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강의 ‘죽음의 철학적 접근’ 강의를 신청하지 못해 수강할 수 있는지 문의하는 메일과 전화를 학기 초마다 여러 번 받는다. C양은 우울증에 오래 전부터 걸려있어 자주 죽음에 대해 생각했고 그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났다고 했다. 내가 다시 메일을 보냈다.
“학생이 우울증이나 자살충동 관련해 어떤 아픔이 있었는지, 치유를 위해 솔직하게 적어서 보내라.”
“제가 10년 전의 일에도 눈물이 나는 건 치유가 되지 않아서겠지요. 한 번도 제 아픔을 길게 말한 적이 없어요. 눈물 닦은 휴지만 한아름이에요. 뭉쳐있는 감정을 문장으로 써보니 토해내는 기분이 들어요.”
학생은 처음 자살시도한 때는 중학교 3학년, 시험 끝나고 집에 와서인데 충동적으로 그냥 없어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높은 성적에 대한 압박감과 실망스러운 자신 때문에 매일 울면서 잠에 들었다.
한림대에 입학했지만, 목동에서 춘천 한림대까지 왕복 4시간 정도였는데 춘천에 살고 싶지 않았다. 집에 들어가면 방문을 잠그고 살았다. 고등학교 때 생각을 하면 울컥 눈물이 나는 건 여전했다. 매일매일 죽고 싶다고 생각했다.
대학생활 마지막 학기를 다니면서 개강 전 몇 주 동안 도서관을 다니는데 뭘 봐도 죽는 것이 연상되었다. 머리감으려고 사워기를 보면 물에 빠져 죽는다, 차를 보면 차에 치여 죽는다, 도서관 옥상의 휴게실에서 떨어져 죽는다, 자다가 심장마비로 죽는다 등등 이런 생각에 마음에 가득찼다.
C양의 상태가 심각해서 인강을 수강할 수 있도록 했다. 학생은 오랫동안 우울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고작 3개월 동안 공부한다고 해서 크게 나아질 수 있을까 의심했다. 하지만 제출한 첫 번째 레포트를 보니 이미 많은 변화가 읽혀졌다. 9월29일 카톡을 보냈더니 답이 왔다.
“인강 수강과 과제로 제시한 책을 통해 한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믿기지 않을 만큼 바뀌었어요. 자살한다고 다 끝나는 게 아니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 이렇게 바뀔 수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학기말 종강 무렵 다시 메일을 보내 인강 수강 이전과 이후의 변화를 말해보라고 했다. C양은 수강하기 오래 전부터 자살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달 동안 수강하면서 죽음과 자살에 대해서 확연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죽는다고 해서 다 끝나는 게 아니므로, 자살하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그 이후에도 고통받게 된다는 것을 배웠다.
사람들이 자살을 생각하는 것은 고통을 견디기 힘들기 때문인데, 삶의 과정에서 누구나 고통을 겪는 것임을 C양은 알았다. 이런 내용을 반복해서, 또 분명하게 배우다 보니, 자기 안에서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고 했다.
세달 동안 인강을 수강하니까, 죽음이해만이 아니라 삶의 태도까지 바뀌었다고 했다. 죽음이해가 사람을 바뀐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첫 주 강의에서 죽음, 인간, 삶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가르침을 이제 몸으로 느낀다고 했다.
살면서 힘든 일을 마주할 때, 수강 이전이었으면 다 끝내고 싶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힘든 일이 있어도, 어떻게든지 견뎌낼 생각을 한다. 이 차이가 얼마나 큰지 C양은 잘 알고 있다.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이 죽음이해와 임종방식을 결정한다는 말 또한 가슴에 콕 박혔다.
“강의를 듣지 않았으면 우울증으로 자살을 시도해 삶을 마무리 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끔찍합니다. 마지막 학기에 들은 ‘죽음의 철학적 접근’으로 제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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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지성 작성시간 18.12.19 정말 다행입니다. 자살을 생각하는 많은 분들이 자살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자살이 예방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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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효산-권영구 작성시간 18.12.19 '죽음 성찰을 통한 자살예방'의 생생한 효과가 잘 드러나는 사례네요. 이런 내용이 우리사회에 널리 공감되어 자살예방을 위한 죽음교육이 활발히 전개되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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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buru21 작성시간 18.12.19 죽음의 성찰은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가장 중요한 생명사랑의 뿌리이지요. 이런 삶의 진솔한 소리들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야 하는데 아직도 죽음교육을 멀리 두고있고, 우리가 매일 죽고 매일 새롭게 탄생한다는 사실을 알고 지금이순간을 소중하게 내 삶을 돌아보는 이 생생한 c양의 이야기가 감동을 줍니다. 오늘 이 순간을 소중하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내는 청년들이 많이 나오길 기대 합니다.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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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오진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9.05.03 C양이 이 글을 읽고 보낸 카톡입니다.
"교수님께서 이렇게 정리해 주신 글을 보니,
과거의 제가 얼마나 문제가 많았는지 새삼 느껴집니다.
아픔이 오래 지속되었던 사람은 그 아픔에 무뎌져
자신이 아픈 지도 모른 채 살아간다고 하지요.
제가 바로 그랬습니다.
인강 수강 이후 치유되고 난 이후 보니까,
과거의 제가 정말 많이 아팠었구나, 새삼 느껴집니다.
아주 먼 과거의 일처럼 느껴지고,
이젠 제 일이 아닌 듯, 마치 남의 일처럼 느껴집니다.
죽음을 배운 것이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이번 학기에 배운 것, 평생 잊지않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