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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송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1.10.31 대만의 사학자 사효종이 저술한 운남유기에는 1924년의 광동성이 현 베트남 하이퐁(홍콩)위쪽이라고 나옵니다. 크기도 지금의 20분지1정도로 작은 곳이었음을 알수있습니다. 현 홍콩에 일본이 패망후 미군이 진주했다는 것은 그곳이 당시에는 일본의 땅이었음을 알수 있을 것입니다. 손문은 분명 남만 오랑캐족이라 보아도 무리가 없을듯 합니다. 이전의 대륙조선연구에서 강역이 두리뭉실하고 정확히 재단할수 없어서 대륙이 모두 조선이었는데 분리되었다는 어수룩한 설이 형성되어 손문,장개석, 모택동 도 조선인이라는 황당한 논리가 형성되었었으나. 이제는 명확히 바로잡고 올바로 재단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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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흑염소 작성시간21.11.08 가정집 제14권 / 고시(古詩)
부여 회고(扶餘懷古)
청구가 수기(秀氣) 배태해 황하에 응하면서 / 靑丘孕秀應黃河
온왕이 동명의 가문에서 탄생하였나니 / 溫王生自東明家
부소산 아래로 옮겨 와 나라를 세울 적에 / 扶蘇山下徙立國
상서로운 기적들이 그 얼마나 많았던가 / 奇祥異蹟何其多
무비지조선도의 부소산의 위치도 황하 이남이었습니다.
낙양의 옛 이름이 하남이었고 하남 위례성은 낙양 근처라야 숭산에 이르기까지 제방을 쌓을 수 있습니다.
고문헌 속의 송도(개성)에 관한 기록들을 보면 洛水, 崇山, 北邙 등이 등장합니다. 즉 현재의 낙양이 온조가 처음 자리잡은 하남위례성, 개경이었습니다.
조선시대 문헌속의 동서 양경은 장안, 낙양(한성, 개성)이었는데 진나라, 당나라, 수나라 등의 수도로 둔갑한 것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 송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1.11.09 감사합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대만에서 출간된 지리지에 보면, 현 낙양을 중심으로 그 이동은 모두 물바다입니다. 산동반도와의 목부근은 모두 바다였습니다.심지어 북경부근까지도 물이 들어차 있었습니다. 현재의 강역은 모택동의 간척사업을 통해 만들어진 지형이 되어 버렸습니다. 낙양과 장안이 감숙성에 있어야 함은 바로 갑골의 발견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지금의 하남성 황하부근은 모두 진흙뻘로 덮혀있었던 곳입니다. 갑골이나 청동제가가 묻혔다면 모두 삭아 없어졌어야 하는 곳들로 보여집니다. 따라서 그러한 유물들이 멀쩡하게 남아있다는 것은 모두 사막지역에 묻혀 있었기에 가능한 일들로 판단되고 있으며, 최근 발굴되는 것들은 모두 고려와 조선조에서 만든 청동제기들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낙양이라는 지명이 당송에도 있고, 우리나라에도 있을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족의 역사에 나오는 낙양과 장안은 분명 현 감숙성에 존재해야 서지의 기록과 부합되며 또한 강역의 역사에도 부합이 되고, 더군다나 구한말의 역사와도 맥락이 닿습니다. 자칫하면 대륙 전체가 조선이었는데 중화민국과 대한민국이 나뉘어졌다는 오류에 빠질수 있음을 경계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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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송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1.11.09 하남이라는 지명도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이기에 압록강쪽이나 청천강과 관련헤서도 하남이란 말들이 쓰이고 있습니다. 5천킬로에 이르는 황하와 관련해서 하남이란 지명은 적어도 서너군데 이상 되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일반명사를 고유명사로 분석하는 오류는 벗어나야 할 것으로 보여집니다. 또 당 카페의 강역에 대한 분석은 이미 기타 글들에서 밝힌바와 같이 대륙에서 이주해오셔서 직접 지도를 펴고 구한말의 역사를 후학에 알려주신의 분의 기록을 토대로 서지적으로 분석하고 비교하여 밝히게 된 사실임을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