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남도 섬마을에 독립운동가만 89명.. 노란 무궁화로 피어난 바다의 의병

작성자해 송|작성시간21.08.15|조회수249 목록 댓글 5

'항일운동의 성지' 완도 소안도와 당사도

완도 소안도 남쪽의 작은 섬 당사도. 1909년 35인의 해상 의병이 일제의 물자 반출에 길잡이 역할을 하는 등대를 습격해 시설을 파괴했다. 이 사건은 소안도 항일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잔치는 끝났다.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고, 국민들은 아낌없는 응원을 보냈다. 메달 색깔이나 성적과 상관없이 모두가 즐긴 2020도쿄올림픽이었다. 꼭 이겨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한결 누그러진 마음으로 스포츠 자체를 즐길 수 있었다는 건 또 다른 성과다. 며칠 후면 8ㆍ15, 다시 광복절이다. 삼일절과 광복절마다 애국심을 강조하는 기저에는 일본과의 경쟁의식과 애써 외면한 자격지심이 깔려 있는 것도 사실이다. 76년이 지난 지금, 아픈 과거를 돌아보는 마음도 조금은 너그러워졌다. 민족적 울분을 앞세우기보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의 뜻을 차분하게 되새기고 기억하는 날이다. 전라남도 끝자락 완도군 소안도도 그런 곳 중 하나다.

 


독립운동가만 89명... 소안도의 항일운동

5일 완도 본섬 화흥포항에서 소안도로 가는 배는 여름휴가 극성수기임에도 불구하고 이용객이 많지 않았다. 차량을 실은 1층 주차 공간은 여유가 있었고, 2층 객실도 충분히 거리를 두고 앉을 정도였다. 많지 않은 승객의 대부분이 중간 기착지인 노화도에 내리자 배 안은 더욱 한산해졌다. 3층 갑판에는 비와 햇빛을 가리는 천장이 설치돼 있었지만, 이따금 2~3명의 승객만 올라와 바닷바람을 맞으며 폭염을 식힐 뿐이었다. 코로나19 대유행이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지만, 소안도는 아직까지 관광지로 별로 알려지지 않아 평소에도 여행객이 많지 않은 섬이다.

소안도 가는 배에서 본 황간도의 바위 산. 맞은편에서 보면 영락없이 거북 모양인데, 주민들은 사자바위라 부른다.

소안도 가는 배에서 본 구도. 소안면에 속하지만 노화도와 다리로 연결돼 있다. 최근에는 김봉진 배달의민족 대표의 고향으로 더 알려져 있다.

완도 화흥포항에서 소안도까지는 대한·민국·만세호 3척의 배가 약 1시간 간격으로 운항한다.

 

소안항에 내리면 가장 먼저 높은 깃대에 펄럭이는 대형 태극기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아래 창고로 보이는 작은 건물엔 태극기 그림과 함께 ‘항일운동의 성지’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섬 중심지인 가학리로 가는 도로변엔 무궁화 가로수가 심겨져 있고, 특별한 날이 아닌데도 집집마다 태극기가 걸려 있다. 예사롭지 않은 풍경이다. 궁금증은 가학리 한가운데에 있는 ‘소안항일운동기념관’에서 풀린다. 항일운동기념탑이 높이 솟아 있는 양쪽에 두 개의 건물이 있다. 기념관과 ‘사립소안

 

학교’다. 기념탑 앞에 ‘토지소유권 반환투쟁 승리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일제는 대한제국이 국권을 상실한 1910년 이전에 이미 소안도에 대한 토지 조사를 마쳤다. 그리고 사도세자의 후손인 이기용이라는 인물에게 자작 지위를 부여하고 토지를 넘겼다. 이에 소안도 주민들은 1909년 토지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하고, 13년 가까이 서울까지 오가며 법정 싸움을 벌인 끝에 1921년 최종 승소했다. 나라의 주권이 일제에 빼앗긴 시기였음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승리였다. 그만큼 주민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똘똘 뭉쳤다는 의미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일제강점기 동안 6,000여 명의 섬 사람 중 800명이 불령선인(불온하고 불량한 조선사람)으로 낙인찍혀 감시를 받았다. 당시 가구당 인구수를 감안하면 모든 집이 감시 대상이나 마찬가지였다. 토지반환소송에서 이긴 주민들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모든 원인이 못 배워서 나라를 잃었기 때문이라 진단하고, 가구당 70원을 모금해 1923년 신식 교육기관인 사립소안학교의 문을 열었다. 전체 모금액이 1만454원으로 당시로는 비행기 한 대 값이었다고 한다.

소안항에 내리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그림이다. 마을의 모든 집이 평시에도 태극기를 걸어 놓고 있다.

소안항일운동기념관 공원에 복원한 사립소안학교. 1923년 토지반환청구소송에서 승소한 주민들의 모금으로 세워진 학교다.

소안항일운동기념관 앞의 '토지소유권 반환투쟁 승리기념비'. 13년간의 끈질긴 법정 투쟁에서 승소한 것을 기리는 비석이다.

 

이후 소안학교는 폐교와 복교를 거듭하며 항일독립운동의 구심으로 자리 잡았다. 핵심 인물은 송내호(1895~1928)였다. 그는 1922년 비밀결사인 수의위친계(守議爲親契), 1923년 청년들을 중심으로 한 배달청년회, 1924년 소안노농연합대성회, 1926년 살자회, 1927년 일심단을 조직해 항일운동을 이어나갔다. 그 영향을 받아 1930년대에는 고금도, 금일도, 신지도 등 완도 각 섬에서도 항일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됐다. 일제강점기 내내 이어진 항일운동으로 소안도가 배출한 독립운동가가 89명에 이르고, 그중 21명은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았다. 소안항일운동기념관은 이들의 헌신을 기리는 공간이자 소안도의 독립운동사를 알리는 전시관이

 

다. 기념관을 건립하는 과정도 제2의 독립운동이나 다름없었다. 소안도 항일운동은 당시 신문에도 대서특필할 정도로 주목을 받았지만, 광복 후 차츰 잊히고 말았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주민들은 1988년 ‘기념탑건립추진위원회’를 결성했다. 소안노인회에서 농악대 공연 등으로 성금 모금에 나서 4,000만 원을 모아 1990년 소안초등학교 앞에 ‘소안항일운동기념탑’을 세우게 된다. 2000년에는 추가로 2억 원의 성금을 모아 옛 소안학교 터를 매입해 완도군에 기부 채납하고 기념관을 건립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제야 당국에서 나서서 기념관을 건립하고, 사립소안학교를 복원하고 기념탑을 준공했다. 광복 60년이 지난 2005년이었다.

1990년 주민들이 성금을 모아 건립한 소안항일운동기념탑. 이후 기념관 앞에 새 탑을 세워 소안항일운동기념탑은 2개가 됐다.

소안항일운동기념관 공원의 황근(일명 노랑무궁화). 소안도 자생종이어서 항일운동의 상징 꽃으로 가꾸고 있다.

 

기념관 주변 공원에는 흔히 보는 분홍색 무궁화와 함께 노란색 무궁화도 심겨져 있다. 정식 명칭은 황근이지만, 색깔 때문에 ‘노란무궁화’ 혹은 ‘노랑무궁화’로도 불린다. 나라꽃 무궁화의 원산지가 중국 남부나 인도로 추정되는데 비해, 노랑무궁화는 제주와 전남 섬 지역에서 발견되는 자생종이다. 소안도에도 오래전부터 서식하던 식물이어서 나라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는 상징으로 가꾸고 있다.

https://cafe.daum.net/yswlsj4812

본문은 Chrome 과 글자 크기 110%에 최적화 돼 있음을 알립니다.

 

 

 

 

토지사랑 http://cafe.daum.net/tozisarang/

토지투자동호회밴드
(카페회원님들은 같이이용하시면됩니다)

 

추천부탁드립니다 .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뚱띵이 | 작성시간 21.08.16 좋은 글.감사합니다.
  • 작성자해 송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8.16 발걸음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행복하세요~~
  • 작성자백 두산 | 작성시간 21.08.19 시원한 아침입니다
    언제 여름이었나 싶을정도로
    고추잠자리를 보면 가을이 오고있음을
    실감합니다
    자연의 섭리앞에선 그저 우리는
    나약한 인간일 뿐입니다
    웃는하루 보내세요
  • 작성자해 송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8.19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축복은 내일을 베일로 가려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아무도 알 수 없는 내일이 있기에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꿈을 꾸고
    희망을 품을 수 있답니다. 또 하루를 열어가며 행복이 가득한 좋은 날 되시고 코로나 19 예방수칙 잘 지키시어 건강한 나날 보내시길 바랍니다~~
  • 작성자한 상훈 | 작성시간 22.05.04 5 월 4 일 수요일날 입니다.!~
    실록에 계절 예쁜꽃들의 향기와 고운빛갈로.~
    유혹하는 멋진5월입니다 봄에 아름다운 유혹에 빠지면서.~
    즐겁게 보내시면 좋겠 습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가사랑하는.~
    가족을 한번 더 생각하는 소중한 오늘이 되시기를 바람니다.~
    코로나로 부터 점점 멀어져가네 야외에서는 마스크가 없어도 되는.~
    노~마스크 시대 이제는 정말 입을 마음대로 열고 다녀도 되는지 의심이.~
    되지만 그래도 마음은 마냥 행복하게 하루일상을 시작하시기를 바랍니다.~
    유익한정보 감사합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