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香氣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意味가 되고 싶다.
김춘수/꽃
***
김춘수는 서성거리고 있다. 그것이 그의 매력이다. 그는 끊임없이 여기저기를 기웃거린다. 이렇게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서성거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생성의 시인이다.... ... (중략) 이 시는 나와 그와 이름의 세 개의 지주로 되어 있다. 내 앞에 그는 현존한다. 그것은 그저 있다. 그런데도 나는 언어로 그것을 부재로부터 이끌어 내어 의미를 나를 통해, 나의 의식을 통해 그에게 맞는 이름을 주었다. 그리하여 그는 '꽃'이 되었다. 창조된 언어이다.그 언어는 주술적인 힘으로 그것을 부재로부터 이끌어 내어 '무엇'이 된다. 나도 마찬가지이나. 정말로 누군가가 나의 빛깔과 향기에 맞는 이름으로 나를 부재에서 이끌어 준다면 그에게로 가서 나도 '꽃'이 되고 싶다.'무엇'이 되고 싶다. 그 과정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시적언어이다. 내 앞에 현존하는 그것은 나와 관련없이 현존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그것에 언어를 주었고 그것은 잊혀지지 않는 의미가 되어 나에게 온다. 그리하여 '나의' 꽃이 된다. 인간조건의 초극이다. 그러면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의 언어는 생존의 이름을 보상할 힘을 가지고 있다고, 그것은 사물과의 교감으로 인한 절대에의 비상을 뜻하기 때문이다. -김현/전체에의 통찰-한국문학의 이념형을 찾아서1 부분에서 발췌.
그가 아프다고 한다. 아니,더 정확히는 사경을 헤메인다고 한다. 이젠 늙은 시인이 되어버린 그, 오늘 아침은 그의 건강을 염려하며 하루 빨리 쾌청하기를 맘으로 빌어볼 일이다.나는 그의 이런 글귀에서 오늘 하루를 출발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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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는 개울이 있고 개울에는
외나무다리가 있다.
한밤에도 소리내며 개울은 제 혼자
어디론가 가고 있다. 어디로 가는가,
역사가 발을 멈추고 네 그 걸음걸이가
춤이 될 때까지,
제 3번 悲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