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용의 구석기 통신] 홍시가 열리면
출처 서울신문 :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91016033004&wlog_tag3=naver
이한용 전곡선사박물관장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자장가 대신 젖가슴을 내주던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나훈아가 부른 ‘홍시’라는 노래의 첫 구절이다. 울며 보채는 아이를 무심한 듯 달래는 어머니의 절절한 사랑을 표현한 가사가 나훈아의 절창과 잘 어우러져 특히 이맘때쯤 많이 흥얼대는 노래다.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어머니라는 존재의 역할은 위대했다.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생존전략으로 두 발 걷기를 선택한 인류의 골반구조는 두발 걷기에 유리하게 진화했지만, 대신에 어머니가 아이를 출산하는 산도가 좁아졌다. 더욱이 진화의 과정에서 우리의 머리는 점점 커지게 되었기 때문에 좁아진 산도로 커다란 머리를 가진 아이를 출산하는 과정은 어머니들이 오롯이 감당해야 할 생존의 고통이 되었다.
커다란 머리로 좁아진 산도를 비집고 나오는 과정은 산모와 아기 모두에게 위험한 순간이었다. 이 죽음을 넘나드는 고통을 감내하는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 이 고통을 함께하는 자식과의 끈끈한 유대 관계는 인류 진화의 원동력이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로 Mother(엄마)가 선정된 것이나 나훈아의 ‘홍시’처럼 아버지의 사랑보다 어머니의 사랑을 노래한 노래가 훨씬 많다는 것은 당연하며 아버지들이 섭섭해야 할 이유도 없다.
얼마 전 영국 브리스톨대학의 연구팀이 유아 무덤에서 발견된 토기에 남아 있는 물질의 성분을 분석하여 인류가 약 5000년 전 선사시대 때부터 이미 지금의 젖병과 같은 용기를 이용해 동물의 젖을 유아에게 먹인 것을 밝혀냈다. 선사시대의 모유 수유와 젖떼기 등 육아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연구 결과로서 과학으로 하는 고고학이 만들어 낸 참으로 놀라운 연구 성과다. 선사시대의 아이들이 이 토기를 두 손으로 꼬옥 쥐고 어머니 품속에 안겨서 이유식을 먹었다고 생각하니 아이를 잘 키우고 싶었던 선사시대 어머니들의 지극 정성이 느껴진다.
이탈리아의 아렌느 캉디드에서 발견된 다람쥐 모피를 입은 아이라는 별명을 가진 어린아이의 무덤에서도 애틋한 선사시대 부모의 사랑이 넘쳐난다. 약 2만 5000년 전의 후기구석기 시대 어느 날 6살 정도 된 어린아이가 죽자 엄마아빠는 수십 마리 다람쥐를 잡아 그 꼬리를 잘라 폭신한 망토를 만들어 입혀서 잘 묻어 주었다. 아이의 머리맡에는 아이가 가지고 놀던 돌로 만든 실로폰, 조개껍데기 같은 장난감이 놓여 있었다. 붉은색 흙을 정성스럽게 뿌린 이 아이의 유골을 바라보고 있으면 사랑하는 아이를 떠나보내는 엄마의 애절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수백만년 전 두 발로 걷기 시작한 그때부터 우리 어머니들의 사랑은 한결같았다.
하 수상한 시절이라는 단어로는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하루하루가 혼탁하고 각박한 세상이다. 힘든 세상 뒤처질세라. 사랑 때문에 아파할세라. 생각만 해도 눈물이 핑 도는 울 엄마가 그리워지는 그런 가을날이다.
황금
볏짚단의 꿈
“아범아, 집에 한 번 다녀가거라. 내 너한테 할 말도 있고…… ”
한밤중에 전화를 하신 어머님의 첫마디였다. 나는 가슴이 덜컹 내려 앉는 것 같았다.
며칠 전 어머니께 직장을 그만 두었다고 연락을 드렸었는데, 아마 그 일 때문인 것 같았다.
“어머니세요?”
내가 수화기를 내려놓는 걸 보고 아내가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아내도 금세 걱정스런 표정이 됐다.
“무슨 일 있으시대요?”
“집에 다녀가라셔…… ”
“당신 일 때문에?”
나는 아무 말도 않고 자리에 누웠다.
“당신이 어머님 잘 달래드리세요. 얼마나 걱정이 많았으면 이 밤중에, 그것도 당신이 직접 전화를 하셨을까……”
아내의 말처럼 어머님은 어떤 일에도 직접 전화하지 않으셨다. 늘 형님을 시키거나 조카들을 시켜 전화를 해 오신 분이다. 그런 분이 직접 전화를 하셨을 때는 가벼운 일만은 아니었다.
처음 빛viit의 일을 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 두게 됐다고 전화했을 때 어머님은,
“에미하고는 상의한 거냐?”
하고 한마디 물으셨다. 그리고는 잘 생각해 하라고만 하시고는 별말씀이 없으셔서 의외로 쉽게 넘어갔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하긴 날 대주교로 만드는 게 소원이셨던 어머님이고 보면 빛viit에 대해 그렇게 쉽게 생각할 수만도 없었을 것이다. 심하게는 사탄의 힘에 빠진 게 아닐까 의심하시고 계실지도 모른다. 게다가 난 혼자가 아니라 가족을 부양해야 할 가장이었다. 가장이라는 사람이 식구들은 팽개치고 빛viit이라는 이상한 일을 하겠다고 하니 어머님의 걱정은 당연한 것이었다. 나는 이런저런 생각에 새벽이 다 되도록 잠이 들지 못했다.
다음 날, 아내와 함께 어머님을 뵈러 갔다. 그런데 어머님은 무슨 일인지 한복을 깨끗하게 갈아입고 계셨다. 아내는 그런 어머님이 어려웠는지 힐끗힐끗 내 눈치를 살폈다.
“에미는 그만 나가 보고, 아범은 거기 앉거라”
아내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내 얼굴을 쳐다보고 방을 나갔다.
“지난 번 아범이 전화하고 나서 많이 생각했다.”
“죄송합니다. 어머님…….”
“그런 말 듣자고 아범 오라고 한 건 아니야. 아범이 이제 빛viit인가 뭔가를 한다고 하니까 해 줄 말이 있어서 오라고 한 게야.”
무슨 말을 하려는지 어머님은 길게 숨을 고르셨다.
“아범이 처음 그런 이상한 힘이 있다고 했을 때만 해도 난 아범한테 사탄이 들린 줄 알았다. 그런데 아범이 병든 사람을 고친 걸 봤다는 사람이며, 아범한테 고민이 해결되었다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나오는 걸 보고 마음이 놓였었지. 하느님이 우리 아들에게 성령의 힘을 주었다고 생각한 거야. 그런데 이제 그 일만 하겠다니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어머님의 목소리는 침착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난 뭔지 자꾸 뒤가 당기는 것 같았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걸까? 그 일을 못하게 반대하시는 건 아닐까…….
“이제 내가 말린다고 될 것 같지도 않고 ... 이왕 하는거 어려운 사람들 많이 보살펴 주도록 해라, …이런 말은 처음 하는 거다만, 아범은 특별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각별히 몸조심하고…….”
걱정했던 반대의 말씀이 아니라 난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범을 뱃속에 가질 때… 태몽이라고 해야 하나… 꿈을 꿨었단다. … 정확히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벼를 다 베고 난 가을 들판에 볏짚단이 쭉 서 있었지. 그 가을 들판에 황금빛이 좍 내리비치는데, 내 생전 그렇게 밝은 빛은 본 적이 없단다. 그렇게 밝을 수가 없었어. 그런데 이상한 건 커다란 볏단들이 제일 작은 볏단을 빙 둘러싼 채 절을 하는 것처럼 엎드려 있는 거야. 그러더니 그 가운데 황금 볏짚단이 내게로 걸어왔어. 나는 두 팔을 벌려 그 볏짚단을 안았지. 그리고 아범을 밴 거야. ......아범 낳기 전날도 똑같은 꿈을 꿨지. 그리고 그저께 밤, 아범한테 전화 받고 다음 날이었을 거다. …세 번 째로 똑같은 꿈을 꿨단다. …난 왠지 이런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될 것 같아 널 뱃속에 가졌을 때도 태몽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 이제야 어머니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당신이 소중히 간직해 온 꿈을 자식이 새로운 길을 떠나는 앞에 보여 주시며 힘을 주시는 것이었다.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모든 일에 조심하거라. 아범은 세상을 위해 큰일을 할 사람이야.늙은 이 에미의 말을 잊지 말았으면 고맙겠구나.”
“예, 조심하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는 내 손을 꼭 잡아 주시며 고개를 끄덕여 보이셨다. 어머님의 그런 모습에 나는 가슴이 다 뻐근해졌다.
어머님의 손을 마주 잡으며 속으로 이렇게 다짐했다.
‘내 앞길에 큰 힘을 불어 넣어 주신 당신을 위해서라도 이 힘을 보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겠습니다.’ 라고.
출처 행복을 나눠주는 남자 초판 1쇄 발행 1996/11/25
개정판 2쇄 2009/12/21 P. 118-121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이서연(풍요22기) 작성시간 19.10.17 선견 지명이 있으신 학회장님의 어머님 꿈에서 보았듯이 세상을 위해 큰일을 하시는 학회장님께 진심으로 감사 드리며 위대하신 이세상의 모든 어머님께도 감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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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연준(풍요12기) 작성시간 19.10.17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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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승민(풍요12기) 작성시간 19.10.17 학회장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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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소영(풍요21기) 작성시간 19.10.17 어머니의 사랑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나의 소중한 어머니와 세상 모든 어머니께 감사드립니다.
귀한 글 감사 마음으로 잘 담겠습니다.
우주마음께 학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 -
작성자윤남희(풍요14기) 작성시간 19.10.17 따뜻하신 어머님의 격려와 사랑..감동입니다~♡
다시 읽어보아도 감동적인 빛이야기 마음 깊이 담아봅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