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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집 경(M23)

작성자해맑은|작성시간20.06.01|조회수204 목록 댓글 4

개미집 경(M23)
Vammika 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그때 꾸마라깟사빠(*1) 존자는 장님들의 숲에 머물렀다.

그때 밤이 아주 깊어갈 즈음 어떤 천신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장님들의 숲을 온통 환하게 밝히면서

꾸마라깟사빠 존자에게 다가와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서서 그 천신은 꾸마라깟사빠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2.  "비구여, 비구여,

이 개미집은 밤에는 연기를 내뿜고 낮에는 불타오릅니다.

그때 바라문이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현자(*2)여, 칼을 가지고 파십시오.'
현자가 칼을 가지고 파다가 빗장을 보았습니다.


'빗장입니다, 존자시여.‘

바라문은 이어서 말했습니다.
'현자여, 빗장을 버리고 칼을 가지고 계속 파십시오.’(*3)
현자가 칼을 가지고 파다가 두꺼비를 보았습니다.


'두꺼비입니다, 존자시여.‘

바라문은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현자여, 두꺼비를 버리고 칼을 가지고 계속 파십시오.'
현자가 칼을 가지고 파다가 두 갈래 길을 보았습니다.


'두 갈래 길입니다, 존자시여.‘

바라문은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현자여, 두 갈래 길을 버리고 칼을 가지고 계속 파십시오.'
현자가 칼을 가지고 파다가 체를 보았습니다.


'체입니다, 존자시여.‘

바라문은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현자여, 체를 버리고 칼을 가지고 계속 파십시오.'
현자가 칼을 가지고 파다가 거북이를 보았습니다.


'거북이입니다, 존자시여.‘

바라문은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현자여, 거북이를 버리고 칼을 가지고 계속 파십시오.'
현자가 칼을 가지고 파다가 칼과 도마(*4)를 보았습니다.


'칼과 도마입니다, 존자시여.‘

바라문은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현자여, 칼과 도마를 버리고 칼을 가지고 계속 파십시오.'
현자가 칼을 가지고 파다가 고깃덩이를 보았습니다.


'고깃덩이입니다, 존자시여.’

바라문은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현자여, 고깃덩이를 버리고 칼을 가지고 계속 파십시오.'
현자가 칼을 가지고 파다가 용을 보았습니다.

 
'용입니다, 존자시여.‘

바라문은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현자여, 용은 그대로 두십시오.

용을 해치지 마십시오. 용에게 예배하십시오.' 라고.


비구여, 그대는 이 문제를 가지고 세존께 다가가서 여쭈어 보십시오.
그래서 세존께서 해설해주시는 대로 그대로 잘 호지 하십시오.
나는 신을 포함하고 마라를 포함하고 범천을 포함한 세상과

사문·바라문들을 포함하고 신과 사람을 포함한 무리들 가운데서

이 질문을 해설하여 마음을 흡족하게 해주실 분은 여래나 여래의 제자나

혹은 그에게 들은 자가 아니고는 그 누구도 보지 못합니다."


이와 같이 그 천신은 말했다. 이렇게 말하고는 그곳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1) “꾸마라깟사빠(Kumārakassapa)는 그의 이름이다.

어릴 적에 출가했기 때문에 세존께서 ‘깟사빠를 불러오라,

이 과일이나 혹은 먹거리를 깟사빠에게 줘라.’하고 말씀하실 때 ‘어떤 깟사빠를 말씀하십니까?’ 

‘어린(kumāra) 깟사빠를 말한다.’라고 이름을 붙인 때부터 시작하여 커서도 꾸마라깟사빠라고 불렸다.

또한 코살라의 왕인 빠세나디의 양자였기 때문에 그를 꾸마라깟사빠라고 인식했다.(MA.ⅱ.121) 


주석서에 의하면 꾸마라깟사빠 존자의 어머니는 라자가하 출신이라고 한다. 그녀는 출가하고자 하였으나

부모가 허락하지 않았다. 결혼 한 뒤에 남편의 동의를 받아 비구니가 되어 사왓티에 머물렀다.

출가하고 보니 그녀는 임신을 하고 있었고 그래서 승가에서 큰 문제가 되었다.

세존께서는 우빨리 존자에게 사태 해결을 위임하셨고 상세한 조사 끝에 그녀는 결백한 것으로 판명되었으며

우빨리 존자는 세존으로부터 큰 칭찬을 들었다고 한다.

아이가 태어나자 빠세나디 왕이 깟사빠라는 이름을 지어 아이를 키웠으며 일곱 살에 출가하였다고 한다.(DA.ⅲ.808)

아무튼 그는 어린 애(kumāra)였을 때 승가에 들어왔고 왕이 키웠기 때문에 꾸마라(왕자) 깟사빠라는 이름을 가졌다.

세존께서는 그를 다양한 설법을 하는 자들 가운데 최상이라고 칭송하셨다고 한다.(DA.ⅲ.808)

주석서는 본경을 통해서 존자가 아라한이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MA.ⅱ.134)


(*2)  “‘현자(paṇḍita)’란 열여덟 가지 요소[十八界]에 대해 능숙하고(dhātu-kusalatā), 
열두 가지 감각장소[十二處]에 대해 능숙하고(āyatana-kusalatā), 
연기의 구성요소에 대해 능숙하고 (paṭiccasamuppāda-kusalatā),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에 대해 능숙한 것(ṭhana-aṭṭhāna-kusalatā)인

이 네 가지를 통해 현자라고 한다.”(MA.ⅳ.82)


이 정의는 본서 제4권 「여러 종류의 요소 경」(ㅡ115) §3에 부처님 말씀으로 나타난다.

복주서는 다음과 같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열여덟 가지 요소[十八界]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재난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것이 요소에 능숙한 것이고,

감각장소에 대해 능숙한 것도 이런 방법과 같다.

무명 등 열두 가지 연기의 구성요소에 대해 잘 아는 것이 연기의 구성요소에 대해 능숙한 것이고

이것은 이 결과의 원인이고 이것은 원인이 아니라고, 이렇게 원인을 원인이라고 원인이 아닌 것을 원인이 아닌 것이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것을 원인과 원인이 아닌 것에 대해 능숙한 것이라고 한다.”(MAT.ⅱ.270) 


(*3)   “‘빗장을 버리고 칼을 가지고 계속 파십시오.’라는 것은

이 빗장(laṅgi)이 ‘밤에 연기를 내뿜고 낮에 불타는 것’이 아니니, 그것을 버리고 더 깊이 파라는 말이다.

이것은 모든 구절에도 이와 같이 적용된다.”(MA.ⅱ.278)


(*4)  ‘칼과 도마’는 asi-sūnā를 옮긴 것인데,

본서 「뱀의 비유 경」(M22) §3에서는 도살장으로도 옮겼다. 아래 §4 ⑬의 해당 주해 참조할 것.


3.  그러자 꾸마라깟사빠 존자는 그 밤이 지나자 세존을 뵈러 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꾸마라깟사빠 존자는 세존께 이와 같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간밤에 밤이 아주 깊어갈 즈음 어떤 천신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장님들의 숲을 온통 환하게 밝히면서 제게 다가와 한 곁에 섰습니다.

한 곁에 서서 그 천신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구여, 비구여, 이 개미집은 밤에는 연기를 내뿜고 낮에는 불타오릅니다.

그때 바라문이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현자여, 칼을 가지고 파십시오.'

현자가 칼을 가지고 파다가 빗장을 보았습니다. ' 빗장입니다,

존자시여.' 바라문은 이어서 말했습니다.

' 현자여, 빗장을 버리고 … 혹은 그에게 들은 자가 아니고는 그 누구도 보지 못합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그 천신은 말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그곳에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런데 그 개미집은 무엇이며,

밤에 연기를 내뿜는 것은 무엇이며, 낮에 불타오르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라문은 누구이고, 현자는 누구입니까?

칼은 무엇이고, 파는 것은 무엇이고, 빗장은 무엇이고, 두꺼비는 무엇이고,

두 갈래 길은 무엇이고, 체는 무엇이고, 거북이는 무엇이고,

칼과 도마는 무엇이고, 고깃덩이는 무엇이고, 용은 무엇입니까?"



 4.  " 비구여, 개미집이란 바로 이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몸을 두고 한 말이다.

그것은 부모에서 생겨났고 밥과 시큼한 죽으로 적집되었고

무상하고 파괴되고 분쇄되고 해체되고 분해되기 마련이다.


비구여, 낮에 행한 것에 대해 사유하고 고찰하는 것이 밤에 연기를 내뿜는 것이다.(*5)
비구여, 밤에 사유하고 고찰한 것을 낮에 몸과 말과 마음으로 행위에 적용시키는 것이

낮에 불타오르는 것이다.


비구여, ④ 바라문모든 번뇌를 제거하고

바르고 원만하게 깨달으신 여래를 두고 한 말이다.(*6)
비구여, 현자는 유학인 비구를 두고 한 말이다.


비구여, ⑥ 칼(*7)이란 성스러운 통찰지를 두고 한 말이다.
비구여, ⑦ 파는 것은 정진을 두고 한 말이다.


비구여, 빗장이란 무명을 두고 한 말이다.(*8)
'빗장을 밀어제쳐라, 무명을 제거하라.

현자여, 칼을 가지고 파라.'는 것이 그 질문의 뜻이다.


비구여, 두꺼비는 분노에 따른 절망을 두고 한 말이다.
'두꺼비를 버려라. 분노에 따른 절망을 버려라.

현자여, 칼을 가지고 파라.'는 것이 그 질문의 뜻이다.


비구여, 두 갈래의 (*9)은 의심을 두고 한 말이다.
'두 갈래의 길을 버려라. 의심을 제거하라.

현자여, 칼을 가지고 파라.' 는 것이 그 질문의 뜻이다.


비구여, 체는 다섯 가지 장애들을 두고 한 말이다.(*10)

감각적 욕망, 악의, 해태와 혼침, 들뜸과 후회, 의심의 장애이다.

 '체를 버려라. 다섯 가지 장애들을 제거하라.

현자여, 칼을 가지고 파라.' 는 것이 그 질문의 뜻이다.


비구여,거북이는 취착의 [대상인]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를 두고 한 말이다.(*11)

즉 취착의 [대상인] 물질의 무더기[色取蘊],

취착의 [대상인] 느낌의 무더기[受取蘊],

취착의 [대상인] 인식의 무더기[想取蘊],

취착의 [대상인] 심리현상들의 무더기[行取蘊],

취착의 [대상인] 알음알이의 무더기[識取蘊]이다.
'거북이를 버려라. 취착의 [대상인] 다섯 가지 무더기들을 제거하라.

현자여, 칼을 가지고 파라.'는 것이 그 질문의 뜻이다.


비구여, ⑬ 칼과 도마는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을 두고 한 말이다.(*12)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욕망을 짝하고 매혹적인 눈으로 인식되는 형색들이다.

… 귀로 인식되는 소리들이다. … 코로 인식되는 냄새들이다. … 혀로 인식되는 맛들이다.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욕망을 짝하고 매혹적인, 몸으로 인식되는 감촉들이다.
'칼과 도마를 버려라,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을 제거하라.

현자여, 칼을 가지고 파라.'는 것이 그 질문의 뜻이다.


비구여, ⑭ 고깃덩이는 향락과 탐욕을 두고 한 말이다.(*13)
'고깃덩이를 버려라, 향락과 탐욕을 제거하라.

현자여, 칼을 가지고 파라.'는 것이 그 질문의 뜻이다.


비구여, 용은 번뇌를 다한 비구를 두고 한 말이다.
'용은 그대로 두어라, 용을 해치지 마라.

용에게 예배하라.'(*14)것이 그 질문의 뜻이다."(*15)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꾸마라깟사빠 존자는 흡족한 마음으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했다.(*16)


(*5)  “‘연기를 내뿜는 것(dhūmāyanā)’에서

연기(dhūma)라는 단어는 ‘분노(kodha), 갈애(taṇhā), 사유(vitakka),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pañca kāmaguṇa)’ 등에 적용되지만

여기서는 사유를 뜻한다.”(MA.ⅱ.130)


(*6) “여래는 중생들의 법들(sattannaṃ dhammā)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bāhitattā)

‘바라문(brāhmaṇa)’이라 부른다. 이와 같은 말씀이 있다.

“어떤 법들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가?

탐욕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성냄, 어리석음, 자만, 유신견, 의심, 계행과 의례의식에 대한 취착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이러한 중생들의 법들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바라문이라 한다.”(Nd.86~87)라고”(MA.ⅱ.130)


(*7)  “‘칼(sattha)’은 세간적인 통찰지와 출세간적인 통찰지를 두고 한말이지,

무기인 칼을 두고 한말이 아니다.”(MA.ⅱ.131)


(*8) “왜 세존께서는 무명(avijjā)을 ‘빗장(laṅgi)’이라고 하셨는가?

도시의 성문을 닫고 빗장을 채우면 사람들의 출입이 중단된다.

그리하여 도시 안에 있던 사람들은 그대로 안에 머물고, 밖에 있던 사람들은 그대로 밖에 머물게 되듯이,

지혜의 입(ñāṇa-mukha)에 무명의 빗장을 채우면 열반을 성취케 하는 지혜의 출현이 끊어져 버린다.

그러므로 무명을 빗장이라 했다.”(MA.ⅱ.131)


(*9) 여기서 ‘두 갈래의 길’은 dvidhā-patha를 옮긴 것이다. 주석서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마치 재물과 재산을 가지고 황무지를 가던 사람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dvidhā-patha)에 이르러

이 길을 가야할지 저 길을 가야할지 결정을 짓지 못하고 머물다가 도둑들에게 붙잡혀 파멸에 이르듯이,

근본명상주제를 들고 앉은 비구가 부처님 등에 대해 ‘의심(vicikicchā)’이 일어나면 명상주제를 증장시킬 수가 없다.

그러면 오염원의 마라(kilesa-māra) 등 모든 마라들이 그를 붙잡아 파멸로 인도한다.

그러므로 세존께서 의심은 두 갈래의 길(dvidhā-patha)을 두고 한 말이라고 하셨다.”(MA.ⅱ.132~133)


(*10) “’체(caṅkavāra)’에다 물을 부으면 한 항아리든, 두 항아리든, 백 항아리든 모두 흐르고

한 움큼의 물도 남지 않는다. 그와 같이 장애(nīvaraṇa)를 가진 사람사이에서는

유익한 법[善法, kusala-dhamma]이 머물지 못한다.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체는 ‘다섯 가지 장애들[五蓋, pañca nīvaraṇani]’을 두고 한 말이라고 하셨다.”(MA.ⅱ.133)


(*11) “‘거북이(kumma)’는 네 발과 머리의 다섯 가지 부분을 가졌다.

그와 마찬가지로 다섯 가지 무더기(오온)가 모든 형성된 법들[有爲法, saṅkhātā dhammā]을 다 포함한다.

그러므로 세존께서 거북이는 ‘취착의 [대상인]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 pañc-upādāna-kkhandhā]’를 두고

한말이라고 하셨다.”(MA.ⅱ.133)


(*12) 칼과 도마’는 asi-sūnā를 옮긴 것인데, 본서 「뱀의 비유 경」(M22) §3에서는 도살장으로도 옮겼다.

본경에 해당하는 주석서에서 “asi-sūnā는 고기를 자르는(maṃsa-cchdaka) 칼(asi)과

자르는 받침대(adhikuṭṭana)를 말한다.”(MA.ⅱ.128)라고 설명하고 있어서 이렇게 옮겼다.

 일반적으로 sūnā 혹은 sūnā-ghara는 도살장을 뜻한다.(PED)

계속해서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마치 도마(sūnā) 위에 고기를 놓고 칼로 자르듯이,

이와 같이 감각적 욕망을 따르는 중생들은 대상으로서의 감각적 욕망(vatthu-kāma)에 놓여

오염원으로서의 감각적 욕망(kilesa-kāma)에 의해 절단된다.

그러므로 세존께서 칼과 도마는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pañca kāma-guṇa)’을 두고

한말이라고 하셨다.”(MA.ⅱ.133)


(*13)  “여기 이 ‘고깃덩이(maṃsa-pesi)’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

끄샤뜨리야 등 인간들도 그것을 좋아하고, 까마귀 등 동물들도 그것을 좋아한다.

이 중생들은 무명에 도취되어 향락과 탐욕에 다가가서 윤회를 좋아한다.

혹은 마치 고깃덩이를 두는 곳마다 거기에 잘 들러붙어 있듯이,


이러한 중생들도 ‘향락과 탐욕(nandi-rāga)’에 묶여 윤회에 들러붙어 있다.


괴로움을 경험해도 후회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향락과 탐욕은 고깃덩이와 비슷하다.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고깃덩이는 향락과 탐욕을 두고 한 말이라고 하셨다.”(MA.ⅱ.133~134)


(*14) ‘큰 용들’은 mahā-nāgā를 옮긴 것이다. 주석서는 나가(nāga, 용)의 어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상수제자들(agga-sāvakā)을 ‘큰 용들(mahā-nāgā)’이라 부른다. 이것의 어원은 다음과 같다. 


① 욕구(chanda) 등에 바탕 하여  나아가지 않기 때문에 나가(nāga)라 하고,

② 각각의 도로써 버려진 오염원들은 다시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나가라고 하고,

③ 여러 종류의 죄를 범하지 않기 때문에 나가라 한다. …

큰 용들이란 다른 번뇌 다한 용들(khīṇāsava-nāga, 아라한들)보다 더 존경받고 더 칭송받는다는 뜻이다.”(MA.ⅰ.153)  


“‘용에게 예배하라(namo karohi nāgassa)’는 것은

번뇌 다한 부처님이라는 용께

“깨달으신(buddha) 세존께서는 깨달음을 위해 법을 설하신다.

제어되신(danta) 세존께서는 제어를 위해 법을 설하신다.

고요하신(santa) 세존께서는 고요함을 위해 법을 설하신다.

건너신(tiṇṇa) 세존께서는 건너게 하기 위해 법을 설하신다.

구경열반을 성취하신(parinibbuta) 세존께서는 구경열반을 위해 법을 설하신다.”라고

이와 같이 공경해야 한다. 이것이 그 뜻이다.”(MA.ⅱ.134)


(*15) “‘이것이 그것의 뜻이다(ayam etassa attho).’라는 것은

‘이것이 그 질문(pañha)의 뜻이다.’는 말이다.”(MA..ⅱ.134)


(*16) “이 경은 존자의 명상주제가 되었다.

존자는 이 경을 명상주제로 삼아 위빳사나를 증장시켜 아라한과를 얻었다.”(MA.ⅱ.134)



          개미집 경(M23)이 끝났다.
 

 
 대림스님 옮김 『맛지마니까야』 제1권 569-5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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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해맑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06.02 2. "비구여, 비구여,
    이 개미집(=사대로 이루어진 몸. kāya)은
    밤에는 연기를 내뿜고(=사유, 思惟하고)
    낮에는 불타오릅니다. (=신구의 三行)

    그때 바라문(=여래)이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현자여(=유학인 비구),
    칼(=통찰지)을 가지고
    파십시오(=정진하라).'

    현자가 칼을 가지고 파다가 빗장(=무명)을 보았습니다.
    '현자여, 빗장을 버리고 칼을 가지고 계속 파십시오.’

    현자가 칼을 가지고 파다가 두꺼비(=절망)를 보았습니다.
    '현자여, 두꺼비를 버리고 칼을 가지고 계속 파십시오.'

    현자가 칼을 가지고 파다가 두 갈래 길(=회의적 의심)을 보았습니다.
    '현자여, 두 갈래 길을 버리고 칼을 가지고 계속 파십시오.'

    현자가 칼을 가지고 파다가 체(=다섯 가지 장애)를 보았습니다.
    ‘현자여, 체를 버리고 칼을 가지고 계속 파십시오.'

    현자가 칼을 가지고 파다가 거북이(=오취온)를 보았습니다.
    '현자여, 거북이를 버리고 칼을 가지고 계속 파십시오.'

  • 작성자해맑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06.02 현자가 칼을 가지고 파다가 칼과 도마(=오욕락)를 보았습니다.
    '현자여, 칼과 도마를 버리고 칼을 가지고 계속 파십시오.'

    현자가 칼을 가지고 파다가 고깃덩이(=향락과 탐욕)를 보았습니다.
    '현자여, 고깃덩이를 버리고 칼을 가지고 계속 파십시오.'

    현자가 칼을 가지고 파다가 용(=번뇌 다한 비구, 아라한)을 보았습니다.
    '현자여, 용은 그대로 두십시오.
    용을 해치지 마십시오. 용에게 예배하십시오.' 라고.


  • 작성자해맑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06.02 이 경의 메시지는
    <개미집을 칼을 가지고 계속 파십시오! ... 용이 나올 때까지 ...>

    이 칼...
    어디서 어떻게 구할까요? ...

    밤에는 연기를 내품고...
    낮에는 불타오르는 게미집을
    칼로 계속 파보니....
    빗장, 두꺼비, 두 갈래 길, 체, 거북이, 칼과 도마, 고깃덩아를...
    살림살이로 갖추고 살고 있네요...
  • 작성자삼장행 | 작성시간 22.10.06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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