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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와 칼럼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고전15:35-58)

작성자Horace|작성시간04.03.25|조회수183 목록 댓글 3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고전15:35-58)



이렇게 오늘 햄프스테드 파크로 나와 부활절 기념 야외예배 및 야유회를 가지게 되니 참 기쁩니다. 지난 주일에 '당신의 부활'이란 제목으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사실성과 우리에게도 주어질 부활의 종류에 대해서도 살펴 보았는데, 그 부활이란 것이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떤 의미를 주느냐는 것은 오늘 야외예배를 드리면서 말씀드리겠다고 약속드렸습니다. 사실 이렇게 야외예배를 푸른 초원으로 나와 드리면서 부활에 대한 말씀을 나누기에 참 적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부활절과 야유회가 어떻게 연결되느냐 의아하게 생각되겠지요. 설명 드리지요. 저희들 결혼기념일이 12월 5일입니다. 추운 겨울에 결혼했다는 것입니다. 추웠지만 따뜻한 겨울이었습니다. 결혼한 후 2주일 뒤, 그러니까 20일경(12월 20일경을 상상해 보십시오) 저희들은 전주근처 이리라는 곳으로 이사를 해야 했습니다. 이삿짐을 꾸려놓고는 이사비를 좀 아끼기 위해서, 실상 저희들이 결혼한 것도 숭늉 한 사발 떠놓고 결혼했다고 해야 할 정도로 절약해서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이사비 같은 것에 돈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처남과 장인어른이 차를 번갈아가며 몰아주기로 하고, 저는 짐을 실은 1.5톤 트럭의 짐칸에 움쿠리고 앉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놓고는 올라 타 추울 것이라고 예상이 되어 담요를 단단하게 덮었습니다. 부산에서 이리까지 5시간 정도 예상되는 이삿길 이었습니다. 춥다해도 대수냐 싶었습니다. 아직 젊었고 또 결혼해서 이제 신혼 단칸방으로 이사를 가는 것입니다. 이삿길이 순조로왔겠습니까? 예, 길을 떠난 지 1시간 정도 삼랑진 정도까지 왔을 때까지는 별 일이 없었습니다. 문제는 그 어간 부터인가 여미고 여몄다 했지만 겨울추위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차가 쌩쌩거리며 지나가는 중에 그 추운 겨울의 생바람이 고속도로를 달리는 우리 차의 짐칸을 할키고 지나가면서 여민다고 여민 담요의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서는 점점 추워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차를 세우고는 앞 칸으로 옮겨가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았으면서도 처남이나 장인어른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자존심 같은 것도 있고 해서, 좀 더 견뎌보리라 마음 먹었습니다. 그렇지만 자꾸만 추워졌습니다. 정말 도착하기도 전에 얼어죽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 노래 저 노래 부르면서 목청을 돋우면서 힘을 내고 몸을 열을 내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가스펠 송에 찬송가를 부르다가 애국가도 부르고, 그때 갓 군대를 마쳤기 때문에 여태 머리에 생생한 군가들, '빨간 마후라는'부터 시작해서 전선야곡으로 해서, 그러다가 금강산도 나오고 보리밭도 나오곤 하다가 가장 인상 깊게 부른 노래, 부르면서 눈물을 글썽였던 노래가 무엇인 지 아십니까? 바로 70년대 후반 저의 사춘기 시절, 한 창 날렸던 남 진 이라는 가수의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였습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평생 살고 싶네 봄이면 씨앗 뿌려 여름이면 꽃이 피고 가을이면 풍년 되어 겨울이면 행복하네. 멋쟁이 높은 빌딩 으시대지만, 유행 따라 사는 것도 제멋이지만 나는 좋아 나는 좋아 님과 함께면 님과 함께 같이 산다면(하이 하이). 저 푸른 초원 위에...." 목사가 이런 가요나 부른다고 욕하지 마십시오. 가요를 불러도 그 의미를 생각하면 이해가 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곡들 중에도 그런 가요곡들이 제법 있는 줄을 아십니까? 그렇다고 해서 저 푸른 초원 위에를 찬송곡에 넣자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말씀 드릴려는 것은, 그렇게 노래를 부르면서 5시간을 견뎌내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말입니다. 이 곡에서 말하는 님이 누구를 말하는 지는 두말 할 필요도 없겠지요? 애인으로도, 그 마음으로 목청이 터져라고 부르긴 했지만, 그 이후로 이 노래를 부를 때 이것을 기독교신앙과 관련시켜 예수님이라 생각하고 부를 수도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지금 현재는 쌩쌩거리면서 추운 겨울바람이 스쳐지나갑니다. 담요로 덮어 아무리 여미고 여며놓아도 그 여민 틈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찬바람의 한기가 손발을 얼게 합니다. 고통스러운 현실입니다. 그렇지만 이 고통스러운 현실을 견딜 수 있게 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님과 함께 한 평생 살 것'을 소망하고 기대하는 꿈이 그것입니다. 앞으로 오게 될 그 미래의 일을 현재에 소망하고 현재에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하면서 아픈 현실, 고통스러운 현실을 이겨내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예수님의 부활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삿짐을 싸서는 추운 겨울날 이삿길을 떠나 짐칸을 몸을 싣고 차가운 겨울바람 가운데서 '저 푸른 초원 위에'를 부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앞으로 오게 될 모든 사람들의 부활, 그리고 이 우주 만물이 새롭게 갱신되게 될 일을 미리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사과나무에 열매가 하나 맺히면 그 한 열매로 다른 열매들이 또한 맺히게 될 것으로 알게 됩니다. 첫 열매는 그 뒤를 잇는 수많은 열매들을 예상케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부활의 첫 열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앞으로 우리들에게 오게 될 영광스러운 부활의 때, 온 우주가 새롭게 갱신되는 때를 바라보게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의 세계는 고통 가운데 신음하고 있습니다. 전쟁과 기근의 소문들이 여전히 파다합니다(코소보). 이제 이 모든 난리와 전쟁의 소문이 끝나고 예수님께서 영광 가운데 오셔서 온 만물을 새롭게 하실 때가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때까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또한 우리도 그렇게 만물과 함께 새롭게 갱신될 때까지 이 종말론적 중간시대를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것입니다. 첫째는 이렇게 야외예배를 나온 기분으로 살자는 것입니다. 실상 저는 매주일 야외에 나와서 예배드렸으면 합니다. 하나님이 꼭 예배당에서 드려야 우리 예배를 받아주시겠습니까? 하나님이 건물에 갇혀 계시는 분입니까? 우리가 이렇게 야외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우리의 믿는 하나님이 건물에 갇혀 계시는 분이 아니고, 온 천지 가운데 충만하게 계신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선포하기 위함입니다. 이번에 야유회를 나오면서 식사를 자원해서 준비해주신 분들이 많아서 너무 감사를 드리는데, 이렇게 준비하는 것이 너무 잦으면 부담스럽기 때문에 자주 나올 수 없다고 하더라도 기회 있는 대로 각자가 점심을 준비해 올 수 있다면 함께 나눈다 생각하고 자주 나왔으면 하는 마음이 듭니다. 우리 하나님은 답답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고리타분하신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의식이나 절차에 매여 그것에 목을 매달고 옳다고 주장할 필요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본질입니다. 물론 형식이 요구될 때도 있지만 언제나 그 형식은 본질을 담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간혹 가지게 될 이런 야외예배는 우리 하나님을 또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보고 예배의 본질을 다시 한 번 음미해 볼 수 있다는 면에서 기회 있는 대로 가졌으면 한다는 것입니다. 어때요?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하나님은 예배당에 갇혀 있는 분이 아니시다. 예배당 밖에, 우리의 모든 생활 속에 관여하시는 분이시다. 이것이 우리에게 다가 올 종말의 때, 영광의 때, 만물이 갱신되는 때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자세입니다.



둘째, 어떤 일을 만나도 절망하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죽음이 정복되었다는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절망하지 않는다는 말을, 피상적으로 이해하지 마십시오. 슬픔도 느끼는 것 없이, 인생의 아픔도 전혀 무감각한 채, 실존의 깊이와 삶의 허무한 측면에 대해서 전혀 무지한 채로, 너무나 피상적인 삶의 태도로,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가지면 성공할 수 있다는 류의 그런 말로 이해하지 마십시오. 그런 모든 것을 이해하고 체험하는 중에도 우리는 절망에 이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키에르케고르가 절규했던 것처럼, 죽음에 이르는 병이 절망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죽음이 정복되었다는 신앙이 바로 부활의 신앙이건데, 우리는 이제 절망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전갈의 꼬리에 있는 독이 제거되어버리면, 전갈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무서운 것이 아닙니다. 전갈을 가지고 희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죽음의 쏘는 것, 죽음의 꼬리에 묻어있는 독이 제거되어 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이제는 사망의 쏘는 것, 곧 죄가 제거되어 버렸기에 이제는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죽음을 향하여 그러기에 호령할 수 있습니다. 55절을 보십시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이렇게 죽음을 향하여 호령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그 어떤 일, 어떤 것에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전개되어질 미래의 일들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모든 정보들을 신실하게 살펴 앞의 일들을 예상하면서 준비해 갈 지언정 염려와 초조 가운데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시간에 한숨을 주님을 향하여 토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승리의 새 힘을 하늘로부터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을 향하여 호령하게 됩니다. 인생이 나를 속인다 하더라도 나는 인생을 속이지 않겠노라 다짐합니다. 인생이라는 전쟁터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마소가 아니라, 그 마소 위에 장수가 되어서 호령합니다.



아시는 분은 아실 것입니다. 이 공원 어느 곳엔가 칼 마르크스라는 사람의 무덤이 있다는 것을. 기회가 있으면 그 무덤을 찾아가 생각하십시오. 당신은 예수님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생각했거니와 이제 당신은, 그리고 당신의 철학은, 그리고 당신의 나라는 어디에 있는가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무덤이 없으십니다. 무덤이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인생들의 무덤 앞에 설 때마다 무덤이 없으신 유일하신 분, 예수님을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무덤을 넘어서서 있는 세계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58절, 바울의 마지막 권면이 또한 저의 마지막 권면입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여기서 주의 일이란 어떤 일이겠습니까? 그저 단순히 교회의 일이라고 한정시킬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교회봉사를 제외시켜서는 안됩니다. 교회는 단순하게 인간들이 필요에 따라서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우주경영 가운데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교회를 통해서 일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이번 부활절 헌금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 나와서 참 기뻤습니다. 전액 구제헌금으로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한사람이 하기로는 부족해도 힘을 모으면 적으면서도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교회를 통해서 선한 일을 도모하는 것, 그렇게 또한 교회가 일할 수 있도록 서로의 힘을 모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주의 일은 교회의 일에 제한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직장과 학교에서 하는 수고와 봉사가 모두 주의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성실하게 봉사하고, 신실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그 모습을 통하여서 그리스도인은 믿을 만 하다는 인상을 주는 것, 저 사람을 보니 나도 예수 믿고 싶다는 말을 듣게 되는 것, 그런 일도 주의 일입니다. 기독교인에 대해서 너무 많은 오해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너무 잘못된 오해가 너무도 많습니다만, 기독교인이라면 단순히 술 안마시는 사람, 담배 안피우는 사람 정도의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이미지만 있다면 문제입니다. 이런 이미지보다 더욱 적극적인 이미지를 창조해 가야할 역사적 사명이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이런 이미지 어떻습니까? 그리스도인 하면 꿈이 있는 사람들, 그리스도인 하면 믿음직한 사람들 이런 이미지 말입니다. 그런 이미지를 꿈꾸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부활신앙을 가지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이런 사람은 날마다 자기 자신을 쳐 자신을 죽입니다. 그 자신을 쳐 죽임으로 날마다 다시 살아납니다. 날마다 다시 살아나는 그 힘으로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이미지들을 창조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이미지 창조의 사역의 당신을 초대합니다. 이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들을 지을 사역에, 그리고 그 집에서 사랑하는 우리들의 님과 더불어 한평생 살아갈 꿈들을 가지고 말입니다. 오늘 야유회가 이런 꿈들로 푸르게 물드는 시간들이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말씀들을 나눕니다.



기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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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하나님의 백성 | 작성시간 04.03.25 귀한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저역시 저 푸른 초원위에 주님과 함께 살 그림 같은 집을 만들고 싶어지는 간절한 열망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햄프스테드에서 드리는 예배가 눈에 선하게 그려집니다.그리고 작은 일에도 함께하고,자신이 먼저 헌신하려는 귀한 성도님들의 사랑과 믿음과 신뢰가 이곳 한국까지 전해저
  • 작성자하나님의 백성 | 작성시간 04.03.25 무척 기뻤습니다.^^* 하나될 때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자신을 낮출때 주님께서 복을 주신다고 하신것 같이 성도님들 모두 크신 복 받으시길 기도하겠습니다.^^설교 말씀을 읽으면서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은 아마도 제 어린시절 처음으로 주님을 알게될 때의 순수했던 마음이 다시 느껴지는 것 같아서 인 것 같습니다.
  • 작성자하나님의 백성 | 작성시간 04.03.25 언제부터인가 주님께서 제게 많은 것을 요구하시는 것같은 부담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제가 주님께 바라는것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어린시절 아무것도 바라지않고, 작은 두손으로 주님께 기도하고, 즐겁게 찬양했던 그 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습니다. ^^ 내 첫사랑 주님을 만났던 그 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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