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 발도르프 가족 여러분,
학교 교사 준공식이 있으니 축사를 해 달라는 장승규 선생님의 부탁을 받고 비디오로 멋지게 만들어 보겠다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 후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렇게 하면 여러분께 시각적, 청각적으로 커다란 손상을 입힐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정말 멋진 장승규 선생님께서 저대신 읽어 주시도록 이렇게 편지로 씁니다.
2020년 이래 세상은 상당히 어두워졌습니다. 그 전에도 천국 만큼 밝고 따뜻하지는 않았지요. 그래도 현상황에 비하면 그럭저럭 살 만 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무도 저한테 얼굴에 뭐를 걸치고 나가야 한다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으니까요. ‘코로나 조처 문제’로, — 네,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합시다. ’코로나 문제’가 아닙니다. 코로나는 아무 죄도 없습니다. — 멀쩡한 코로나를 과학이라는 미명 하에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둔갑시켜 세계 각국 정부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취한 조처로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그 조처를 따르지 않으면 어떤 상황에 빠지는지, 이런 것은 일일이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바로 무등 발도르프 가족들이, 특히 교사들이 현상황에서 최선의 교육 조건을 마련하기 위해 노심초사 했으며, 그로 인해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야기가 들려올 때마다 저는 저러다 무등 발도르프 학교가 폐교 당하는게 아닌가 하고 걱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와는 정반대 되는 놀라운 소식을 받았습니다. 무등 발도르프 학교가 새 집을 지어 이사를 한다는, 어둠 속에 한 줄기 빛 같은 소식이 온 것입니다. 이런 것을 한국에서는 ‘깜짝 이벤트’라고 하는가요? 마치 전혀 기대치 않은 선물을 받은 기분입니다. 진심으로 기쁩니다.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그런데 한 줄기 빛이 학교 건물 속에만 남아서는 안 되겠지요. 학교 자체가, 학교 식구들 각자가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되어야 합니다. … 약 40년 전에, 지금 늙은이들이 아직 젊었을 적에 그런 말을 했습니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 네, 그때도 어두웠습니다. 하지만 지금에 비하면 그 어둠은 조야한 종류입니다. 그래서 닭 모가지를 비틀었어도 새벽이 왔습니다. 심지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쿨쿨 잠을 잔 사람들에게도 새벽이 왔습니다.
현재 인류가 예전보다 조금 강한 정도로 맛보고 있는 어둠은 고차적, 정신적인 종류입니다. 이 어둠에는 모두를 위한 새벽이 오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점점 더 어두워져서 암흑 상태가 될 것입니다. 그럼 인류는 망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앞으로는 새벽이 외부에서 저절로 오지 않는 대신에, 각자가 영혼 속에 스스로 빛을 밝혀야 합니다. 각자가 정신과학을 통해, 즉 인지학을 통해 스스로 내적으로 밝아져 높이 올라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는 물론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기는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래도 그 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무등 발도르프 학교의 새 집 앞에 선 우리 모두, 각자가, 다음과 같은 루돌프 슈타이너의 평결어 혹은 지향의 말로 마음 속에 등불을 켜기로 합시다. 안팎으로 생겨나는 난관으로 시야가 완전히 흐려지는 듯할 때마다 이 지향의 말을 떠올리며 마음 속에 등불을 다시, 또 다시, 결코 포기하지 않고 언제나 다시 켜기로 합시다.
지향의 말
“물질 없는 정신은 절대 없으며, 정신 없는 물질 또한 있을 수 없으니.”
이 오랜 원칙에 기대라, 다음과 같이 다짐하며.
우리는 행하고자 하니, 물질적인 모든 것을 정신의 빛 속에서,
정신의 빛을 구하고자 하니,
그리하여 실용적으로 활동하기 위한 열정이 생겨나도록.
정신, 우리에 의해 물질에 들어서야 하니.
물질, 우리에 의해 작업되어야 하니 진실하게 현현하기 까지,
현현함으로써 물질은 그 자체에서 정신을 몰아내니;
물질, 우리에 의해 정신을 드러내 보존하니,
정신, 우리에 의해 물질에 들어서도록 촉진되니,
물질이 형성하니 생생한 현존을,
이 현존이 인도하니 인류를 진정한 진보로,
현시대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 들어있는 최상의 것만
갈망할 수 있는 진보로.
1919년 9월 24일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행한 강의 <초감각적 인식과 사회적, 교육적 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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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리후유나엄마 작성시간 22.09.14 축사를 읽으며 최혜경선생님의 말투가 고스란히 들려와서 더 정신차리고 읽어내려갔던 것 같아요. 외부인도 오실텐데 선생님은 아이참.. 이 생각이 잠깐 올라오기도 했지만^^;; 이내 곧 사라졌습니다! <지향의 말> 한 번 더 읽고 출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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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장승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2.09.14 ㅋㅋ 저도 그랬지요.
그렇다고 우는 아이 사탕 주거나
아이스크림 물려 잠시 진정시키는 것이
진정 해결책은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더 최혜경 선생님의 어투 그대로 읽고자 노력했습니다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