淸 使臣 이극돈(李克敦)의 봉사도(奉使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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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시도(奉使圖)는 영조 1년(1725) 청(淸)사신(仕臣) 이극돈(李克敦, 1685-1756)이 조선에 다녀가며 각종 행사 절차 및 풍속, 풍경을 담아 그린 20장짜리 화첩으로 현재 중국 베이징 중앙민족대학에서 소장하고 있다.
이극돈은 만주족(滿洲族) 출신의 청(淸)나라 관리로, 1717년에서 1725년 사이네 차례에 걸쳐 조선에 사신으로 왔는데 <봉사도>는 제4차 귀국 직후인 1725년(영조 1) 6월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 의하면, 이극돈이 네 차례에 걸쳐 조선에 사신으로 왔을 때, 조선 화공들에게 명제화(命題畵)를 그려내도록 독촉하여 이를 받아낸 적이 있었고, 그가 메모해 놓은 내용쪽지를 통해 이 명제화와 『봉사도』가 직접적인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으며 그는 조선의 풍속과 민정에 관심을 가지고 자료를 수집했던 만큼, 실제와 매우 근사하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가 청나라 사람이었으므로 작자의 의도가 개입되고 모습이 변모되기도 했겠지만, 조선에서 독촉한 그림을 바탕으로 한 만큼 신뢰도는 높다고 여겨진다.(네이버 지식백과 인용)
봉사도(奉使圖) 제7폭은 모화관(慕華館) 마당에서 사신을 위해 공연한 연희들을 묘사하고 있는데, 그림 오른쪽 하단에 바퀴가 달린 거대한 산대 무대장치인 예산대(曳山臺)가 위치하고 있다.
이 예산대(曳山臺)는 사람이 직접 끌수 있는 이동식 산대(山臺)로 자격루(自擊漏),옥루기륜(玉漏機輪),혼천의(渾天儀), 만석중 놀이 등과 함께 기계장치로 움직이는 인형이 들어있는 우리나라의 전통 장치로, 높이 8-9m 에 달하는 괴석(怪石)모양의 거대한 무대장치이자 기관인형(機關人形) 공연을 위한 기계로 움직이는 산대(山臺)가 되겠다.
기관인형(機關人形)이란 동력장치를 인형 외부에 두어 움직이게 하는 장치를 말한다.
신라 경덕왕(景德王)이 만들어 당(唐) 대종(代宗)에게 선물했다는 만불산(萬佛山)을 만들어낸 우리 민족이다.
애류(崖溜) 권덕규(權悳奎)선생은 첨성대(瞻星臺)에 승강기 하나쯤 있을수 있지 않을까 하며 신라인의 뛰어난 기계기술을 암묵적으로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무슨일이건 시작했다 하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어마어마한 공사를 하고, 기계를 만들고, 상상못할 창조성으로 주위를 놀래켰던 우리 민족이다.
아래의 이동식 산대(山臺) 또한 후세의 우리로 하여금 하늘을 찌르고도 남을 만큼 엄청난 놀라움을 안겨주고 있음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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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3.송계(松溪)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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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혜 작성시간 21.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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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상선거사 작성시간 21.10.15 글쎄요.그림속의 나무 종류나 집들의 구조가 현 중국의 중부와 남방의 형태와 비슷하군요.반도의 집구조나 형태는 아닙니다,그리고 畵題에 조선봉사도란 표현도 없어요.과연 동방과 동국 전체를 의미하는 그넓고 넓은 조선의 어디란 표현도 없군요? 승정원은 크든 작든 어느 정부든 체계가 잡힌곳은 모두가 있어 별것 아닙니다.권력자들 중심의 집단들끼리 놀던 얘기가 대부분 입니다.모화관이란 표현도 문화적상징 표현으로 한자 문화권에선 늘 쓰던 표현이었습니다.반도로 이전된 華城,華川,華陽 등등의 지명도 華州를 뜻하는 지명이며스스로 문화적 중심임을 자부하며 華州라 한곳도 많았지요.단지 그림을 그린 사람이 克敦이란 것은 확실하니 그역시 한국의 세종과 연산군 시대까지 살았던 克墩과 같은 인물의 차용 중복표기가 아닐까 합니다.세종때의 李克墩이라야 당시 출현한 자격루,옥루기륜,혼천의,첨성대의 표현과 어울리는 그림이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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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송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1.10.14 네..저도 이극돈이란 이름이 조선사람인데 청나라로 둔갑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청나라 관리가 그림을 그렸는데 조선아이들만의 특징인 쌍상투까지 저리 세밀하게 그렸다니..분명 모택동의 조선사지우기 일환으로 변조된 것으로 판단됩니다. 청명상하도의 원본그림도 구한말이 되면 조선사람이 소장하게 되었다고 기록이 전하는데. 우리나라 그림이니 당연 조선사람이 소장할터이고, 그림의 뒤쪽 건륭제의 글은 후세 모택동의 중국 공산당에 의해 가짜를 추가해 마치 청나라 작품인것처럼 위조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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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상선거사 작성시간 21.10.25 북경의 중앙민족대학에는 현대의 모작이나 위작들 투성입니다.필자의 저술도 그대학 도서관에 있습니다.개혁개방 이후 1980년대에 창작된 것들이 많지요.현중국 역사와 접목시킨후 중화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한 냄새만 풍기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그래서 곳곳 점점이 어색 합니다.현 중국엔 옛향기를 만들어 내는 탁월한 복원 전문가들이 많습니다.현대의 가짜 계란을 만드는 것 처럼 말이지요.문화대혁명 10년 동안 옛지도층들의 향기를 풍기는 것들을 모두 봉건잔재로 규정하고는,판단없는 어린 학생들을 총동원해 毛와 동조 일당들과 무지막지하게 없엤습니다.墓,비석,전문가,교수,그림,유적,문적,궁,사당,서원,불사,도교 사원 등등 인정사정 없이 파괴 했습니다.이때 티벳불교의 황모파의 본부이자 중심이었던 조캉사원 조차 파괴해 마굿간으로 만든 미친 毛의 중국 정부가 있었지요.즉 20세기 분서갱유를 했습니다.그들은 공자 사당이나 墓碑도 파괴했고 주위의 동제와 서제및 학습당 모두를 파괴한후 1980년 개혁개방 이후 관광 사업에 필요하니 복원했지요.그러니 그림 정도야 식은 죽 먹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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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송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1.10.15 <대륙에도 전주가 있다>라는 방송에 보면 금산사로 보이는 터전이 완벽히 폐허화되어 있는 모습이 나옵니다. 우리 옛선조들의 비석과 소중한 유물들이 깨어지고 우물 뚜껑으로 쓰이고, 부엌 만드는데 쓰이고.....정말 어찌 인간의 탈을 쓰고 이런 무뢰한 짓을 할수 있는지...상상이 안갈 정도였습니다. 한강을 메꾸어 그 자취를 없애고,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경운궁을 초토화해 그 자취조차 찾을 수 없도록 한 모택동과 그 추종자들의 패악질은 반드시 그 역사의 처절한 댓가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