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학사에서 가져온 나무둥치가
결국은 쪼개져 버려지기 5초전이다.
한때는 찬란히 잎을 피우는 나무 기둥이었는데,
언젠가 베어진 나무둥치가 되고,
잠시 화분이 되어 학교 입구를 지켰었는데,
신학사로 옮기며
1학년 교실 창밖을 지켜주더니,
그렇게 삶을 다했나보다.
사람은 죽어 묘비를 남기고(이름이 아니라)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는데
나무, 너는 한 평생 너른 품을 내어주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나.
내세우지 않으며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는데
그렇게 버려지는 것이 안타까워
어찌 기억해야 하나 싶다가
교실동 입구 한쪽에 터를 잡아 주었다.
이젠 좀 쉬어도 되건만
아직도 더 애써야만 하는 것들도 있나보다.
자리를 잡아두니
부모님 한 두 분이 손을 거들어
아름답게 만들어 주셨다.
다육이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딱! 이다.
앞으로 눈길 줄 듯 하다.
심지어
심어 놓은 공간과
다육이와 다육이 사이의
사이공간까지. . .
엄마들의 예술 감각이 탁월하다.
학교와 예술학교를 거치며
배우고 들었던
사이 공간. 여백의 미.
그것이 어떻게 구현되는질 본다.
그리고 그런 구현을 알아보기 위해
책을 뒤적일 필요는 없다.
잠시 시간을 내어
허리를 낮춰 지켜볼
겸손이 필요할 뿐.
물질적 여유가 아니라,
정신적, 시-공간적 여유가 필요하다
숨.쉴,
사이공간들이
숨 막히도록 아름답다.
언젠가 시설위 아빠들이
Young school guide를 읽으며 올려놓으셨던,
'학교의 미적환경이
아이들의 도덕적 양분이 된다'는 글이 인상적이었는데
그런 느낌이다.
*
요즘 3학년들의 에포크는 사물학이다.
삶의 근간인 의식주 수업을 몸으로 살아보는 시간이다.
어떻게 옷이, 밥이, 집이 내게로 오는지 알지 살지 못하면
평생을 머리로만 살기 쉽다.
그래서 우리는 일한다!
항상 그렇듯 이상은 높다.
그리고 그런 이상을 현실에 가져오려고
우리는 최선을 다한다.
그럼에도
결과를 두고보면
이상은 높고 현실은 초라하다.
하지만
아이들과 일을 하며 배우는 것은
이상은 이루고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 먼저라는 점이다.
일을 하며
내 욕망과 의지를 현실화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통해
내가 꿈꾸던 이상을 다른 이를 통해 발견하는 것.
요즘 애들을 통해 배우고 있다.
그것도 둘이 호흡을 맞춰가며
나름 삽까지 써 가며
일을 해가는 모습이 대견하고 든든하다.
돈 잘 벌고 힘쎄야 남자더냐?
어렵고 힘들어도
말없이 자기 맡은 바를 말없이 꿋꿋이 해내는
너희가 '사나이'이다.
말없이 함께 일하며 호흡맞추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예뻐
눈물이 날 뻔 했다.
*
땅을 고르고
벽돌을 쌓는다.
나무를 대고 수평을 맞추는 망치 소리가
음악처럼 들린다면
나만의 착각일까?
뭐 이런 화단을 바라지 않는 건 아니지만
멋지고 완벽한 인간, 아니 화단을 만드는 것이
교육의 목적은 아니기에,
함께 애를 쓰며 만드는 화단이 아이들이
아름답다.
함께 땀흘려 애썼던 기억.
그것이 '우리'를 만든다.
꽃들이 뿌리를 내려
좀 더 아름다워질 시간만 남았기에
서툴고 빈 공간이
아름다워 보인다.
의식주 수업이
삶의 주춧돌이 된다는 뜻을 헤아려본다.
단순히 먹고, 입고, 자는 능력의 습득이나
다양하고 넓은 세상의 체험(경험?)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
물질적 체험보단
한 개인의 내면적(영혼적) 경험이,
내면의 경험보다는
자기가 겪어낸 정신의 실현을
삶의 곳곳에서 발견해 내고
함께 이루어 가는 것이 중요한 건 아닐까?
이 아이들이 커서 만들
아름다운 세상을 상상해 본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진선희(유단엄마) 작성시간 24.04.21 행복은 감출 수 없다는 말을 선생님도 보여주시더라고요. 목요공부하러 갔을 때 학교 정원에서 만난 선생님의 얼굴이 어찌나 환하고 뿌듯함과 기쁨 가득이던지요. 😊
아이들이 일을 대하는 태도를 배우는 너무나도 귀중한 시간이네요. 늘 웃음을 주는 도빈효준 브로맨스가 없었으면 어쩔 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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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시욱 엄마 작성시간 24.04.21 일을 통해
내가 꿈꾸던 이상을 다른 이를 통해
발견하는 것.
아이들과 꽃밭이었나? 하는 정원을
진짜 꽃밭으로 만들어 주심에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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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정 경훈경한 작성시간 24.04.21 만듦의 시간이 멈춰있음을 보고 있어도 그 자체가 하루의 생동감, 정감있어 보였습니다. 아기자기 예쁘고 아이들이 손길들이 상상이 가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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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정훈(이하율&이하서아빠) 작성시간 24.04.22 제가 학교다닐 때 배웠던 여백의 미는, 조선시대 어느시기 쯤인가~화풍의 특징이라고 기계적으로 배웠는데,^^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서 선생님들에게서~부모님들에게서~다른 삼촌 또는 이모들에게서 배우네요.^^ -
작성자박영자(태인승아온아맘) 작성시간 24.04.24 관심을 갖고 있을 자리를 잡아 정성을 쏟으면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을듯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