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 날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요르단 사역 위해 본격적으로 준비합니다.
‘바울에게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한 것 같은 그 요청을
요르단으로부터 받고 준비하오니
복음을 통해 생명의 삶을 사는 이 진리를 잘 전하게 하옵소서.
생명수에 목말라 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맡기신 일에 충성을 다함으로
주인의 기쁨에 참여하는 종이 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모나고 거친 부정성을 드러냄으로 주변을 오염시키지 않도록
십자가 보혈로 저를 덮어 주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실 때
나의 주님을 보고 만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2. 에서가 이르되 우리가 떠나자 내가 너와 동행하리라
13.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도 아시거니와 자식들은 연약하고 내게 있는 양 떼와 소가 새끼를 데리고 있은즉 하루만 지나치게 몰면 모든 떼가 죽으리니
14. 청하건대 내 주는 종보다 앞서 가소서 나는 앞에 가는 가축과 자식들의 걸음대로 천천히 인도하여 세일로 가서 내 주께 나아가리이다
15. 에서가 이르되 내가 내 종 몇 사람을 네게 머물게 하리라 야곱이 이르되 어찌하여 그리하리이까 나로 내 주께 은혜를 얻게 하소서 하매
16. 이 날에 에서는 세일로 돌아가고
17. 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그의 가축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었으므로 그 땅 이름을 숙곳이라 부르더라
18.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 그 성읍 앞에 장막을 치고
19. 그가 장막을 친 밭을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백 크시타에 샀으며
20.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렀더라
(본문 주해)
12~15절 : 화해를 하고 난 후 에서가 자신이 선도를 할 테니까 함께 가자고 제안을 한다.
야곱은 어린 자녀들과 약한 가축 떼를 핑계로 형이 먼저 가면 자신은 천천히 세일로 가겠다고 한다. 그러자 에서가 다시 호의를 베풀면서 천천히 올 때 그들을 경호할 자기 부하 몇 사람을 두고 가겠다고 하자 그것도 거절한다.
야곱은 아주 겸손하게 말하는 것 같지만 에서에게로 가는 것이 아님이 뒤에 밝혀진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벧엘로 가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야곱은 자기는 세일로 갈 것이 아니고 벧엘로 가야한다고 하여야 형에게 말해야 하는데 형에게는 세일로 가겠다고 해 놓고(14절) 가지 않는 것이다.
(이후 야곱은 숙곳과 세겜에 수 년간 머무름으로 하나님께도, 형에게도 또 약속을 지키지 않는 자가 된다.)
16~17절 : 에서는 세일로 돌아갔다.
그런데 야곱은 형이 있는 세일로 가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가라고 하신 벧엘로 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숙곳에 이르렀고, 그곳에서 텐트를 친 것이 아니라 집을 짓고, 짐승을 위하여 우리를 짓는다. 집을 짓고 우리를 짓는 것은 아예 몇 년이든지 눌러 앉아 있고자 하는 것이다. 야곱의 짐승 떼가 많으니 그 우리도 굉장히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 곳 이름을 ‘짐승의 우릿간’이라는 뜻의 숙곳이 된다.
하나님께서 얍복강에서 만나주시고 이스라엘로 만들어 주셨는데도 지금 한 고비가 지나자 말자 또 자리를 펴고서 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18~20절 : 야곱이 숙곳에서 몇 년을 살았는지 모르지만 이제 세겜으로 간다.
그곳에서 야곱은 아예 돈을 주고 땅을 산다. 물론 그곳 역시 가나안 땅이고 벧엘에 가깝다고 하여도 벧엘은 아닌 것이다.
야곱에 세겜에서 하나님께 단을 쌓고서 그 단의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고 한다. 그 뜻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다’ 라는 뜻이다.
야곱이 단을 쌓았으니 이것을 성숙한 신앙의 자세로 볼 수 있지만, 야곱이 단을 쌓아야 할 곳은 세겜이 아니라 벧엘이어야 했다.
(결국 이곳에서 야곱의 딸 디나가 강제추행을 당하는 일이 벌어지고 그로 인해 아들들의 살인이 일어나고 세겜에 머물고자 했던 야곱은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된다.)
(나의 묵상)
한 고비를 넘기니 또 하나님과의 약속-벧엘로 가야 하는 것-에 대해 흐지부지하며 자신의 이익과 눈에 보이는 좋은 대로 결정하고 사는 야곱의 모습이다.
그는 숙곳에서 집을 짓고, 우릿간을 만들고 수년을 살다가, 이제 세겜으로 옮겨와서는 돈을 주고 밭을 삼으로 아예 눌러앉을 자세를 보인다.
그러고는 하나님께 단을 쌓으며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다’라며 자기 이름 앞에 하나님을 붙이는 얄팍한 믿음을 보인다.
역시 야곱이다.
역시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똑같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울고불고 난리를 치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그 문제가 잘 해결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옛날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우리들이 아닌가?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그의 자녀들에게 다 각각의 얍복강 사건을 만나게 하시는 것 같다.
그때 그들은 하나님과 씨름하며 야곱처럼 큰 은혜를 받는다.
그리고 ‘와, 놀라운 은혜를 체험했다!’고 고백하기도 하고, 자랑하기도 한다.
그러고는 그만이다.
그냥 다시 옛날로 돌아가 숙곳에서 살다가 세겜에서 살다가 한다. 하나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도 아니다. 교회도 잘 나간다.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하면서....‘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얍복강의 체험이 어떤 내용이든 간에 하나님께서 크신 은혜를 주신 것은 그때부터 주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라는 신호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얍복강 사건이 예배드리는 중 말씀으로 인해 고꾸라지는 순간일 수도 있고, 찬양 드리던 중 가슴이 터지는 경험일 수도 있고, 기적적으로 병이 치유되는 것일 수도 있고, 경제적으로 밑바닥을 치다가 회복되던 때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때 단 한걸음도 주님 가까이 나아가지 못하고, 그저 ‘그때 좋았지....그때 눈물 콧물 쏟았지.....’ 하고는 과거를 추억하는 신앙만큼 처량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소위 ‘왕년의 내가’ 하는 식이다.
왕년의 내가 어떤 경험을 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인가가 중요한 것이다.
대구 복생캠프가 끝났다.
참석한 대부분의 지체들이 얍복강에서-복생캠프에서-각자 나름의 큰 은혜를 받은 것 같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벧엘로 올라가야 한다.
은혜는 은혜고 현실은 현실이라고 하면서 또 눈에 보이는 대로, 생각대로 여기저기 머물러서는 안 된다.
말씀 앞으로 나아가 주님과 교제해야 한다.
‘집에서 노는 사람이나 묵상할 시간이 있지 직장 때문에 바빠서 말씀 앞에 나아갈 시간이 없다.’, ‘젊은 너희는 눈도 밝고 컴퓨터도 잘 쓰고 하니 그게 되지만 나처럼 나이가 많아봐라.’....
몸이 아파서.... 아이들 뒷바라지로 바빠서......가족이 자꾸 방해해서.....글을 못 써서....
숙곳과 세겜에 머물 이유는 한도 끝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벧엘로 가라고 하셨다.
세겜에 머물면서 하나님께 단을 쌓을 때 야곱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하나님, 여기도 가나안 땅이니 괜찮지요? 저는 하나님께서 저의 하나님이신 것을 믿습니다. 지금까지 인도해 주신 것에 대해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했을 것 같다.
‘하나님, 제가 주일도 잘 지키고, 헌금도 하고, 봉사도 하니 이 정도면 괜찮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제 삶을 인도해 주신 것 믿고 말고요.’ 하는 것과 같다.
얍복강 사건을 체험했다면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곳, 벧엘로 가야 한다.
그곳에서 단을 쌓고 다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것이다.
말씀 앞으로 나아가 주님과 교제하라는 말씀을 들었으니 그곳으로 나아가야 한다.
삶의 한 고비 두 고비가 문제가 아니라, 매일 주님과 교제함으로 하늘에 잇댄 영생을 사는 것이 가장 귀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창세전부터 그 영생-아들의 생명-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고자 했다.
그 생명으로 사는 자는 이 땅의 고비고비를 넘기며 안도하며 사는 자가 아니라, 늘 아버지 집에 거함으로 평안을 누리는 자요, 장차는 주님의 얼굴을 맞대고 볼 수 있는 주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이다.
(묵상 기도)
주님,
야곱으로 인해 제 모습을 더 자세히 보게 됩니다.
야곱처럼 속이고, 비열한 자를
주님의 약속을 담지한 자로 만들어 가시는 주님의 손길에 감격합니다.
주님,
이 야곱이 또 한 고비를 넘기니
땅에 붙은 마음으로 뭉그적거리고 있습니다.
숙곳에서, 세겜에서......
그곳에 머물 이유는 백 가지 천 가지가 되고
다 합당한 이유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이유를 다 십자가에 못 박고
벧엘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곳,
아버지와 아들이 계시는 그곳으로 나아가 영생의 말씀을 받아먹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