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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며, 사랑하며

학교 가는 새로운 길

작성자신부연(윤단오엄마)|작성시간22.08.04|조회수202 목록 댓글 19

고성리 새학사로 이사오면서 뜻밖의 선물을 받았습니다바로 ‘학교 가는 길’ 입니다.

첫눈에 반했던 오례천 뚝방길의 아름다움과 견주기에는 아쉬움이 있지만예상치 못했던 기쁨을 주는 길입니다.

 

시작은 단오를 좀 더 걷게 하겠다는 단순한 이유였습니다. 저를 닮아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힘든 단오, 학교에 늦기 일쑤라 정문 앞까지 차를 탈 때도 많았고 선생님들이 정해준 만큼 걸어도 충분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고성리로 학교가 옮겨오면, 집에서부터 학교까지 걸어가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물론 저랑 단오아빠 둘이서만 세운 계획이었지요. 저희는 단오가 들살이를 간 동안 미리 답사도 해보고 꽤 멋진 숨은 길도 발견하여 기분이 좋았습니다.

드디어 새학사 등교 첫 날, 미리 예고는 했지만 단오는 입이 댓발 나와서 가는 내내 투덜투덜이었습니다. 왜 나만 이렇게 멀리서부터 걸어가야 하느냐, 차를 타면 내가 훨씬 빨리 갔을텐데, 지나가는 차마다 저희를 보고 인사하는 것조차 단오는 불만이었지요. 게다가 그 주엔 비가 자주 왔습니다. 아니나다를까 단오는 곧바로 협상을 시도했지요. 비가 오니까, 첼로가 무거우니까, 짐이 많으니까 차를 타고 가야한다고요. 사실 저부터도 그런 마음이 들었지만 스스로에게도 여지를 주지 않으려고 “무조건 걸어간다!” 고 선언했어요. 비바람이 몰아치면 몰아친대로, 해가 쨍쨍하면 쨍쨍한대로, 비에 젖고 땀에 젖어서 단오가방에 항상 여벌옷을 챙겨야 했어요.


옛날엔 학교를 가려고 고개를 넘어 왕복 몇십리 길도 다녔다는 어른들 이야기를 들으면, 그분들의 힘은 그 학교길에서 자랐을 거란 생각을 하곤 했어요. 저는 그런 힘과 기억이 단오에게도 생기길 바랬어요. 그런데 등교길은 저희에게 기대치 않았던 선물들을 주었어요.

 

다행히 날이 갈수록단오는 거의 불평을 하지 않고 매일 학교에 걸어간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었어요대신 여유롭게 이 구경 저 구경 하느라 걸음이 늦어질 때가 늘어났지요.


집에서 출발해 골목을 나서면 마을 저수지를 도는 두가지 길이 있습니다. 저수지 옆 논밭 사이로 가는 길과 저수지 위쪽 뚝방길이에요. 뚝방길은 더 빠르고 흙을 밟을 수 있어 좋지만 한동안 풀이 무성해서 논길로 더 많이 갔어요. 사철 새들이 많은 저수지 옆 논길에서는 이제 막 잠든 달맞이꽃과 활짝 핀 계란꽃(개망초)들을 볼 수 있어요. 단오는 아빠가 저수지에서 봤다는 황금새를 볼 수 있길 매일 기대하며 그 곳을 지나갑니다.


어느 날은 저수지 옆 오르막길에 나비가 한 마리 앉아 천천히 날개를 폈다 접었다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인가 나비가 앉았던 자리 옆 난간대 위에 고치가 하나 생겨나있었죠. 단오는 그 나비가 고치가 된 거라고 말했어요. 우리는 등교하면서 그 길을 지날 때 고치를 확인했습니다. 그러다 며칠 후엔 고치가 사라졌어요. 우리는 그 고치가 무언가가 되었을 거라고 상상했어요.


오르막을 지나 차들이 다니는 도로에는 횡단보도가 없어서 방지턱을 횡단보도삼아 건넙니다. 거기엔 이름 모르는 분홍꽃이 한참 동안 눈부시게 피어있었어요. 월성산마을 표지석이 나오면 다시 두가지 길 중 선택할 수 있습니다. 단오아빠랑 답사때 발견한 길은 표지석 옆으로 돌아가는, 조금 더 멀고 외지지만 조용하고 한적한 길이에요. 앤서니 브라운 그림책 <터널>에 나올 듯한 어두운 굴다리 하나를 지나면 숲과 굽이치는 논들 위로 하늘이 멋지게 펼쳐진 길이 나와요.

모두에게 알려주고 싶은 길!


그리고 다른 길은 차로 학교까지 가는 길이지요. 처음의 긴장이 풀리니 집에서 출발시간이 조금씩 늦어져 곧장 갈 수 있는 그 길로 주로 다녔어요.

일찍 출발했을 때는 굴다리를 막 지나면 비슷한 시각에 뻐꾸기 소리를 들을 수 있었어요그리고나서 조금 더 걸으면 목공방 옆에 큰 개 한마리가 보여요잠시 후엔 노란 통학버스가 지나가고요.

단오가 귀여운 강아지라고 부르는 그 개는 처음에만 짖었고 나중에는 저희에게 꼬리를 흔들었어요그런데 어느날엔 개가 반기질 않아서 제가 말했죠“단오야 우리가 늦어서 그러나보다.” 단오가 잠시 생각하더니 “우리에겐 세 개의 시계가 있네뻐꾸기 시계강아지 시계버스 시계.” “그러네우리 뻐꾸기 소리 듣게 좀더 일찍 와보자.” “그래제 시간에 와보자.

물론 그러고도 버스 시계를 보며 “우리 많이 늦었다!” 했던 날이 많았지만우리에겐 뻐꾸기 시계를 듣겠다는 목표가 생겼어요.

 


단오의 등교길에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자신만의 특별한 지점도 있습니다. 어느 날 바닥에 떨어진 작고 푸른 감 하나를 주워 가지고 놀며 이름도 붙여주었는데, 그 이후부터 바로 그 자리를 지날때면 항상 저를 보며 “@@이를 만난 곳”이라고 말해요. 지금은 아무것도 없는 그냥 아스팔트 위 한 점인데 말이죠.

고성리 마을로 가는 길에는 작물들이 자라는 것을 확인하고물고기들이 엄청 빨리 달리는 수로를 지나면 꼭 들여다봅니다그런 다음 수로의 끝에서 대각선으로 건너뛰어요빠지는 줄 알고 철렁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에요하지만 단오가 자신의 용기를 매일 시험하는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서는 마음속으로 응원합니다.

언젠가부터 더 이상 제 손을 잡고 가려고 하지 않았던 단오와 다시 손잡고 걸을 수 있는 시간이 생겨난 것도 참 귀하게 느껴집니다.


학교에 걸어서 와야 아이들이 깨어난다는 말을 전에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단순히 잠에서 깨는 것만이 아니라 감각이 온전히 깨어나는 것, 그게 어떤 느낌인지 아침마다 걷고 나서야 몸이 알려주더라고요.

일상에, 몸에 리듬이 들어간다는 것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아요. 매일 비슷한 시간에 같은 일을 한다는 것. 매일 똑같지만 날마다 새롭다는 것.


등교길에 종종 반모임에서 우리 가족이 낭송했던 시가 떠오릅니다. 그 시를 나누며 글을 마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새로운 길

-윤동주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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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소은도연맘 | 작성시간 22.08.05 읽으면서 단오네와 함께 걸어가는것 같아요,
    부연씨의 따뜻한 시선과 모험심 가득한 단오의 탐험을 지지하며 동행해주는 엄마아빠가 있어 단오는 참 좋겠네요^^
  • 답댓글 작성자신부연(윤단오엄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8.06 처음엔 둘러볼 여유도 없이 투덜이랑 투닥대며 종종걸음으로 걸었더라는요..^^;; 방학때 쉬고 있으니 개학 후엔 또 새로운 길, 새로운 탐험일 것 같아요^^
  • 작성자강윤엄마오선희 | 작성시간 22.08.08 굴다리길 멋있어요~ 집이 반대방향이긴 하지만 가보고 싶은 길이네요~
  • 작성자혀뉘엘리 | 작성시간 22.08.19 역시 부연이..단오네 가족 멋지다^^
  • 작성자토마토 | 작성시간 22.08.31 나도 따라 가고 싶은길!
    꿈을 꿉니다
    나현이와도 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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