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군민회 게시판

권문해의 <대동운부군옥>의 학술적 가치를 어떻게 볼것인가?

작성자허철회|작성시간13.01.23|조회수130 목록 댓글 3

100% 신빙할 것인가 아니면 취사선택할 것인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대동운부군옥 권 6, 42면 <張자성씨조>에는 귀중한 이야기가 실려 전한다. 그 가운데 씨족사를 풀어나가는데 귀중한 말씀이 들어있다. 장씨(張氏)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초간 권문해 선생(예천권씨)은 자신이 편찬한 <대동운부군옥>에서 安東장씨(시조 장길=장정필)와 仁同장씨의 관련성을 펼치고 있다.安東장씨 측에서 지금 이야기하는 내용을 대동운부군옥에서 말하고 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최동순 | 작성시간 13.01.23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으로써 초간선생이 저술하였으나 임진왜란 발생으로 247년 뒤 후손에 의해 간행되었다.
    학술적 가치는 제가 논할 위치가 아니며, 다만 공직을 수행하면서 방대한 자료를 수집 정리하여 최초로 완성한 것을 볼 때 저자의 근면성에 경탄할 따름입니다. 학문을 향한 지독한 노력과 열정 이것이 허교수님이 제기한 예천인의 기질이 아닐까요?
  • 작성자허철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1.24 이수광의 <지봉유설>을 백과전서의 효시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대동운부군옥과 비교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 작성자최동순 | 작성시간 13.01.24 ‘대동운부군옥’은 초간 권문해(權文海) 선생이 1589년(선조 22) 대구부사(大丘府使)로 있을 때 편찬을 완료한 후 1591년 돌아가셨으며 임진왜란으로 간행을 못했다가 후손 권진락이 1812년(순조 12)에 간행을 시작하여 1836년(헌종 2)에 완간하였다. 반면 ‘지봉유설’은 이수광(李睟光:1563~1628)이 1614년경에 편찬하고 1634년(인조 12)에 아들이 출판하였다. 그렇다면 편찬은 ‘대동운부군옥’이 간행은 ‘지봉유설’이 빠른 것 같습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