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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와 성공]남수단 톤즈의 이태석 신부(한국일보) / 이태석 신부의 아름다운 선종

작성자운.영.진|작성시간19.10.17|조회수198 목록 댓글 36

기억할 오늘

남수단 톤즈의 이태석 신부(10.17)


출처 한국일보 :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10141231086176?did=NA&dtype=&dtypecode=&prnewsid=


영화 '울지마 톤즈'의 가톨릭 선교사 이태석 신부가 1962년 오늘 태어났다.

아프리카 수단 내전은 2차대전 이후 가장 길고 잔혹한 무력 분쟁 중 하나로 꼽힌다. 내전은 식민지 시절 정치적 패권을 쥐고 있던 아랍계 이슬람권의 북부가 자치를 원하던 기독교 중심의 비아랍계 남부지역을 이슬람화하면서, 1956년 독립과 거의 동시에 시작됐다. 1972~1983년의 휴전기를 빼고 2차 내전(1983~2005)까지 근 40년 동안 약 20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수많은 이들이 성폭력을 겪었고, 손발이 잘린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냉전과 아랍 분쟁의 이해에 얽혀 미국과 소련과 이집트 등이 개입했지만 그 개입은 사실상 무기원조였다.

가톨릭 살레시오 수도회 소속 사제 겸 의사 이태석(1962.10.17~2010.1.14)이 남수단 와랍주 주도 톤즈에 정착한 2001년 12월은 내전이 채 끝나지 않은 전시였다. 갓 사제 서품을 받은 39세 선교사 이태석은 거기서 만 7년간 의료 교육 선교활동을 했다. 그 이야기가 자전 에세이 ‘내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2009)로, 영화 ‘울지마 톤즈’(2010)로 소개됐다. 2018년 남수단 정부는 그의 일대기를 초중등 교과서에 수록했다.

부산서 나서 인제대 의대를 졸업하고 만 29세에 수도회에 입회한 그는 광주가톨릭대학과 로마 살레시오 대학을 거쳐 2001년 6월 사제 서품을 받았다. 1999년 아프리카 케냐 선교 체험 활동 중 남수단의 참상과 톤즈의 처지를 알게 됐다고 한다. 그는 질병 치료와 교육 외에 독학으로 익힌 기악 실력으로 마을 아이들과 함께 브라스밴드를 꾸리기도 했고, 아이들과 공차기도 즐겼다고 한다. 그는 톤즈의 성직자이자 의사였고, 교사였고, 음악감독이었고, 주민들의 친구였다. 그는 2008년 말 휴가차 잠깐 한국에 입국했다가 대장암 진단을 받았고, 끝내 톤즈의 친구들을 다시 만나러 가지 못하고 1년여 뒤 선종했다. 향년 47세.

영화 등을 통해 그의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수도자와 선교사의 삶보다 봉사자로서의 면모가 부각되고, 그의 이름을 내세워 이런저런 모금 및 상업 활동을 하는 이들이 생겨나자 살레시오회는 2012년 관구장 명의의 공식 성명서를 냈다. 이태석 신부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활동과 기념사업은 ”선교적 차원을 드러내는 것”이어야 하며, “톤즈 및 남수단 상황과 사람들의 명예와 존엄을 손상하지 않아야 한다.” 최윤필 기자





이태석 신부의 아름다운 선종

 

살면서 가끔 대체 하느님의 뜻은 어디 있는 걸까?’ 하고 혼자 자문해 볼 때가 있다. 내 능력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누군가를 돕고 싶어도 그 힘이 다해 우주마음께서도 어쩌지 못하는 상황에 마주할 때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들곤 했다.

 

새해가 막 시작된 지난 2010111일 이태석 신부를 만났을 때도 그랬다.

 

그 날, 평소 가깝게 지내던 전재희 장관이 다급하게 전화를 걸어왔다. “viit 선생님, 죄송하지만 제 부탁 좀 꼭 들어주십시오. 강남성모병원 18층으로 왕림 좀 해주실 수 있는지요? 오늘이라도요.”

 

누가 입원이라도 했습니까?”

 

나는 평소보다 유난히 허둥대는 전 장관에게 물었다.

 

혹시 아실런지 모르지만 지금 이태석 신부님이 그곳에 입원을 하고 있답니다. 신부님은 2001년 사제 서품을 받고 아프리카 수단 남부지역 톤즈 마을에 둥지를 틀고는 의료와 교육봉사를 펼쳤던 분이예요. 의학을 전공한 의사이기도 한 신부님은 그 곳에서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었지요. 그러던 지난 200811월 한국에 들어온 후 대장암 3기 판정을 받고 치료를 받아 왔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암세포가 전신에 퍼져 의사들도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다고 합니다. 지금은 거의 임종을 앞둔 상태지요. 하지만 빛 선생님, 부디 신부님이 일어나실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전 장관은 혹시라도 내가 거절할까 봐 두려워하며 간청하였다.

 

알겠습니다. 제가 가봐야지요. 젊은 신부님이 좋은 일을 하시다가 병을 얻으셨는데 제가 도울 수 있으면 도와 드려야지요.”

 

나는 서둘러 채비를 하고는 전 장관이 일러준 서울성모병원 18층으로 달려갔다.

      

viit 선생님, 감사합니다. 어서오세요!”

 

기다리고 있던 전 장관이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그래, 환자는 지금 어떤 상태인가요?”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모르핀도 안 듣고 칼로 베는 듯한 통증 때문에 몸시 고통스러워하고 계십니다. 모르핀 함량을 최고치로 투여해도 통증이 안 잡힌다고 해요.”

 

우선 들어가 봅시다.”

 

나는 조심스레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선생님이 쓰신 행복 순환의 법칙을 잘 읽었습니다.”

 

침대에 누워있던 이태석 신부는 비록 몸은 마르고 얼굴빛은 검었지만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나를 맞아주었다. 임종을 앞둔 환자라고 하기엔 신부의 눈빛이 너무 맑고 순수했다.

 

자신의 몸을 던져 마치 슈바이처처럼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해 헌신한 분이 아닌가.’

 

나는 신부를 보자 마음이 짠해졌다. 아직 이 땅에서 할 일이 너무나 많은 분이었다. 우주마음께 청해서 어떻게든 신부가 병을 이기고 벌떡 일어나 수많은 사람들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톤즈 마을로 돌아가게 해드리고 싶었다.

 

지금 무엇보다 통증이 너무 심합니다. 혹시 그걸 좀 멈추게 해주실 수 있는지요? 저는 빨리 일어나서 다시 아프리카 톤즈로 돌아가 열악한 그곳 사람들을 위해 병원과 학교를 지어야 합니다.”

 

이태석 신부는 안타깝게 애원하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 더욱 마음이 울컥하였다. 하지만 모든 일은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니라 생명의 주인이신 창조주께 달려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간절하게 그분께 청원하는 것뿐이었다.

 

신부님, 제가 지금부터 viit을 드릴 테니 편안한 마음으로 받으십시오.”

 

나는 두 손을 들어 신부가 건강을 되찾게 해달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viit을 드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주마음은 내게 일러주었다.

 

너무 늦었다. 이미 명이 다하였다.’

 

다만 이태석 신부가 죽음 앞에 엄습하고 있는 마음의 불안과 암 말기의 마지막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겠노라는 강한 느낌만을 전해주었다.

 

나는 애타게 건강을 되찾길 바라는 가족들과 이요한 신부에데 솔직히 우주마음의 뜻을 전했다.

 

신부님이시니까…… 준비는 하고…… 계시겠지요. viit을 드렸으니 바로 통증이 멎고 마음이 편안해지실 겁니다. 그리고 죽고 사는 것은 모두 그 분의 뜻이지요. 이제 모두 내려놓으시고 viit으로 편히 가십시오!”

 

나는 생수에 초광력을 넣어 이태석 신부가 세상을 떠나는 그 날까지 영육의 갈증이 일어나지 않도록 마실 수 있게 해드렸다. 그리고 세상에서 해야 할 마무리(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정확히 남아있는 시간을 얘기해드렸다. 인사를 마치고 병실을 나오는데 가족 중 한 분이 내 손을 잡고 마구 흐느꼈다.

 

우리 신부님을신부님을 위해 와 주셔서감사합니다…….”

 

나는 그 애끓는 울음소리를 듣자 이태석 신부의 임종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다음 날, 화요일이었다.

 

정해진 일정에 따라 충무의 한 섬을 찾아 viit여행을 하고 있을 때였다. 전재희 장관이 다시 나에게 전화를 해왔다.

 

이요한 신부님이 전화를 해오셨어요. 이태석 신부님이 선생님을 다시 한 번 뵙기를 청하셨다고요. 어제 선생님이 병실을 떠나자마자 그토록 힘들게 하던 통증이 바로 멎었고,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하시면서…… 다시 한 번 와주셨으면 하고 말이지요.”

 

그 말을 듣자 아는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한 번 더 찾아간다 해도 내가 더 이상 할 일은 없었다. 이미 그분의 뜻을 전해주지 않았던가.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었다.

 

내가 viit여행을 마치고 돌아갈 때까지 만약 이태석 신부님이 세상에 머물고 계시다면, 지난 만남에서 못 해준 아프리카 불모지에서 그토록 희생과 봉사의 삶을 몸소 실천헤 오신 큰 노고에 위로와 감사라도 표하고 싶다……. 하지만 세상 인연이 여기까지인 것을…….’

 

나는 이태석 신부를 위해 멀리서나마 그저 마지막까지 편안히 마무리하시도록 한 번 더 viit을 보낼 뿐이었다.

 

그렇게 수요일이 지나고 목요일인 2010114, 편백나무 숲이 있는 미륵사를 찾았을 때였다. 나는 대웅전에 들어가 잠깐 향을 하나 피우고 viit명상에 들어갔다. 그때 또르륵 또르륵 하는 목탁소리에 viit향기가 실려 왔다.

 

그러자 한 영혼이 밝은 viit풍선에 기대어 내 손끝을 스치고 지나가는게 느껴졌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 이태석 신부님이 선종하셨구나.’

 

신부의 야윈 얼굴과 선한 눈빛을 떠올리자 저절로 가슴 끝이 저려왔다. 나는 속으로 가만가만 그분이 viit의 길로 가도록 빌었다.

 

신부님! 선종하여 여기까지 오셨구려! 이제 근원의 viit안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십시오. 잘 가요……

 

viit 선생님, 고맙습니다.”

 

viit풍선은 내게 인사를 하며 너울너울 viit의 나라를 향해 날아갔다. 여행지에서 돌아온 날 밤, 전 장관이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신부님의 조문을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viit 선생님께 고마웠다는 말씀을 남기셨다는 말도 함께 전해드립니다.”

 

신부님은 비록 떠나셨지만, 그분이 이 땅에서 하신 일들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용기와 희망을 주게 될 겁니다.”

 

나는 이태석 신부님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 후 이태석 신부가 떠난 뒤 그분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가 극장에서 상영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눈물과 감동을 전해주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뜻있는 사제들과 단체들이 톤즈로 달려가 그분이 못다 이룬 꿈을 이루기 위해 애쓴다는 반가운 소식도 전해졌다.

 

, 신부님의 삶은 헛되지 않았구나!’

 

나는 죽어서도 살아있는 이태석 신부를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렇다. 이태석 신부의 선종을 통해 우리 모두는 다시 한 번 깨닫고 있다.

 

단 한 번뿐인 이 땅에서의 삶,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닥칠지 한 치 앞도 모르는 삶, 교만하지 말고 방심하지 말며, 나아가 생명을 주신 근원(부모님께, 선조님들께, 그리고 우주의 섭리)에 감사하고 타인의 행복을 위해 헌신하며, 이 세상에 viit의 현존을 전하며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출처 : 나도 기적이 필요해 2017417일 초판발행

201753일 초판 3P. 125-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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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김성미(풍요19기) | 작성시간 19.10.18 학회장님과 이태석신부님의 만남 감동적인 이야기
    감사드립니다.
  • 작성자정 현숙 | 작성시간 19.10.18 이태석 신부님의 인품을 다시 마음에 담아보며 빛의 세상에서
    편안하시리라는 위안과 감사합이 겹칩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김민정(풍요22기) | 작성시간 19.10.18 이태석신부님의 고귀한성품과 따뜻한 마음에 감사드립니다.
  • 작성자이정연(풍요15기) | 작성시간 19.10.18 감사합니다
  • 작성자이미례(풍요12기) | 작성시간 19.10.18 고귀한 삶을 살다가신 이태석 신부님께서 학회장님을 뵙고 빛으로 가셨으니 얼마나 다행이신지요.
    감동적으로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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