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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교단일기

그 마음은 어떤걸까?

작성자장승규|작성시간24.05.22|조회수209 목록 댓글 6

1.

화단을 만들고
처음 한 걱정은
아이들이 잘 가꿀까 하는 거였다.

뭐 여자아이들이야 키우고 가꾸는 것을
좋아하니 그렇다쳐도,

그 있지 않은가,
장난꾸러기 두 녀석. ㅎㅎ
(죄송합니다. 부모님. ㅋㅋ)

그래도
그중 한 녀석은 1학년 때부터
꽃을 들고 다닌지라
그나마 좀 덜 걱정스러웠는데,

다른 한 녀석은
"남자가 꽃 따위를...?@%/!,:" 하던 녀석인지라
내심 걱정이 있었다.



그런데
화단에 꽃씨를 뿌리고 기른지 몇 주째,
다른 애들 꽃밭보다
유독 그 녀석의 꽃밭에만
싹이 트고 잘 자라는 건 아닌가?
🌱 🌱 🌱



이게 무슨 일인가 해서

아침마다 교실 창문넘어로 유심히 봤더니..

구리 대야에다가 물을 담아
세상 본 적 없는 아름답고, 정성스런 모습으로
손으로 조금씩 조심히 물을 주는게 아닌가?

기특함을 너머 놀라워
며칠을 지켜보니
아... 한결같은 그 손길과 정성이란.

부모가 갓난아기를 어루만지는 듯한 모습을
다시 한 번 거기서 보았다.

그래, 보살핌이란 그런거지.

네 온 존재를 던져 살피는 일이지...


아. . . 맞다.

실은 네 모습이 원래 그랬었었지.

내가 잠시 잊고
요즘 모습에만 마음을 두었었구나. . .


갑자기 내 자신에게 부끄러워졌다.


그래서였구나.
잡초도 없이 멋지게 싹이 돋은 이유가. . .


멋지다. 효준아!

진짜 남자가, 사나이가 없어진 시대에
무엇 하나에 자기 온 존재를 던져 가꾸고 키워내는
네가 정말 사내답다.

싸나이, 김효준!


2.
교실이 학교 정 가운데인지라
책상에 앉아 바라보면 다양한 아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처음엔
자기 꽃밭, 자기 씨앗만을
갈라주길 바라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현대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씁쓸함이 깃들었다.

근데 그건 자기 것만 챙기려는 모습도,
내 것과 니 것을 가르자는 모습도 아니었다.

아이들은 단지
자기 책임의 한계를 알고 싶었던 거다.

모든 아이들이 자기 구역에 심어진
어린 생명을 가꾸기 위해
수업이 시작하기도 전인 아침부터
큰 물조리개에 물을 받아와
조심스레 새싹에게 물을 준다.

좀 힘들어 뵈는데도
불평이나 힘든 내색 하나 하지 않고
생명에 대한 자기 책임을 다한다.

심지어 그 일이 끝나면 힘든게 아니라 뿌듯한지
아침 참새처럼 찾아와 쉴 새 없이 조잘거린다.

그 소리가 하나도 씨끄럽지 않고,
그 모습을 그냥 바라보고만 있어도
참 좋다.
(물론 뭐라고 그랬는지는 잘 모른다. 그래서 나중에 애들한테 혼난다. ^^;;)


그런데 또 놀라운 일,
무언가 참고 기다리는 것을 어려워 하던
또 한 녀석이

순서를 기다렸다가
자기 몫의 책임을 다한다.

오호호! 기특한지고.


아이들이(혹은 어른들도),
책임감이나 기다림,
혹은 무언가에 대한 애정을 어떻게 배울까?

그건 어른(교사 포함)들의 똑똑한 말에서가 아니라
맡겨진 일을 해 나가며 알게 되는게 아닐까 한다.





3.
어린 싹을 키우고,
물을 주는 그 마음,

그 마음은 어떤걸까?

지금 이 마음을 잘 지키면
어른이 되서도 그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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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장승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5.25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작성자서현유정엄마 | 작성시간 24.05.24 먼 훗날 효준이 도빈이가 이 글을 꼭 읽어봤으면 좋겠습니다. 복 받은 3학년들^^
  • 답댓글 작성자장승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5.25 좋은 환경에 좋은 부모님 아래서 자라는 우리 학교 아이들 다 복 받은 아이들이지요.

    나중에 커서 도빈, 효준이가 이 글을 읽을때쯤은 전 저 하늘나라에 있지 않을까 싶네요. ㅎㅎ
  • 작성자박영자(태인승아온아맘) | 작성시간 24.05.25 10주년 행사로 학교숲을 기획하면서도 구성원들께 어찌 안내를 해야할지 고민이 있었어요..

    학교 재정도 쉽지 않고, 이미 나무가 다 심어져 있는데 그것이 꼭 필요한 일이냐 묻는다면 글쎄~~~~하며 말꼬리가 내려갈것만 같았지요..

    4,5월 선생님의 정원가꾸기가 시작되고, 선생님들도, 작은 아이들도, 상급아이들까지 모두가 그곳에 힘을 보태는 모습이 감동스러웠고, 그렇게 아름다워진 정원에 여쁜 나비처럼 자리잡는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러웠지요~

    아~~
    이렇게 해야하는구나..
    사람들이 찾아들고 쉬며 경탄할 수 있는곳을 만드는거...
    그것이 우리가 아이들에게 주려고 하는것~~
    학교숲가꾸기를 잘 하고 싶어요.. 우리 모두에게 아름다움으로 온 마음이 충만해 지도록~~
  • 답댓글 작성자장승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5.25 아이들이 고맙게도 화단에 관심 갖아주고 찾아와 앉아 쉬고 놀기도 해서 얼마나 좋던지..
    나머지 반쪽은 부모님이 쉴수있는 등나무(혹은 능소화) 파고라와 고학년 애들이 앉아 쉴 수 있는 나무 밑 공간을 만들려 하는데 잘 될 지 모르겠네요. ^^

    아이들의 손길이 모두를 위한 공간을 창조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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