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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열 컬럼, 수필

<한시산책>女心을 기막히게 헤아려 여자의 입장에서 지은 詩들

작성자박영우|작성시간13.02.08|조회수334 목록 댓글 2

사랑이 싹틀 때 

 

 

여덟 살 때     
눈썹 길게 그렸지요.
거울 몰래 들여다 보고

열 살 때        
나물 캐러 다녔지요.
연꽃 수놓은 치마를 입고

열두 살 때     
거문고를 배웠지요.
은갑을 손에서 빼지 않았죠.

열네 살 때     
부모 뒤에 곧잘 숨었지요.
남자들이 왜 그런지 부끄러워서

열다섯 때      
그넷줄 잡은 채 얼굴 돌려 울었어요.
봄바람이 까닭없이 슬퍼져서...

 

이 시는 놀랍게도 '남자'의 작품으로 1200년 전 중국 당나라 후기 신비의 시인 이상은(李商隱, 812~858)이 16살에 지었다고 한다. TV 드라마 '허준'에서 <사랑이 싹틀때> 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바 있는데, 원문을 소개하면,

 

八歲偸照鏡 長眉已能畵 (팔세투조경 장미이능화)

十歲去踏靑 芙蓉作裙衩 (십세거답청 부용작군차)

十二學彈箏 銀甲不能卸 (십이학탄쟁 은갑부능사)

十四藏六親 懸知猶未嫁 (십사장육친 현지유미가) 

十五泣春風 背面韆下 (십오읍춘풍 배면추천하)

 

이상은(李商隱)에 대한 평가는 열탕과 냉탕을 넘나든다. 위에 붙인 시를 비롯  '언제 오시느냐 그대는 묻는데 돌아갈 기약은 없고(君問歸期未有期)...'로 시작되는 유명한 '밤비에 붙여(夜雨寄內)' 등 주옥같은 시들이 많아 성당(盛唐) 시절 이백에 비유하여 작은 이백(小李)라 불리며 칭송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역정은 권력을 쥔 자에 대한 아부와 힘을 잃은 뒤 배신으로 점철되어 좋지않은 평도 받고 있다. 정치적인 면이 어떻든지 간에 시적인 감수성과 여자의 속마음을 꿔뚫어 보는 탁월한 능력을 소유한 시인임에는 틀림이 없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재능을 지닌 이가 있으니 조선시대 바람둥이 시인으로 알려진 白湖 임제(林悌, 1549 ~1587 선조代)이다.  황진이의 무덤에 술한잔 올리며 지었다는 시조 '靑草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었는다...'  의 작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다음은 어린 소녀의 애틋한 심사를 잘 표현한 '아무말도 못하고 혜어져(無語別)'

 

十五越溪女(십오월계녀)  열다섯 처자 개울을 건너며

羞人無語別(수인무어별)  부끄러워 말도 못한채 이별하고
歸來掩重門(귀래엄중문)  집으로 돌아와 문을 닫아 걸고
泣向梨花月(읍향이화월)  배꽃에 비친 달을 향해 눈물짓네

 

달리 바람둥이인가, 여자의 속마음을 잘 헤아릴 줄 알았기 때문이겠지... 

성당(盛唐) 시절 이백(李白, 701~762)도 이 방면에 빠질 수 없는 분으로, 그의 작품 '봄심사(春思)'를 한번 감상해 보자.

 

當君懷歸日(당군회귀일)  임이 돌아오시는 날을 생각하니

是妾斷腸時(시첩단장시)  소첩의 애가 끊어지는 듯 합니다

春風不相識(춘풍불상식)  봄바람은 저를 알지도 못하면서        

何事入羅幃(하사입라위)  어찌 비단 휘장 안으로 들어오는지

 

 

이별의 아픔

 

이백과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잠참(岑參, 715~770)은 그리 잘 알려진 시인은 아니나, 변방에서 겪은 서정을 많이 읊었다고 한다. 그의 '봄꿈(春夢)' 이란 제하의 시는 멀리 간 임을 그리는 심사를 잘 표현하고 있다.

 

洞房昨夜春風起(동방작야춘풍기신방에 어재밤 봄바람이 불어와

遙憶美人湘江水(요억미인상강수아득히 임 그리워 상강 물가로 갔다오
枕上片時春夢中(침상편시춘몽중베갯머리 잠깐의 봄꿈 속에서도

行盡江南數千里(행진강남수천리강남 수 천리를 다 돌아다닙니다 

 

중당(中唐) 시절 정치가이며 시인인 백거이(白居易, 772~846 )의 잘 알려진 이별의 노래(賦得高原草送別), 그리움은 자꾸 돋아나 들블(野火)로도 태워버릴 수 없다는 표현으로 유명하다.

 

離離原上草 (리리원상초)   우거진 언덕 위의 풀은

一歲一枯榮 (일세일고영)   해마다 시들었다 다시 돋는구나

野火燒不盡 (야화소부진)   들불도 다 태우지 못하고

春風吹又生 (춘풍취우생)   봄바람 불면 다시 살아나누나

 

遠芳侵古道 (원방침고도)   아득한 향기 옛 길에 일렁이고

晴翠接荒城 (청취접황성)   황량한 성터엔 푸른빛 감도는데

又送王孫去 (우송왕손거)   그대를 다시 또 보내고 나면

萋萋滿別情 (처처만별정)   이별의 정만 풀처럼 무성하리라

 

사실 이 시는 백거이가 절친한 벗을 보내며 지은 것인데 마치 여인이 정인을 보내며 쓴 시처럼 느껴진다. 다음은 앞서 소개한 남다른 감수성의 시인 이상은(李商隱)의 '無題'(그의 작품에는 이런 시제가 많이 붙어 있음)란 시를 감상해 보자.

 

相見時難別亦難(상견시난별역난)  만나기도 어렵지만 이별 또한 힘들어
東風無力百花殘(동풍무력백화잔)  봄바람 힘없어도 온갖 꽃 다 시드네 
春蚕到死絲方盡(춘잠도사사방진)  봄누에 죽어서야 실뽑기를 다하고
蜡炬成灰淚始乾(사거성회누시건)  촛불은 재가 되어야 눈물이 마르는구나


무딘 필자의 가슴에도 울림이 있으니 천년을 사이에 두고도 동감할 수 있음에 감탄할 수 밖에... 

 

역시 정치적인으로의 평가는 별로인데 시로는 크게 칭송받은 고려시대 정지상(鄭知常, ?~1135). 그의 '대동강' 이라는 시는 실제 대동각 부벽루에 오랫동안 붙어 있어 오가는 중국사신들까지 입에 침이 마르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의 또 다른 시 '임 보내며(送人)'

 

庭前一落葉(정전일엽락)  뜰앞 하나 남은 잎마저 떨어지고 

床下百蟲悲(상하백충비)  마루 아레서는 온갖 벌레 슬피우네  

忽忽不可止(홀홀불가지)  홀연히 떠나는 임 붙잡을 수 없는데 

悠悠何所之(유유하소지)  유유히 어디로 떠나 가시는가

 

片心山盡處(편심산진처)  마음은 임 가신 산끝에 가 있는데 

孤夢月明時(몽월명시)  외로운 꿈 달만 밝구나  

南浦春波綠(남포춘파록)  남포에 봄 파도 푸르거든  

君休負後期(군휴부후기)  그대 부디 잊지마오 오신다는 약속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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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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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헌식 | 작성시간 13.02.08 내가 여자마음을 헤아릴 줄 모르니---

    마지막 시의 첫줄은 한글이 맞겠지
  • 작성자정종선 | 작성시간 13.02.14 안타깝게도 임제가 불과 3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네그려......
    " 잔 잡아 권할이 없으니 그를 슬허하노라 " 좋아하는 구절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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