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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나눔터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라는 말씀의 의미

작성자주님은 나의 목자|작성시간11.08.04|조회수621 목록 댓글 4

혹시 이전에 올린 글이 삭제된다면 아래 말씀을 통하여 한 번 묵상하면 어떨까 싶어 올립니다.

부디 진리만이 거룩한 예수님을 우리 마음에 모실 수 있으며 또 그 형상을 입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신부님들의 삶이 주님이 보시기에 합당하며 의롭고 거룩하길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드립니다.

 

살전2:

11.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12.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

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살전3:

 

13.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살전4:

 

1.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끝으로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배웠으니 곧 너희가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2. 우리가 주 예수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누가복음 5:38에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의도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은근히 침례 요한의 가르침과 자신들의 가르침을 하나로 연결시키려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저희(바리새인과 서기관)가 예수께 말하되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또한 그리하되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다"(눅 5:33)

질문의 요지는, 침례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을 자주하는데 왜 예수님의 제자들은 금식을 하지 않는가 라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 예수께서는 침례 요한의 기별과 바리새인의 가르침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말씀해주셔야 했고, 또한 그리스도의 복음도 바리새인의 교리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할 필요를 느끼셨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새 포도주와 새 가죽부대에 대한 교훈을 주셨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5장 36절부터 39절까지의 의미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합하지 아니하리라.

침례 요한의 외침은 유전과 미신으로 더불어 섞여서는 안 될 것이었다. 바리새인들의 가식을 요한의 헌신에 혼합시키려는 시도는 이들 사이의 간격을 더욱 분명하게 해줄 뿐이었다.

그리스도의 교훈의 원칙도 바리새주의적 형식과 결합될 수 없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요한의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생긴 간격을 막지 않으실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낡은 것과 새것 사이의 분리를 더욱 분명히 하셨다.

예수께서는 이 사실을 더 깊이 예증하셨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되리라.

새 포도주를 담는 용기로 사용되던 가죽 부대는 얼마 후에는 말라 부숴지기 쉽게 된다. 그리하여 다시 포도주를 넣는 데는 쓸모 없이 되어버린다. 이 잘 아는 실례로 예수께서는 유대 지도자들의 상태를 나타내셨다.

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관원들은 의식과 유전의 틀에 고착되어 있었다. 그들의 심령은 예수께서 비유하여 말씀하신 말라붙은 포도주 부대와 같이 위축되어 있었다. 그들이 율법주의적 신앙에 만족하는 상태에 있을 동안은 하나님이 주신 진리의 위탁자가 될 수가 없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의가 매우 충분하다고 생각하였으므로 새로운 요소가 그들의 신앙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그들 자신들과는 거리가 먼 어떤 것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그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그들의 선행으로 말미암는 자신의 공로와 연결시켰다.

사랑으로 행하며 심령을 정결하게 하는 믿음은 의식과 사람의 교훈으로 된 바리새인들의 신앙과는 결합할 여지를 찾을 수 없었다. 예수의 교훈과 기성의 종교와를 결합시키려는 노력은 수포로 돌아갈 것이었다.

발효시키는 포도주와 같이 하나님의 생명의 진리는 낡고 쇠해져 가는 바리새인의 유전의 가죽 부대를 터뜨릴 것이었다.

 

바리새인들은 그들이 교훈을 필요로 하기에는 자신들이 너무 현명하고, 구원을 필요로 하기엔 자신들이 너무 의로우며, 그리스도께로부터 오는 존귀함을 필요로 하기에는 스스로 너무나 큰 존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예수께서는 하늘의 복된 소식을 받고자 하는 다른 무리들을 찾기 위하여 그들에게서 돌아서셨다.

예수께서는 무식한 어부와 장터에 앉은 세리와 사마리아 여인과 당신의 말씀을 기쁘게 듣는 백성들 가운데서 새 포도주를 담을 새 부대를 발견하였다.

하나님의 복음 사업에 쓰이는 도구는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빛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이런 영혼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진리의 지식을 세상에 전하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들이다. 만일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새 가죽 부대가 된다면 그리스도께서 새 포도주로 그들을 채워주실 것이다.

그리스도의 교훈이 비록 새 포도주로 표상되기는 하였지만 그것은 새로운 교리가 아니라 태초부터 가르치셨던 교훈의 계시였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진리는 원래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잃어버렸다. 그리스도의 교훈은 거의 모든 면에서 그들에게 새 것으로 보였고 시인할 수 없고 인정할 수 없는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거짓 교훈의 능력이 진리에 대한 인식과 그것에 대한 욕망을 파괴시킨다고 지적하셨다.

예수께서는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선조들과 선지자들을 통하여 세상에서 주셨던 모든 진리는 그리스도의 말씀 가운데서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빛났다.

그러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귀중한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았다. 낡은 유전, 습관 및 행동을 비우기 전에는 그들의 정신과 마음에 그리스도의 교훈을 받아들일 여지가 없었다. 그들은 죽은 형식에 집착하였고 산 진리와 하나님의 능력으로부터는 돌아섰다.

 

유대인들의 멸망의 원인은 바로 이것이었으며 그것은 또 오늘날에 있어서도 많은 영혼들의 멸망의 원인이 될 것이다.

허다한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마태의 잔치에서 책망하셨던 바리새인들이 저지른 그 같은 잘못을 범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품은 어떤 생각을 버리거나 혹은 어떤 우상과 같은 의견을 버리기보다는 오히려 빛 되시는 하늘 아버지께로부터 오는 진리를 거절한다.

그들은 자기를 신뢰하고 자신의 지혜를 의지하며 영적 빈곤을 깨닫지 않는다.

그들은 어떤 중요한 일을 수행하여 구원받는 그런 방식을 고집한다. 자아를 그 사업에 관여시킬 길이 전혀 없음을 볼 때 그들은 준비된 구원을 거절한다.

율법주의적인 종교는 사랑도, 그리스도도 없는 종교이므로 사람을 결코 그리스도께 인도할 수 없다.

스스로 의롭게 여기는 정신에 의해 행해지는 금식이나 기도는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것이다.

엄숙한 예배, 집회, 종교적 의식의 반복, 외형적인 겸손, 남의 이목을 끄는 희생 제사 등은 이런 일들을 행하는 자들은 자신을 의롭고 하늘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한 기만이다. 우리 자신의 행위로는 결코 구원을 살 수 없다.

 

그리스도의 시대와 같이 오늘날도 그러하다.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영적 결핍을 알지 못한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보게 하라"(계 3:17, 18)는 말씀이 그들에게 임하고 있다.

믿음과 사랑은 불로 연단한 금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금은 빛을 잃었고 부요한 보화는 잃어버린 바 되었다.

그리스도의 의는 그들에게는 입지 않은 두루마기와 손대지 않은 샘과 같다.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4, 5)는 말씀이 그들에게 말해지고 있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 사람이 온전한 의미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될 수 있기 전에 자아를 비우지 않으면 안 된다.

 

 자아가 포기될 때 주께서 사람을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실 수 있으시다.

 

새 가죽 부대가 새 포도주를 담을 수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신자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을 것이다.

 

우리의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를 바라보는 사람에게서 그리스도의 성품이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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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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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갈:2:20 | 작성시간 11.08.04 새포도주와 새부대의 뜻..늘 궁금했었는데.. 자세히 설명해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 작성자동치미 | 작성시간 11.08.06 요즘시대에도 새포도주,헌부대,새부대가 있습니다. 마지막때라고 이야기하면 기존교회는 못들은척, 무시하기도,비난하기도 합니다. 헌부대가 새포도주를 감당을못하는것이지요. 반면 이 새포도주는 헌부대(기존교회)를 찢게될수도 있습니다. 태생적으로말이지요. 모두 두려운일입니다. 헌부대되지않도록 깨어있어야겠습니다
  • 작성자동치미 | 작성시간 11.08.06 또한 대부분 사람들은 옛복음(기존신앙생할)을 더 좋아할수 있습니다. 묵은 포도주가 입맛에 맞기때문이지요. 하나님이 새로이 일으키시는 일들은 그래서 늘 주류에서 자라지 못하고 변방에서 시작되는가 봅니다. 두려운 일이지요. 신부님들, 마지막때는요거룩하게살고,선교해야합니다. 선교의마음이없으면우리도똑같아집니
  • 답댓글 작성자주님은 나의 목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08.11 아멘! 한가지 더 첨가하면 .....새계명은 사실 옛계명을 온전하게 하신 것이죠.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율법의 결국은 사랑이라고..... 오늘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님과 제가 되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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