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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며, 사랑하며

[스크랩] 사물학: 2024. 3학년 농사짓기 일년

작성자장승규|작성시간24.10.27|조회수124 목록 댓글 9

지난 5월 말 아이들과 농사짓기를 시작했지요.

뭐 꼬마농군들과 제가 하는 일이야 늘 그렇듯
일이라기보단 놀이의 성격이 짙다는 거...


논에 댄 물이 차가워 꺅~꺅~ 소리만 지르던 아이들,
기억나시죠?

땅을 파서 논을 만들고. . .
오늘도 물이 차가우려나...


못줄을 잡고 하나씩 심던 모들. . .

한 번에 심는 모의 갯수가 너무 적다며
많은 분들의 걱정어린 우려가 있었지만

2~3포기면 충분하다는
김경민 선생님 아버님의 말씀이 있었기에. . .

살짝 불안감을 앉고 농사 시작.


아이들은 그런 두려움 따윈 없었지요.

오직 먹는데 집중.
제사보단 젯밥에, 아니 농사보단 참에 관심이 많은 나이지요. ㅎㅎ




그리곤 긴 성장의 시간을 기다립니다.



학교 황무지를 정원으로 변화시키고



중간중간 우렁이도 잡아다 논에 풀고, 잡초도 뽑고

토마토와 바질도 텃밭에 키워서
스파게티 신나게 만들어 먹고 나누었었죠.




그러는 동안 고마운 벼는
언제 보이지도 않게 2~3포기 심었냐는 듯
쑥쑥 건강하게 자라주었어요.

두려움은 성장에 아무 쓸모없는 거란걸 보여주듯 말이죠,

벼나,
아이들이나. . .

삶에 필요한 카인의 논에는 벼가 익고,

아름다운 아벨의 정원에는 꽃이 피고. . .



자연의 손길이 벼를 어루만지는 동안
우리는 들살이도 가고,

공부도 하고 그랬지요.


방학이 지나고 오자
아이들이 그러하듯, 벼가 쑤~욱 커 있었어요.

근데 잘 보면 왼쪽 벼는 키가 작고,
오른쪽은 그에 비해 키가 크지요?

사실 두 곳의 땅 깊이가 달라요.

오른쪽은 아이들 무릎이 다 잠길정도로 깊고
다른 쪽은 겨우 발목이 빠질 정도의 깊이였죠.

보이지 않는 땅의 깊이가
벼의 뿌리내림이
실은 작물의 생육을 담당한다는 거.


이게 제가 이번 농사에서 배운
가장 큰 가르침이었어요.

우리 아이들도 잘 뿌리내려
태풍에도 끄떡없이 잘 자라게 하기 위해선
보이는 것에만 치중하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땅을 깊게 만들어서
아주 튼실한 뿌리가 내리도록 돕는 것.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 컸다고 느끼게 하는 것.


그리고 언젠가 먼 훗날,
그것이 땅의 깊이 때문이었다는 걸 알게 하는 것.

그 땅을 판 이들에게 감사함을 느끼는 것.

그런 교육을 해야겠다 싶었어요.



*


잘 보이지도 않던 벼가

이렇게나 자랐네요.

두려움과 성장은 함께 춤출 수 없다!




두려움 없이 우월감 없이
열심히 공부하고

나누고

먹으면서 지냈어요.



벼도 슬슬 황금빛을 보이기 시작하고. . .


다른 한 쪽으론 2학기 집짓기인 분리수거장 만들기!

집짓기 프로젝트는
분리수거장이 완성되는 나중에
다시 올릴께요.




그리고 시간이 흘러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 전 날!

드디어 가을 걷이가 시작됩니다.


자~~ 추수특공대 출동!

제가 뭘하든
왠만한 이것저것은 중급 수준은 다 되는데. . .

그 낫질만은 영 젬뱅이여서
(군에서도 예초기가 등장하기 전까지
낫질 작업은 열외였답니다. ㅎㅎ)
어릴 적부터 저그 해남 꼴짝에서 낫과 함께 자란
이경미 선생님께 도움을 청했답니다.

요렇게 엄지를 아래로 해서 사사삭.

갈수록 커가는 소이.

애기 미소가 사라지고 벌써 어른 같은. . .
입학전 기지개학교. 이때는 내 딸 같았는데..

벼베다 말고 또 쉴 새없이 떠드는 두 남정네
들고 갈 땐 엄지를 아래로 안 혀도 되는디. . .
너도...
선생님 말 잘 듣는 3학년들. ^^ 이쁘다. 이뻐.

또 1시간만에 가을 걷이 끝!

벼 밴 낫은 잘 씻어 말리고. . .

이젠 홀테로 낱알 훑기!

낱알 떨어지는 소리가 너무 아름답네요.

떨어진 낱알 하나하나 싹 다 줍고
풀을 골라냅니다.

홀태로 훑은 낱알을 고르는데 쭉정이가 쫌 있었어요.

우리도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알이 없는 쭉정이는 되지말고
알찬 사람이 되자 다짐했지요.
아마도 저 혼자만. . .



가을걷이가 끝난 논이 조금은 슬퍼보입니다.

슬픔이라는 건 아마도
할 일을 다 마치고 쉬며 다음을 준비한다는 뜻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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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바보새 信天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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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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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장승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10.28 실은 다른 한 쪽에는 알곡이 없는 쭉정이가 많았어요.

    아이들이 겉으로만 번지르 하고
    알멩이가 없는 쭉정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땅에 단단히 서기 위해선
    깊이 뿌리 내릴 수 있어야 하고,
    뿌리를 깊게 내리기 위해 땅을 깊게 파 주는 일. . .

    그것이
    교사와 부모님이 함.께. 해야 할 과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 작성자시욱 엄마 | 작성시간 24.10.29 긴 농사일,
    그 흐름을 암것도 모르는 저도 함께하고
    싶었는데, 벌써 추수를 하고
    눈깜작할 사이인것 같은 시간속에
    여러사람의 품과 관심이 속에
    그져 이렇게 써주신 글을 보고 아차 했답니다.
    몸을 움직이는 일을 많이 해보는것,
    값진 시간들을 선생님과 아이들이
    하는것을 보고 더 움직여야 하는 저를
    돌아보게 하네요.

    매일 작업있다며
    여벌 옷 챙겨가는 아침이 부지런하고
    뭔가 상쾌한 느낌이 듭니다.
  • 답댓글 작성자장승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10.30 올 초 주신 농사 책, 저도 갖고 있는 오래된 책이어서 반가웠습니다.

    가끔은 학교가기 싫다 투정부릴 수도 있겠지만
    학교에 오면 또 얼마나 잘 지내는지요.

    멋쟁이 채아 옷을
    매일 빨래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 작성자박영자(태인승아온아맘) | 작성시간 24.10.29 1년의 시간이 글과 함께 스쳐갑니다.
    예쁘고, 뿌듯하고, 감사하고, 죄송한 시간들이었네요.
    더 부족했대도 알차게 만들어 주셨겠죠^^

    저한테는 어린시절로 자주 돌아가보는 날들이었습니다.
    모내기날이면 먹던 모밥과 머리큰파김치, 추수한 벼를 탈곡할때 나를 괴롭게 하던 먼지와 그 까슬함. 마실 나가고 오는 길에 마당 한가득 널어진 벼이삭 사이를 파도처럼 오가며 잘 마르게 뒤집던 발의 감촉.
    잠시도 가만이 있지않는 큰오빠 때문에 모래에 시멘트섞어 벽돌찍어 수돗가도 만들고, 창고도 만들던 날들...

    귀찮고 힘들었던거 같은데.. 참 복된 날들이었네요^^
  • 답댓글 작성자장승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10.30 아이고... 존경입니다.

    생일 축하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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