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란 무엇인가』를 읽고
저자: 박 영선
출판사: 엠마오(서울:1994)
본 서는 신자가 왜 교회로 부름을 받으며, 교회안에서 어떤 유익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측면에서 서술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굳이 신자들을 교회로 부르셨을까요?
저자는 본 질문에 대해서 두가지 답변을 들고 나옵니다. 아마 두가지 답변이 가능하다는 얘기겠지요. 첫째는 신자로 하여금 무엇을 하게 하려는 것이다라는 답이고, 두 번째는 신자가 궁극적인 목표라는 답입니다. 즉 신앙은 'doing'에 관한 문제인가 아니면 'being'에 관한 문제이냐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저자는 신자가 궁극적인 목표이며 'being'에 관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한다면 '행함'의 문제가 아니라 '됨'에 관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자가 보기에 교회의 목표와 본질은 어떤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의 성품과 그들이 완성되어가는 것이며 영광스럽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목표가 신자다움에 있기에 저자에게 있어서 '스데반'은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즉 스데반의 순교사건을 통해서 신자다움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를 통감하는 것입니다. 뭔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돌에 맞아 죽어 가면서도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하게 된 그 됨됨이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자의 됨됨이는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즉, 신자 생활의 가장 중요한 책임들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한 몸을 이룬 지체끼리 화목하고 힘을 모아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해내가는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합니다. "왜 하나님은 신자를 신자답게 만들어 가시는 목표를 개인적으로 하지 않으시고 교회를 통해서 하시는 걸까요?" 이에 대한 답변으로 저자는 신자답게 되어가는 것이 [관계성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즉 성경에서 제일 많이 요구하는 하나님의 백성다운 자질과 본질로써 요구되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혼자 갖고 있는 것이 아니고, 혼자서 혈서 쓰는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저자에게 교회란 신자됨을 훈련하는 훈련소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바탕위에서 저자는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를 "생명"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유는 교회안에 '자라남'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왜 허락하셨느냐 하면 '자라남'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저자가 주장한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두신 이유는 신자들을 신자답게 만드시기 위해서 인데 신자됨이란 성품적이기 때문에 관계를 통해서 이루어지며 생명적이기 때문에 자라남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속에서 저자는 교회와 하나님나라의 관계를 조명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이므로 신자의 삶은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느냐하는 문제로 귀착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시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자리잡으면서 이제 신자에게 순종이라는 열매가 맺어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교회란 하나님 나라라는 목표를 향하여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시작하신 모집과 훈련기관으로써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자질인 순종을 배우는 장(場)이라는 것입니다.
[짧막한 논의]
이근호 : 교회를 위한 예수는 없습니다. 단지 예수님을 위한 교회만 있을 뿐입니다.
손성식 : 옳습니다. 하지만 본문은 신자의 실존과 만남의 장으로서 교회의 관계를 묻고 있습니다. 신자 스스로 각개전투하면 될텐데, 왜 굳이 소대에 소속시켰냐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본 서는 교회란 일하는데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답게 되는 장이라는 것입니다. 일터같은 한국교회를 시비거는 맥락에서 말입니다.
장병엽 : 교회란 완전하다,불완전 하다면 그 시로부터 교회가 아니다.이거 말됩니까?질문입니다.만약,그러하다면 우리가 머리이신 예수님만 바라보면 되곘네요?맞습니까?
손성식 : 본 서는 교회가 완전하냐 아니냐를 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통해서 신자가 얻을 수 있는 유익이 뭐냐에 대한 논의입니다. 이 점을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본 서를 통해서 교회가 일하는 장이 아니라 관계의 장임을 주장하고 나선 점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저자: 박 영선
출판사: 엠마오(서울:1994)
본 서는 신자가 왜 교회로 부름을 받으며, 교회안에서 어떤 유익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측면에서 서술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굳이 신자들을 교회로 부르셨을까요?
저자는 본 질문에 대해서 두가지 답변을 들고 나옵니다. 아마 두가지 답변이 가능하다는 얘기겠지요. 첫째는 신자로 하여금 무엇을 하게 하려는 것이다라는 답이고, 두 번째는 신자가 궁극적인 목표라는 답입니다. 즉 신앙은 'doing'에 관한 문제인가 아니면 'being'에 관한 문제이냐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저자는 신자가 궁극적인 목표이며 'being'에 관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한다면 '행함'의 문제가 아니라 '됨'에 관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자가 보기에 교회의 목표와 본질은 어떤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의 성품과 그들이 완성되어가는 것이며 영광스럽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목표가 신자다움에 있기에 저자에게 있어서 '스데반'은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즉 스데반의 순교사건을 통해서 신자다움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를 통감하는 것입니다. 뭔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돌에 맞아 죽어 가면서도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하게 된 그 됨됨이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자의 됨됨이는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즉, 신자 생활의 가장 중요한 책임들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한 몸을 이룬 지체끼리 화목하고 힘을 모아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해내가는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합니다. "왜 하나님은 신자를 신자답게 만들어 가시는 목표를 개인적으로 하지 않으시고 교회를 통해서 하시는 걸까요?" 이에 대한 답변으로 저자는 신자답게 되어가는 것이 [관계성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즉 성경에서 제일 많이 요구하는 하나님의 백성다운 자질과 본질로써 요구되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혼자 갖고 있는 것이 아니고, 혼자서 혈서 쓰는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저자에게 교회란 신자됨을 훈련하는 훈련소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바탕위에서 저자는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를 "생명"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유는 교회안에 '자라남'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왜 허락하셨느냐 하면 '자라남'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저자가 주장한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두신 이유는 신자들을 신자답게 만드시기 위해서 인데 신자됨이란 성품적이기 때문에 관계를 통해서 이루어지며 생명적이기 때문에 자라남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속에서 저자는 교회와 하나님나라의 관계를 조명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이므로 신자의 삶은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느냐하는 문제로 귀착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시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자리잡으면서 이제 신자에게 순종이라는 열매가 맺어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교회란 하나님 나라라는 목표를 향하여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시작하신 모집과 훈련기관으로써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자질인 순종을 배우는 장(場)이라는 것입니다.
[짧막한 논의]
이근호 : 교회를 위한 예수는 없습니다. 단지 예수님을 위한 교회만 있을 뿐입니다.
손성식 : 옳습니다. 하지만 본문은 신자의 실존과 만남의 장으로서 교회의 관계를 묻고 있습니다. 신자 스스로 각개전투하면 될텐데, 왜 굳이 소대에 소속시켰냐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본 서는 교회란 일하는데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답게 되는 장이라는 것입니다. 일터같은 한국교회를 시비거는 맥락에서 말입니다.
장병엽 : 교회란 완전하다,불완전 하다면 그 시로부터 교회가 아니다.이거 말됩니까?질문입니다.만약,그러하다면 우리가 머리이신 예수님만 바라보면 되곘네요?맞습니까?
손성식 : 본 서는 교회가 완전하냐 아니냐를 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통해서 신자가 얻을 수 있는 유익이 뭐냐에 대한 논의입니다. 이 점을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본 서를 통해서 교회가 일하는 장이 아니라 관계의 장임을 주장하고 나선 점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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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holyjoy 작성시간 04.11.03 손성식목사님은 박영선목사님의 논지를 "Being"과 "Doing" 중에서 "Being"을 취하신 것으로 보고 있씁니다.교회의 존재의의를 이렇게 "존재"와 "관계"라는 식으로 대립적으로 이해하면, 비성경적입니다. 성경은 그 모든 것을 다 포함합니다. 한 가지만을 두드러지게 강조하게 되면서부터 "왜곡"이 오게 되지요. 그것을 분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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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holyjoy 작성시간 04.11.03 하지 못하고 토를 다는 손성식목사나 이근호목사의 비평은 짱이 아니고 황입니다. 한 면만 보지 말고 두루두루 보면서 판단해야 보다 근사치에 가까와집니다. 자기 보고 싶은 것만 보면, 말로는 "욕망의 잠자리채"를 논해도, 자신이 그런 "욕망의 잠자리채" 갖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비판하지 못하는 소경이 됩니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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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holyjoy 작성시간 04.11.03 면서 다른 소경을 인도하겠노라고 건방을 떠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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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디아세케 작성시간 04.11.03 스데반이 북한의 김정일체제에 있다면 스데반은 김정일의 반복음적 독재를 지적하다가 죽겠습니까? 독재를 고무시키는 설교를 하겠습니까? 위 글은 복음의 사회적 구원을 방관하고 개인구원에 안주시키는 경향이 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