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원명원은 현재 북경대학 북쪽에 있다.본래 청나라의 '皇家御苑' 으로 건축 면적은 16만 평방미터다.
강희제 48년(1709년) 명나라 황가 정원터에 세워졌으며,강희제의 4子 인 인전(윤진=胤鎭:옹정제)에게
'賜園' 되었다.옹정제(1723~1735)는 이곳에 궁정과 누각을 증수하고 政務를 보는 장소로 썼다.이후
'건융제.가경제,도광제,함풍제' 년간에 여러차례 확장과 증축을 했다.이곳에는 원명원 이외에 '장춘원
(長春園),만춘원(萬春園:綺春園)'도 같이 있었으며,이셋을 합쳐 '원명 3원' 이라고 불렀다.이중에서 원명
원이 제일 컷다.건물축과 정원은 동양(조선)의 전통적 기술을 발전시키고,서양의 건축적 특징도 받아
들여 멋지게 조성되었다.정문을 통과해 제2문을 들어서면 황제가 정무를 보고 연회를 베풀던 '정대광
명전(正大光明殿)' 있으며,주변의 조경은 江南의 풍경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듯이 꾸몄다.또한 이곳의
'文源閣' 에는 '史庫全書' 가 보관되어 있었다.그런데 함풍 10년(1860년) 영불침략군의 약탈과 방화및
영국대사 엘긴의 폭거에 의해 진귀한 보물들 모두가 英,佛로 가거나 잿더미가 됐다.현재는 장춘원에
있던 '西洋樓' 의 석조건물 일부만 남아있다.
2, 이화원 역시 북경의 서북쪽 교외에 있고 북경대학 근처에 있다.현재 북경에서 가장 유명한 정원이다.
이곳에 정원이 조성된 것은 12세기 중반이 金나라 시대였지만,'行宮' 으로의 면모를 갖추게 된것은 청나
라 건융년간(1736~1795)의 일이다.明나라 시대에 '好山園' 으로 불렸던 이곳을 건융제(1736~1795)가
'淸漪園(청의원)'으로 확충(1750년)했었다.그런데 이곳 역시 1860년 영불침략군들에 의해 약탈,소실되었
다.이러던 것을 광서제 14년(1888년) 서태후가 해군의 군비 증강을 위한 예산을 유용해 정원을 복원해
'이화원' 으로 불렀다.이화원의 복원 결과는 1894~1895년 간에 벌어진 청일전쟁의 패배란 아픔의 선물
을 남겼다.1914년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었고,1924년에 공원이 되었다.이화원에는 황제와 황실의 영원을
상징하는 '萬壽山' 이 있고 수많은 인력을 동원해 인공으로 만들었다는 '昆明湖' 가 있다.호수가 정원의
2/3를 차지한다.
3, 자금성(紫禁城)은 명과 청대의 황궁으로 지금은 '故宮' 으로만 불린다.자금성의 紫(자)는 황제 만이
사용할수 있는 색갈이며, 禁(금)은 금지하라는 금단의 의미다.그래서 자금성의 모든색이 검붉은 색이다.
영어로 자금성은 '금단의 성(the Forbidden City)' 으로 표현한다.자금성의 규모는 '동서가 753 미터,
남북의 길이가 961 미터다.전체 면적은 72만 평방미터나,건물 면적은 15만 평방미터' 를 점하고 있다.
둘레는 높이 10미터의 성벽으로 들러처져 있다.자금성은 명대의 영락4년(1406년)에 착공하여 18년
(1420년)완공되었다는 현 중국사의 해설이 있다.이후 수차례를 거쳐 '개축,증축,보수' 했다.성벽 밖에는
너비 52미터,총길이 3,800 미터의 '護城河(해자)' 조성되어 있다.이 자금성을 둘러싸고 있었던 황성이자
외성은 동서 2.4km,남북 2.8km 규모로 남북 길이가 400m 길다.바로 이 황성내에는 자금성을 비롯해
'사찰,관청,창고,정원,비원' 등이 있었다.1911년 이후 황성의 성벽은 조금씩 철거되어 지금은 '天安門'
좌우에 약간 남아 있다.천안문은 바로 황성의 정문(남문)이고,자금성의 정문이자 남문은 '午門' 이다.
자금성의 주요 건축물들은 남북을 관통하는 중심축 위에 세워 졌으며 '外朝와 內廷' 으로 나뉜다.
외조는 황제가 정무를 보던 곳으로 '태화전,중화전,보화전' 의 3대전이 중심을 이루고 있고,자금성의
午門(南門)에서 3대전으로 가는길 좌우에 '문화전과 무영전' 이 있다.건청문 광장은 외조와 내정의
경계를 이루며,건청문 안이 내정이다.내정의 주요 건축물로는 '건청궁,교태전,곤녕궁,東西육궁,양심전'
등이 있다.또 東육궁 동쪽으로 영수궁(寧壽宮)이 있고,서육궁 서쪽으로 자녕궁(慈寧宮),수강궁(壽康宮),
'雨花閣' 이 있다.곤녕궁의 곤녕문 북쪽에 어화원이 있고,어화원 북쪽에는 자금성의 북문인 '신무문'
이 있다.자금성의 동문은 東華門이고,서문은 西華門이다.
4, 자금성 내정의 乾淸宮은 '황제의 침궁으로 일상생활을 하던 곳이다.이곳에서 정무를 보고 家宴을
베풀던 곳이며,옥좌 위에는 '正大光明' 이란 편액이 걸려있다.'坤寧宮' 은 교태전 뒤에 있으며 명대황후
의 正殿이다.'交泰殿' 은 명대에는 황후의 거처였고,청대에는 황후를 책봉하는 의식을 거행했던 곳이다.
東六宮과 西六宮은 건청궁 양편에 있는 작은 궁들을 말한다.서태후는 50세까지 서육궁에 만 머물러
있어 서태후란 별칭을 얻었다.'武英殿' 크기는 문화전과 같지만 황제가 대신들을 접견하는 장소였다.
'文華殿' 은 외조의 양날개로 동쪽에 문화전(문인) 서쪽의 무영전(무인)이다.문화전은 황제의 '經莚'
장소다.이곳에 대학사와 문인학사들이 거처하던 곳이다.이것에 보관되어 있던 '사고전서' 는 지금 대만
의 '고궁박물원' 에 있다.3대전중 맨끝에 있는 '保和殿' 은 대신들이 상소를 올리거나 殿試를 치뤘던 곳
이다.
보화전 앞의 '中和殿' 은 태화전 바로뒤에 있는 궁전으로 황제가 태화전에서 의식을 거행하기 앞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곳이다.'太和殿은' 자금성의 중심으로 '金鑾殿(금란전)' 으로도 불렸다.또 奉天殿,皇極殿
으로도 불렸었다.태화전은 동서 64미터,남북 37미터,높이 37미터로 현존하는 중국 최대의 목조건물이다.
태화전은 여러차례 화재로 소실 되었으며 지금의 태화전은 청나라 강희제 35년(1696년)재건 된 것이다.
명나라와 청나라의 황제 24명이 이곳에서 등극 의식을 치뤘을 뿐만 아니라,조서반포,전시합격자 발표,
원정사령관 임명,황제의 결혼식,황후의 책봉,元旦과 동지,만수절 의식등을 여기서 거행했다.즉 태화전은
황실이자 천자 나라의 중심축이다.태화전의 정남쪽에 태화문이 있고,그 앞에 해자의 금수교가 있다.
5, 자금성의 午門(남문)을 통과 금수교를 거치고 태화문을 지나면서 왼쪽(들어가면서 좌측) 지역에
'武英殿' 이 있고,자녕궁,수강궁,양심전이 있으며,수안궁과 영화전이 있다.이어 西六宮으로 '저수궁(儲
秀宮),咸福宮,長春宮,太極殿,익곤궁(翊坤宮),永壽宮' 등이 있다.중앙 통로에 직선으로 '태화전,중화전,
보화전' 이 차례로 나열되어 있으며 그뒤로 건청문을 지나면 '건청궁,교태전,곤녕궁' 이 있다.그 뒤에
어화원이란 정원이 있다.태화문에서 오른쪽엔 문화전과 文淵閣이 있고,이어 봉선전과 齋宮(제례를
지내는 곳)이 있으며,차례로 東六宮인 '延禧宮,景仁宮,永和宮,承乾宮,景陽宮,종수궁(鐘粹宮)' 이 있다.
동육궁 동쪽에 영수궁,황극전이 있고 '양성전,경복궁'이 있다.
동서 6궁들은 일련의 작은 궁궐들이다.한국의 경복궁을 비롯한 연희궁등의 각종 '宮闕殿閣' 의 명칭들
대부분은 상전국인 明淸의 궁궐명에서 따온 것들이 대부분이다.현 충남의 부여에 백제의 궁궐을 재현
했다는 곳에 가보면 남쪽을 향한 '正陽門' 이란 명칭이 있고,'正大光明' 이란 황제사용 편액 문장 글자
를 빌려 쓰고 있으나,이는 모두 중원의 황제국 백제를 흉내내는 것이다.정양문과 정대광명이란 현판과
편액의 글귀는 빌려 쓰더라도 반도와는 어울리지는 않는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정혜 작성시간 22.09.09
-
답댓글 작성자상선거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2.09.10
-
작성자qorghfkddl 작성시간 22.09.11 글쎄요, 궁예가 거병을 하기전에 " 紫禁城 " 에 있었다는 기록을 봤었는데요, 그러면 명대에 건축 되었다는 것은 완전 허위 날조라고 봅니다.
-
답댓글 작성자상선거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2.09.12 궁예는 대동국의 다른 표현인 摩震과 泰封이란 국호를 썼고,년호를 水德萬歲로 쓴것을 보면 당연히 자금성의 황제였지요.때문에 황제의 독보적 색인 자색으로 꾸며진 자금성에 있었지요.단지 장소가 현재의 북경이 아닐 뿐이지요.궁예시대 뿐만 아니라 명대의 자금성도 있는 겁니다.혼란시대에 대륙이 분열되어 서로 황제를 참칭할때는,자금성도 여러곳에 있을수 있지요.궁예의 자금성은 지금의 개봉쯤에 있지 않았을 까요.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