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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윳따니까야

마라의 딸들 경(S4:25)

작성자해맑은|작성시간20.09.14|조회수691 목록 댓글 1

마라의 딸들 경(S4:25)

Maradhītu-sutta

 

1. 그때 마라 빠삐만은 세존의 곁에서 이런 절망에 찬 게송들을 읊은 뒤

그 곳으로부터 물러나서 세존으로부터 멀지 않은 땅 위에 주저앉아서

말이 없고 당혹하고 어깨가 축 처지고 고개를 떨어뜨리고 기가 꺾여

아무런 대답을 못하고 손톱으로 땅을 긁고 있었다.

 

2. 그때 마라의 딸 딴하와 아라띠와 라가(*1)가 마라 빠삐만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마라 빠삐만에게 게송으로 말했다.

 

"아버님, 왜 낙담하셨습니까?

어떤 사람 때문에 슬퍼하십니까?

애욕의 올가미로 저희가 그를 잡으리니

숲속의 코끼리를 그리하듯이.(*2)

그 자를 포박하여 데려오겠습니다.

그럼 아버님의 지배를 받을 것입니다."

 

3. [마라]

"아라한이며 세상의 선서인 부처는

애욕으로 꼬드겨서 잡아들이지 못하나니

그런 그는 마라의 영역을 넘어섰구나

그래서 나는 지금 몹시 슬프니라."

 

4. 그러자 마라의 딸 딴하와 아라띠와 라가는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사문이여, 우리는 당신의 발아래서 당신을 섬기겠습니다."

그때 세존께서는 아무 주의도 기울이지 않으셨나니

존재의 근거를 모두 부수어 위없는 해탈을 성취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마라의 딸 딴하와 아라띠와 라가는 한 곁으로 물러나서 이와 같이 상의를 하였다.

"남정네들의 갈망이란 참으로 다양하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각각 백 명씩의 소녀의 모습을 나투자."

 

5. 그래서 마라의 딸 딴하와 아라띠와 라가는

각각 백 명씩의 소녀의 모습을 나툰 뒤에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사문이여, 우리는 당신 발아래서 당신을 섬기겠습니다."

그래도 세존께서는 아무 주의도 기울이지 않으셨나니

존재의 근거를 모두 부수어 위없는 해탈을 성취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마라의 딸 딴하와 아라띠와 라가는 한 곁으로 물러나서 이와 같이 상의를 하였다.

"남정네들의 갈망이란 참으로 다양하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각각 백 명씩의 동정녀의 모습을 나투자."

 

6. 그래서 마라의 딸 딴하와 아라띠와 라가는

각각 백 명씩의 동정녀의 모습을 나툰 뒤에 세존께 다가갔다. …

 

7. 각각 백 명씩의 한 번 아이를 낳은 여인의 모습을 나툰 뒤에 세존께 다가갔다. …

 

8. 각각 백 명씩의 두 번 아이를 낳은 여인의 모습을 나툰 뒤에 세존께 다가갔다. …

 

9. 각각 백 명씩의 중년기의 여인의 모습을 나툰 뒤에 세존께 다가갔다. …

 

10. 각각 백 명씩의 늙은 여인의 모습을 나툰 뒤에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 드렸다.

"사문이여, 우리는 당신의 발아래서 당신을 섬기겠습니다."

그래도 세존께서는 아무 주의도 기울이지 않으셨나니

존재의 근거를 모두 부수어 위없는 해탈을 성취하셨기 때문이었다.

 

11. 그러자 마라의 딸 딴하와 아라띠와 라가는 한 곁으로 물러나서 이와 같이 말했다.

 

"참으로 아버지께서,

'아라한이며 세상의 선서인 부처는

애욕으로 꼬드겨서 잡아들이지 못하나니

그런 그는 마라의 영역을 넘어섰구나.

그래서 나는 지금 몹시 슬프니라.'

라고 하신 말씀이 사실이구나.

 

참으로 우리가 탐욕을 여의지 못한 사문이나 바라문에게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면,

그의 심장이 터지거나 입으로 뜨거운 피를 흘리거나 미치거나 마음이 산란하게 되거나,

마치 푸른 갈대를 베면 시들어가고 말라 들어가고 오그라드는 것처럼

시들어가고 말라 들어가고 오그라들 것인데 [저 사문은 그렇지 않구나.]"

 

12. 그때 마라의 딸 딴하와 아라띠와 라가는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선 마라의 딸 딴하가 세존께 게송으로 말했다.

 

"슬픔에 빠져 숲에서 禪을 닦는가?

재산을 잃었는가, 갈망하는 것이 있는가?

마을에서 어떠한 범죄라도 저질렀는가?

왜 그대 사람들과 친구 되지 않는가?

누구도 그대와 친교 맺지 못하는가?"

 

13. [세존]

"이익을 얻고 마음의 평화를 성취하여

사랑스럽고 매혹적인 모습의 군대를 이기고

나는 홀로 참선하며 행복을 깨달았노라.(*3)

그러므로 사람들과 친구 되지 않나니

나는 어떤 사람과도 친교 맺지 않노라."

 

14. 그러자 마라의 딸 아라띠가 세존께 게송으로 말했다.

"여기서 비구는 어떻게 많이 수행하여

다섯 가지 폭류 건너 여섯 번째도 건넜는가?(*4)

어떤 참선 많이 하여 감각적 욕망의 인식을 몰아내어

다시는 그것이 그를 사로잡지 못하게 하는가?"

 

15. [세존]

"몸은 고요하고 마음은 잘 해탈하며

[의도를] 형성하지 않고 마음 챙기고 집착하지 않으며

법을 완전하게 알아 일으킨 생각 없는 참선을 하고

분노하지 않고 추억하지 않고 둔감하지 않도다.(*5)

 

여기 비구는 이와 같이 많이 수행하여

다섯 가지 폭류 건너 여섯 번째도 건넜도다.

이런 참선 많이 하여 감각적 욕망의 인식을 몰아내어

다시는 그것이 그를 사로잡지 못하게 하도다."

 

16. 그러자 마라의 딸 라가가 세존께 게송으로 말했다.

 

"갈애를 자르고 많은 무리와 승가와 함께 지내니

많은 중생들이 전적으로 받들어 행할 것이로다.

참으로 이 집 없는 자는 많은 사람을 마라의 손에서 빼앗아

죽음의 왕을 넘어 저 언덕으로 인도할 것이로다."

 

17. [세존]

"대영웅 여래들은 정법으로 인도하니

법으로 인도하는 이 분들에 대해

이를 이해하는 자들이 어떤 질투를 한단 말인가?"

 

18. 그러자 마라의 딸 딴하와 아라띠와 라가는 마라 빠삐만에게 다가갔다.

마라 빠삐만은 마라의 딸 딴하와 아라띠와 라가가 멀리서 오는 것을 보고 게송들을 읊었다.

 

"어리석은 자들이여,

연꽃 줄기로 산을 부수려 하였고

손톱으로 산을 파괴하려 하였고

이빨로 쇳덩이를 씹으려 하였구나.

 

마치 머리위에 바위를 올려놓고

바닥없는 구렁텅이에서 발판 구하듯 하였구나.

마치 가슴에 쐐기가 박힌 것처럼,

너희들은 실망하여 고따마를 떠나왔구나."

 

19. [송출자]

"이처럼 딴하와 아라띠와 라가는

광채를 발하며 세존께 다가왔지만

스승은 그들을 흩어버리셨나니

마치 바람이 떨어진 솜털을 날려버리듯이."

 

 

(*1) 딴하(Taṇhā)와 아라띠(Arati)와 라가(rāga)는

각각 갈애와 권태로움과 애욕으로 옮겨지는 단어이다.

세존과 마라의 딸들과 조우는 『자따까』와 『법구경 주석서』등에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경과 주석서는 이 시기를 부처님께서 정등각을 성취하신 뒤

다섯 번째 7일 이라고 밝히고 있다.

 

(*2) “마치 코끼리가 있는 숲으로 그를 유인하기 위한 미끼로 암코끼리를 보내어서

그 암컷의 교태를 보여주어 숲속에 사는 코끼리를 잡아서 묶어 데리고 나오듯이

그를 데리고 오겠다고 말하는 것이다.”(SA.ⅰ.186)

 

(*3) “‘이익을 얻고 마음의 평화를 얻어(atthassa pattiṃ hadayassa santiṃ)’라는

이 두 구절은 아라한과를 설명하는 것이다.

‘군대(sena)’란 오염원의 군대이다.

‘행복을 깨달았다(sukham anubodhi)’는 것은 아라한과의 행복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이 게송을 통해서 세존께서는 ‘나는 사랑스럽고 매혹적인 모습을 한 군대를 이긴 뒤 홀로 참선하여

‘이익을 얻고 마음의 평화를 얻음’이라 불리는 아라한과의 행복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사람들과 더불어 친구관계를 맺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SA.ⅰ.187)

 

(*4) “‘다섯 가지 폭류를 건너(paña-oghatiṇṇna)’란

다섯 문을 통해서 생기는 오염원의 폭류(kiles-ogha를 건너란 뜻이다.

‘여섯 번째’란 마노[意]의 문을 통해서 생기는 오염원의 폭류도 건넜다는 말이다.

혹은 다섯 가지 폭류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을 뜻하고,

여섯 번째는 다섯 가지 높은 단계의 족쇄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해도 된다.”(SA..187~188)

 

(*5) “‘몸이 고요하고(passaddha-kāyo)’라는 것은

제4선에 의해서 들숨날숨이라는 몸(assāsa-passāsa-kāyo)이 경안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마음은 잘 해탈하고(suvimutta-citto)’라는 것은

아라한과의 해탈로 마음이 잘 해탈한 것이다.

‘[의도를] 형성하지 않고(asaṅkharāno)’라는 것은

세 가지 업형성(kamma-abhisaṅkhāra)을 형성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법을 완전하게 알고(aññāya dhammaṃ)’란 사성제의 법을 안다는 말이다.

‘일으킨 생각 없는 참선을 하는 자(avitakka-jhāyī)’란

일으킨 생각이 없는 제4선을 닦는다는 뜻이다.

‘분노하지 않고’ 등은

성냄으로 분노하지 않고 탐욕으로 추억하지 않고 어리석음으로 둔감하지 않다

(dosena na kuppati, rāgena na sarati, mohena na thīno)는 말이다.

혹은 첫 번째로 악의의 장애(byāpāda-nīvaraṇa)를,

두 번째로 감각적 욕망에 대한 욕구의 장애(kāmacchanda-nīvaraṇa)를,

세 번째로 해태 등의 나머지 장애들을 취한 것이다.

이러한 장애들을 제거함을 통해서 번뇌 다함(khīṇāsava)을 설하셨다.”(SA..187)

 

각묵스님 옮김 『상윳따니까야』 제1권 450-4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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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해맑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09.15 부처님의 성도를 방해한 마라의 세 딸들의 이름이 재미있습니다.

    딴하(taṇhā) = 갈애
    = 마음과 제법(諸法)들을 바느질하는 여인
    = 삼계에 존재를 결박시킴.

    아라띠(arati) = 불쾌, 권태로움

    라가(rāga) = 탐(貪), 애욕
    = 마음과 대상을 결박하는 욕탐(chanda-rāga)에서 rāga입니다.
    = 삼계 해탈은 욕탐(chanda-rāga)에서 virāga(離貪)할 때입니다.

    딴하, 아라띠, 라가는
    모두 마음이 지금 경험하는 대상에 대하여 일어나는 번뇌들입니다.
    모든 번뇌가 완전 소멸한 신통이 누진통(漏盡通)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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