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령한 노래를 부르려면
우리가 어렸을 때는 부모님을 비롯해서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필요한 것을 챙겨주셨습니다. 그러나 자라면서 우리는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는 훈련을 받습니다. 공부도 자신이 알아서 계획을 세우고 열심히 합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그때마다 달라고 말씀드려야 합니다. 이렇듯이 성장하면서 우리는 스스로 해야 할 영역이 점점 넓어집니다. 그렇지 못하면 낙오되고 사회에 적응해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적인 일에도 우리 스스로 해야 하는 영역이 점점 늘어간다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가 모든 것을 알아서 챙겨주었던 그 시절만 생각하고 장성했으면서도 여전히 부모에게 의존해서 어리광만 피운다면 제대로 된 부모는 그냥 두지 않을 것입니다. 간혹 미숙한 부모는 이런 어리광을 좋아하면서 계속 돌보아주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런 부모는 자녀를 망치게 하는 어리석은 부모입니다.
하나님은 어리석은 부모가 아니기 때문에 자식을 망치게 하는 그런 일은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처음 거듭났을 유아기에는 하나님이 챙겨주시지만 이 시기는 잠깐이고 우리 스스로 해야 하는 가혹한 훈련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이미 ‘영성의 샘터’에서 107번 ‘성령의 역사하심을 이끌어내는 요소들’이라는 제목으로 다룬 내용입니다만, 우리에게 형성된 자율의지를 사용해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이끌어내야만 합니다. ‘연단된 지각’이라는 말로 표현된 ‘자율의지’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주의 역사가 나타날 수 있는 배경을 만들어드리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영적 분위기가 만들어진 부흥회나 집회에서 나타납니다. 혼자 기도하면 잘 되지 않던 것도 금식하면서 성령 충만한 집회에 참석하면 잘 되고 은혜가 넘칩니다. 그냥 기도하면 잘 되지 않던 것이 금식하면서 작정하고 기도하면 은혜가 넘치는 까닭이 다 이런 배경에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거나 집회를 할 때 성도들이 모입니다. 두 세 사람 이상이 모이는 곳에는 주님도 함께하시므로 여기에는 주의 영이 역사하실 바탕이 마련된 것입니다. 이렇게 모였을 때 그 가운데에 일어나는 다양한 영적 현상 중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영적 현상을 거의 만나보지 못했을 것이며, 따라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잘 모를 것입니다. 찬미는 찬양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해도 시와 신령한 노래는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제가 ‘영성의 글샘’ 173번에서 ‘새 노래 트힐라를 부릅시다’라는 제목으로 이미 다룬 내용이므로 이 글을 읽은 분들은 새 노래가 무엇인지 개념적으로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노래를 부를 수 있었는지는 저는 알 수 없지만 이 내용을 알고도 이런 새 노래를 부르지 못하고 있다면 이 글을 통해서 새 노래를 부르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미 자율의지를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이끌어내야 하는 까닭을 알았다면 우리는 이런 일들을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되어지는 것이 없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움직이지 말 것을 요구한 경우를 제외하고 우리는 스스로 움직여야 합니다. 성령의 특별한 지시가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가 먼저 움직여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는 장성한 자녀는 부모의 지시를 일일이 받지 않아도 그 자신이 행하는 일이 부모를 근심케 하거나 실망시킬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압니다. 그런 경우에는 부모의 허락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장성할수록 이런 영역이 더 많아집니다. 그러나 아주 중요한 일은 부모님과 상의해야 하는 것이 도리이듯이 우리 영의 아버지에게도 이와 같은 원리가 적용되는 것입니다.
새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는 방언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새 노래는 주로 방언찬양으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방언기도를 하면서 우리는 그 주체가 바뀌는 것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제가 방언기도라는 제목의 글에서 사도행전에서 나오는 방언과 고린도전서에서 나오는 방언을 나누어 설명하였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은 게시판 글에서 자세히 다루었기 때문에 다 아는 것으로 여기고, 우리가 방언으로 기도할 때 찬양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찬양을 시작해야 합니다. 방언 역시 우리의 의지로 시작해야 하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처음 방언을 받을 때는 우리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이 혀가 말리고 이상한 소리가 나오기 때문에 주체할 수 없습니다. 말로 기도하려고 해도 혀가 말을 듣지 않고 이상하게 말려 다른 말은 나오지 않습니다. 정신이 맑아지거나 황홀한 분위기 속에 휘말려 들어가면서 전혀 통제할 수 없이 방언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경험은 방언을 처음 받는 초기에 나타나는 현상이고 이후에는 스스로 방언을 시작하지 않으면 방언이 나오지 않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물론 습관적으로 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방언을 비롯해서 모든 영적 현상은 우리의 의지의 통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회중이 많이 모인 곳에서는 분위기에 따라 인도하는 사람의 통제를 받아 적당히 절제해야 하는 것입니다. 영적 현상은 우리의 의지에 의해서 통제를 받는 것이 정상이며, 예외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강력한 기름 부음이 임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것은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 성령의 특별한 뜻에 의해서 우리의 의지가 배제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면 모든 영적 현상은 우리의 의지의 통제를 받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스스로 영적 현상들을 이끌어낼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치유를 행하거나 귀신을 쫓아내는 것 역시 우리의 의지로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령한 노래 역시 우리가 의지로 그 시작을 해야 합니다. 방언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어느 정도 영적 분위기가 잡혔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의지로 시작한 방언이 몇 차례 분위기가 바뀌면서 무척 쉽고 가볍게 방언이 흘러가기 시작할 때 찬양해야 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음의 흐름을 타기 시작하십시오.
우리가 기분이 좋아지면 콧노래로 흥얼거리듯이 방언으로 흥얼거리기 시작하면 성령께서 우리 영에 곡조를 불어넣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곡조가 붙은 방언 찬양을 하기 시작하게 되며, 간혹 우리말로 찬양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시’와 ‘찬미’입니다. 방언으로 때로는 우리말로 찬양하며 하나님을 높이게 됩니다. 시편기자가 찬미하듯이 우리의 영의 소리로 그것이 말로 시를 담은 찬양이 나오게 됩니다. 방언을 하지 못하는 분들은 다소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와 찬미는 방언과 관계없이 행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영적 분위기가 고조되면 우리말로 주님을 찬양할 수 있으니까요. 저의 경험으로 보아도 방언과 우리말이 교차하면서 찬미가 이루어집니다. 그런 것으로 보아 방언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도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방언을 하면 훨씬 쉽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방언으로 기도하면서 흥얼거리며 곡조를 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옛 어른들이 모내기를 하면서 또는 힘든 일을 하면서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흥얼거리면서 즉흥적으로 사설을 담은 노래를 하는 것을 저는 어려서 자주 보았습니다. 모내기 하면서, 또는 집을 지을 때 진흙을 게면서, 어울려 땅 다지기를 하면서 민요가락에 스스로 작사한 가사를 붙여가면서 서로 노래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모습은 아주 평화롭고 흥겨웠습니다. 이제는 그런 모습을 별로 만나볼 수 없게 된 것은 곡조로 만들어진 유행가가 넘쳐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영의 일에도 마찬가지로 이미 만들어진 찬송가와 복음성가가 넘쳐나기 때문에 이런 즉흥적인 ‘신령한 노래’는 우리 곁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신령한 노래는 우리의 신앙고백일 뿐만 아니라, 예언과 계시가 흐르는 통로가 된다는 점에서 무척 중요하며 이 기능을 교회가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저는 가사를 잘 외우지 못해서 찬송가를 제대로 다 부를 수 있는 곡이 얼마 되지 않는데 그래서 홀로 기도할 때는 이 신령한 노래에 많이 의존합니다. 시와 찬미를 통해서 주님이 제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내용이 담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예언적 말씀과 계시가 이 신령한 찬양을 통해서 흘러나오기 때문에 이 즉흥적 찬양을 많이 부르려고 합니다.
우리가 자율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하지만 과정이 쉽지 않습니다. 피카소가 ‘게르니카’라는 이상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림을 알지 못하는 분들은 그런 그림은 초등학생도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렇게 그린 것 같은 그림이 세계적인 명화로 인정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와 비슷하게 그린 아무추어의 그림은 절대로 명화가 될 수 없습니다. 김기창 화백인 말년에 ‘바보산수화’를 그렸습니다. 이 역시 초등학생이면 누구나 그릴 수 있는 그런 그림입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라는 그림은 붓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도 그 정도는 그릴 수 있습니다. 그런 그림이 최고의 가치를 지닌 그림으로 대접을 받습니다. 무슨 이유가 있을까요?
피카소가 게르니카를 그리기 전에 그는 젊은 시절 정통유화를 그렸습니다. 그 시기의 그림을 ‘청색시대’라고 부르는데 화가가 아니면 따라 잡을 수 없는 높은 수준의 화법을 구사한 전문가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김기창 화백 역시 젊은 시절 세밀화를 그렸는데 옥수수 수염 하나까지 묘사하는 놀라운 필치를 보입니다. 이 역시 고도의 화법을 익히지 않으면 절대로 그려낼 수 없습니다. 김정희는 추사체라는 독특한 필체를 개발해낸 명필 중의 명필입니다. 그런 필력과 안목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지금까지 누구도 추사의 필력을 따라잡을 수 있는 사람이 아직 없습니다. 이것이 이들이 간단하게 보이는 그림을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명화로 대접을 받는 까닭입니다. 같은 수준의 그림이라도 이들의 수준과 초등학생의 수준은 비교조차 할 수 없습니다.
영의 일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 분이 지시하는 대로 따라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음성을 듣고, 환상을 보고, 지시하는 바를 행동으로 옮기는 순종의 세월을 지내고 난 후에 스스로 판단해서 행하는 사람과 한번이라도 주의 음성을 듣고 그대로 행동해본 경험이 없이 스스로 주님이 원하시는 것일 것이라고 여기고 행동하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성경은 자율의지와 자유의지를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율의지란 연단을 받음으로서 생긴 지각을 말합니다. 즉 주님으로부터 일정기간 동안 훈련을 거쳐서 생긴 판단을 말합니다. 이 훈련은 ‘광야학교’에서 배우는 것인데 여기에는 ‘하나님의 음성듣기’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험이 없이 스스로 판단하는 것은 좋은 판단일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과녁 정중앙을 맞히는 확률은 매우 낮습니다.
훈련 받지 않으면 우리의 자각에는 불순물이 그대로 남아 있게 됩니다. 주님은 연단을 풀무에 비교합니다. 담금질을 받음으로써 우리 안에 있는 불순물이 제거되며, 이로써 순수성이 더 높아지며, 이런 상태에서의 지각은 하나님의 뜻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게 됩니다. 이것을 주님은 원하시는 것이며, 우리는 이런 지각을 사용해서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 새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선한 의지를 동원해서 스스로 작용을 시작해야 합니다. 방언은 우리가 필요할 때 우리의 의지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신령한 노래 역시 우리가 필요할 때 그 시작을 우리가 할 수 있습니다. 곡조를 타듯이 흥얼거리기를 시작하십시오. 주님이 해 주시기를 손놓고 기다린다는 것은 어리광부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알고 지각을 동원해서 하나님의 계시가 임하기를 사모하면서 시와 찬미로 노래하기를 소망하면서 방언으로 흥얼거리기 시작하십시오.
( 장봉운 목사님 글에서 )
http://cafe.godpeople.com/healinghouse - 장봉운목사님카폐
http://theme.godpeople.com/theme/15109 - 손기철장로님 말씀치유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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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선한세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1.09.26 하나님께서는 찬양을 너무너무 좋아하십니다...하나님의 극진한 총애를 받았던 루시퍼는 성가대장이었습니다...우리가 하늘나라로 가면 하나님께 매일매일 찬양할 것입니다..
방언찬양은 하늘나라에서 하는 찬양을 이땅에서 하는 하늘의 소리입니다..천국의 찬양을 이땅에서 하기도하고 듣기도 하는 것입니다..얼마나 놀라운 노래인지요..
방언찬양을 하고나면 저의 영이 기뻐뛰며 춤을 춥니다..방언찬양한 후의 그 행복감..하늘나라의 기분을 미리 느껴볼 수 있는 느낌이라할까요..또한 방언찬양은 영의 쾌속충전(성령충만)에 너무 좋은 방법입니다.하나님께서 너무 좋아하시니 악한 영은 치를 떨며 싫어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선한세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1.09.26 자연스럽게 우리 몸속에 않좋은 찌거기들,들붙었던 귀신들,온갖 더러운 것들이 자연스럽게 떠나갑니다.그러므로 영과 혼과 육의 자연스러운 치유가 되는 아주 유익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새벽기도때 방언찬양을 하시는 분들하고 같이 찬양을 하면 마치 미리 연습했던 것처럼 환상적인 하모니를 이루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방언찬양을 하시는 분들과 기도모임을 자주 가져서 이 하늘의 신령한 찬양을 마음껏 불러보고 싶은 것이 저의 조그만 소망입니다..얼마나 환상적인 자리일까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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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holythorn 작성시간 11.09.27 부럽습니다.. 오는 것들만 자연스럽게 받았기때문에..생각도 못했던 일인데.. 깊은 방언기도 후 제 영이 기뻐하며 영광을 올려드리는 찬양이 자연스럽게 나와서..
아! 이것이 방언찬양이라는 것이구나..하는것을 그냥 알았습니다. 허나..계속 사모하는 일이나..하려는 의지가 없었는데..선상님 말씀을 들으니..적극적으로 하는 것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