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석(多夕)은 많은 세 끼(多)를 다 먹지 않고 저녁(夕) 한 끼만 먹는다는 뜻이다.
1915년 김효정과 결혼하였고, 이후 최남선과 교제하며 잡지 《청춘》에 '농우', '오늘'등 여러 편의 글을 기고하였다. 1919년 삼일운동 때에 이승훈이 거사 자금으로 기독교 쪽에서 모금한 돈 6천원을 아버지가 경영하는 경성피혁 상점에 보관하였다. 후에 이것이 적발되어 압수당하였으며 류영모 대신 아버지 유영근이 체포되어 105일간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1921년 조만식의 후임으로 오산학교 교장에 취임하여 일년간 재직하였다. 1928년 YMCA의 연경반 모임을 지도하기 시작하여 1963년까지 약 35년간 계속하였다. 1928년 이전에는 아버지의 경성피혁상점의 일을 도왔는데, 이후로는 아버지 유명근이 차려준 솜공장인 경성제면소를 경영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잡지 《성서조선》에 기고를 하였으며 이 일로 1942년 일제에 의해 종로경찰서에 구금되었다가 57일 만에 서대전 형무소에서 아들 의상과 함께 풀려났다. 해방 후 행정 공백기에 은평면 자치위원장으로 주민들에 의하여 추대되었다
2025년 다석학회 알맞이 말톺-한글에 깃든 다석 류영모의 하늘’
‘솟난’은 탄생(誕生), ‘해돌’은 주년(週年), ‘알맞이’는 철학(哲學)을 뜻하는 우리말이다. 다석은 “우리말과 글로써 철학을 한 최초의 사상가”다.
신학자, 철학자, 영성가가 다석의 ‘한글 철학’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다석학회는 “‘훈민정음’의 글꼴에 ‘뜻’을 심어 철학하기를 수행한 다석의 사상세계 확인하는 자리”다.
학회는 ‘한글에 깃든 다석 류영모의 하늘’이란 주제를 두고 “다석이 평생을 연구한 주제가 바로 ‘하늘’이다. 그는 하늘님을 ‘없이 계시는 님’이라면서 한웋님, 한얼, 맨ᄎᆞᆷ, 한님, 맨웋 꼭대기, 없있한님, 참말슴, 하나님, 참그, 옹글님, 빈탕, 큰동그람, 빟, 왼통 등으로 썼다. 우리말과 글에 깃들어 있는 신비하고 놀라운 뜻을 찾아내어 밝힌 것”이라고 했다.
다석은 동양의 유교, 불교, 도교와 서양의 기독교 사상을 조화시키려 했으며 그의 대표적인 사상은 "얼나" 사상이다. '얼'이란 영 혹은 영적인 한글로, 영적으로 거듭난/ 깨달은 나 "영적인 사람"을 뜻하는 말이며 그와 반대는 "제나" 로, 육적인 사람 즉 탐욕, 분노, 미움, 어리석음, 색정의 죄성 혹은 동물성을 극복하지 못한 사람을 말한다. 그에게 구원은 제나에서 얼나로 변화되는 것이며 결국 모든 얽매임과 두려움과 질고에서 자유함을 얻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