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순환의법칙][설왕설래] 공수래공수거(세계일보) / 그림자가 따라다닌다는 사실조차 잊고 사는 사람들 / 영육의 분리 앞에서 빛viit의 소리 들려오건만
작성자운.영.진작성시간20.10.27조회수339 목록 댓글 42[설왕설래] 공수래공수거
출처 세계일보 : http://www.segye.com/newsView/20201026521031?OutUrl=naver

존재 지향 인간과 소유 지향 인간. 미국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이 나눈 두 가지 인간형이다. 존재 지향 인간은 꽃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꼭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반면 소유 지향 인간은 꽃의 아름다움보다 내 거냐, 네 거냐를 중요시한다. 프롬은 현대인들이 점점 소유 지향으로 바뀌어 왔다고 본다. 그래서 인물평도 됨됨이가 아니라 재산이 얼마인가로 판가름난다는 것이다. 프롬은 “소유와 욕망에는 한계가 없어서 소유 지향적 삶은 행복하기 힘들다”고 일침을 놓았다.
물욕과 이기심은 자본주의 체제의 근간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소유 지향 인간들에 의해 발전해 왔다. 물신주의는 물질의 풍요를 가져왔지만 정신의 빈곤을 심화시키는 부작용을 낳는다. 탐욕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법정 스님은 “현대인의 불행은 모자람이 아니라 오히려 넘침에 있다/ 모자람이 채워지면 고마움과 만족함을 알지만/ 넘침에는 고마움과 만족이 따르지 않는다”며 무소유의 삶을 강조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을 말한다. 성철 스님의 무소유 삶도 절로 고개를 숙이게 한다. 법랍 58년에 열반했지만 유품이라곤 40여년간 손수 기워 입은 누더기 장삼과 덧버선, 검정 고무신뿐이었다. 실천을 동반했기에 성철 스님의 가르침은 더욱 가슴에 스며든다.
홍콩 영화배우 성룡은 2008년 ‘생부대래사부대거(生不帶來死不帶去·지니지 않은 채 태어나 지니지 않은 채 죽는다)’라며 전 재산 4000억원을 사회에 놓고 갈 것이라고 선언해 박수를 받았다. 25일 별세한 한국 최고 부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집무실에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글귀를 걸어 놓고 늘 가까이 했다고 한다. 선친 이병철 전 회장이 직접 쓴 글귀다. 불교 선시의 한 가락으로,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말이다. 살아가면서 아무리 재물을 탐하고 권력을 좇아도 결국 모두 부질없으므로 너무 아등바등 욕심부리며 살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한국에서 재물을 가장 많이 가져본 사람들의 메시지여서 울림이 더 크다. ‘왕후장상도, 갑남을녀도 돌아가는 곳은 결국 똑같다’는 말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김환기 논설위원
그림자가 따라다닌다는 사실조차 잊고 사는 사람들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 많은 일과 선과 공적을 쌓아야 한다. 마음과 육체가 분리되면서 죽음이란 단계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죽기를 바라거나 원하여 죽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가장 정확한 답이 있다면, 그것은 죽음이라는 것이다. 그 죽음은 우리 안에 있다.
요즈음 얼마나 정서가 메말랐는지 사람들은 항상 붙어다니는 자기의 그림자가 있는지조차도 잊고 정신없이 쫓겨다닌다. 그림자가 없는 사람은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또한 죽음을 의식하고 살아갈 하등의 이유가 없다. 나에게도 그림자가 있는지 없는지를 살펴보라. 그 그림자는 항상 나를 졸졸 따라다닌다. 그 그림자가 지워지는 날이 죽는 날이다.
죽음이란 무엇이던가. 육체와 마음(종교에서는 영혼, 정신, 명)이 분리되는 순간을 말한다. 그래서 마음이 없는 육체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조금 전까지 육체를 끌고 다니던 그 마음은 어디로 갔는가? 자동차가 시내에 굴러다니다가 운전사가 없으면 그 자동차는 정지되고 마는 것과 같다. 세상에서 의무를 다했기에 ‘고향’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누구이며, 진정 ‘참나’는 누구인지를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고, 육체가 나인양 육체에 연연해 살아온 사람은, 육체가 어느 날 갑자기 못쓰게 되었을 때 육체를 따라 죽을 수도 없게 된, 남아 있는 나를 그제야 본다. 즉 마음이 아뿔싸! 하고 어이할꼬! 어이할꼬! 아무리 땅을 치며 소리쳐 울어도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영혼이 있음을 부정하고 살았으니 영의 세계(마음의 고향)에서도 받아 주지 않고, 신앙 세계(천국·극락 등)에 들어가자니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갈 곳 없는 이 내 마음, 인간계에서 자기와 가장 가까운 인연을 가진 자(파장이 일치하는 자)를 찾아갈 수밖에······.
세상에서의 한평생, 길다면 길지만 돌아서 보면 금방이다. 그 삶에서 우리는 지금 당장 죽음이 찾아오더라도 한 점 두려움, 공포심도 없어야겠다.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고향에서 환영받고 새 삶을 축복받기 위한 평소 마음의 준비가 어떠했느냐에 따라 그 결과도 다를 것이다. 평소 삶의 일부를 선업에 투자했더라면, 노후에서부터 다음 세대에까지 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선한 업을 지었으면 부귀 쌍전의 영화가 자손의 ‘사주인자(四柱因子)’ 주머니에 넣어지게 되며, 악업을 많이 쌓았으면 자손의 사주팔자에 고통과 악연이 넣어질 것이다. 가끔 나는 사주의 그 여덟 자 흐름에서, 그 부모와 조상이 지금 어떻게 되었으며 그가 지금 어떤 환경에 있는지 등을 볼 때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음을 실감한다.
빛viit의 세계, 한없는 평화와 충만이 깃들인 님의 고향, 살아서 복되게 살고, 죽어서 영원한 행복 찾는 이 깨침을 겸손하게 받아들이자. 비록 초광력과 우주의 존재를, 천지신명이 있음을 거부해도 좋다. 다만 육체를 벗어버린 진정한 나를 한 번쯤 생각해 보길 간곡히 바란다.
마음의 영원한 집을 눈앞에 두고, 우수수 늦가을 낙엽 지듯 떨어져 내리는 마음들, 살아서 숨쉴 때 단 5분간만이라도 ‘참나’를 생각했더라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남은 삶, 착하고 선하게 이끌어 보자. 사람이 죽으면 남는 것은 업적이고, 그 업적은 선이든 악이든 유전한다. 그래서 ‘닮았다’라는 것이다.
출처 : 빛viit으로 오는 우주의 힘 초광력超光力 1996.07.10. 1판 1쇄 P. 245~246 중
영육의 분리 앞에서 빛viit의 소리 들려오건만
비 온 후 산사에서 해가 질 무렵이면 바람결에 흔들려 오는 빛의 소리가 있다. 우주의 힘 초광력超光力을 온 세상 방방곡곡에 일러 주라고,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영혼들의 소리가 가랑잎 비비는 틈새에서 애절하게 들려 온다.
살아 생전 깨치지 못해 세상 삶이 다 인양, 바락바락 살다가 어느덧 닥쳐온 죽음, 영육(영혼과 육신)의 분리 앞에서 빛viit의 소리, 그분의 소리가 아득히 들려 오건만, 앞을 가리고 선 검은 무리들…,
그 빛viit의 소리를 뒤로 하고 검은 무리에 섞여서 떨어져 내린다. 살아 생전에 빛viit의 소리, 우주의 마음을 조금만 깨쳤어도 찬란한 빛viit의 세상에 들 수 있었을 것이다. 후회 한들 어찌하리.
1백 년 채 못 되는 세상, 영원인양 살지만 영원한 세상은 죽은 후에나 있는 것을……, 자식에게 만큼은 일깨워 달라고 가랑잎 틈새에서 애절히 소리한다.
출처: 빛viit의 책 1권
‘빛viit으로 오는 우주의 힘 초광력超光力’ 1996.07.10. 1판1쇄 P. 261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양상연(풍요11기) 작성시간 20.10.27 공수레공수거
공짜는 없다
죽음 앞에 빛의 소리 따라 갈 수 있도록
빛과 함께 합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송숙헌(풍요20기) 작성시간 20.10.28 빛과함께 할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영육이 분리되고 빛으로 밝게 돌아갈수록 있었으면 더없는 좋은낭입니다 -
작성자전형열(풍요12기) 작성시간 20.10.28 빛과함께할수있음에 우주마음님과
학회장님께 공경과 감사의 마음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윤남희(풍요14기) 작성시간 20.10.28 감사히 겸허하게 빛의 글을 마음으로 담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김순월(풍요2기) 작성시간 20.10.29 조상들의 삶을 반영해주는 후손들의 삶!
이 원칙을 안다면 남에게 해 되는 일들을 하지 않을 터인데 말이지요.
빛의 말씀, 감사와 공경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