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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시, 낭송시

[스크랩] 우리詩 12월호의 시와 억새

작성자홍해리洪海里|작성시간16.12.15|조회수2,377 목록 댓글 1



샘물 - 김달진

 

숲 속의 샘물을 들여다본다.

물속에 하늘이 있고 흰 구름이 떠가고 바람이 지나가고

조그마한 샘물은 바다같이 넓어진다

나는 조그마한 샘물을 들여다보며

동그란 地球의 섬 위에 앉았다.

     

 

물이야 - 안영희

 

믹서 뚜껑을 열어놓고

냉장고에서 꺼낸

파프리카 양배추 바나나 토마토들의 몸에서

질질 물이 흐른다

여름은 저리 가혹하게 속성으로

본질을 확증시킨다

섭씨 35도는

이 팔, 다리, 젖가슴, 두 눈과 코와 입술이

다 물인 거라구!

일갈한다 씻고 닦고 나울대는 푸성귀밭

일상 한가운데를 질러

꽂힌다 새파란 날

     

 

행어 - 김인구

 

퇴행성관절염으로 나의 발은 뒤틀렸다

야윈 두 다리에 힘겨운 상체는 오늘 하루도

위태로움이다

 

안간힘으로 버티는 어깨 위로 일상이 던져진다

말없는 나는 점점 더 말을 잃는다

 

어쩌다 한 번씩 가슴팍 안으로

새로운 희망이 들어서기도 하지만

그것은 새로운 절망에 이르는 길

 

숨을 곳 없는

나의 하루는 오늘도 기울어져 간다

보이지 않게 조금씩 나는 가라앉는다

   

 

 

저무는 한 해 - 송문헌

 

깊은 밤 귀가길

인적 없는 골목, 가만가만

쌓이는 눈송이들이 길을 냅니다

 

하얗게 난 그

길을 따라 가다 서다

고양이 한 마리 힘없이 웁니다

 

꾀죄죄 깡마른

육신 위로 쌓이는 눈발

다가서는 인기척도 모른 채

     

 

당신을 - 최상호

 

누구에겐가 자꾸

당신을 보내주고 싶습니다.

 

미치고 폴짝 뛸 세상

참말 기막힌 세월과 마주친 사람에게

덮어도 덮어도 아픈

시뻘건 화상을 가진 그 사람에게

당신을 넘겨주고 싶습니다.

솜털같이 따뜻한,

산수유처럼 빨간 피를 가진 당신을

넘겨주고 돌아서다가

또 다시

 

불빛 없는

마을 앞 흐린 냇가에 앉아 쓸쓸하게

풀잎이나 뜯는 그런 사람의

텅 빈 주머니 속에

 

달빛보다 은은한 당신을

나눠주고 싶습니다.

   

 

책이 책을 안으면 - 서금복

 

간신히 차지한 자리 뺏길까 봐

꼿꼿하게 서 있는 책 사이로

새 책 한 권 들어가려 용을 쓴다

비집고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밀고 당기는 힘에서 가장 멀고

틈에서 가장 가까워 밀려난 책

할 수 없이 새 책을 포개 안는다

 

아까보다 잘 들어간다

112가 아니라 11인가

껴안은 책 두 권이 밀고 들어간다

   

 

 

금식 - 최한나

 

그 옛날 곰과 호랑이는

쑥과 마늘을 먹고

컴컴한 백일을 견디기로 했다고 한다

견딘 곰은 사람이 되었고

견디지 못한 호랑이는 그냥

호랑이가 되었다

 

검진을 앞두고 금식을 했다

자정을 넘기려면 자정을 먹지 말라고 한다

텅 빈 위장 속으로

마늘과 쑥을 삼키듯 공복을 넘긴다

생채기 난 붉은 위장 속

먹이사슬에서 밀려날수록

굴욕은 더 선홍색이다

당분간 음식을 가리라는 말

차라리 마늘 먹고 인간이 되지 말았어야 했다고

하얀 밥이 모락모락 피어 오른다

 

허기 진 입맛에는 그 어떤 음식도 맛있다

오래 전 먹은 마늘의 양념이

빈 속 어느 곳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문득 호랑이가 그립다

수천 년 인박힌 마늘냄새 다 토해내고

호랑이와 다정히 산 속을 거닐고 싶다

내가 사람이 아니었을 때 그렸던 인간은

콩나물시루에 박힌

출근길 몸뚱이가 아니었을 것이다

사직서를 또 찢는다

고개가 땅에 붙을 때마다 뒤틀리던 배알이

위벽을 쥐어뜯는다

인내란 이런 때 필요한 것이라며

돌아갈 수 없는 곰이 속삭인다

꿇린 무릎에서 하얗게 날이 샌다

이글거리는 호랑이 눈이

동쪽하늘에 떠오른다.

     

 

어느 날9 - 남대희

     -미호천에서

 

하늘이 산머리를 쓱 베어 먹고

구름으로 몰래 덮어 놓았다

뛰놀던 다람쥐랑

꾀꼬리는 어찌 하라고

 

그 앞으로

기러기 떼 줄 서서 들여다보고 있는데

 

미호천 갈대밭은

쏴아 쏴아

연신 몸 씻는 소리만 낸다


      * '우리詩'  2016년 12월호(통권 342호)에서

                     사진은 12월의 억새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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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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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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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홍해리洪海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12.15 억새와 갈대의 계절이다.
    억새 구경은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살지만,
    갈대는 아침마다 시수헌으로 가는 우이천 길에서 늘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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