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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2024)

사명과 탐욕의 경계선에서, 육체와 함께 정욕과 욕망을 십자가에 못박고!(왕하 5:15-27)

작성자굿뉴스|작성시간24.06.30|조회수155 목록 댓글 1

사명과 탐욕의 경계선에서, 육체와 함께 정욕과 욕망을 십자가에 못박고!(왕하 5:15-27)

1. 오늘의 말씀 : 왕하 5:15-27

15 나아만이 모든 군대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의 앞에 서서 이르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하건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하니

16 이르되 내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 앞에서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나아만이 받으라고 강권하되 그가 거절하니라

17 나아만이 이르되 그러면 청하건대 노새 두 마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물과 다른 희생제사를 여호와 외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18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신당에 들어가 거기서 경배하며 그가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19 엘리사가 이르되 너는 평안히 가라 하니라 그가 엘리사를 떠나 조금 가니라

20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스스로 이르되 내 주인이 이 아람 사람 나아만에게 면하여 주고 그가 가지고 온 것을 그의 손에서 받지 아니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를 쫓아가서 무엇이든지 그에게서 받으리라 하고

21 나아만의 뒤를 쫓아가니 나아만이 자기 뒤에 달려옴을 보고 수레에서 내려 맞이하여 이르되 평안이냐 하니

22 그가 이르되 평안하나이다 우리 주인께서 나를 보내시며 말씀하시기를 지금 선지자의 제자 중에 두 청년이 에브라임 산지에서부터 내게로 왔으니 청하건대 당신은 그들에게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주라 하시더이다

23 나아만이 이르되 바라건대 두 달란트를 받으라 하고 그를 강권하여 은 두 달란트를 두 전대에 넣어 매고 옷 두 벌을 아울러 두 사환에게 지우매 그들이 게하시 앞에서 지고 가니라

24 언덕에 이르러서는 게하시가 그 물건을 두 사환의 손에서 받아 집에 감추고 그들을 보내 가게 한 후

25 들어가 그의 주인 앞에 서니 엘리사가 이르되 게하시야 네가 어디서 오느냐 하니 대답하되 당신의 종이 아무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26 엘리사가 이르되 한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이할 때에 내 마음이 함께 가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이냐

27 그러므로 나아만의 나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 하니 게하시가 그 앞에서 물러나오매 나병이 발하여 눈같이 되었더라

 

 

2. 시작 기도

아버지! 어제 오후 일본에서 돌아왔습니다. 여전히 몸살 기운이 지속하고 열이 있어 약을 먹고 일찍 잤습니다. 밤새 앓이를 했으나 새벽이 되니 다소 회복되었습니다. 연약함 중에도 긍휼을 베푸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올해도 벌써 절반이 지나갑니다. 한시적인 인생, 결코 헛되지 않은 수고에 드려지게 하소서. 이는 내 의지로 불가하오니 날마다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바라나이다. 상전의 손을 바라는 종들의 눈같이 내 눈이 하늘에 계시는 주님을 앙모하나이다. 여리고의 기생 라합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구원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녀는 그로 인해 마음이 녹았고 정신을 잃었습니다. 그녀는 이방인이었으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하늘에서도 하나님이요, 땅에서도 하나님이라고(상천하지의 하나님) 고백하였습니다(2:11). 그리하여 이방인 중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행하신 일은 이스라엘의 구원과 족히 비교할 수 없이 크나이다. 하나님이 행하신 크신 일을 생각하니 구원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요? 종이 드릴 것은 거저 주시는 영광스러운 은혜를 찬양할 것뿐입니다. 오늘은 복음충신교회에서 예배드리고 말씀을 전합니다. 먼저 말씀 앞에 엎드리오니 내 영혼을 보혈로 정케 하소서. 진리의 영으로 말씀을 조명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3. 본문 주해

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은 왕 앞에 크고 존귀한 자였다. 그러나 그는 나병환자였다. 그의 집에 포로로 잡혀 온 이스라엘 소녀가 사마리아에 있는 선지자를 천거하였다. 내 주인이 그에게 가면 나병을 고친다는 것이다. 나아만은 왕의 친서를 들고 많은 예물을 준비하여 이스라엘 왕에게로 갔다. 그러나 이스라엘 왕은 자기는 사람을 죽이거나 살리는 신이 아니라고 하며 옷을 찢었다.

 

이 소식을 듣고 엘리사는 나아만을 자기에게 오게 하였다. 나아만이 엘리사의 집에 도착하자, 엘리사는 사환을 시켜 치유의 말씀을 전하였다, 요단강에서 일곱 번 씻으면 나병이 낫는다는 것이다. 나아만은 엘리사가 직접 나와 영접하고, 아픈 부위에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손을 얹고 치유하기를 바랐다. 나아만은 박대당했다는 느낌에 분노하고 돌아섰다. 그러나 부하들의 권면으로 그는 요단강에서 일곱 번 씻었고 병이 나았다.

 

15-27절은 이후에 일어난 일이다.

나아만 장군이 모든 군대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 돌아왔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참 신인 것을 고백하였다(15절). 나아만에게 치병보다 더 큰 일이 일어났다. 이방 신을 섬기던 그가 여호와 하나님을 신으로 믿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준비한 예물을 드리고자 하였다.

 

하지만 엘리사는 여호와의 살아계심으로 맹세하면서 그 예물을 받지 않았다(16절). 왜냐하면, 나아만이 고침 받은 것은 엘리사 자신이 보상받을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엘리사는 처음부터 감추어져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이 나아만을 치유하였다. 예물과 영광과 찬사를 받으실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시다. 그래도 나아만은 엘리사가 예물 받기를 강권하였다. 그러나 엘리사는 끝까지 예물을 거절하였다.

 

그러자 나아만은 자기를 ‘엘리사의 종’이라고 칭하며 노새 2마리에 싣고갈 흙을 달라고 하였다(17절). 선지자의 종인 자기는 이제부터 여호와 외에 다른 신들에게는 번제나 희생제를 드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제부터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기로 한 나아만은 선지자의 종으로서 미리 용서를 구할 것이 있다고 말한다. 그가 모시는 왕이 림몬의 성전에 예배드리려고 그곳으로 들어갈 때 왕을 부축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그도 허리를 굽히고 림몬의 성전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림몬의 성전에서 허리를 굽힐 때 여호와께서 이 일 때문에 선지자의 종인 자기를 벌하지 말고 용서해 주시기를 바란다(18절).

 

나아만은 거듭해서 자기를 ‘선지자의 종’으로 부른다. 그가 처음 엘리사의 집에 왔을 때는 선지자의 주인 노릇을 하였다. 선지자가 직접 나와 마중하지 않은 것을 두고 격분하여 돌아섰다. 그러나 이제는 겸비하기 이를 데 없어 자기를 선지자의 종으로 칭한다. 그러면서 엘리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겠다고 말한다.

 

엘리사는 나아만에게 안심하고 돌아가라고 말하였다. 이렇게 하여 나아만은 엘리사를 떠나 얼마쯤 길을 갔다(19절).

 

20-27절은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나아만 장군을 속여 예물을 취하는 장면이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스스로’ 생각하였다. 이는 스스로에게서 나온 육신의 생각이다. “나의 주인께서는 이 시리아 사람 나아만이 가져와 손수 바친 것을 받지 않으셨구나. 주님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지만, 내가 그를 뒤쫓아가서 무엇이든 좀 얻어 와야 하겠다”(20절). 16절에서 엘리사는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며 나아만 장군의 예물을 완강히 거부하였다. 게하시는 스스로 생각하여 나아만 장군의 예물을 받겠다고 하며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였다. 게하시의 탐욕의 배후에 여호와의 이름으로 속이는 자가 있다.

 

게하시는 스스로 생각한 바를 행동으로 옮긴다. 그가 나아만을 뒤쫓아가자, 나아만이 수레에서 내려 그를 영접하였다(21절). 엘리사의 사환을 보고도 수레에서 내린 나아만의 모습은 전에 엘리사가 나와 자기를 영접해주기를 바라던 때의 거만함과 크게 대조를 이룬다.

 

나아만이 게하시에게 ‘평안하냐?’라고 묻자 게하시는 화답하며 그에게 용건을 말한다. 주인 엘리사가 말하기를, 선지자의 제자 중 두 청년이 에브라임 산지에서 엘리사에게 왔는데, 두 청년에게 은 1달란트와 옷 두 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22절). 게하시는 그럴듯한 거짓말로 나아만을 철저히 속였다. 나아만은 게하시가 구하는 것 이상으로 은 2달란트와 옷 두 벌을 주었다.

 

나아만은 그의 부하에게 그것들 메고 가게 하였다. 언덕에 이르자, 게하시는 그들의 손에서 그것을 받아 집 안에 들여놓고 그 사람들을 돌려보냈다(24절). 그 후 게하시가 주인 엘리사 앞에 섰다. 엘리사가 그에게 어디에서 오느냐고 묻자, 게하시는 시치미를 뚝 떼고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았다고 말하였다(25절). 그때라도 게하시가 자기 죄를 자백했다면 용서받았을까? 게하시는 탐욕으로 취한 죄에 거짓의 죄까지 더하고 있다.

 

그러나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어떤 사람이 너를 만나려고 수레에서 내릴 때에, 내 마음이 너와 함께 거기에 가 있지 않은 줄 알았느냐? 지금이 은을 받고 옷을 받고, 올리브 기름과 포도나무와 양과 소와 남녀 종을 취할 때냐?”(26절). ‘마음’(히, 레브)은 선지자의 인식 능력을 가리킨다. 이는 선지자가 심적 혹은 영적으로 그곳에 있었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정중호).

 

지금이 은과 옷과 감람나무 기름과 포도나무와 양과 소와 남녀 종을 취할 때냐는 엘리사의 책망은 하나님의 역사에 탐욕을 부리는 게하시를 꾸짖는 말이다. 실제 게하시는 은과 옷만 취하였으나 엘리사는 다른 것들도 취한 것으로 간주한다. 물론 은으로 다른 것을 살수도 있으나 엘리사의 요점은 게하시의 과도한 물욕을 책망하는 것이다.

 

그리고 게하시를 저주하되, 나아만의 나병이 그에게로 옮아갈 것이고 그의 자손도 영원히 그 병을 앓을 것이라고 말한다(27a절). 게하시가 엘리사에게서 물러 나오니, 나병에 걸려 피부가 눈처럼 하얗게 되었다(27b절).

 

나아만은 엘리사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나병이 나았다. 게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역사 앞에 탐욕을 부려 나병이 들었다. 나아만은 병이 나은 후 겸비하여 오직 하나님만 섬기기로 하였다. 게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 앞에서 탐심을 채우고자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그의 이름을 망령되이 여겼다.

 

엘리사는 지금이 뇌물을 챙길 때냐고 게하시를 책망하고 그를 저주하였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이방인이 치유받고 구원받는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때가 아닌가? 그래서 엘리사는 살아계신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예물을 거절하였다, 게하시는 그것을 보고도 육신의 생각에서 나온 탐욕을 채우고자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여겼다. 엘리사는 그의 시종이라도 이 죄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다루었다.

 

엘리사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예시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일을 그대로 행하신다. 그 일은 죽은 자를 일으켜 살리는 것(요 5:21), 곧 그가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생명을 주는 일이다(요 3:14-15). 이것은 인간이 결코 협력할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친히 홀로 행하신 일이다. 그런데 그 일을 전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 일 앞에서 탐심을 채우겠는가?

 

종교는 행위에 대한 보상을 요구한다. 복을 빌어주는 자는 복채를 요구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은혜로 주신다. 한 가지 요구하시는 것이 있다면, 거저 주신 영광스러운 은혜를 찬양하는 것뿐이다(엡 1:6).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크신 일, 곧 생명을 주는 복음 전도자로 일생을 바쳤다. 그가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할 때 값없이 전하는 것을 보상으로 생각하였다. “그리하면 내가 받을 삯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을 전하는 데에 따르는 나의 권리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그 사실입니다”(고전 9:18).

 

당시 상업도시인 고린도에는 거리의 철학자들이 왕래하였다. 그들은 특정한 가르침을 전하고 보상을 요구하였다. 바울은 그런 분위기에서 은혜의 복음을 전하였다. 그는 복음이 은혜가 되게 하도록 어떤 보상도 요구하지 않았다. 다만 사역에 필요한 재정은 고린도보다 더 가난한 빌립보 교회에서 후원받았다.

 

하나님의 크신 일을 전하는 자는 엘리사의 말대로 예물을 받을 때와 받지 아니할 때를 알아야 한다. 바울은 복음에 장애가 된다면 차라리 죽을지언정 어떤 권리도 행사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런 권리를 조금도 행사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또 나에게 그렇게 하여 달라고 이 말을 쓰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하느니, 차라리 내가 죽는 편이 낫겠습니다. 아무도 나의 이 자랑거리를 헛되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고전 9:15).

 

복음 전도자뿐만 아니라 주의 일을 하는 모든 자는 사명과 탐욕의 경계선상에 있다. 1927년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책은 싱클레어 루이스의 소설 ‘엘머 갠트리’이다. 이 소설은 하나님에 대한 공적 담론이라는 현대의 곤경을 집약해서 보여준다. 소설은 엘머 갠트리가 대학 시절 회심하여 전국적 명성을 누리는 목회자가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엘머 갠트리는 ‘목회의 소명’과 ‘칭송받고 싶은 욕망’을 혼동한다. 그는 ‘설교’라는 마약에 중독되고 가장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군중이 교회 안에 있음을 알게 된다. 엘머 갠트리는 모든 시대 목회자의 위선을 경고하는 이야기이다(케빈 밴후저& 오언 스트래헌, <목회자란 무엇인가>). 엘머 갠트리의 이야기는 10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전혀 낯설지 않다.

 

이 이야기는 사명과 탐욕의 경계선상에 있는 게하시 같은 우리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경계선은 종이 한 장처럼 지극히 취약하다. 육체의 소욕을 가진 인간으로서 소명이 주는 탐욕에서 자유로운 자는 아무도 없다. 탐욕을 극복하는 길은 오직 한 가지이다. 매 순간 육체와 함께 그 속에 있는 탐욕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은 정욕과 욕망과 함께 자기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갈 5:24).

 

 

4. 나의 묵상

공동체 지체 중 어느 집사님은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가 너무 커서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른다고 하였다. 이단이나 사이비 집단은 이상한 교리를 내세우고 그 대가로 물질로 요구한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에 대해 어떤 보상도 요구하지 않는다. 나는 그에게 오직 거저 주신 영광스러운 은혜를 찬양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하였다. 정말이지,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드리는 찬양의 제사이다(히 13;15).

 

일본 홋가이도 CFNJ 성서학원에서 5일간 복음생명 세미나를 마치고 돌아왔다. 마지막 날 저녁에는 삿포로 연합기도모임에서 복음을 전하였다. 하나님이 행하신 크신 일을 전하였다. 선포자는 하나님이 하신 일에 어떤 대가도 지불하지 않았다. 그저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을 전했을 뿐이다. 물질이든 명예든 내가 받을 몫은 없다. 성서학원에서는 5일간 강의에 대한 강사비를 주었다. 나는 주저 없이 다시 헌금하였다. 그렇다고 모든 사례비를 거절하는 것이 아니다, 받을 때가 있고 거절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성서학원은 후원으로 여럽게 운영되고 있었다.

 

이것은 보이는 문제이고, 더 중요한 문제는 보이지 않는 탐심이다. 주님이 받으셔야 할 찬사와 영광을 내가 받으며 스스로 뿌듯해하는 일면이 있다. 주님의 손에 들린 지팡이에 불과한 자가 마치 주님처럼 행세한다. 게하시가 엘리사 흉내를 내다 망했다. 나 역시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자이다.

 

복음을 전하며 이날까지 먹고 마시는 것에 부족함이 없다. 그렇다고 내가 직접 일하여 자비량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 여러 지체가 정성껏 드리는 헌금, 때론 눈물겨운 헌금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저들은 직접 복음을 전하지 못하나 나를 통해 전하는 것을 기뻐하며 동역한다. 주님은 물론 동역하는 지체들 앞에서 부끄럼 당하지 않는 청지기로 사역하기를 간절히 구한다.

 

어제 이토 선교사와 아쉬운 이별을 하였다. 그는 이번에 통역을 하면서, 복음과 생명에 대한 진리를 더욱 선명히 깨달았다고 한다. 특히 십자가 복음을 전하며 그린 도표를 통해 복음을 이해하였다고 하며 감사했다. 이번 세미나에 외부에서 참석한 이들은 이토 선교사 부부와 정기적으로 만나 함께 사역한다고 하였다. 우리는 이들이 모일 때마다 생명을 나누는 홋가이도 공동체가 되도록 권면하였다. 그리하여 가을 세미나 때는 더 많은 신자가 복음을 알고 생명을 누리는 은혜를 구하였다.

 

 

5. 묵상 기도

아버지... 나아만 장군에게 하나님의 크신 일이 나타났습니다. 그는 단지 병을 고친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행하신 일에 엘리사는 깨어 있습니다. 나아만이 예물을 전하자, 살아계신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거부하였다.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는 그것을 보고도 탐욕이 가득 차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나아만에게 예물을 받아냅니다. 그는 엘리사의 사환이라도 저주를 받아 대대로 나병을 앓게 됩니다. 참으로 두려운 말씀입니다. 속이는 자는 주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탐심을 채우게 합니다.

 

아버지여... 하나님은 독생자를 내어주신 크신 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인간은 어떤 협력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홀로 행하십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저 주신 영광스러운 은혜를 찬양할 뿐입니다. 이 일을 전하는 전도자 역시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습니다. 육신의 생각에서 나오는 것은 온갖 종류의 탐심입니다. 주의 일을 위탁받은 자, 사명과 탐심의 경계선상에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은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입니다.

 

아버지... 지난 일주일간 일본 사역을 인도하시니 감사합니다. 선교팀이 코로나 증세로 고통당하는 것은 겸비케 하시는 것이니 감사하나이다. 그러나 계속되는 복음 사역에 장애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악한 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 있게 하소서. 우리의 뜻이 주의 뜻이 될 때 주님이 일하십니다. 금번 복음을 들은 이들을 중심으로 홋가이도에 공동체가 세워지기를 기도합니다. 주의 기쁘신 뜻이니 주께서 이루실 줄 믿나이다. 오늘은 복음충신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드립니다. 생명의 말씀이 영으로 역사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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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아답터 | 작성시간 24.07.01 아멘~ 사환 게하시의 탐욕이 내 안에도 있어 언제든지 나를 삼키려 든다 . 스스로에게서 나온 육신의 생각은 사명도 탐욕을 채우는 수단으로 여긴다. 복음의 등불을 든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잃어버리지 않기 원하며, 순리를 영리로 이용하지 않고 그 질서에 따라 진리 가운데 서 있기를 소망한다. 육신을 죽이고 영을 좇아 살아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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