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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념처 법문

수관이란 무엇인가

작성자chai|작성시간10.01.21|조회수762 목록 댓글 4

<수관이란>

 

수관이란 무엇인가? 이것을 빨리어로는 아누(anu)빠싸나(passana-)라고 하는데, 이것은 주시, 응시, 수관이라고 합니다. 다 같은 말인데 지속해서 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얻어지는 결론이 대상의 본성이 통찰된다는 겁니다. 계속해서 보면 대상이 통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철견, 꿰뚫어보는 것입니다.

 

사띠(sati)는 그냥 알아차리는 것이고 아누빠싸나는 알아차리는 것을 지속해서 꿰뚫어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띠 하나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알아차림이 사띠입니다. 깨어서 대상에 붙인다는 것, 이것은 그냥 아는 것 하고는 다릅니다. 사띠는 대상에 가서 붙이는 겁니다.

알아차림을 지속하다보면 집중이 붙는데 대상을 자세하게 보려고 하면 집중을 못합니다. 대상에 붙지 못합니다. 이것을 사람들은 이해 못합니다.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정확히 구별하지 못하듯이 삼매, 이것도 구별하지 못합니다. 집중도 깊은 선정의 집중과 알아차림의 집중인 찰나집중이 있습니다. 집중도 깊은 집중, 얕은 집중, 찰나집중이 있는데 깊은 집중에서는 알아차림도 깊은 알아차림을 하는 겁니다.

 

또 여기에 노력이 있어야 하는데, 노력도 깊은 집중일 때는 깊은 노력이 있고 찰나 집중에서는 찰나 집중의 알아차림이 있고 찰나집중의 노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찰나집중의 노력은 무엇을 어째야 한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굴러가는 힘으로 가는 것, 보여지는 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내가 자꾸 이야기 하는 것이, 화끈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가면서 자연스럽게 알아지는 것, 그것 아니면 안 된다는 겁니다.

위빠사나를 하면서 갈수록 어려워지는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삶의 본질, 정신의 본질, 그 다음에 가장 질이 높다고 하는 스승의 방법이 어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너무 세속적인 것만을 추구하고 살았기 때문에 최고의 가치가 있는 것들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우리가 모르는 것들, 우리가 모르는 과정을 통해서 접근됩니다. 기존의 사고방식으로는 안 됩니다.

 

-수관과 지관을 동시에 할 수 있는가요?

-지는 멈출 ‘止’를 말하는데 지관은 사마타[止]와 위빠사나[觀]를 말합니다. 한편으로 지관은 멈추어서 본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수관과 지관은 다 관이 붙어있지만 수관은 계속해서 본다는 의미고 지관은 멈추어서 본다는 것으로 이해하시라는 겁니다. 지관은 멈추기 때문에 자세하게 보아야 하고 탁 들어붙어야 합니다.

-이것을 동시에 할 수 있는가요?

-동시에는 안 됩니다. 마음은 한 순간에 하나밖에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두 가지를 다 하는 방법은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지관과 수관을 함께 다 하고 있습니다. 우선은 하나의 호흡을 꼭 붙잡습니다. 그런데 호흡이라는 대상 하나에 우리는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호흡만 붙잡고 있을 수 있냐구요? 어느 순간 다른 것이 나타나면 그리로 가야합니다. 그런데 너무 왔다갔다 하면 혼란스러우니까 하나의 대상을 의도적으로 선택하려 하면 이미 지관으로 가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위빠사나를 이야기 할 때 사마타와 위빠사나가 같이 간다는 겁니다. 사마타/위빠사나를 늘 이야기 합니다. 그러니까 왜 이것이 헤깔리는가 하면 위빠사나라는 용어가 여기 들어오면서 이 수행을 들여온 사람들이 오직 이것만이라고 한 때문인데, 지금 이것을 가르치는 방법이 마하시 방법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 스승도 위빠사나만 가르쳤는데.. 계시판에 보면 파옥 사야도의 경우와 같이 사마타와 위빠사나 방법을 겸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부처님 방법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다양한 방법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조금 있다 나오겠만, 우리도 사마타 수행을 한 번 해볼 수 있습니다. 자, 이번에 프로그람을 하나 만들어보면,. 신념처, 몸 보는 수행에서 위빠사나로 신념처를 접근하는 방법도 있지만 사마타로 신념처를 접근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염불 외우듯이 ‘머리카락, 눈썹, 염통, 뼈...’하면서 바로 외우고, 거꾸로 외웁니다. 이것이 경전에 나옵니다. ‘머리카락, 머리카락’ 하고 외우다 보면 어느 순간에 머리카락이 표상(니미따)으로 뜬답니다. 실제로 상이 뜨는 것이죠. 허상이 아니고 실상이 제대로 뜨는데 그때 무상을 느낀다는 겁니다.

그리고 또 주석서에 의하면 이것이 집중을 유도하기 때문에 무상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생각으로가 아니라 실재하는 상이 보인답니다. 그리고 예를 들어, 이것을 외우는 동안에는 다른 생각 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해져서 그런 효과가 있다는 겁니다. 그것이 사마타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시간이 걸린다는 겁니다. 그리고 여기서 자칫 잘못하면 다른 길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집중력이 있기 때문에 신통력으로 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집중의 힘으로 능력이 생기는 것인데 그러다 보면 삼천포로 빠진다는 겁니다. 그런데 위빠사나는 능력이 아니라 계속해서 찰나 찰나 지켜보기 때문에 지혜가 생긴다는 겁니다. 능력도 필요한데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계속 통찰해서 어떤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어떻고 저렇게 하면 어떻고, 하는 등의 방법을 말합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사마타 수행에서는 고요함만 있는데 위빠사나에서는 지혜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진행되면 힘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마타는 힘이 듭니다. 힘 들이고 노력을 해서 가서 붙어야 하는데 위빠사나는 제 스스로의 힘으로 되어진다는 겁니다. 지혜가 생기기 때문에 바른 견해가 생기고 바른 견해가 생기기 때문에, 그리고 이미 사물을 대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갈수록 올라가 있으니까 힘 안들이고 되어간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라한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고정관념이 강하기 때문에 갈수록 어려워집니다. 고정관념이란 것이 이렇습니다. 때로는 관념도 필요합니다. 어떻게 관념 없이 살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관념인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관념을 모르고 삽니다. 지금 녹차를 말할 때 어떻게 녹차라는 말을 안 하고 삽니까? 그런데 여기의 실재는 녹차의 맛입니다. 이것이 실재하는 법이고 고기라면 고기의 고소하고 단 맛이 실재하는 것이고 고기라는 것은 관념입니다. 우리 스승이 늘 말씀하시기를,

“무엇을 먹었느냐?”

“닭고기를 먹었습니다.”

“닭고기를 먹었느냐, 닭고기의 맛을 먹었느냐”

“맛을 먹었습니다.”

“그것이 바른 견해다.” 하셨습니다.

 

우리는 몸 밖으로 나가면 다 고정관념입니다. 몸과 마음에 있을 때만 '내 몸이라는 것', '내 마음이라는 것'이 잘 못되었다고 본다는 것입니다. 내 몸이 조건 지어진 것이고 내 것이 아닌데 이것을 알 수가 없다는 겁니다. 수다원이 되어서 3법인의 지혜가 들어서 깨달음이 오면 반드시 집착이 끊어지는데, 무집착이 와야 열반이라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영원하지 않네, 괴롭구나,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구나, 하고 아는 것, 생명이 끊어지는 것도 조건에 의해서 되는 것이지 내가 어쩌라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는 겁니다. 내 마음이라는 것도 한 마음이 아니라 선심, 불선심, 과보심, 무인작용심이 한데 얽혀 있기 때문에 조건이라는 겁니다. 어떤 과보심이 그 순간이 치고 들어올지 모른다는 겁니다. 그것을 우리는 알수가 없습니다. 내 마음대로 가지 못합니다. 가다가 마라(장애)가 들어온다는 것은, 과보심이 들어온다는 겁니다. 내가 저질러 놓은 일에 의해서 그것이 과보심으로 치고 들어오면 어쩔 수 없다는 겁니다. 그래도 나는 해야겠다고 우리는 여기 모였습니다. 그래서 경전을 읽고 그래도 안 되니까 여기 모여서 새로운 길을 만드는 겁니다. 그것이 바른 견해라는 겁니다. 16 단계 수행 중에서 11단계까지는 노력으로 가지만. 그 다음은 선업의 공덕으로 갑니다. 그래서 이런 지혜의 단계는 아무나 못간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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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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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여여행 | 작성시간 11.04.12 감사합니다
  • 작성자연날리기 | 작성시간 11.11.24 무상=고=무아.
  • 작성자돌피 | 작성시간 16.02.24 ∴수관(隨觀)은 계속해서 본다는 의미고 지관(止觀)은 멈추어서 본다는 것인데 동시에는 안 됩니다. 마음은 한 순간에 하나밖에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사마타 수행에서는 고요함만 있는데 위빠사나에서는 지혜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진행되면 힘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마타는 힘이 듭니다. 힘 들이고 노력을 해서 가서 붙어야 하는데 위빠사나는 제 스스로의 힘으로 되어진다는 겁니다. 지혜가 생기기 때문에 바른 견해가 생기고 바른 견해가 생기기 때문에, 그리고 이미 사물을 대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갈수록 올라가 있으니까 힘 안들이고 되어간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라한이 되는 겁니다...
  • 작성자돌피 | 작성시간 16.02.24 ∴몸 밖으로 나가면 다 고정관념입니다. 내 몸이 조건지워진 것이고 내 것이 아닌데 이것을 알 수가 없다는 겁니다. 수다원이 되어서 3법인의 지혜가 들어서 깨달음이 오면 반드시 집착이 끊어지는데, 무집착이 와야 열반이라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영원하지 않네, 괴롭구나,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구나, 하고 아는 것, 생명이 끊어지는 것도 조건에 의해서 되는 것을 안다는 겁니다. 내 마음이라는 것도 한 마음이 아니라 선심, 불선심, 과보심, 무인작용심이 한데 얽혀 있기 때문에 조건이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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