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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스토트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읽는 중, 하나님의 사랑과 진노에 대해

작성자려리|작성시간10.08.15|조회수503 목록 댓글 4

호세아서 11장에 대해서

 

'여기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 내부의 감정의 갈등이며, 그 속성 사이의 분쟁이다. ... 그분의 의 때문에 하셔야 하는 일과, 그분의 사랑 때문에 하실 수 없는 일 사이의 갈등을 입증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과 사랑, 진노와 자비 중 하나가 다른 하나에 의해서 삼켜지면 안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치 요즈음 많은 크리스찬들이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서 거의 생각하지 않는 것 처럼요. '거룩과 사랑, .. 자비와 진노의 이중성이 용해되어서 하나의 종합적인 개념으로 바뀌게 되면, 동시에 하나님에 대한 성경적인 지식의 심각성, 즉 계시와 대속의 실재와 신비가 반드시 파괴된다. ... 여기서 모든 참된 기독교 신학의 변증법이 생겨난다. ...' (존 스토트가 인용한 에밀 브루너의 글 中)

 

여기까지는 이해를 하겠습니다. 하지만 존 스토트가 계속 해서 인용한 브루너의 글에서는

 

'하나님에게서 돌이켜 등을 돌린 사람들이 경험하는 형태 속에서는 하나님의 진노가 곧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또 그가 인용한 포사이스의 글에서는 '기독교는(그가 이렇게 썼다.) 다른 모든 것에 앞서서 하나님의 거룩에 관심을 쏟는데, 이 거룩은 결국 인간에게 사랑이 된다. ... 나의 출발점은, 그리스도의 일차적인 관심과 계시는 단순히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사랑이 아니라, 그런 사랑의 거룩이라는 것이다.' (이상, 그리스도의 십자가 246-248p)

 

이와 관련해서, 제임스패커는 그의 책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하나님의 성품은 자신의 모든 행동 속에서 끊임 없이 드러난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행동에서 그의 사랑이 드러나듯이, 하나님의 모든 행동에서 그의 공의가 드러난다고요. 하지만 하나님의 진노가 또한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점은 쉽사리 이해가 잘되지 않네요. 구약에서의 소돔과 고모라, 가나안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 여호수아서에서의 아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신약에서의 헤롯과 아나니아-삽비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등등은 당연히 죄에 대한 하나님의 적대감, 진노를 드러내는 것이지만 이것이 또한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말인가요?

 

성경에서 증언하기를, 하나님은 죄인을 사랑한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에게 나아오는 죄인들을 그분의 인자하심으로 품으시는 분이시잖아요. 하지만 위의 경우처럼 죄인들을 심판 하실 때도 역시 그분은 그 죄인들을 사랑하시는 건가요? 밑에서도 관련이 있는 질문을 올렸지만, 하나님의 진노와 사랑에 대해 개념이 잘 잡혀있지 않아서 질문합니다. 부탁드립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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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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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바보새 | 작성시간 10.08.15 저도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만 주제 넘게 몇마디 거들어 보겠습니다. 존 스토트의 책 전체를 읽고 답변을 드려야겠지만 시간상 양해하시길,,, 존스토트는 기본적으로 <영혼 멸절설>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스토트가 하나님의 진노가 곧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하는 까닭은 진노하심으로 그들의 영혼을 멸절하시는 것이 그들을 영원토록 지옥의 형벌에 가두지 않는 사랑의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다른 방식으로도 이해는 가능합니다. 예컨대, 로마서에서 하나님의 진노는 유기 곧 <내어 버려 두심>으로 강조되어서 표현됩니다. 하나님은 선인과 악인에게 고루 해와 비를 주시듯이 그 내어 버려 두심이 진노라면
  • 작성자바보새 | 작성시간 10.08.15 이는 여전히 하나님에게 등을 돌린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주시는 것이며 이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아니겠습니까? 또 다른 방식으로는 바벨탑 사건이라든지, 노아의 홍수, 소돔과 고모라 사건은 사건의 당사자에게는 큰 진노의 사건이지만 동시에 인류 전체를 고려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긍휼이기도 합니다. 바벨탑 사건의 언어를 혼잡케 하심은 더 타락하여 완전히 등을 돌리는 일을 방지하심이지요. 이 역시 기회를 주심으로 이해할 수 있고, 그런 점에서 진노 역시 하나님의 사랑이라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존 스토드의 위와 같은 견해에 대한 저의 심증은 아마도 <영혼 멸절설>에 기인한 것이 아니겠는가? 미루어 짐작할 뿐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바보새 | 작성시간 10.08.15 PS. 사랑과 권력의 특징은 절대로 나눠 갖지 않는다는 것이겠지요. 거룩이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람하심에 있어서 결코 하나님 아닌 다른 것과 나누어 갖지 않음을 의미하지 않을까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그리고 거룩은 다른 모든 하나님의 성품들과 달리 하나님의 모든 성품과 그의 위격의 전 영역에 미치는 특성이지요. 그래서 하나님 편에선 거룩, 우리편에서는 순결.... ^^
  • 작성자바보새 | 작성시간 10.08.15 충분한 답변이 되었을까요? 사람에겐 늘 모자람이 있지요. 그러나 늘 과함보다 모자람을 자각하는 것이 주님 앞에서 은혜임을 깨닫습니다. 다 이해되지 못하여도 그 분이 우리를 사랑하심을 확신할 수 있지 않을까요? 때론 아이들이 부모의 모든 행동을 이해하지 못해도 부모가 자신을 사랑함을 확신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괜히 제대로 설명하지 못함을 애써 변명하려는 것 같아 이즈음에서 그만하렵니다. 려리님 덕분에 하나님의 진노와 사랑 그리고 그의 거룩에 대해 다시 묵상해게 되어서 감사했습니다. 답을 하려기 전에 먼저 늘 주의 은혜를 간구하는 마음을 달라고 구해야 겠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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