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 할아버지와 토끼
오늘은 여러분에게 옛날이야기를 하나 해드릴게요.
제목은 ‘녹두 할아버지와 토끼’입니다.
옛날옛날 아주 먼 옛날 어느 산골에 할아버지 한 분이 살았어요.
할아버지는 빈대떡이 먹고 싶어서
녹두를 심어두고 열매가 맺기만을 기다렸어요.
얼마 후 녹두 열매가 맺었고
할아버지는 신이 나서
“이야∼ 녹두 농사가 풍년인 걸!”
하면서 신나했어요!
녹두밭 가까이에 토끼굴이 있었는데요,
토끼들은 맛있는 걸 찾다가
할아버지 녹두가 익어간다는 걸 알고 그리로 가기 시작했어요.
토끼 가족은 살금살금 녹두밭으로 가서
고소하다며 냠냠냠 쩝쩝쩝 먹기 시작해요.
그때였어요.
할아버지가 녹두밭에 나왔다가
토끼들을 보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요.
“이놈들 감히 내 녹두를 먹어?”
할아버지가 막대기를 휘둘러서
토끼들은 혼쭐이 났어요.
그러자 토끼들은 꾀를 냈어요.
차례를 정해 한나절씩 망을 보기로 한 거죠.
“녹두 할아버지가 온다.”
그러면 재빨리 숲 속으로 달아날 수 있었어요.
녹두 할아버지는 이 궁리 저 궁리 끝에 유인작전을 쓰기로 했어요.
눈에는 알밤을 얹고, 코에는 대추 끼고, 귀에는 호두 박고, 입에는 곶감을 물고, 배꼽에는 자두를 놓고, 양손에는 사과까지 들고 죽은 척!
토끼 가족은 녹두 할아버지가 죽은 걸 보고는 미안했는지 묻어주려 해요.
“우릴 그렇게 못살게 굴더니....... 쯧쯧, 양지 바른 곳에 묻어주자.”
“어어노오∼ 어어노오∼
녹두 할아버지 죽었네∼
어어노오∼ 어어노오∼
빈대떡도 못 부쳐 먹고 녹두 할아버지 죽었네∼.”
“이놈들! 아주 잘 걸렸다.”
죽은 척 했던 녹두 할아버지가 벌떡 일어나며 막내 토끼를 잡았어요.
할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와 막내 토끼를 삶아 먹으려고 솥뚜껑을 덮으려다가
부싯돌을 찾으러 방으로 들어갔어요.
그 사이에 잽싸게 솥에서 나온 막내 토끼는
울타리를 빠져나오다가 그만 할아버지에게 뒷다리를 잡혔어요.
"할아버지, 왜 제 다리를 안 잡고 울타리를 잡고 계세요?"
꾀 많은 토끼의 말에 그만 토끼 다리를 놓아버린 녹두 할아버지는
뒤늦게야 속은 걸 알고 약이 바짝 올라
솥뚜껑을 던지자 간장독이 와장창 깨지고,
화가 나서 긴 막대로 불을 질렀는데 지붕만 다 탔어요.
할아버지는 엉엉 울었답니다.
“아이고!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더니 내가 그 꼴이로군. 나 망했네, 망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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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웬 옛날이야기냐고요? 그럴만한 까닭이 있어요.
여러분도 알다시피 내가 요즘 녹두농사를 짓고 있잖아요?
작년 가을 현동 우산천 사면에 뿌린 녹두가 올 가을 잘 자랐지요.
두 걸음마다 녹두 씨를 뿌렸는데 그 자리마다 예쁘게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었어요.
‘이렇게 씨만 뿌려도 과연 싹이 날까?’
이런 걱정을 올 일 년 내내 했는데, 기특하고 대견하게도 쑥쑥 잘 커주었어요.
그래서 이런 생각을 했지요.
‘음, 녹두는 이렇게 씨만 뿌려도 잘 되는군. 그렇다면 올해는 두 걸음 사이사이에 마저 씨를 뿌리자. 그러면 내년에는 한 걸음마다 싹이 날 것이고 이 뚝방길 전체가 녹두 천지가 되겠지. 그러면 녹두거리라는 이름에도 걸맞겠는 걸.’
그래서 10월 이후로는 한 달 넘게 매일 그곳에 가서 녹두 씨앗을 열심히 뿌렸지요. 내년 가을을 생각하면 괜히 좋아서 혼자 실없이 웃기도 하면서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녹두에 이상한 일이 생겼어요.
분명히 그 전날에는 꼬투리가 많이 달렸었는데 그 다음날 보면 없어요.
남은 깍지도 없이 마치 부러뜨리거나 자른 것 같이 감쪽같이 사라진 겁니다.
나는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지요.
‘혹시 꼬투리가 썩어 떨어지는 병이 들었나?
새나 쥐나 두더지, 혹은 정말 토끼가 와서 따먹었을까?
그것 참 희한한 일일세.
그나저나 올해까지는 녹두 씨를 더 널리 뿌려야 될 텐데.’
곡절도 모른 채 그런 걱정을 지난 한 달간 했어요.
그러다가 결국 어제 저녁에 진상을 알게 되었지요.
오후 6시 넘어, 이제는 그 시각에도 벌써 어둡더군요, 올해 마지막으로 녹두 씨를 뿌리려고 또 녹두거리에 갔었어요.
그때 목격했지요, 어떤 할아버지가 허리를 굽히고 녹두를 따고 계신 것을.
한 손에 든 검은 비닐봉투는 이미 불룩하게 녹두로 가득 차 있었어요.
순간 기분이 묘하더군요.
‘올해까지는 따기보다는 더 많이 심고 싶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먼저 앞섰던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러나 곧,
‘심는 사람이 있으면 따먹는 사람도 있어야지, 암. 할아버지가 딴 것보다 내가 뿌린 것이 더 많으니 내년에는 틀림없이 더 많이 날 거야. 그리고 할아버지가 힘들여 수확하는 걸 보니 이게 녹두가 맞긴 맞는가 보네.’
하는 생각으로 나를 달랬습니다.
그래서 어제 저녁에는 어스름 속에서 할아버지는 앞에서 녹두를 따시고 나는 가만가만 뒤따라가며 그 자리마다 내가 미리 모아둔 녹두를 흩뿌렸지요.
이게 오늘 ‘녹두 할아버지와 토끼’라는 옛날이야기를 하게 된 사연이랍니다. 할아버지의 역할이 뒤바뀌긴 했지만요.
(2015.11. 7.)
(경남대 김원중)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배서영 작성시간 15.11.15 이쁜 맘이에요.
구부정한 몸짓으로 녹두를 따는
촌로의 손에 쥐어진 불룩한 까만봉지와
가만가만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교수님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같으네요.
내년에도 녹두거리가 풍성해서
우리 맘까지 풍성했음 좋겠어요 -
작성자한마음 작성시간 15.11.15 교수님..
그 할아버지가 야속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교수님의 베푸심의 마음과 모습에
감동스럽습니다.
오늘도 행복한 오후 보내시기를~^.^ -
작성자해든 작성시간 15.11.27 그 할아버지에게는 할머니가 계셨어요.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늘 그 둑길을 산책하였죠. 녹두꽃이 피는 둑길을 걸으며
"아이고 영감, 우째 여기에 녹두꽃이 이렇게 흐드러질까나. 녹두가 열리면 우리 녹두따다가 녹두전 부쳐 먹읍시다." 그랬어요. 근데 그만 할머니께서 최근 자꾸 아프시네요. 할아버지는 혼자 녹두를 따다가 할머니 좋아하시는 녹두죽을 끓이시기로 한거예요.ㅎㅎㅎ우리 교수님 녹두 드시고 그 할머니 벌떡 일어나셨음 좋겠어요.ㅋㅋ 너무 갔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