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 둘레길 10구간, 견훤이 제왕의 꿈을 키운 희양산 아래서
이원근
◉ 2026.6.13
◉ 상내1리 마을회관-도탄고개-가은오픈세트장-문경석탄박물관-청풍정-죽문2리 경로당
백두대간 평전치에서 내려서면 상내리와 하내리의 평화로운 마을이 잔잔한 물길처럼 이어진다. 산자락 아래 자리한 마을은 오래된 시간의 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고, 길은 갱도 속 광부들의 삶을 보여주는 문경석탄박물관으로 향한다. 이어지는 양산천 들녘길은 하괴리와 상괴리, 죽문리를 지나며 펼쳐지는데, 들녘 너머로는 희양산과 구왕봉이 거대한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계절의 향기를 품은 풋사과들이 길동무가 되어준다.
이번 코스는 전체적으로 평탄하다. 초반에 잠시 오르막이 있지만 완만한 임도를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고개를 넘고, 이후에는 오르막이라는 느낌조차 들지 않을 만큼 부드러운 길이 이어진다. 죽문2리 버스정류장을 출발해 도로를 따라 걷다가 마을길로 접어들면 우사를 지나 임도가 시작되고, 체육시설이 있는 도탄 고갯마루를 넘어 내려서면 드라마 세트장이 나타난다. 잠시 더 걸으면 전망대와 석탄박물관이 자리한 왕릉리에 닿는다.
왕릉리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산간마을이다. 이곳에는 후백제의 시조인 견훤이 글공부를 했다고 전해지는 가절마을의 서당이 있고, 그의 아버지 이름을 딴 아자개장터도 자리하고 있다. 또한 어떤 선비가 바위를 숯으로 착각해 마을을 개척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도탄마을도 있다. 왕릉리라는 이름 역시 연대를 알 수 없는 능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작은 마을 곳곳에 전설과 역사가 스며 있어 길을 걷는 발걸음에 자연스레 이야기가 더해진다.
무엇보다 이 길의 주인공은 북쪽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이다. 지름티재를 가운데 두고 우뚝 솟은 희양산과 구왕봉은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희양산 오른편으로 이어지는 이만봉과 백화산의 능선은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장엄한 산세를 완성한다. 들녘 한가운데 서서 북쪽 대간 능선을 바라보고 있으면, 오랜 세월 한반도의 등줄기를 이루어 온 산맥의 기운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하다.
하지만 이날의 양산천 들녘길은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뜨거운 햇살 아래 놓여 있었다. 그늘 한 점 드문 길은 마치 수행자들의 고행길 같았다. 그러나 길 위의 뚜버기들은 달랐다. 뜨거운 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걸음을 이어갔다.
누군가는 눈앞에 펼쳐진 백두대간의 장엄한 풍경에 감탄하고, 누군가는 천 년 전 이 땅을 누볐을 견훤의 이야기를 꺼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렇게 웃음과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고단함은 어느새 뒤로 물러나고, 길 위에는 사람과 풍경, 그리고 역사가 함께 피워내는 이야기꽃만이 남았다. 양산천 들녘길은 단순히 걷는 길이 아니라, 장엄한 백두대간과 후백제의 옛이야기를 품고 사람들의 정겨운 발걸음이 어우러지는 길이었다.
희양산과 구왕봉 ▲ 희양산(999m)은 문경시와 괴산군의 경계로 동·서·남 3면이 화강암 암벽으로 이루어진 높이 999m의 거대한 돌산이다. 천년고찰 봉암사를 안고 있다. 희양산은 암산과 육산의 특징을 고루 갖춘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산이다. 희양산은 봉암사 스님들의 선수련장으로 일반인들의 출입을 통제하지만, 석가탄신일에만 봉암사 쪽 등산로를 개방한다. 구왕봉(879m)은 희양산과 함께 동서로 나란히 위치한 바위산이다. 왼쪽이 구왕봉이다. 잘룩한 데가 지름티재다.
▲ '산불됴심' 조선 시대 표석은 문경새재 어딘가에 있답니다. ‘됴심’은 1700년대 전후에 생겨난 구개음화 현상으로, 조선시대 영, 정조 무렵 제작된 공식적인 표석이란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이원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4 ㅡ 권수문
* 이번 구간은 문경 드라마셑트장과
석탄박물관등
명소도 많았지만,
출발시부터 내리쬐는 폭염은 끝까지 우리의
인내력을 시험하며 몸 속의 많은 노페물을
배출하게 해주었습니다.
멀리 우뚝 솟은 희양산을 바라보며
들려주시는 왕초성님의 역사 이야기와
함께, 지난 15년전에 답사한 대간길에 대한
추억은 무더위 속에 지루한 발걸음을
달래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온갖 신선한 채소를
정성껏 준비하여 우리들의 입맛을
즐겁게 해 주신 박재근동지님께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함께하신 동지여러분의 건승과 함께
7월에
다시 만나기를 기원합니다.
ㅡ -
작성자웅가네(박종웅) 작성시간 26.06.15 무더위속 연일 강행군을 해주신 이고문님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산너머에 새로이 합류하셔서 한식구가 되어주신 김선생님께도 깊히 감사드립니다.
이번 구간은 문경촬영지와 석탄박물관을 경험하며 둘레길 투어에 크다란 재미까지 더한것 같습니다.
함께 해주신 산너머 회원님들께도 감사와 고마움을 전합니다. 혹서기에 체력 잘 유지하시고 건강하시길 기원드립니다. 수고많이 하셨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이원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5 고마버요.
견훤의 숨결 따라 걷는 양산천들녘길, 햇살은 따가웠으나 발걸음은 가벼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