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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며, 사랑하며

춘장대 들살이 2: 평범한 일상들의 인내심

작성자장승규|작성시간24.06.26|조회수218 목록 댓글 14




들살이 중 가장 힘든 날을 고르라면
늘 이틀째쯤이다.

첫날이야 새로운 곳에 대한 설램과
집 떠나는 즐거움에 후딱 가버리지만
둘쨋날이 되면
적응할만큼 적응도 되어 새로움은 사라지고

엄마아빠가 해주시던 일들을
매 순간 스스로 해야하니
그 뻑뻑함이 마음을 고단하게 한다.

아침 준비하고 아침 먹고 아침 정리하고
점심 준비하고 점심 먹고 점심 정리하고
저녁 준비하고 저녁 먹고 저녁 정리하고
청소하고 잠 잘 준비하고,
잠시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인데
그새 새로운 날이니. . .

군 입대 갓 한 남자들이
집이 그리워 돌아갈 날짜를 세어볼 때 느낀다는,
그 보이지 않는 막막함이랄까?

실은 일상이라 부르는 우리의 삶들이
그러한 막막함 속에서
무언가를 향해 어디론가 가는
행위의 연속은 아닐까?

삶이라 부르는,
연속된 행위들 속에서

우리,
인간이 그리는 무늬는 무얼까?





소라게의 움직임이 펼쳐낸 무늬는
오늘도 예사롭지 않다.


썰물이 남기고간 움직임의 자국도,


그 속에서 견뎌보려 애쓴 미역이 남긴 자취도




우리들의 움직임도 아름답길 바래본다면,
그것도 욕심일까?






삶은 설명을 듣거나
미리 준비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낯선 삶에서 만나는 많은 경험과 어려움은,
우리 안의 불순물들을 태워버린다.

너무 많은 조언과 준비는
막막함 속에 만나는 삶의 경험들이
영혼 깊이 각인되어 또 다른 힘으로 변화하는 걸 막는다.


낯설고 힘든,
그러나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들이
어떤 의미인진 알 수 없어도
겪어보고 지내 본 사람은
그 일상의 반복이 주는 힘을 안다.



그렇게 또다시 시작된
아침 준비시간.

코펠 밥을 앉혀놓고도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오간다.

평. 화. 롭. 다.

아침은 간단히 누룽지로~



그 분주한 찰라에도
사랑은 표현되고. . .






오늘은,
걷는다.

2시간(왕복 4시간)을 어찌 걷냐 걱정은 앞서도


앞서야 할 것은

걱.정.이 아니라

걸.음.이다.

걸음이 시작되고
누군가 앞장서 걸으면

하나되어 걷는다.







걸음이 가진 비밀이란,

앞서던 발이 뒤가 되고
뒤쳐진 발이 다시 앞이 된다는 점이다.


앞발이 앞에만 있거나
뒷발이 뒤에만 있으면 그건 걸음이 아니다.
바보걸음이다.


그러나 걱정과 두려움에 휩싸여
발조차 떼지 못한다면
그건 아예 바보다.

고단한 바보에게도 공평하게 내리쬐는 햇님.




스테이크 초밥과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던 아이가
멸치반찬에 김자반 섞인 밥에도
너무 맛있다며 감사해한다.

세상의 절반이라는 감사함.

아이들에게 어떻게 감사함을 가르칠 수 있을까?



교육에서 가난의 의미.


하긴
하늘 풍경을 찬 삼아
밥 먹어 본 이가 몇이나 있을까?


모두 모여 모둠.

오늘의 날들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기억될진 몰라도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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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장승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6.29 그쵸? 저도 소라게와 미역이 참 인상깊었습니다.
    밥 한 술 뜨고 하늘 한 번 보던 동인이도..
    (아마 이유는 다르겠지만요. ㅎㅎ)
  • 작성자시욱 엄마 | 작성시간 24.06.26 하루 종일 분주하고
    왁자지껄할지 알지만,
    정지된 사진속의 장면은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이들과 몸짓과 그 너머의
    풍경에 감탄이 절로 나오네요.

  • 답댓글 작성자장승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6.29 그게 사진만이가진 매력같아요.

    근데 풍광과는 다르게 고생도 좀 했다는.
  • 작성자허은정(나현엄마) | 작성시간 24.06.28 바다와 같은 선생님들의 정성과 애씀으로
    품안 가득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채우고,
    일상의 수고로움을 담아내는 큰 배움이 이니 틀림없이 복받은 아이들이군요
    집에 와 무슨 말을 들려줄지 설레고 기다려 집니다.
  • 답댓글 작성자장승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6.29 복받은 아이들, 맞지요.
    특히 모래성을 쌓는 모습에서
    나현이의 새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어서 좋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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