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공격을 받는다는 것은 이미 공격받지 말아야 할 것이 있기에 "나는 공격받는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만약에 자존심이 남아 있으면 "나는 자존심이 상해서 그 목사와 그 집단에 대해서 도저히 참을 수 없습니다"고 반격에 나설 겁니다. 자 그렇다면 객관적인 진리 기준인 성경을 봅시다.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은 무엇 때문에 영적이고 육적인 공격받았습니까? 자존심? 아닙니다. 돈? 아닙니다. 권력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이미 광야에서 악마로부터 공격받은 겁니다.
그렇다면 악마가 무엇을 노리고 예수님을 공격했을까요? 그것은 오직 세상 죄를 용서하기 위해 십자가 죽는 그 말씀 순종을 노리고 공격한 겁니다. 바로 이 십자가 피가 귀하에게 있어서 공격받으시면 성경 베드로전서 4:12-14 말씀에 의하면 복된 자입니다. 성령이 귀하의 머리 위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그동안 그 집단에 부어넣은 돈, 혹은 시간, 혹은 충성심, 혹은 나의 순수한 애정과 사랑과 봉사와 희생 같은 것이 하루 아침에 무의미한 투자로 간주되어 웃음거리로 전락한 채 쓰레기 더미에 처 박힐 때, 그 때 나오는 격분과 분노라면 이런 시기는 육적 열매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의 죽어서 피흘리고 있는 이 세상 한복판에서 그 십자가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은 모든 육적 인간이라면 누구나 보일 수 있는 육적 반응일 뿐입니다. 귀하를 내친 그들 배후에 사랑의 하나님의 허락이 있었음을 생각해보세요. 이것이 영적 생각입니다. "더러분 세상, 더러버서 그만 살래"라고 스스로 화풀이 하시고 나머지는 하나님의 처분에 맡기시기 바랍니다. 돈 떼여서 그 억울함을 호소하려온 어떤 사람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생명은 소유의 넉넉함에 있는 것이 아니리라"(누가복음 12:15)
경험을 조립해 놓은 그 크기가 아무리 커도 그것이 곧 신앙이고 구원을 증명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입니다. 내게 일어난 그 어떤 일도 주님의 허락없이 일어난 일이 없습니다. 그것은 나의 순결함을 증거하기 위한 용도가 아니라 그러한 수모를 당해도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 당하신 수모보다는 비교조차 되지 못함을 증거하기 위해서 귀하나 어느 성도에게도 그런 수모들이 들이닥치는 것입니다.
아무리 당하신 경험이 처절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허락하신 분이 지금도 눈 부릅뜨고 살아계신 부활하신 예수님이라면 귀하의 화풀이가 결국 예수님의 거저 주시는 용서를 욕되게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 줌의 재가 될 뿐인 존재나 집단과의 싸움을 하지 마시고 십자가의 피를 모독하는 악마와의 영적 전쟁을 벌리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참으로 앞으로 더 큰 시련이 오게 되면 이런 시련 정도에서 너무 엄살 떨었다고 본인 스스로 생각할 날이 올 수 있음을 감안하셔야 합니다. 단지 그 어떤 경우라도 예수님의 죽으심보다 더 심각한 사건은 없음을 알려드리는 겁니다.
억울하게 핍박받은 자의 억울함과 분통함이 예수님의 핍박을 대체해서 강조하게 되면 이 또한 악마의 은근한 노림수가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겁니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흐르는 강물처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1.02.04 어떤 분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셨는데 저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때를 따라 주시는 돕는 은혜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가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5-16)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히13: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