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청도 호거산 운문사 순례 ③ 慶北 淸道 虎踞山 雲門寺 巡禮 三
대웅보전(大雄寶殿) 일명 비로전(毘盧殿) 보물 제835호.
운문사는 대웅보전이 둘이 있습니다. 이 대웅보전은 비로전으로 운문사 대중이 예불하기에 대웅보전이라 했는데 운문사 대중이 예불하기엔 비좁아 새로 1994년에 대웅보전을 신축하 여 대웅보전이 둘이 된 것이라고 합니다.
비로전은 앞면 3칸 옆면 3칸의 팔작지붕 형태이며조선후기 건축 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하여 보물 제835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안에는 비로자나불이 봉안 되어 있고 불단 서쪽 천장에는 종을 매단 용가(龍架)가 걸려 있고 잡아당겨 흔드는 줄이 달려 있습니다. 이 줄의 앞부분에 작은 동자상이 매달려 있는데, 운 문사 스님들은 악착같이 매달려 있다고 해서 악착 보살'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淸淨法身 毘盧遮那佛)
우보처 제화갈라보살 본존 석가모니불 좌보처 미륵자씨보살
오백 아라한상. 정면을 볼 때 좌측.
오백 아라한상. 정면을 볼 때 우측.
오백 아라한상의 모습
이 오백 아라한상은 본래 청도 적천사에 봉안되어 있었는데, 어느 시기인지는 모르나 운문 사로 이운하였다고 전해오지만 정확한 근거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삼층석탑 보물 제678호.
이 석탑은 대웅보전(비로전) 앞에 동ㆍ서로 건립되어 있습니다. 9세기 후반에서 10세게 초 반의 작품으로 추정하며 둘다 높이 540cm인데 동탑은 서탑에 비해 없어진 부재가 많아 후 대에 보수된 부분이 많아 서탑이 보물 제678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작압(鵲鴨)
관음전 옆에 작압(鵲鴨)이란 돋특한 이름의 전각이 하나 있습니다. 작(鵲)이란 까치요, 압(鴨)이란 오리란 뜻인데 무슨 사연이 있을 듯 합니다. 다음은 영남불교문화원 카페에 실 린 글입니다.
『서기 600년에 원광국사가 제1중창을 한지 330년 뒤 신라 경순왕 4년 서기 930년에 보량 국사가 제2 중창을 하게 된 데서 오늘의 작압전(鵲鴨殿)이 있게 되었다. 제2 중창을 했던 보량국사가 서역과 중국에서 유학을 하고 귀국하던 중 서해에서 용왕의 청으로 경을 설하여 주고 돌아오려 하는데 용왕이 작갑사의 옛터를 찾아 절을 지으면 반드시 불법을 보호하고 삼국을 통일할 어진 임금이 나올 것이라 하는 말을 듣고 돌아와 작갑사의 옛터를 찾았다.
그러나 흔적이 없어 북쪽 고개에 올라가 내려다 보니 황금탑이 보이므로 내려와 살폈으나 흔적을 찾지 못해 다시 현 북대암에 올라가 살펴보니 찬란한 빛을 발한 황금탑 주위에 까치 떼가 모여들며 땅을 쪼아대는 것을 보고 내려와 땅을 파보니 오래된 벽돌이 무수히 나와 작 갑사의 옛터임을 확인하고 그 벽돌로 탑을 조성하니 남은 게 없었다 한다.
까치떼들의 도움으로 작갑사를 중창하게 된 보량국사는 까치떼를 기념하기 위해 까지 작자 (鵲)에 오리압자(鴨)를 써서 작압전(鵲鴨殿)을 지으니 때에 사람들이 작압사(鵲鴨寺)라 불렀 으며 고려 태조가 운문선사(雲門禪寺)라는 사액을 내려서(937년) 이때부터 운문사라 불리웠 으며 호거산을 운문산이라 하게 되었던 것이다.』
작압(鵲鴨)은 처음 보양 국사가 지었고, 1105년(고려 숙종 10) 원응 국사가 3중창하였다. 그 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중건되었는데,이름 그대로 까치집 모양을 하고 있으며 경 내의 전각 중에 가장 작은 건물입니다. 편액은 '작압(鵲鴨)'이라고 되어 있으나 작압전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이 작압의 원형은 신라시대에 조성한 전탑 형식의 불전(佛殿)이었는데, 세월이 흘러 무너지자 1935년 무렵에 벽체의 벽돌을 제거하고 목조 건물의 형태로 완전히 새롭게 만들 었다고 합니다. 본래는 지금의 종무소 중앙에 위치해 있었는데, 1941년 현재의 자리로 옮 겼다고 합니다. 작압 석조 여래좌상 보물 제317호.
이 석조 여래좌상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어 석가모니불로 여겨집니다. 석불좌대 사리공 (舍利孔)에서 신라 경문왕 5년(865)에 해당하는 '함통육년(含通六年)'이라는 연호가 새겨진 사리합(舍利盒) 등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어, 이 불상 역시 그 당시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 합니다.
불신의 높이가 63cm, 대좌의 높이 41cm, 광배의 높이가 92cm 라고 합니다. 이 여래좌상은 제작년대가 거의 확실하여 9세기 불상 양식의 한 표준작이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 라 여겨져 현재 보물 제317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불상 좌우에 사천왕 석주가 세워져 있습니다.
사천왕 석주(四天王石柱) 보물 제318호.
보탑을 든 북방 다문천왕과 명호를 알 수 없는 칼을 든 천왕.
금강저를 든 천왕과 봉을 든 천왕
이 들의 명호는 잘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이 석주가 본래부터 이렇게 위치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관음전(觀音殿)
앞면 1칸, 옆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건물 양식으로 보아 조선 초기에 지은 것으로 추정 된다고 합니다. 현재의 건물은 1979년에 중수했다고 합니다.
관음전
중앙에 관음보살 좌상이 봉안되어 있고, 후불탱으로는 고종 2년(1865)에 조성되고 1940년 개비된 수월관음도가 모셔져 있으며, 철종 12년(1861)에 조성된 신중탱이 있으나 촬영하지 못했습니다.
명부전(冥府殿)
앞면 3칸, 옆면 2칸의 맞배지붕 형태로 19세기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안에는 중앙에 금동 지장보살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소조로 조성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입상(立像) 협시하고 있습니다. 그 옆으로는 시왕상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우보처 무독귀왕 지장보살 좌보처 도명존자
후불탱으로 지장탱이 봉안하였는데, 1889년 안동 봉정사 지족암에서 조성한 것이랍니다. 이 탱화 제작에는 한규(翰奎)ㆍ서휘(瑞暉)ㆍ태삼(台三)ㆍ봉화(奉華)ㆍ정선(正善) 등의 금어 5 명이 참여 했다고 합니다.
|
댓글
댓글 리스트-
답댓글 작성자백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1.05.28 수행은 주변 청소부터... 수행정진이 그런 마음에서 나올 것입니다. 번뇌의 티끌을 쓸어내고자... ^-^ _()_
-
작성자해사랑 작성시간 11.05.28 오백나한은 사람들이 선인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을 보고 원숭이들이 모여 우리도 선인께 공양을 올리자는 회의 끝에 연못에 뜬달을 건져 선인께 올리려고 오백마리 원숭이가 안간힘을 쓰다 오백마리 원숭이가 다같이 빠져죽어는데 그은공으로 사람으로 태어나 오백나한이 되었다는 학인스님의 설명이 있어습니다. 원숭이는 산에 많이 있는 열매나두고 연못에있는 달을 건져 올릴 생각은 가장귀하고 가장좋은 것을 올리고 싶어던 모양입니다.^-^_()_
-
답댓글 작성자백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1.05.28 예, 그렇군요. 오백나한은 한 때 도둑떼였는데 교화를 받고 수행하여 성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에 관한 이야기를 나중에 올려봐야겠네요. ^-^ _()_
-
작성자비니초 작성시간 11.06.02 악착보살님 이야기가 참 감명깊었습니다. ^-^_()_
-
답댓글 작성자백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1.06.02 악착 같이 공부해야지요. ㅎㅎㅎ ^-^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