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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신재연|작성시간07.11.07|조회수185 목록 댓글 12

방언을 하지 않는 신자들에게
  
김삼   2007/11/02, 조회 : 890, 추천 : 0 
1. 
필자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방언전도사'라고 할 만큼 방언을 강조해 왔다. 
20여 년전에 1년간 애타게 사모하다가 방언을 처음 하고 나서 너무도 소중하고 귀함을 깨달았기에 그렇다. 

방언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과히 중요하지 않은 하나의 '옵션'으로, 심지어 '필요악' 또는 전혀 불필요한 해악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방언은 예수 안에 거듭난 사람 즉 신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나 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이상적이다(맑16:17a, 코A 14:5a-이 구절은 방언을 부정하는 뜻이 결코 아니다!). 방언은 코린토A서 12:4~11에 나열된 모든 초자연적 은사로의 관문이기 때문이다. 믿든 말든. 

흔히 칼뱅주의권 사람들 가운데는 방언은 장로교인 또는 칼뱅주의자들과는 무관하며, 아르미니우스주의자 아니 그 가운데서도 오로지 오순절교인(Pentecostal)들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성향이 있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련다. 

2.
오래 전 필자의 중학교 시절. 집안 형편으로 식구들이 모두 상경하고 혼자 몇 년 간 한 목회자 집안에 머물었다. 그 목회자는 유명 부흥강사였고 매우 경건한 가정이었는데 한 가지 이상한 사실을 발견했다. 걸핏하면 사람들이 한 방 가득 모여 앉아 박수를 치며 찬송을 하고 요란하게 기도하다가 갑자기 이상야릇한 소리를 내고 벌벌 떨며 읍곡을 하는 것이었다. 

어린 마음에 그 소리가 처음엔 귀에 설고 하도 괴이쩍게 여겨져 이질감과 아울러 호기심을 가졌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읍곡'이 아니고 방언이란 것이었다. 성경에도 방언에 관한 기록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 목회자는 과거 나의 고향 모 교회 담임목사님으로, 6.25 전쟁 당시 순교적 각오로 목숨 걸고 남하한 분이었고 정통 보수 장로교인이었으나 그 교회는 은사가 넘치는 매우 열정적인 교회였다.  

그러려니 하고 넘어 갔는데, 그 교회엔 어린 초등학생으로부터 어른들까지 방언하는 사람들이 퍽 많았다. 특히 한 장로의 집안은 어린이로부터 어른까지 온 가정이 방언을 하고 있었다. 공개적으로 하진 않고 반드시 따로 모여 소위 '은사기도집회'인가를 하면서 하나의 필수과정으로서 방언을 했다. 추측컨대 목사와 그 장로 가정이 주동이 되어 은사집회를 자주 갖는 듯 했다. 

좀 이른 사춘기였던 나는 안 그래도 공부와 다른 관심거리가 많아 별로 치심치 않았지만, 방언하는 그 장로 가정은 부모든 자녀든 어느 모로나 아주 모범적인 집안이었기에 내심 부러운 생각도 없지 않았다. 

내게 한동안 어머니를 대신했던 그 목회자 부인은 교인들 중 환자를 상대로 자주 안수기도를 했고, 어린 필자에게도 가끔 안수를 해 주었다. 안수할 때는 대상자에 따라 우리말 또는 방언으로 기도하고 스스로 통역을 했다. 안수를 받고 나서 신기하게도 언제나 병이 낫곤 했다. 나는 무엇보다 그 방언이란 것을 신기하게 여겼다. 

그 목회자는 가끔 미국인 목회자도 만나고 미국에서 편지도 오가곤 해서 처음엔 방언이 영어의 일종이거나 모종의 외국어인 줄만 알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렇지 않은 초자연적 언어임을 어렴풋이 느끼곤 했다. 훗날 그 목회자는 필자의 출신 교단인 모 보수 장로교단의 총회장이 됐다.  

그 뒤로도 필자는 방언을 하는 장로교인들을 자주 발견하곤 했다. 그러나 정작 필자 자신은 수십 년 후에야 아내의 강권으로 방언을 하게 됐다. 그것이 못내 후회스럽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그때 어린 중학생 시절, 그 장로 집안 식구들처럼 방언을 시작했더라면 어땠을까..그후 다양한 은사를 발견하고 활용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유감스럽게도 당시 내게 방언을 권한 사람은 아무도 없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는 오랜 세월 거의 잊고 지냈다. 그러나 그 뒤로도 어머니 같던 그 목회자 부인에게만 이따금 찾아 가면, 언제나 감미롭게 들리는 방언기도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이상스럽고 신기한 언어가 때로는 아련히 하늘음악 같이 느껴지곤 했다.  

3.
방언은 교파, 교단이나 신학노선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특정 교파, 특정 집단의 트레이드마크, '딱지'나 전유물이 결코 아니다. 칼뱅주의 교인이든 아르미니우스주의 교인이든 구분없이 누구나 할 수 있고 하게 돼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은 공평하지 않은 분이실 뿐!

신학대학 시절 한 때 몇몇 학우들이 기숙사 옥상에서 '방언 연습'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좀 불쾌한 느낌이 든 때가 있었다. 그 목회자 부인에게서 좋은 인상만 지녔던 방언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얻게 된 한 동기가 됐다. 친구들 중엔 방언을 하는 사람들이 간혹 없지 않았으나 겉으로 입 밖에 내어 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아마도 워낙 칼뱅주의 신학 원칙에 철저한 보수적인 학교였기에 그랬으리라. 극소수를 제외한 대다수 학우들은 방언을 이질스럽게, 맹장보다 불요불급한 존재로 여겼다. 

이러구러 필자가 첫 방언을 하게 된 것은 졸업과 결혼을 거쳐 유학 온 지 몇 년만의 일이다. 중년에 들어서야! 아쉽다. 무척 아쉽다. 왜 진작 미리 할 순 없었을까. 그래서 그 후엔 그럴 만한 누구에게나 미리 권하게 된다. 그러나 물론 섣불리 강제로 권하진 않는다. 반드시 본인의 열망이 따라야만 뒤늦게라도 방언이 고마운 줄을 알기 때문이다. 

4. 
방언을 맹렬히 반대하는 사람들도 간혹 발견되는데, 아버지 하나님의 심경을 몰라서다. 

하나님은 아들 예수 크리스토를 통해 교회시대/신약시대/성령시대의 대표적 징표가 방언이 될 것을 예언하셨고(맑 16:17), 교회시대가 시작되는 찬란한 오순절에 예언대로 성취하셨다(행전 2:1~13 참조). 

그 뒤로는 교회의 지체 누구나 방언을 할 수 있게 돼 있다. '대표적' 징표인 이유는 구약시대에도 모든 초자연적 은사의 나타남이 있었으나 방언만은 신약시대에만 나타났기 때문이다. 구약시대를 마감하신 주님이 '새 방언'이라고 하신 까닭이 그것이다. 

방언은 당신의 자녀들인 신자들과 영적 친교를 나누시려는 하나님 아버지의 열망의 표현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따라서 예배자는 성령과 진리 안에서 예배해야 한다. 성령님을 우리 영에 모시게 하고 그 성령님을 통하여 하늘의 하나님 아버지께 우리의 영적 비밀을 고하게 하신 것이다(코A 14:2,15). 
이 아버지 하나님의 심경을 모르면, 오순절에 방언을 선물로 내리신 뜻을 깨닫지 못한다.

성령께서 우리 자타를 위하여, 우리를 통하여 말로는 이루 못할 신음과 탄식의 중재기도를 올리게 하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심경이다(로마서 8:26). 때를 가리지 않고 무시로 기도할 수 있게 하신 것도 아버지 하나님의 심경이다(엪6:18 참조). 

방언을 통한 신령한 노래로써 의식적으로가 아니라 순수하게 영이 하나님께 올려 바치는 찬양을 받으시려는 것도 아버지 하나님의 심경이다(행10:46b, 코A 14:15, 엪5:19, 콜3:16).  

방언은 또한 모든 신자들이 자기 위치와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서로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우주적인 합심기도를 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심경이다. 한 밤중 자다가도 나도 모르는 지구 저 편의 한 심령을 위해 중얼중얼 기도할 수 있는 기도가 바로 방언이다!  

방언은 또한 늘 완벽한 감사를 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심경이다(코A 14:16b).  

그러나 무엇보다 사랑으로 이 모두를 행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심경이다(코A 13장 참조). 

이러한 아버지 하나님의 심경을 깨달을 때, 우리는 방언과 더 나은 신령한 은사들을 더욱 사모하게 된다(코A 12:31,14:1). 

5. 
칼뱅주의만 절대 주권의 총아가 아니다. 방언도 하나님의 절대 주권 행사의 일부요 표현이다. 방언은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 그대로 행하는 기도요 고백이요 찬양이요 감사이기 때문! 
사도 파울에 따르면, 방언은 하나님께 내 영의 비밀을 고하는 유일한 형태의 기도다(코A 14:2). 모국어로 의식적으로 하는 기도는 아무래도 인간적인 불순한 요소가 약간이라도 끼게 된다. 그러나 방언은 완전 순수한 영적 기도이므로 그럴 염려가 없다. 

방언은 성령님의 (초자연적) 9 은사들 중 개인의 몫에 탠 은사들을 끌어오는 끌개(견인기) 역할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종의 관문, 도우미이자 이끔이이다. 모든 은사는 반드시 방언을 바탕으로 하여 개인의 몫이 된다. 오순절날 120 성도를 통하여 이 원리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그것이 방언의 원조였다. 그 후로도 방언이 "터진" 연속적 사건들이 똑같은 패턴을 보여주었다. 그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다(행전 2,8,9,10,11,19장 등을 보라). 

그런데 이 관문인 방언부터 두 손 들어 맹렬히 반대를 해 대니, 다른 은사는 어떻게 찾아 오겠는가?! 그러고도 은사를 받겠다느니 활용한다느니 하는 말들은 결코 하나님의 온전한 뜻이 아닌 것이다.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은 성경 그대로다! 성령이 나타내 보여 주신 그대로다. 성경을 기록하신 분도, 오순절에 첫 패턴을 보여주신 분도, 은사를 그 뜻대로 개인에게 나눠주시는 분도 성령님이시다. 

6.
방언은 한 번 하고 묵혀 둘 '일회용 체험'이 아니다. 어린이가 옹알이부터 시작하듯 일단 첫 입을 떼어 방언을 시작하고 나면, 계속 활용하면서 방언기도를 평생 작업, 평생 즐거움으로 삼아야 한다. 파울이 "나는 여러분 모두보다 방언을 더 하기에 하나님께 감사합니다!"고 한 이유가 그것이다(코A 14:18). 파울은 여기서 결코 자신의 방언 실력을 자랑한 게 아니다. 

파울은 방언을 비롯한 은사들이 개인과 교회의 빌드엎(build-up, 한글로는 '건덕'), 즉 영적 근육 다지기에 도움된다고 시사했다(코A 14:3,4 덕 세우기 참조). 사람은 밥과 물만 먹어 건강해지진 않는다. 운동도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우리 영엔 양식인 성경 말씀뿐 아니라 방언 기도와 은사를 통한 빌드업 내지 피트네스(fitness)가 필요하다.  

방언을 '꼴찌 은사'라고 흉보는 인사들이 간혹 있는데..꼴찌가 되는 과정 없이 초장부터 마라톤 우승을 하는 선수를 본 일이 있는가?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꼴찌'란다면, 인간의 최고는 뭐란 말인가? 그런 말 자체가 인본주의 발상에 불과하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한다는 사람들이 왜 함부로 하나님의 선물을 '꼴찌'라고 하느냐 말이다. 우습게 보인다고 해서 '꼴찌'라고 흉 보는 사람은 최고의 것을 가질 의식과 자격조차 안 갖춰진 셈이다. 하나님은 혀처럼 작고 약한 것을 들어 크게 쓰실 수 있음을 잊었는가?  

7.
방언 적대자들은 자신이 '방언 절대 반대' 피킷을 들고 반대 캠페인을 펼치기 전, 먼저 과연 하나님의 심경이 어디 있는지 묻고 확인해야 한다. 내가 방언을 반대하는 것이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일까를 물어야 한다. 물론 그 답은 '노!'다. 방언은 모든 신자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마귀의 전략은 신자가 다양한 은사를 받아 활용하는 것을 '초전박살' 내기 위해 방언부터 못하게 요절내고 보는 것. 멋모르고 방언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마귀의 이 전략에 속아 주는 셈이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처럼 자신은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는 노릇이 마귀 나라에 이익을 보태주는 것이다. 

이 글은 필자가 방언 한다는 사실을 자랑 삼기 위해 쓰는 게 결코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이 저주하실 노릇이다. 어디까지나 독자들의 영혼을 사랑하는 맘으로 독자들 모두가, 그 옛날 안타깝게 간구하며 전전긍긍하던 필자와 같은 허송세월일랑 말고 미리미리 제 것으로 찾아 써서 자신의 은사시대를 열어 가라는 뜻으로 부탁하는 글이다. 

은사는 주님이 대명에서 약속하신 성령의 권능의 일부다('대명'이란, 복음서 끝 부분과 행전 1:8 등에서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마지막 말씀이다). 이미 받은 구원 위에 온전한 최종 구원을 향해 나아가며 상급을 탈 행위의 곧은 길이다. 영생과 구원은 믿음으로 받은 것이거니와, 상급과 면류관, 칭찬은 성령의 권능을 활용한 행위로써 받아야 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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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얼굴 | 작성시간 07.11.08 행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가능하다는 찰스피니적 부흥관적 주장을 보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 작성자바로미 | 작성시간 07.11.08 행2: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 이 구절을 전혀 무시한 방언 해석입니다.
  • 작성자바로미 | 작성시간 07.11.08 고전12: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 작성자바로미 | 작성시간 07.11.08 고전13:8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 작성자바로미 | 작성시간 07.11.08 고전14:5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만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통역하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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