이동하고 반응해야 하는지 끔찍한 경험을 했다. 헬기가 공중에 떠 우릴
본대 쪽으로 유도했다. 몇 시간 동안 우린 남쪽 능선 정상을 향해 걷다가 다시
서쪽으로 틀어 능선의 본대로 향했다.
적 지역에서 아군과 연결하는 작업은 매우 위험하다. 서로가 적으로 오인해 급
하게 당겨버릴 수가 있기 때문. 우리 쪽이 더 위험했다. 우린 야위고 불결한 상태
였고 올리브드랩 정글복에 아무런 마크도 없이 느슨한 부니햇을 썼고, 단지 목에
녹색 손수건을 걸쳐 그걸로 얼굴과 눈에 땀을 닦았다. 우리 병력 대부분이 현지민
대원이기 때문에 원거리에서 보면 월맹군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사실, 우리
전술이 적과 비슷하게 보이는 군복과 군장이었다. 그래서 적이 우릴 보고 주저하는
사이 과감히 뛰어가 공격한다. 그게 우리의 얄팍한 잇점이었다. 이번에는 매우 부드
럽게 연결되어야 했다. B중대 선임하사인 피셔가 앞으로 나와 무전기로 우릴 유도
하고 있었다. 그날, 그 하사관을 만나자, 세상에 사람을 만나면서 그렇게 반가운
때가 없었다.
우린 물 부족으로 완전 탈진상태였고, 밀러 대위가 그 꼴을 보고 중대의 물을 일부
떼어내 우리 소대에 줬다. 첫 날 돌아갔던 분대장과 현지민 대원 5명이 우리와 합류
해 내 소대는 다시 27명이 되었다. 밀러 대위는 중대방어선 남서쪽을 맡으라고 했고,
이미 현지민 대원 하나를 지뢰로 잃었으니 조심하라고 했다. 그곳에 한 달 전에 들어
왔던 CCN 정찰팀이 가설한 지뢰도 몇 개 있다고 했다. 아마도 M-14 발목지뢰인 것
같았다. 토마토스프 깡통 크기의 올리브드랩 색깔의 작은 플라스틱 지뢰. 그 지뢰는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부상을 입힌다. 부상자를 조력하는 인원으로 전투력을
저하시킨다.
나와 소대는 중대장이 지정한 곳으로 철저히 수색하면서 이동했다. 정말 비굴할
정도로 조심스런 이동. 발목지뢰를 밟으면 평생 하체불구로 살아야 한다. 말할
필요도 없이 자리에 들어가자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어 본대가 이동을 시작
했으나 한 현지민 대원이 발목지뢰를 밟으면서 분위기가 변했다. 내 대원 하나도
다쳐서 후송헬기를 기다렸다. 우리가 위치한 곳은 능선 끝의 비교적 개활지였다.
전에 들어왔던 CCN 정찰팀은 지뢰를 매설하고 바로 그 장소에서 퇴출했다고 한다.
바로 헬기를 부르려 했으나, 무어 중령이 그 장소에 야간방어를 명령하면서
후송은 미루어졌다.
내 소대가 지치고 휴식이 필요해서 난 적극 찬성이었다. 난 수통컵에 물을 채우고
C-4 조각을 엄지손가락만큼 떼어내 성냥으로 불을 붙인 다음 정찰대용 레이션을
꺼냈다. 데워진 물을 탈수식량 봉지에 부어 2분 후에 먹었다. 내용물은 고기요리에
칠리소스. 어둠이 다가오자 호킨스 선임하사는 경계를 1개 분대 경계 2개 분대
취침하는 교대 방식을 취했다. 나는 지쳐서 무의식에 빠질 정도로 잠에 들었다.
잠자고 있는데 무언가 울부짖는 소리가 내 뇌를 관통하면서 이상함을 느꼈다.
어둠 속에 소음이 가득 차면서 이어 짖는 소리와 꿀꿀거리는 소리까지 난해한
소리가 들렸다. 난 의식을 집중하면서 내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집중
했다. 누군가 목구멍에서 파열하는 소리가 들렸으나 총성은 없었다. 공격받진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그 시끄러운 소리 근원이 뭔지 알 수 없었다. 무전기
에서 밀러 대위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소음은 내가 있는 곳에서 멀지 않았다.
우리 소대 섹터였으나, 사람이 내는 소리 같지가 않았으나 우리 소대원 같았다.
난 내 통역병과 무전병을 부여잡고 일어서 소리의 근원을 찾아 어둠 속을 종종걸음
으로 갔다. 그렇게 걸어가다가 갑자기 지뢰 생각이 떠올랐다. 갑자기 배속이 뒤틀리고
몸이 긴장을 했으나 계속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소리의 근원이 밝혀졌다. 어둠 속에
군복들이 뒤죽박죽 일어나 있었고, 그중 하나는 이미 일어난 호킨스 중사였다. 나머지
대원들은 한 대원을 때리고 땅으로 눌렀다. 그 소리의 근원을 대원들이 억제시키고 있
는 거였다. 난 적색 필터가 달린 후레쉬로 비춰보았다. 그 친구 눈알이 돌아가 있었다.
간질병과 비슷한 증세. 그에게 질문 했지만 통역관도 뭔가 해석할 것이 아니었다. 그저
다치지 않게 그를 여러 명이 누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길게 느껴졌으나 아마도 한 15분 정도였을 거다. 도리질과 소음이 사라졌다.
현지민 대원끼리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고 이어 통역병이 나에게 왔다. 그가 한 것은
부처의 방언이었고, 원래 그는 불교 방언을 하는 친구였다. 그가 진정되고 나서 물어
보니 이랬다. 그의 꿈에 부처가 나타났고 부처가 말하기를 ‘이 근처에 많은 월맹군이
있다. 너희는 더 싸워야 한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난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
지만, 불교를 믿는 현지민 대원들은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은 것 같았다.
(잇빨 주: 여기서 말하는 방언은 지역 사투리가 아니라, 종교적인 집중상태에서 나오는
알아듣기 힘든 신의 말을 토해내는 말을 말한다. 교회나 성당에도 그런 게 있는데, 보통
알아듣기 힘든 이상한 언어나 어휘를 미친 듯이 토해낸다. 중국계 넝은 주로 불교 쪽이다.
쉽게 말해서 본인은 신과 대화를 하는데 다른 사람은 이해하기 힘든 말이 된다. 본인은
그런 거 별로 안 믿는다.)
넝(Nung)은 독특한 민족이다. 그들은 베트남인이지만 중국의 전통을 몇 세대에
걸쳐 완고하게 고수하는 종족. 그들은 전형적인 베트남인들과 좀 다르다. 키도
약간 작고 또한 마른 편이다. 그러나 그들은 독실한 불교신자면서 또한 베트남의
소수인종이란 자부심도 가지고 있다. 그 부처 방언사건 이후, 어디선가 대원들이
향을 피우는 냄새가 났고, 난 통역관에게 향을 모두 끄라고 했다. 일부 미군들은
좋은 이유를 대서 이 넝들을 신뢰하지 않았다.
이들 넝 대원들은 종종 북베트남에 동정적인 감정을 표현했으나, 이들은 북베트남
도 아닌 남베트남도 아닌 우리와 같이 싸우기로 결정했다. 우리가 보수를 많이 줬기
때문이다. 중대에 한 나이가 많은 넝 대원은 부대에서 하우스보이로 썼다. 그는 2차
대전 동안 프랑스를 위해 싸웠던 인물. 다른 한 명은 35세였는데 디엔 비엔 푸에서
싸운 경력이 있었다. 어린 14세의 한 소년병은 키보다 M-16이 더 길었다. 그래서
난 그 소년병을 늘 가까이 두었다.
7일차
3월 3일 아침은 구름이 잔뜩 끼고 음산했다. 밀러 대위는 나와 보비를 불러 잠시
후 떠날 부대이동에 관해서 설명했다. B중대가 선두로 동쪽 능선을 따라 이동할
계획. 내 소대가 B중대 뒤를 따르고 보비의 소대가 후미경계였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우리 소대 방향에서 날카로운 펑! 소리가 났고 고함소리와 동요가
있었다. 우린 즉시 발목지뢰란 걸 깨달았다. 우리 소대원 하나가 그 무시무시한
걸 건드린 것이다. 우리 소대 전투원은 날 포함해 다시 25명으로 줄었다.
지뢰로만 두 명을 잃었다.
이 일로 부상자 후송을 위해 작전이 정지. 날씨는 더 안 좋아졌으나 오후 늦게
헬기는 부상자를 후송해 갈 수 있었다. 결국 무어 중령은 현 장소에서 하루 더
밤을 보내고 아침에 작전을 시작한다고 결정했다. 내 소대 전투원이 25명으로
줄어버린 건 마음에 부담이 되었다. 우린 라오스에서 7일이나 있었고 대부분의
시간 공포와 아드레날린이 우릴 끝으로 몰았다. 그러나 이제 우린 혼자가 아니
었다. 합류하자 소대원들은 상당히 안도와 위안을 느꼈다. 긴장은 사라졌고 신
체적 고갈과 탈수증 영양부족도 향상되었다. 생각해보면 우린 정말 최악이었다.
며칠 동안 느낀 건, 신체적 고갈보다 정신적 공포가 더 강하는 것. 그러나
인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버틸 수 있다.
이날 밤 부처의 방언은 또 반복되었고, 메시지는 전날과 같았다. 울부짖는
넝 대원의 방언과 그것을 막으려는 넝 대원들은 죽일 듯한 구타는 낯설지
않아졌다. 밀러 대위가 나에게 야간통솔 잘하라고 호되게 야단을 쳤고,
다행히 방언은 끝났으나, 새벽에 오기 전에 향을 피우는 냄새는 분명히
맡을 수 있었다.
8일차
3월 4일 동이 트자 곧바로 이동이 시작됐다. 우린 능선을 타고 어샤우 계곡
북쪽 끝을 향해 갔다. 이동은 느리고 조심스러웠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 주변
의 적은 우리보다 훨씬 압도적 숫자란 걸 알고 있었다. 증거들이 드러났다.
빈번히 사용한 흔적이 있는 폭 넓은 도로 수준의 길을 발견했다. 이어 이날
B중대는 쌀 은익고를 여러 개 발견했고, 주로 초가지붕이 덮인 곳 밑에 있었다.
우리 소대가 지날 때 보니 검은 덩어리가 되어 타면서 황 냄새 같은 것이 코에
들어왔다. B중대는 은익고를 백린수류탄으로 파괴했다.
동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우린 삼중차폐정글에서 우림숲으로 들어갔고 하루
종일 작은 나무와 기다란 풀들이 있는 개활지대를 통과했다. 소대를 이동시
키면서 난 항상 측면을 경계했고 빽빽한 수풀을 유심히 살폈다. 날씨는 맑아
담청색의 하늘에 태양이 빛났다.
오후 중간이 되어 능선 쪼개지는 곳에 도달했다. 두 시간 정도 가자 점차 고도는
낮아졌지만 우리 앞 능선들은 동쪽-남동쪽으로 나뉘어졌다. 무어 소령은 능선을
타고 남동쪽으로 가기로 결정했으나 그 이유는 몰랐다. 그 시점에서 난 대대 규모
부대의 소대장으로 작전판단에 관여할 계급이 아니었다. 무어 소령은 틀림없이
지휘부 높은 곳에서 정보와 지시를 받는 것 같았다.
어두워지기 전까지 한 시간을 더 이동하고 자리를 잡아 야간방어를 구성했다.
우리 중대는 능선 남쪽과 정상에 들어갔고, B중대는 능선 동쪽을 맡았다. 보비
의 소대는 원형을 그리며 진을 쳤고 그 끝이 B중대와 만났다. 거긴 좀 어린 숲
으로 나무들 직경이 25cm를 넘지 않았고 풀도 길지 않았다. 방어를 점검하면서
특히 M-60 거점을 조정하고 야간군기를 확인시켰다. 밤에는 50% 경계 50% 휴식
으로 한 참호에서 한 명은 자고 한 명은 경계를 서게 했다. 난 돌아와 물로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때 먹은 식량은 아마도 베트남군 정찰대용
레이션이었다. 새우와 버섯 그리고 쌀로 된. 그 식사는 작전에 투입되고 8일 동안
먹은 다섯 번째 식사였다. 네 번째 식사 후에 정말 오랜만에 먹는 식사였다.
다시 그 어두운 라오스의 밤에 부처 방언이 터져 소음이 일어나고 날 불안케 했다.
밀러 대위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냈다. 밀러 대위는 날 불러, 만약 소대원 통제가
안 된다면 소대장을 누군가로 교체하겠다고 말했다. 난 돌아가 그 방언하는 녀석의
목을 그어버릴 생각까지 들었다. 넝 대원들도 눈치를 봤다.
이 8일차 밤은 정말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정말로 그 대원을 죽여야 하나 고민했다.
넝대원들도 생각이 같았다. 그 대원은 한밤중에 갑자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이
일은 다른 소대와 다른 중대 전체에 다 알려졌다. 부처가 무덤을 지나고 불길한 예언
을 했다고... 그 방언을 하는 대원은, 월맹군 1개 사단이 우릴 포위하고 있으며 바로
내일 우릴 죽이고 박살낼 거라고 했다. 그날 밤 향냄새는 없었지만, 넝대원들에게
스며든 공포의 냄새는 내가 맡을 수 있었다. 염병할, 나도 무서웠다.
글쓴이의 옆 소대 선임하사 홀 중사.
9일차
정말로 부처의 방언이 문제가 될지는 나도 몰랐다. 3월 5일 아침이 밝았고
부대는 진행방향을 변경했다. 방향을 180도 역전해서 지나온 길을 되돌아
가기 시작했다. CCN 정찰팀 두 개가 첨병으로 먼저 갔고 그 다음에 보비의
소대, 그 뒤가 우리 소대였다. 그 다음에는 B중대가 따라왔다. 우린 아침
동안 사고 없이 왔던 길을 되돌아왔고, 오후가 되자 북으로 흐르는 폭 넓은
능선을 타기 시작했다.
날씨는 맑았고 하늘은 푸르렀다. 이 말은 엄청나게 덥고 불쾌하단 뜻이 된다.
더워서가 아니라 우리는 극도의 경계상태로 천천히 이동했다. 그때 코끼리를
봤던 것 같다. 코끼리가 있었다.
엄청난 총격과 혼란이 시작됐다. 밀러 대위는 보비의 소대에 무슨 일이냐고
무전기로 소리쳤으나 응답이 없었다. 보비 소대 선임하사인 홀 중사가 대신
무전기를 잡고, 은익고를 발견했으며 보비 대위가 파괴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때 총소리는 RPD로, 난 분명히 식별할 수 있었다. 이어 전방 위쪽
정글에서 폭발이 일어나면서 교전은 점차 강해졌다.
난 그때 능선의 좁은 곳에 있었고 나무가 있는 작은 도랑에 엄폐했다. 위를
약간 볼 수 있는 위치였다. 그곳은 숲이 울창했고 풀도 많았다. 그때 내 앞의
넝 대원이 도랑 오른쪽으로 M-16을 거총하더니 자동으로 쏘기 시작했다.
거긴 아무 것도 없었다. 그 친구가 바로 14세의 대원으로, 그 친구는 흥분
해서 마구 쏘고 있었다. 그 친구는 지난 9일간 총을 쏠 기회가 거의 없었다.
모든 것은 눈에 흐릿하게 하루 종일 이어졌다.
소음! 보비 대위가 무전기에 등장했다.
“정찰팀이 매복 당했다. 난 그 오른쪽에 있다!”
호킨스 중사가 나와 같이 있었고 내가 소리를 질렀다.
“2개 분대 왼쪽으로 이동하고 번스를 보내!”
난 일어나서 수풀을 뛰기 시작했으나 내 분대들이 보이지 않았다. 쾅! 오른쪽에
움직임이 보였다... 보비 소대였다. 뛰었다. 개활지다. 쾅! 보비 대위가 있었다.
그가 나에게 팔을 흔들었다. 무슨 뜻일까? 그는 수류탄을 들고 있었고 앞을 지시
했다. 쾅! 나무들이 박살이 나면서 숲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람이 보였다. 움직
이지 않는다.
쾅! 내 왼쪽에서 누군가 쏘고 있었고, 내 소대원들이 뛰고 있었다. 내 앞 15미터에
큰 나무가 보였다. 보비 대위가 또 그걸 가르켰다. 쾅! 그는 또 다시 수류탄을 들고
앞을 지시했다. 난 내 탄띠에서 수류탄을 하나 꺼내 (안전핀에) 테이핑한 것을 찢고
핀을 잡아 뽑고 던졌다. 쾅! 바닥에 사람이 보였다. 내 소대였다. 우리 소대원을
쏘지 마!! 쾅!
오른쪽에 군복이 하나 보였다. 샌디 존스. 왜 저기 앉아 있지? 양 다리가 기력을
잃고 쭉 뻗어 있고 팔도 늘어져 있었다. 양 다리에 갈색 얼룩이 보였고 코가 찢어져
있었다. 그는 등의 군장에 지지해 있었다. 부니햇 아래 더러운 금발이 보였다. 그는
날 응시했다. 왼쪽 눈은 크게 열려 있고 오른쪽은 눈꺼풀이 반쯤 내려가 있다. 날
보는 게 아니었다. 그는 아무 것도 보지 않고 있었다. 내 왼쪽 넝대원 하나가 쓰러져
있는데 움직이지 않았다. 머리 모양이 이상했다. 어디 갔지? 머리 반이 없다. 하얗고
부푼 것이 나와 있다... 뇌다... 피는 안 보인다. 왼쪽에 또 누군가 있었다. 하임스다.
그는 정찰팀과 같이 있었다.
납작 엎드린 상태로 Car-15으로 전방을 조준하고 있다. 손가락이 방아쇠울 안에
있다. 왜 안 쏘는 거지? 왜 안 움직이지 거지? 그는 다시 움직이지 못 했다. 너무
시끄러웠다!! 내 숨쉬기가 기진맥진했다... 오른쪽에 뭔가 어렴풋이 보였다. 보비
대위. 우린 같이 엎드렸다. 쓰러진 것이 아니라 점프했다. 가슴이 땅을 때렸다.
그리고 통나무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보비가 내 옆으로 왔다. 난 수류탄을 던질
수 없었다.
끝났다. 난 완전히 감각을 잃고 목이 말랐다. 정말, 정말, 목이 말랐다. 난 물이
없었다. 반대편 통나무에 월맹군 피트 헬멧과 AK-47 돌격총이 보였다. 월맹군은
안 보였고 시체도 없었다. 얼마나 죽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샌디 존스와 얼
하임스와 넝 대원도 몇 명 죽었다. 정찰팀의 모든 대원들이 죽거나 다쳤다.
보비의 소대는 샌디가 죽었고 넝 대원 한 명이 중상. 첫 총소리에 샌디는 가버
렸고 그의 분대원들은 뒤죽박죽 밑으로 뛰었다. 적의 RPD 기관총은 바로 30미터
앞 커다란 통나무에 숨어 있었다. 우리의 돌격은 생존한 정찰팀원들을 살렸다.
놀랍게도 두개골이 반이나 날아간 그 넝대원은 결국 살아난다.
그는 치료를 받고 나중에 마블마운틴의 CCN 막사로 돌아왔고 CCN은 그를
하우스보이로 고용했다. 머리에 인공판을 대고 짜깁기로 한 상태였다. 우리
와 같이 싸운 사람은 보살펴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다.
내 소대는 아무도 안 맞았다. 난 쉬어야 했다. 엉망이었다. 피가 오른쪽 다리
에서 흘러내렸고 바지는 허벅지 중간 부분이 찢어져버렸다. 부상이 아니었다.
찢어져 벌려진 군복바지에 들어난 살이 수풀에 베였을 뿐. 내 소대는 이제 라오스
에서 9일째였고 더럽고 면도도 못하고 고약한 냄새가 났다. 그 동안 식사는 다섯
끼를 했으며 수도 없이 탈수증으로 고통 받았다. 체중이 정확히 말하면 77kg에서
61kg 정도로, 더 중요한 건 내가 그렇게 뛰어난 사람이 아니었다는 거다. 나중에
합류한 6명을 빼고 우리 소대 모두는 나와 같이 고약한 냄새가 났다.
우린 월맹군과 세 번 교전했고, Prairie Fire 선언 직전까지 갔고, 물-식량-탄약도
얼마 없었다. 전투에 무기력한 상태는 아니었고 모든 지시에 행동했다. 아직 아무
도 포기하지 않았다. 아직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인내했다. 배고프고 목마르고
지치고 똥을 쌀만큼 무서웠다. 그때 내 마음 깊숙한 속에서 뭔가 스며나오기 시작
했다. 바로 Pride! 이 사람들은 내 전우다. 총에 쓰러진 샌디 존스도 내 친구다.
그들은 과감히 전개하여 총격 속으로 뛰어들었고 그로 인해 적은 물러났다. 내가
한 게 아니다. 내 넝대원들의 끈기와 가공되지 않은 천연의 용기, 호킨스와 그레이,
리 같은 미군 대원의 통솔력의 결합. 신은 날 포기하지 않았다. 넝대원 이름은 기억
할 수가 없다. 내 부하였고, 내 동료였고, 그들은 군인이었다.
우린 즉각 방어로 전환하여 랜딩존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전사자와 부상자를 후송
시켜야 했다. 내 뒤쪽은 꽤 평평해 랜딩존으로 알맞았다. 능선에서 저 멀리 보면 국경
넘어 베트남의 파노라마가 보였다. 그때 그렇게 공포를 느끼지 않았다면 그 광경은
정말 아름다웠을 것이다. 그때 가끔 보비 대위가 석양을 배경으로 자신을 찍어주었고
그 중 두 장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보비의 소대는 전상자가 나왔고, 그래서 밀러 대위는 그 소대를 뒤로 빼서 서쪽구역
방어를 줬다. 우리 소대는 좀 더 책임감이 필요한 북쪽을 맡았다. 전상자들을 모아
후송준비를 했고 다른 사람들은 랜딩존을 정리했다. 내 기억에 그때 계속 커닝햄진지
로부터 포격지원을 받고 있었다. 그 포격지원은 정말 우리에게 긴요했다. 포탄이 쿵쿵
떨어지는 가운데 우린 또 참호를 팠다. 난 K-Bar 대검과 수통컵을 이용해서 1.8미터
까지 미친 듯이 팠다. 그리고 여전히 사람 미치도록 목이 마르다.
오후 늦게 CH-46인가 CH-47 한 대가 전상자들을 실으러 왔다. 거의 형태가 없어진
대원의 사체가 판초에 담겨 헬기로 향하는 걸 봤고 난 얼굴을 돌렸다. 바라볼 수가
없었다. 밀러 대위가 나와 보비를 불러 작전 지속이 가능한지 의견을 물어 생각을
말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고 다음날 아침 우리 소대가 선도로 북을 향해 출발
한다. 우리 소대는 행색도 초라했고 체력도 떨어져, 사실 B중대가 선두에 서야 정상
이었다. B중대는 전상자도 아직 없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밀러 대위는 B중대가 편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런 거 같다.
이유야 어떻든 나는 그저 yes sir, yes sir라고만 대답했다. 난 소대로 돌아가 호킨스
중사와 분대장들에게 내일 일정을 알려주었다. 호킨스는 소대 탄약을 재분배하고
기관총 위치를 효과 좋은 데로 신중하게 선정했다. 모두 물이 없었기에, 우린 작전
계획을 말하면서 모두 대나무를 씹고 있었다. 우린 식량도 떨어져갔다. 그러나
그때 우리 소대를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오, 하느님. 정말로 목이 마릅니다!
이 두 사진의 흑인하사관이 랄프 호킨스 중사다.
10일차
3월 6일 새벽이 다가왔고 우린 조용히 경계태세를 유지했다. 사방은 조용했고
월맹군은 공격하지 않았다. 오전 8시 조용히 이동을 시작했다. 10일간의 작전
으로 내 기력은 떨어졌다. 난 이때부터 내 몸의 상태는 거의 관심두지 않았다.
걷다 보니 땅에 작은 부비트랩 구멍이 있었고, 난 거기에 레이션 화장지를 약간
잘라 위에 놓았다. 난 내의를 입지 않았다. 오래된 하사관들은 내의를 입어야
정글부패(jungle rot)를 예방할 수 있다고 했으나 이미 바지가 누더기가 됐다.
난 변비에 걸렸고 조금 노력한 가운데 결국 나왔다. 내가 소대의 맨 앞으로
와서 자리를 잡으려고 할 때, 또 다시 세상은 지옥으로 변했다.
쾅! 앞으로 쓰러졌고 얼굴이 땅에 닿았다. 쾅! 일어서려다가 난 쭉 미끄러졌다.
쾅! 내 총 어딨지? 난 맞았다. 제발 바지가 완전히 날아가지 않기를. 쾅! 점차
인지가 된다. RPD, AK, B-40이 포효한다. 내 뒤는 먼지와 조각들로 안 보인다.
악마의 로켓탄들이 사방에서 터지고 있었다. 그 대혼란의 소용돌이에 M-16,
M-60, M-79가 소음에 합류한다. 앞의 경사면을 이리저리 살폈으나 아무 것도
안 보인다. 모든 소음은 내 뒤에서 나고 있다. B중대가 공격받은 것이다. 적은
랜딩존 동쪽능선에서 사격을 하고 있고 남쪽에서는 강력한 공격을 가하고 있다.
쾅! 아무 것도 할 수가 없고, 쏠 대상이 없다. 내 앞엔 아무 것도 없다. 모든 게
뒤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를 꽉 악물었다. 공포가 논리를 넘어섰다. 난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무전기에 집중했다. 칙! 하면서 밀러 대위 목소리가 나왔다.
“모두 머리 숙여. 포병이 쏠 거다. 아주 가깝게 날아온다!” 엄청난 폭발음이
남쪽에서 들렸다. 정말로 엄청 가깝다! 150미터 거리. 155밀리 포탄의 끔찍한
폭발음이 다가왔다. 정적!! 난 군장에서 K-Bar knife를 꺼내 땅을 파기 시작했다.
생각이 없었다. 오 하느님, 목이 마릅니다!
끝났다. 무어 소령의 포격유도는 정확했고, 커닝햄 진지의 155밀리는 월맹군
공격을 무산시켰다. 그 아침에 더 이상 이동하지 않았다. 후송해야 할 새로운
전상자들이 생겼다. 얼마나 많이 죽거나 다쳤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 소대는
맞은 사람이 없었다. B중대에는 또 부상자가 생겼다.
날씨는 다시 나빠졌다. 그러나 오전 늦게 휩휩휩 하는 UH-1 헬기 소리가 들렸다.
헬기는 잔뜩 낀 구름 속에서 나와 착륙했다. 그리고 더욱 놀란 건 필 바우소가 그
헬기에서 뛰어내린 거다. 거기다 그는 신의 은총으로 5갤런 물통 5개를 가져왔다.
너무나 아름답고 황홀하고 맛나는 물이었다. 필 바우소는 휴가에서 돌아와 자기
소대가 라오스로 들어갔다는 걸 알았고, 또한 우리가 거대한 월맹군의 수중에 있
다는 것도 알았다. 결국 필 바우소는 원래 자기 소대를 맡았고, 보비 대위는 모어
장군의 참모로 다시 들어갔다.
난 적의 정황까지는 몰랐고, 그저 우리 제대만이 아는 정보의 전부였다. 무어
중령은 분명히 적의 정보를 상부로부터 받고 있는 듯했다. 특히나 그 정보의
근원은 특전단의 전설인 딕 미도우즈가 주는 것이었다. 당시 그는 캠프 페이의
OP-34의 작전장교였다. 34호작전부서는 SOG의 일부로 북베트남에 첩자를
침투시키는 부서였다. 이 34부서에서 침투시킨 첩자들은 대부분 실종됐다가
1990년대에 다시 나타났다. 당시 구금되었던 이들이 풀려났고, 미국정부도
이들이 SOG의 일부였음을 마지못해 인정했다.
1969년에는 양측 협상의 시작으로 인해 더 이상 북파간첩을 보내지 않았고,
이들은 북베트남이 아닌 라오스, 캄보디아, 비무장지대 부근에 첩자를 침투
시켰다. ‘스트라타’ ‘파이크 힐’ ‘지구천사’등의 팀이 그것이다. 이 첩보팀들은
모두 현지민들로 적 군복을 입고 도로나 철도를 타고 이동했다. 그래서 이들
을 ‘로드러너’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침투첩보팀에 미국인들 들어가지 않았고
조력만 했다.
그래서 딕 미도우즈가 침투시킨 로드러너 첩보팀이 우리 부대 몇 킬로미터
근처에서 정보를 보내주고 있었던 거다. 놀랍게도 딕 미도우즈는 전례를 깨고
그들과 함께 같이 침투했다. 그들은 우리보다 더 북쪽으로 들어가 국경을 향해
가면서 포로도 잡았다. 그래서 그곳에 대대 규모의 벙커지대가 있다고 우리
에게 정보를 준 것이다. 딕과 로드러너팀은 결국 국경을 돌파하여 우리
해병대와 연결되었다.
받은 정보가 무엇이든 간에, 무어 소령은 밀러 대위에게 벙커지대를 2개 소대로
공격하라고 했고 B중대는 백업이었다. 3월 6일 오후에 밀러 대위는 날 랜딩존으로
불러 계획을 설명했다. 결국 구름은 태양에 깨져버리고 밝고 파란 하늘이 나타났다.
일대 대원들은 랜딩존 구성과 거점 축성으로 매우 바빴다. 그때 B중대의 넝 대원
하나가 참호를 파고 있었고, 그는 M-79 사수였다. 그는 M-79를 나무 그루터기에
기대어 놓은 상태. 그때 내 시야에서 기대어 놓은 M-79가 미끄러져 쓰러지는 걸
봤다. 슬로우 모션으로 보였다.
난 얼어붙었고 밀러 대위는 빠른 걸음을 앞으로 내딛고 있었다. M-79는 결국 땅
으로 쓰러지면서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유탄이 내 머리 위로 날아갔다. 사실 40밀리
유탄은 눈이 좋은 사람은 날아가는 걸 볼 수 있다. 유탄이 날 향해 날아오는 건 상상
해본 적도 없다. 그러나 그때는 날아왔다. 금색이 나는 녹색 물체가 나와 밀러대위를
향해 날아왔다. 난 움직일 수도, 고함을 지를 수도, 기도를 할 수도 없었고, 결국 유탄
은 우릴 통과해 랜딩존 건너편 북쪽 풀밭에 터졌다. 그리고 그 강철파편이 우리 소대
섹터로 날아들었다.
인생이란 공평하지 않다. 우리 소대원들은 로켓 폭발이 난무하고 대기에 가득 총알
이 날아다니는 가운데도 손끝 하나 안 다치고 살아 남았었다. 그러나 이 사고로 인해
우리 총기류와 함께 통역병을 포함해 우리 소대 7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제 우리
소대 전투원은 18명으로 줄어들었다. 날씨가 맑아 부상자는 후송됐으나 재보급은
또 없었다.
헬기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후 5시 적은 다시 공격했다. 더 이상 재미있을
수가 없다! 다시 소음과 참을 수 없는 폭발음으로 내 공포는 누그러들지 않았다.
B-40 로켓이 터지고, AK와 RPD가 난무했고 이어 아군의 총 기관총 유탄발사기가
뒤를 이었다. 공격은 B중대 쪽이었다. 날 향해 쏘는 건 없었다. 내 참호는 눈에 띌
만큼 깊었고, 그 어떤 파편도 날 건드릴 수 없었다. DANGER CLOSE! 155밀리가
다시 정글을 강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고요!
(B-40: 40밀리 로켓이란 의미고 정확히 말하면 RPG-2를 의미한다)
말할 필요가 없었다. 다시 부상자가 생겼고, 재보급을 해주지 않으면
탄약, 물, 식량, 심지어 대원도 떨어져갈 판이었다.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11일차
3월 7일 새벽이 밝았으나, 재보급 희망은 구름이 잔뜩 끼어 불안했다. 난 마지막
남은 물을 마셨다. 그걸 마셔도 여전히 무시무시한 갈증을 느낀다. 그리고 다시
전투 시작. 월맹군은 알람처럼 오전 8시 정각에 공격했다. 다시 라오스 산악에서
엄청난 대량살상의 끝없는 포효가 시작된다. 그리고 다시 끝난다. 이 공격은 영원
처럼 보였으나 사실은 5-10분이다. 5-10분이 인간에게 얼마나 끔찍한 공포를 줄
수 있는지 놀랍다.
지휘부 위쪽에서 왜 낙하산을 이용한 재보급이라도 해주지 않는지 나로써는 이해가
안 됐다. 그날 몇 번 C-130인가 123인가 기억은 안 나지만 시도는 했지만 쓸데없었다.
그냥 헬기로 싣고 와서 번들을 발로 차 낙하산으로 투하하면 된다. 우린 그저 남은
총알과 식량을 바라볼 뿐. 물은 랜딩존 건너편 동쪽에서 약간 떠와서 귀중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 능선 끝은 월맹군 수중에 있기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한 낙하산 화물
번들이 중간 풀밭에 떨어졌으나, 우리도 월맹군도 아무도 손대지 않았다. 나가면
맞아 죽는다. 오 하느님, 정말 목이 마릅니다!
오후 5시에 또 우릴 때렸다. 아무런 대책도 없었고 응사도 거의 하지 않았다. 죽을
까봐 무서웠고, 이동명령이 떨어지라고 기도했다. 그냥 그 자리에 기다리는 게 취미가
아니었다. 굶어죽거나 목 말라 죽거나 둘 중 하나. 우린 탄약이 떨어지고 결국 월맹군
에게 몰살당할 것이다. 사방에 파편 중 하나가 날 잡을 거 같았다. 공격 후에 능선에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개활지 형태의 숲과 길지 않은 풀들. 100미터는 볼 수 있었다.
다음엔 뭐가 기다릴까? 월맹군? 물? 구세주? 난 기력이 없어 나가볼 힘도 없었다.
밤에 잠도 못 잤다. 잘 웃고 장난기 많던 그 병사가 외딴 정글의 개울에 앞으로 쓰러
진 상태로 두개골이 깨져 아이보리 청동색 해골에서 뇌가 흘러나오던 장면이 자꾸
떠올랐다. 튼튼한 젊은 병사는 앞이마에 금발 머리가 쓸려져 내려왔고, 그의 공허한
눈동자는 무언가 탄원하는 듯 했고 입술은 벌어지고 음란한 듯한 씩 웃는 웃음으로
전사했다. 얼굴이 없어진 대원, 두개골 상판이 없어지면서 뇌가 흘러나왔다. 이런
이미지들이 전에 없이 또렷이 떠올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아직도,
가끔은 매일, 혹은 몇 달에 한 번씩 날 아직도 찾아온다.
12일차
3월 8일, 월맹군 스케줄은 정확했다. 오전 8시, 불폭풍이 왔다. 공격의 예봉은
B중대쪽 경계선. 우리도 그렇고 B중대도 그렇고 탄약이 모자라 재분배한 상태.
그런데 구원이 나타났다. 전술1군단장인 스틸웰 장군이 우리 제대가 불필요하
다고 생각한 끝에, 재보급보다는 우릴 퇴출시키라고 명령한 것이다. 구름이 잔뜩
낀 아침, 헬기가 공중에 올랐다. 기상이 안 좋아 출동 가능한 헬기는 제한적이었다.
결국 1개 소대는 남아서 전체가 퇴출할 때까지 뒤를 봐주다가 새로운 랜딩존에서
나중에 퇴출하기로 결정이 났다.
당시 우리 A중대가 B중대보다 먼저였고 중대는 우리 소대를 퇴출작전에서 맨
처음으로 계획했다. 결국 첫 번째 UH-1 헬기가 오자 난 소대원들과 함께 올라
탔다. 능선에선 월맹군이 또 공격하고 있는 게 상공에서 보였다. 건쉽들이 엄호
사격했고, 상공에서 보니 불같은 교전과 함께 파편이 날고 불타올랐다. 헬기는
날아오르자마자 날카롭게 회전하면서 공중으로 올라, 기수를 틀어 남베트남
영토의 산악으로 방향을 잡았다.
Task Force Moore의 규모는 SOG에서 유별난 크기였다. SOG에서 특히나
OP-35는 정보 취득이 주 임무였다. OP-35에서 주된 요체는 정찰팀이다.
우리 자귀부대는 정찰팀이 극도의 위기에 빠지거나, 혹은 정찰팀이 폭로한
적의 중급 목표를 퇴출과 함께 파괴하러 들어가는 거였다. 그래서 우린 소대
나 중대 단위로 행동했다. 이번과 같은 2개 중대급 대규모 작전은 딱 한번
밖에 없었다.
바로 1971년 Tail Wind 작전이다. 중대급 이상 정도로만 나도 알고 있다. 1990
년대 CNN 방송이 방송할 때 대대급이라고 언급했었다. 그러니 SOG에서 2개
중대를 실은 많은 헬기를 동원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헬기로 광트리
까지 모두 갈 수가 없었고, 일단 중간에 안전한 랜딩존을 만들어 모두 옮긴
다음, 다시 광트리 기지로 복귀하기로 결정이 났다.
랜딩존은 커닝햄 화력진지 동쪽 1.5km 거리에 선정되었다. 헬기가 그 랜딩존
정상을 도는데 눈에 좋아 보였다. 한 50미터 폭의 정상으로, 거의 풀이 없었고,
남과 북으로 능선이 이어지는데 워낙 좁고 길어서 적에게 위협당하지 않는 지형
이었다. 일대 지형이 내려다보이기 때문에 충분히 공격도 간파할 수 있었다. 우리
소대는 먼저 랜딩하여 랜딩존 접수와 경계에 들어갔다. 30분 후에 필의 소대와
우리 A중대 전체가 도착했다.
듣기에 B중대가 빠질 무렵 월맹군은 다시 공격했다고 한다. 이때 B중대장 게리
존스도 부상을 당했으나 결국 헬기에 올라탔다. 무어 소령도 B중대 나머지와 함께
퇴출했으나, 보비 브래더윅과 B중대 일부가 라오스 능선에 남겨졌다. 기상이 좋지
않아 다음날 퇴출하기로 한 것이다. 보비는 말한 적이 없지만, 남겨진 그들은 얼마나
두려웠을까. 탄약도 물도 식량도 거의 없었고 적은 규모가 크고 강하게 정기적으로
공격해 왔었다.
그러나 그들의 퇴출은 우리가 있던 고지 정상 랜딩존으로 오지 않고 광트리로
바로 복귀했다. 존스 대위와 무어 대령도 똑같이 우리에게 오지 않았다. 그들은
커닝햄 진지에 바로 내려 헬기를 갈아타고 광트리로 직행했다. 결국 우리 A중대
의 나머지는 그 고지 불모한 정상에서,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고독하게 잊혀졌다.
이후 7일간은 나에게 있어 몽롱한 기억이다.
물도 식량도 없었고, 거기선 어디 물을 구할 수도 없었다.
처음에 물을 찾으러 정찰대를 내보내 샘 한 곳을 찾았지만, 똑똑 떨어지는 물이라
수통 하나를 채우려면 5분이 걸렸다. 우리 몇이 탈수증으로 죽지 않을까 걱정되는
심각한 상황. 그 샘은 우리 고지에서 200미터나 떨어져 있었다. 매일 정찰대를 내
보내 물을 약간씩 떠왔다. 전체 인원에 간에 기별도 안 가는 양이었다. 거기다
며칠이 지나자 물방울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굶주림의 증표는 매우 미묘했다. 우리 소대가 작전에 나온 건 2월 25일로
12일이나 흘렀다. 난 다섯 끼 식사만 먹었고 마지막 5일간은 아무 것도 못
먹었다. 우리 소대원들도 같은 상황. 배고픔의 느낌마저 지나가버렸다. 우리
육체는 조금씩 한계를 향해 하락했다. 가장 큰 특징은 약해져간다는 것. 하루
하루 매일 약해져갔고, 마지막에는 일어서 서 있을 수도 없었다. 우린 참호도
파지 않았다.
한 달 전에 어떤 병력이 이 고지 정상에서 있었던 모양이다. 아마도 해병대인
것 같은데, 사방에 C-레이션 깡통이 널려 있었고 사방에 그들이 전에 팠던
참호와 교통호가 있었다. 우린 그냥 거기 들어가면 됐다. 내 소대는 북쪽과
고지 끝 경계를 맡았다. 우린 풀이든 뭐든 필사적으로 먹으려고 했다. 어떤
식물뿌리를 찾았는데 그게 약간 달콤한 감자와 비슷한 맛이 났다. 어떤 식물
인지는 모르나 주변에 그게 많았다. 보이는 대로 파서 먹었다. 우린 그걸 날
로도 먹고 끓여서도 먹었다. 그러나 그걸 먹고 2일 정도가 지나자 입안이
갈라지면서 피가 났고, 아파서 더 이상 아무 것도 씹을 수가 없었다. 섭취할
영양분이 주변에 없었기에 우린 계속 약해져갔다. 그래도 우리는 삶의 뿌리
를 놓지 않았다.
그곳에서 5일째가 되자 우리 분대장 하나가 거의 끝까지 갔다. 그는 생존과
포기 사이에서 버둥거렸다. 그는 태아와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살아
있었지만 모든 것에 무반응. 그는 속이 빈 통나무 밑에 누웠는데, 사실 그는
말을 할 수도, 마실 수도, 뿌리를 씹을 수도 없었다. 만약 퇴출되지 않으면
며칠 안에 우린 거기서 죽었을 것이다.
구조에 대한 좌절은 바로 눈으로 보였다. 커닝햄 화력지원진지는 서쪽 멀리
1km 거리에 또렷이 눈에 보였다. 고지 정상의 커닝햄진지는 마치 꼭대기에
녹색 개미들이 움직이는 모양이었다. 붉은색 적토의 정상엔 작은 개미 백여
마리가 종종걸음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가 커닝햄으로 가지 않고 그곳에
내린 이유는 아마도 현지민 SCU 대원들 때문일 것이다. 커닝햄 진지는 몇 주
전에 월맹군에게 월경 당했고, 그때 생존자들은 155밀리 포에 강철조각이 든
대인용 산탄까지 넣고 쏴서 월맹군을 물리쳤다. 진지의 해병들은 동양인이
주변에 있는 걸 싫어했다. 우리의 퇴출 계획은 절망적이었고, 우린 신체적
하락을 경험하며 그냥 기다려야 했다.
호된 시련은 끝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다른 문제도 있었다. 밀러 대위는
나에게 말했었다. 넝 대원들에게 폭동의 기미가 엿보인다고. 그들도 우리
와 같이 자포자기 상태였지만 난 그들의 반란을 믿지 않았다. 그렇게 한다고
어딜 가고 뭘 하겠는가? 만약 반란을 해서 우릴 죽이고 커닝햄진지로 간다면
철조망 앞에서 개처럼 맞아죽을 것이다. 라오스로 돌아간다면 그들은 월맹군
이 기다려 더 끔찍한 상황. 월맹군은 라오스에 들어오는 그린베레나 넝 대원
모두에게 현상금을 걸어놓고 있었다. 그들은 미국에게 충성할 것을 받아들
였다. 그들이 만약 걸어서 도주한다고 해도, 약 40-50마일을 계속 해병대와
월맹군을 피하며 가로질러야 한다. 불가능하다! 난 소대원들이 죽거나
구조될 때까지 우리와 함께 있을 걸 확신했다.
18일차
3월 14일이 왔다. 신과 해병대가 굶어죽기 직전의 우리에게 왔다. 기상이
좋아지자 커닝햄 진지에서 뜬 해병대 헬기가 물과 식량을 조금 가져온 것이다.
그들에게는 별 거 아니겠지만 그게 내 생명을 살렸다. 그날 아침, 올리브드랩
색깔 깡통을 따서 먹은 햄과 리마콩이 들어간 레이션의 맛은 정말 잊지 못한다.
그걸 먹고 나자 밀러 대위가 내 손을 잡고 헬기가 온다고 말했다. 난 밀러 대위
에게 마지막 헬기를 타겠다고 말했다. 맨 먼저 들어왔으니 맨 나중에 나가고
싶다고 했다. 그는 내 말을 이해하고 승낙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헬기는 한 대가 동원된 것 같다. 밀러 대위가 먼저 광트리
기지로 날아가서 우릴 기다렸고, 모두가 다 타고 나서 내가 마지막으로 UH-1
에 올랐다. 헬기에 오를 기력조차 떨어진 상태였다. 상공에서 전쟁으로 찢겨진
북쪽의 풍경을 봤다. 헬기는 먼저 케산으로 가서 재급유를 한 다음 다시 광트리
기지로 갔다. 우리가 광트리에 도착했을 때 밀러 대위는 이미 CCN에 작전후
브리핑을 위해 호출을 받아 떠난 뒤였다. 대위는 메모를 남겨, 가용한 헬기를
타고 다낭으로 와서 CCN으로 들어오라 했다. 난 소대원들을 막사에 쉬게 하고
CCN으로 향했다.
헬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그곳의 여러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말들을 듣고 갑자기 속이 뒤틀렸다. “A중대는 제대가 흩어졌고 임무는 실패했다;
정찰팀이 매복을 당했을 때 넝 대원들이 앞으로 나가길 거부했다; 중대는 작전을
계속하라는 명령을 거부했다; 많은 넝 대원들이 자해를 해서 후송되었다.”
거짓말이었다. 그런 말을 듣고 난 믿을 수가 없었다.
난 CCN으로 돌아가서 이 거짓말들을 잠식시키고 싶었다.
그것은 정말로 무섭고 끔찍한 거짓말이었다.
마침내 난 CCN의 CH-34 헬기를 얻어 탈 수 있었고 곧바로 CCN으로
갔다. 다낭 비행장에서 CCN까지 걸어가지 않아도 되었다. 내 마음은
지난 18일을 회상하며 맴돌았다. 헬기는 산악을 통해 다낭으로 들어
갔고 저고도로 도시에 접근했다. 헬기 문 옆에 앉아 바다의 잔물결을
보면서 멍할 정도로 매혹을 느꼈다. 난, 가서 끔찍한 오류를 바로잡고
싶었다.
그날 동남아시아에서 총 59명의 전사자가 있었고, 그중 17명이 우리
Task Force Moore에서 나왔다. 그중 셋은 우리 소대. 그들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다. 분명히 게으른 놈들이 우릴 주제로 잘못된 가십을 만
들었다. 내가 CCN 벙커에 가서 브리핑 하면 모든 게 올바르게 인정될
것이다. 그리고 앞서 밀러 대위가 많이 소문을 잠식시켰을 것이다.
헬기는 도시를 지나 야전병원 상공을 통과했고, 이어 마블마운틴이 눈에
들어왔다. 마블마운틴의 곧게 솟은 모양의 그늘에 CCN이 보였다. 헬기는
정문 안쪽의 헬기장에 접근했다. 헬기장에 구멍 난 강철판을 깔았지만
모래는 여전히 날린다. 난 헬기에서 내려섰고 북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CCN 막사는 이상하게 조용했다. 아무 움직이는 것도 눈에
보이는 사람도 없었다. 난 더러운 길을 따라 걸었다. 그런데 길을
따라가다 오른쪽을 보니 CCN 인사과가 보였다. 난 그 콘크리트
벙커로 들어갔다.
“여기서 뭐하나?”
“작전 후 브리핑을 하러 왔습니다.”
“지난주 임무에 대한 작전 후 브리핑은 이미 끝났다.
작전 후 보고서도 이미 완성되었고 사이공으로 보냈다.
자네 더럽구만. 가서 좀 씻지.”
내 창자에서 물이 출렁이는 듯 했다. 난 돌면서 비틀거렸다.
난 가설통로를 떠나 모래를 걸었다. 그리고 내 막사의 모래로 쌓은
변소를 통과했다. 내 발은 빛나게 무두질 된 모래를 차며 걸어 먼지가
피어올랐고 산들바람은 내 넝마가 된 바지를 흔들었다. 그 찢어진
바지 사이로 야윈 내 다리가 보였다. 비쩍 마른 내 다리가. 난 감각을
잃었다. 끝이었다. 밀러 대위는 이 일로 추락했고 어떻게 할 수가 없
었다. 감정이 내 뇌에서 흘러넘쳤다. 혼란스러웠다. 난 화가 났다. 난
모욕을 당했다. 난 스스로도 어쩔 수 없었다. 난 끔찍하게도 혼자였다.
그리고 난... 부끄러웠다.
에필로그
밀러 대위는 지휘권이 박탈되어 군사 경력에 종지부를 찍고 나트낭으로
돌아갔다. 이는 부분적으로 불공정했다. CCN 작전장교였던 잭키 데카드
소령이 광트리 기지 지휘관이 되자 밀러 대위를 옹호하는 의견을 상부에
써 제출했다. 결국 이 진정서가 인정되어 밀러 대위의 군사기록에서 그
부분은 삭제되었다.
밀러 대위는 2군단 전술센터에서 참전을 마무리했고 1972년에 현역에서
나갔다. 대학을 끝낸 뒤에 내무부에 들어가 꽤 높은 지위까지 올랐고, 예
비군으로 남아 있다 중령 계급으로 은퇴했다. 작전 성패에 관한 건, 밀러
대위가 최근에 한 말에 의미를 두고 싶다. “우리의 임무가 해병대 작전에
부담을 줄여주었는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우리에게 엄청난 전상이
있었고, 난 그것이 가치 있는 일이었길 바란다.”
바우소는 복귀한 뒤 얼마 지나 참전이 끝나 복귀했다. 법률가가 된 것으로
기억한다. 보비 브래더윅 대위도 연장기간을 채우고 귀국했다. 의과대학에
들어가 의사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샌더필드 존스는 사후에 은성훈장을
받았다.
난 CCN에 남았다. 그 작전이 끝나고 난 발진티푸스로 10일간 치료를 받고
다시 Hatchet Force로 돌아와 황폐화된 중대 재편에 들어갔다. 생존한 넝
대원들은 2개 소대로 재편되고 나머지 1개 소대는 마이 록에서 모병한 브루
산악족으로 채워졌다. 나와 호킨스 중사는 새로 구성된 3소대를 훈련시켰다.
빈스 새버티넬리가 내가 지휘했던 소대를 맡았고, 바우소가 귀국해 빈스
중위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이 두 명은 나중에 모두 전사한다.
난 Hatchet Force에서 작전을 두 번 더 나갔다. 한번은 다낭 북서쪽 코끼리
계곡이란 데로 새로 만들어진 3소대의 실전태세를 점검해서 3소대는 잘해
냈다. 다음 임무는 또 라오스 국경을 넘는 거였다. 어샤우 계곡 뒤쪽. 우리
소대는 6월 22일 침투했고 꽤 성공적인 임무였다.
그 계곡에서 6일간 월맹군도 일부 죽이고 상당량의 무기와 서류를 노획했다.
이어 난 CCN의 인사장교가 되어 나머지 5개월 동안 근무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난 군에 남기로 결정해서 27년간 근무하고 대령의 은퇴했다. 그때의
그림들은 여전히 떠나지 않고 나에게 남아 있다.
베트남전 당시 밀러 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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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빨 주) 기고자인 번스 중위가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내용들이 아래 글에 담겨 있다.
이 작전이 비판을 받고 루머가 돈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켄 보이드 중위가 말하는 진실
CCN 정보참모였던 무어 소령은 이 작전 후에 부적합하다는 이유로 SOG에서
방출되었다. (우린 그걸 ‘소심’이라 불렀다) 그는 부대원들을 놔두고 재보급 헬기
를 타고 퇴출해버렸다. SOG는 그에게 헬기 타고 다시 가라고 했지만 거부했고,
결국 방출되었다. 난 참호에서 무선교신을 하던 존스 대위를 엄호하려 위에 서
있다 머리에 부상을 입었고, 게리 존스 대위는 머리에 긁힌 정도의 상처로 먼저
퇴출해버려 결국 내가 B중대 지휘권을 인수했다. 쉘톤 소령은 CCS의 작전팀만
신경 쓰다가 CCN의 자귀부대 중대가 물/식량/탄약이 떨어져 가고 있음을 경고
했다.
우리 CCN 중대는 지속적으로 월맹군에 공격당했다. C-130으로 낙하산 재보급을
시도했으나 3개 중 2개는 적 수중으로 넘어갔고, 여러 가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블루족 대원들의 항명과 압도적인 월맹군이 그것이다. 우리 소부대는
퇴출될 때까지 위기에 몰렸다. 퇴출 도중 밀스 병장과 보이드 중위가 또 부상을
입었다. 해병기지에서 CCS 병력을 퇴출시키는 과정은 정말 피곤했다. 그동안
CCN Hatchet Force는 여전히 퇴출을 못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CCN Hatchet
병력은 바보 취급 받았다.
Kenneth M. Boyd
Cpt 5th Special Forces Abn, SOA CCN
로드니 해드맨 병장은 이 작전으로 은성훈장, 밀스 병장은 동성훈장을 받았다.
그는 은성을 받아야 온당하다. 난 베트남에서 퍼플하트를 두 개 받았다.
이 작전에 나오는 자귀부대 A중대의 중대장/선임하사/ 소대장들이 모여서 쉬며
포커게임을 하는 사진. 이들은 모두 그린베레 장교 / 하사관들이다. 이 자귀부대
에서 경력을 쌓고 SOG 정찰팀원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그러나 SOG 정찰중대
는 기존 경력을 믿지 않았다. 한 두 번의 작전으로 정찰팀에서 방출되는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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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훈수 작성시간 11.10.10 태국과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 대만,중국남부에는 여러소수민족들이 살고 있습니다,, 태국이나 미얀마같은 경우는 자국민으로 인정해주지 않고 배척또는 차별적인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라오스나 베트남 중국등 사회주의국가들은 자국민으로 인정해줍니다 .... 베트남전에서도 부족의 이해관계(부족지도자의 의지또는 계약)에 따라서 미군과 협력해서 북베트남과 싸웠단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나네요,,(여단장님글에서 읽은 것 같은데... 긴가밍가?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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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K-9포대장 작성시간 11.10.10 하... 아침부터 가슴이 설레이는군요... 누군가에게는 죽음의 기억이겠지만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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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홈런왕 편승엽 작성시간 11.10.11 어설픈 소설로는 도저히 포장할수도 또 그려낼수도 없는 생생하면서도 지옥같은 전장의 글이었던거 같습니다. 왠지모르게 콧날이 시큰한느낌도 드는.. 잇빨중사님 소중한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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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二八中死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1.10.11 즐겁게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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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홈런왕 편승엽 작성시간 12.02.08 오늘 이글을 차분하게 다시 꼼꼼히 읽어보니 전율이 느껴집니다. 모든 글에서 격정적으로 느껴지는 한가지 요점은 역시 '생존'이 아닌가 싶습니다. 잠을 이룰수 없는 밤이네요 항상 감사합니다 이빨중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