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장. 죄악의 관영과 자족의 영성: 외적 매력을 깨뜨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의 독대

작성자이안나목사|작성시간26.06.15|조회수60 목록 댓글 4

21. 죄악의 관영과 자족의 영성: 외적 매력을 깨뜨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의 독대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창세기 6:2)"
 
인류의 역사 속에서 죄악이 걷잡을 수 없이 온 땅에 번창하고 가득 차오르게 된 결정적인 도화선은, 경건을 파수해야 할 셋의 계보인 '하나님의 아들들'이 영적 경계선을 허물고 타락의 길로 전락하면서부터였습니다. 성경에서 '아들'이란 남녀의 성별 구분을 넘어선 하나님의 모든 거룩한 백성을 지칭합니다. 영적인 특권을 부여받았던 그들이 사단의 덫에 걸려 완전히 무너진 이유는 단 하나, 보이지 않는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잃어버리고 눈에 보이는 사람의 딸들의 외적이고 감각적인 '아름다움'에 시선과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이 경건한 후손들의 영적 타락은 에덴의 선악과 유혹이 거대한 세상의 문화라는 파도로 확산된 원죄의 비극적 발현입니다.
 
영적 맛집의 좁은 문: 화려한 표적을 넘어선 보이지 않는 신앙
 
사단은 하와를 유혹했을 때와 똑같이, 눈에 보기에 먹음직하고, 보함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세상의 외적 매력들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유혹합니다. 세상의 화려한 문화와 시스템은 눈으로 보기에 기가 막히게 좋아 보이지만, 그 속알맹이는 영혼을 멸망시키는 사망의 독소로 가득 차 있습니다.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는 세상의 속설은 영적인 세계에서는 완전히 정반대로 작용합니다.
진짜 깊은 손맛을 내는 육신의 맛집이 허름하고 볼품없는 시골 구석에 숨겨져 있듯이, 영혼을 진짜 살려내는 '영적 맛집' 역시 세상적인 화려함이나 있어 보이는 포장지 속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7장의 선포처럼,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극히 적은 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많은 그리스도인은 눈에 보기에 으리으리하고 거창한 건물과 화려한 세상적 시스템을 갖춘 교회만을 쫓아다닙니다. 눈에 보이는 기적이나 화려한 표적에만 집착하는 신앙은 영적인 수준이 극히 낮다는 증거입니다. 보이는 것들에 치중하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본질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에 있습니다. 외적인 화려함의 유혹을 단호히 쳐내고, 보이지 않는 주님의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좁은 문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흠모할 모양이 없는 예수의 실체: 가장 볼품없는 모습으로 찾아오시는 주님
 
우리가 이 땅에서 추구하고 바라보아야 할 유일한 정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님의 육신적 모습은 세상의 기준과 전혀 달랐습니다. 이사야 532절 말씀처럼, 주님은 풍채도 없고 우리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모양이 전혀 없는 지극히 초라하고 볼품없는 고난의 종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실제 역사적인 예수님의 초상화를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아도,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멋있고 수려한 얼굴이 아니라 일그러지고 못생긴 촌부의 형상에 가깝습니다.
주님은 절대로 있어 보이는 화려한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지극히 소외되고 볼품없는 홈리스(Homeless)의 모습으로, 정신적인 질병으로 신음하며 행동하는 가치 없는 영혼의 껍데기를 입고 우리의 믿음을 테스트하러 다가오십니다. 내 마음에 드는 사람, 예쁜 사람만 골라서 사랑하는 인색함은 세상의 세리나 이방인들도 다 하는 일입니다.
교회 안에 들어온 연약하고 이상한 사람을 직분 자들이 모여 쫓아내려 모의하는 순간, 그 교회는 예수님을 문밖으로 내쫓는 것이며 영적으로 완전히 파멸하여 망하게 됩니다. 볼품없는 영혼을 끝까지 가슴에 품고 사랑의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그 흠모할 모양 없는 초라함 속에 진짜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외적인 조건에 묶여 사람을 판단하는 가인의 눈을 십자가에 못 박고, 헐벗은 이웃 안에서 예수를 발견하는 영안이 열려야 합니다.
 
일체의 비결과 자족의 능력: 내 안의 결핍을 채우는 신앙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의 딸들에게 미혹되어 영적 경계선을 통째로 허물어버린 근본적인 원인은 내 심령 안에 '자족(自足)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족함이 상실된 마음에는 필연적으로 세상의 정욕과 물질을 향한 갉아먹는 욕심이 잉태되고, 그 욕심이 장성하여 결국 영적 사망의 비극을 낳게 됩니다(야고보서 1:15).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4:12~13)"
 
사도 바울이 고백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세상적인 기적을 행하는 능력이 아니라, 어떤 형편에든지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 즉 자족의 영성입니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지듯, 내 형편을 넘어 남의 것을 탐하고 사치하며 있어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치와 허영은 사단이 역사하기 가장 좋은 토양입니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먹을 것과 입을 것조차 없이 극심한 쪼들림 속에서 연단을 받아본 자만이 풍부가 임했을 때 그것을 탐하지 않고 가난한 이웃과 개척 교회를 향해 넉넉하게 흘려보내는 일체의 비결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으로 가득 채워져 내면의 결핍이 완전히 사라지면(Full-filled), 다윗의 고백처럼 여호와가 나의 목자가 되시기에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완전한 자족의 상태에 도달합니다. 돈이나 환경이 내 행복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있으나 없으나 내게 주신 처지에 감사하며 오직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자족함이 사단의 유혹을 이겨내는 가장 강력한 영적 무기입니다.
 
경건의 모양과 능력의 부재: 사리사욕의 무당 영성을 파쇄하라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무섭게 경계하고 두려워해야 할 말씀은 디모데후서 35절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겉으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노라, 환상을 보노라 으스대며 거룩한 척 온갖 표를 내고 치장하지만, 그 실상은 자신의 사리사욕과 교만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도용하는 영적 사기꾼들이 오늘날 너무나 많습니다. "성령님이 내게 말씀하셨는데 나한테 사과 사 달라 하신다, 옷 사 달라 하신다"며 무당처럼 이래라저래라 성도들을 조종하고 단체를 송두리째 빼앗으려 목회자를 비방하는 자들은 모두 사단의 하수인들입니다.
진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는 사역자들은 절대로 자신을 과시하거나 티를 내지 않습니다.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이 그러하셨듯, 사람들이 자신을 높이고 왕으로 삼으려 할 때 오히려 그 화려한 자리를 뒤로하고 아무도 없는 한적한 골방으로 들어가 숨어 엎드려 기도하셨습니다. 은사와 능력을 내 가치를 증명하는 도구로 부려 먹으려 하지 마십시오. 그런 교만한 능력주의를 쫓아가면 가정도 물질도 영혼도 순식간에 다 빼앗깁니다. 경건의 모양이라는 가짜 껍데기를 찢어버리고, 오직 내 이름이 하늘 생명책에 기재된 본질적인 구원의 은혜만을 기뻐해야 합니다. 인격적이신 하나님 앞에 내 자아를 낮추고, 억지가 아닌 자원하는 심령으로 묵묵히 영혼들을 섬기는 자가 진짜 경건의 능력을 소유한 주님의 신부입니다.
 
"예수로 다시 돌아가자": 혼합주의를 깨뜨리는 순수성의 회복
 
교회가 무너지고 영성이 변질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민주주의라는 그럴듯한 세상의 정치 제도가 신성한 교회 내부로 유입되어 하나님의 신정주의(신본주의) 주권을 찬탈했기 때문입니다. 다수결의 원칙과 사람의 목소리가 주인 노릇을 하는 교회에는 더 이상 예수님이 설 자리가 없습니다. 주님이 떠나가고 사람이 중심이 된 성전에서는 천사들이 할 일을 잃고 잠을 자게 되며, 시기와 질투, 분열과 다툼의 대적 구조만 만연하게 됩니다.
우리가 살길은 오직 하나, 세상의 융합된 문화를 다 내려놓고 "예수로 다시 돌아가는 것"뿐입니다. 한국에 들어와 사역의 규모가 커지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타락하여 사람들에게 있어 보이고 싶은 육적인 충동에 예수를 놓쳐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 변질의 순간을 정확히 캐치하고 둘이 작당하여 피눈물 나는 회개로 주님 앞에 다시 납작 엎드려야 합니다. 내 육의 눈을 감고 육의 귀를 완전히 닫아버리십시오. 옛 어른들이 시집갈 때 벙어리 3, 귀머거리 3, 소경 3년으로 살았듯, 내 육체의 감각을 차단하고 입을 닫아야 비로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온전한 영광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내 영혼의 진짜 기도는 오직 골방에서 하나님과 일대일로 대면할 때 완성됩니다. 날마다 내 몸의 행실을 죽이고 오직 예수만 정답임을 고백하며, 가난할 줄도 알고 부할 줄도 아는 일체의 자족 비결을 통해 영적 순수성을 사수하는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함께 나누는 묵상 질문
 
1. 외적 매력의 우상 분별: 오늘 내가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은혜보다, 세상의 눈에 보기 좋고 화려하며 있어 보이는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탐하고 부러워했던 영역은 무엇인가요?
 
2. 경건의 모양 찢어버리기: 다른 사람들에게 신앙이 좋아 보이고 인정받고 싶어서 은연중에 내 대단함을 과시하고 표를 내며, 하나님의 이름을 내 유익을 위해 이용했던 '무당 영성'의 모습은 없었는지 정직하게 성찰해 봅시다.
 
3. 예수로 돌아가는 자족 결단: 내 삶에 불평과 원망이 자주 일어나는 이유가 아직 내 안에 세상 정욕의 결핍이 남아 있기 때문은 아닌가요? 비천과 풍부의 일체의 비결을 배우기 위해 오늘 내 입술과 육의 눈을 감고, 골방에서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자족의 기도를 어떻게 시작하겠습니까?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63박선애목사(푸른솔교회) | 작성시간 26.06.15 아멘 감사합니다 목사님
    ❤️❤️❤️
  • 작성자진주조개 | 작성시간 26.06.15 저도 부끄럽지만 예전 한때는 내한을 풀어 사람들앞에 보란듯이 보여주고 싶어 예수님을 믿은적이 있었습니다.회개하고 지금은 내모습 이대로 사용하실 주님을 따르고 순종하길 원합니다.귀한말씀 감사합니다.^^
  • 작성자송정분목사(오예뿐) | 작성시간 26.06.15 아멘아멘
    목사님 귀한말씀 마음에 담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김루디아 | 작성시간 26.06.16 아멘 아멘 ~ 부자가 되면 좋겠다. 있어보이면 좋겠다. 했던것을 회개 합니다.
    저는 이제 부자가 되는것이 행복한것이 아님을 깨닫고 저는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좁은 길을 선택했습니다.
    화려하고 체계적인 것들이 좋은 줄 알았지만 겉모습과는 달랐습니다 시기와 분쟁 탐심 허영을 쫓는것이 과연 맛는것인지 허영을 쫓는 것이 미친것이라는 것을 회개하며 나아갑니다
    은사로 주님께서 주신것임을 주님께서 사용하여주옵소서
    교만하지않고 항상 회개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깨닫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 ♥️ ❤️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