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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교 산행일기

남한산성 도립공원ㅡ유네스코 등재ㅡ성남 누비길 1코스 ㅡ남한산성 남문 성남 누비길 2코스ㅡ검단산 정상ㅡ황송 공원 ㅡ단대 오거리역 산행ㅡㅡ

작성자청 솔|작성시간21.12.04|조회수987 목록 댓글 0

 

남한산성 도립공원 

유네스코 등재 

 

성남 누비길1~2 코스

검단산 523.9m 연계산행 

남한산성 검단산 산행코스

 

산성역 ㅡ성남 누비길 1코스ㅡ

남한산성 남문 ㅡ성남 누비길 2코스ㅡ

 

검단산 정상ㅡ황송 공원 ㅡ

단대 오거리역 산행ㅡ

 

 

약 10km 약 6시간 산행 

 성남 누비길 

 

경기도 성남시의 여러

등산 코스를 아우른다.

성남 누비길을 총 일곱개 구간이다.
성남의 4대 명산을 종주 할 수 있다.

성남누비길은 도심과

가까워쉽게 갈 수 있고,

등산로도 깔끔하게 정비 되어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다.

남한산성, 검단산 등산로
영장산, 불곡산 등산로 

태봉산 등산로,

청계산, 인릉산 등산로 등
여러 코스들을 가지고 있다.

역사가 함께하는 문화유산,
마음을 단련하기 위한 숲

휴식을 위한

오솔길 등 다양하다.
총 연장은 62km 이다.

 남한산성  南漢山城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축조되어 조선시대 수도 한양을

지키던 성곽. 산성. 사적.

흔히 북한산성(北漢山城)과 함께

조선의 도성인 한양의 방어를 위하여

쌓은 산성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의 발굴조사 결과,

8세기 중반에 조성된 성벽과

건물터 등이 확인되어, 

신라 주장성(晝長城)의

옛터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선시대 남한산성은 주봉인

해발 497.9m의 청량산을 중심

으로 북쪽으로는 연주봉(467.6m), 

동쪽으로는 망월봉(502m)과

벌봉(515m), 남쪽으로도 여러

봉우리를 연결하여 성벽을 쌓았다. 

성벽의 바깥쪽은 경사가 급한데 비해

안쪽은 경사가 완만하여, 방어에 유리

하면서도 적의 접근은 어려운 편이다. 

봉암성(蜂巖城), 한봉성(漢峰城),

신남성(新南城) 등 3개의 외성과

 

5개의 옹성도 함께 연결되어

견고한 방어망을 구축하였다. 

성벽과 성 안에는 많은

시설물과 건물이 있었지만,

지금은 동·서·남문루와

 장대(將臺)·돈대(墩臺)·보(堡)·

누(壘)·암문·우물 등의 방어 시설과

관청, 군사훈련 시설 등이 남아 있다.

남한산성 남문 지화문

 南漢山城至和門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에

있는 남한산성의 남문(南門)이다.

남한산성 서남쪽

해발 370m 지점에 있다.

선조 때 남문·동문 등을 수축(修築)

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아

그 이전부터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남한산성의 사대문 중 가장 크고

웅장하며 병자호란으로 인조가

산성으로 피신할 때 이 문을 통과하였다. 

정조 3년(1779년) 성곽을 개축하

면서부터 지화문이라 불렀다.

성문은 홍예문으로,

 높이 4.75m·폭 3.35m·길이 8.6m

이며 홍예기석 위에 17개의

홍예석을 쌓아 만들었다. 

홍예문 좌우 성벽은 자연석을 수평줄에

맞춰 막돌 쌓기로 축조한 것이다.

 

1976년 복원된 문루는 정면

3칸·측면 3칸 규모이다.

 

검단산 가는길에

맛난 점심 식사

남한산성의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게 인정되어 2014년 6월 카타르

 

도하에서 개최된 유네스코 총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신규 등재되었다.

1985년에 지표조사가 실시된 이래,

1998년부터 8차례에 걸쳐 행궁터,

 

인화관터, 일부 성벽에 대한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다. 

남한산성이 백제 온조왕 때

도성이었다는 견해가 있다. 

하지만 발굴조사 결과 백제 주거지 2곳과

저장 구덩이 8곳 등이 확인되었을 뿐

성곽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오히려『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673년(문무왕 13)에 한산주(漢山州)에

주장성(혹은 日長城)을 쌓았는데, 

성의 둘레는 4,360보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주장성은 곧 남한산성이고,

당시 돌로 쌓은 최대 규모의 산성이었다.  

당시 성 안에 무기고(武器庫) 등

중요한 건물들이 자리하였음도 밝혀졌다.

남한산성에 대한 고려시대 기록은

광주부사를 지낸 이세화묘지명

(李世華墓誌銘)이나

『고려사(高麗史)』에 몽고군이

침입하였을 때 ‘광주성(廣州城)’으로

피하여 항전하였다는 것 등이 전한다. 

산성 안에서 고려시대

건물터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광주성은 바로 남한산성으로 추정된다.

 한편『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에는 일장산성이라고 기록되었는데, 

둘레가 3,993보이고 성 안에는 군자고

(軍資庫)가 있으며 우물 7곳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으며, 

성 안의 논밭이 124결(結)이나 된다고 하였다.

이 기록 역시 신라 때 축성된 주장성,

일장성이 그대로 이어져 온 것으로 보인다.

성 안의 논밭이 124결(結)이나 된다고 하였다.

이 기록 역시 신라 때 축성된 주장성,

일장성이 그대로 이어져 온 것으로 보인다.

 

 검단산 黔丹山 높이 534.7m

 

경기도 성남시와

광주시의 경계를 이루는 산.

청량산(淸凉山)[479.9m]과 함께

광주산맥의 지맥으로서 남한산성과

 

연결되는 산줄기를 이루는 산이다.

정구역상 광주시에 해당한다.

검단산을 중심으로 하는 성남시의 동쪽

산지는 남쪽으로 갈수록 해발고도가

낮아지며 서쪽의 청계산을 

중심으로 하는 산지에 비해 전반적

으로 평균고도가 낮고 완만한

사면이 발달해 있다.  

이러한 지형조건으로 성남시가지

조성계획 당시 시가지가 입지하는

데 영향을 주었고,

 그 결과로 태평동, 신흥동, 단대동,

금광동, 상대원동, 중앙동, 성남동,

수진동을 중심으로 하는 

원 성남과 야탑동에서 구미동에

이르는 분당시가지는모두 탄천과

동쪽 산지에 조성되었다.

 

현재의 검단산 정상부에는 한국통신의

대규모 중계시설이 입지하고 있으며,

 

공군의 통신부대도

한국통신 중계소 주변에 자리하고 있다. 

산의 최정상부는 면적은 넓지 않지만

평탄한 면을 이루고 있어 헬리콥터

이, 착륙장이 건설되어 있으며, 

남한산성으로부터 등산로와

작업용 도로가 연결되어 있다.

검단산 남쪽 비탈,

해발 고도 400m 일대에는

야생 동식물 보호 구역이 있다.

전철 8호선 산성역 출발 

남한산성 남문을 경우 

검단산 도착 

 

약 7km 약 4시간 소요 

남한산성은 조선시대에 들어서 후금

(後金)의 위협을 받고 이괄(李适)의

 

난을 겪은 뒤 인조 2년(1624)에

지금처럼 다시 고쳐 쌓았다. 

 곧 인조는 총융사 이서(李曙, 1580∼

1637)에게 산성의 축성을 명령하였고,

 2년 뒤에 둘레 6,297보,

여장(女墻) 1,897개, 옹성(甕城) 3개,

성랑(城廊) 115개,

문 4곳, 암문(暗門) 16곳,

 우물 80곳, 샘 45곳 등을 설치하고서

광주읍의 치소(治所)를 산성 안으로 옮겼다. 

축성 공사에는 각성(覺性)을 도총섭

(都摠攝)으로 삼아 전국 8도의

승군을 동원하였는데, 

승군의 사역과 보호를 위하여

현재 남아 있는 장경사(長慶寺)를

비롯한 7곳의 사찰을 새로 건립하기도 하였다.

『남한지(南漢志)』에는

원성 성벽의 안쪽 둘레는

 

6,290보로 17리 반이고,

바깥 둘레는 7,295보로 20리 95보이며, 

성가퀴는 1940타,

5곳의 옹성과 16곳의 암문,

 

125곳의 군포,

4곳의 장대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뒤 순조 때까지

여러 시설이 정비되어,

 

우리나라 산성 가운데 가장 시설이

잘 완비된 산성으로 손꼽힌다.

남한산성의 수비는 처음에는

총용청에서 맡았다가 성이 완성되자

수어청이 따로 설치되었고,

 여기에는 전(前)·좌·중·우·후의

5영(營)이 소속되었는데,

전영장(前營將)은 남장대(南將臺)에, 

중영장은 북장대에,

후영장과 좌영장은 동장대에,

우영장은 서장대에 진(陣)을 쳤다. 

현재는 서장대(守禦將臺라고도 함)

하나만이 남아 있다.

장대는 높은 섬돌 위에 2층으로 지었는데,

 아래층은 정면 5칸, 측면 3칸이고,

위층은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지붕은 팔작(八作)이며 겹처마에

위층은 판문(板門)으로 막았으나

아래층은 틔어 있다. 

성문은 홍예문(虹霓門) 위에

성가퀴를 두르고 단층(單層)

문루(門樓)를 위엄있게 올려 세웠다. 

수어사(守禦使) 이시백(李時白)이

축성 뒤에 처음으로 유사시에 대비할

기동훈련의 실시를 건의하여, 

1636년(인조 14)에 1만 2,700명을

동원하여 훈련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그 해 12월에 막상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여러 가지 여건으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성문을 열어 화의(和議)하고 말았다. 

결국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들여서

쌓은 성이었으나 제구실을 하지

못한 뼈아픈 역사(役事)였다. 

남한산성은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

(溫祚王)의 성터였다고도 한다.

 

1963년 사적 제57호로 지정되었으며,

2014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남한산성과 검단산 산행후 

하산주 한잔 쭉 2차 호프집

 

3차 언제가볼지 모르는 

노래방에서 열창을 해보앗다 

도심의명소대모산293mㅡ
강남구 개포동과 일원동ㅡ

구룡산 306mㅡ
서초구 염곡동과 개포동 ㅡ

양재 시민의숲 ㅡ
서초구 매헌로 99 (양재동)ㅡ

https://m.cafe.daum.net/rnqdmsekfl/VROU/147?svc=cafeapp

남한산성 도립공원ㅡ
연주봉 웅성 467.6mㅡ

남한산성 우익문 서문 ㅡ
청량산 수어장대 남문터널 ㅡ

성남 누비길 산성역 단풍산행ㅡ
인조를 살린 천마ㅡ


https://m.cafe.daum.net/rnqdmsekfl/VROU/149?svc=cafeapp

 

남한산성 영화 ㅡ

병자호란 치옥의 삼전도 

https://youtu.be/Qt67Vgl3lsY

 

 

검단산정상657mㅡ
하남 검단산역 ㅡ

검단산 전투 ㅡ
병자호란때 벌어진 전투ㅡ

경기도 하남시에 있으며ㅡ
한강 팔당댐을 바라보며 솟아있는 산이다ㅡ


https://m.cafe.daum.net/rnqdmsekfl/VROU/148?svc=cafeapp

 

언제가볼지 모르는ㅡ
노래방에서 열창을2ㅡ

https://m.cafe.daum.net/wkwl/YCXj/2?svc=cafe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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