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가 저무는 세밑에서..
한해가 저무는 세모엔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게 마련이지만, 시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덫없이 지나버린 세월을 돌이켜 보고, 나에게 허락된 시간은 얼마나 될까 헤아려 보기도 합니다. 어디에선가 본 글인데, 아이가 밖에서 동무들과 모래성을 쌓으면서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재미있게 놀다가 어디선가 엄마가 부르면 놀던 거 다 팽개치고 집으로 돌아가듯이, 우리네 인생도 정신없이 살다가 위(?)에서 부르시면 하던일 다 놓고 돌아가야 한다고...
겁나게 긴 시간 겁(劫)
어느 물리학자가 말했듯이 시간이란 절대적인 개념보다 상대적인 건지도 모릅니다, 일각(一刻 :약 15분)이 여 삼추(三秋:3년)란 말도 있듯이.. 그런데 과장에 관한한 때국(大國)넘들은 인도(印度)사람들 발끝에도 못 미칩니다. 겁(劫)이란 불가사의한 시간을 만들어낸 이들이 힌두교와 불교의 나라인 인도인이니까요. 아다시피 1겁(劫)이란 사방 4,000里의 돌산에 얇은 비단옷을 입은 선녀가 100년에 한번 내려와 스치고 지나가 그 돌산이 다 닳아 없어지는데 걸리는 시간이랍니다. 이를 반석겁(盤石劫)이라고 하는데, 또한 비슷한 개념의 개자겁(芥子劫)이란 것도 있어 사방 4천리를 에워싼 城안에 개자씨(사과처럼 좀 큰 것도 아니고 아주 작은 개자씨)를 100년마다 한알씩 던져넣어 성안에 가득차는 시간이 1겁이라는 겁니다. 그 외에도 갠지스강의 모래를 100년에 한알씩 집어내 완전히 없어지는데 걸리는 시간을 1겁으로 잡는 세겁(細劫) 등 그 說도 모래알(?) 만큼이나 많습니다.
상상이 안가는 숫자
신들과 함께 산다는 인도인들은 인간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숫자도 만들어냈습니다. 영(零)이 8개 붙은 억(億)에도 우린 억소리가 나오는데. 16개가 붙은 경(京)도 그들에겐 아무것도 아닌가 봅니다. 항하사수(恒河沙數) 란 수가 있는데, 갠그스강(恒河)의 모래(沙)알이 실제로 얼마나 되는지는 몰라도 10의 52제곱 이라네요. 또한 불가사의(不可思議)란 數도 있는데, 10의 64제곱, 즉 零이 64개라니 정말 不可思議한 숫자입니다. 그래서 인도에선 초딩도 9*9단은 물론 18단도 줄줄 와우는지도...
엄청나게 짧은 순간, 찰나(札那)
순간을 정의하는 방법도 인도의 사찰만큼이나 많습니다. 가령 불교경전인 대비대사론에는 찰나(札那)에 대해 가느다란 명주 한 올을 젊은 사람 둘이서 양쪽 끝을 당기고 칼로 명주실을 자를 때 끊어지는 시간이 64 刹那라는 것입니다. 찰나에 대해서는 구사론(俱舍論)과 승기율(僧祇律)의 이론이 있답니다. 구사론에 따르면 하루는 30모호율다(牟呼栗多)이고 1모호율다는 30납박(臘縛)입니다. 1납박은 60달찰나, 1달찰나는 120찰나입니다. 이런 계산으로 현재의 하루 24시간, 한시간 60분, 일분 60초로 환산하면 찰나란 0.013초에 해당합니다.
승기율의 계산은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20념(念=찰나)이 1순(瞬)이고, 20순이 1탄지(彈脂), 20탄지가 1납박, 20납박이 1수유(須臾), 30수유가 하루라는 계산입니다. 따라서 승기율의 시간 계산으로는 1념이 0.018초에 해당됩니다. 그 외에도 적지않은 說이 있다하나 필자의 지식이 저렴(?)하여 줄입니다.
영겁중 찰나를 사는 우리네 인생이란 게..
옛적 고승 한 분이 입적(入寂)하기에 앞서 제자에게 남긴 말씀이 '일면불 월면불(日面佛 月面佛)' 이었다네요. 신들의 나라 인도에는 3천이 넘는 부처(佛)가 있는데, 그중엔 1,800년을 산 日面불이 있는가 하면 고작 하루 낮과 하루 밤을 산 月面佛도 있었습니다. 인생이란 게 찰나(札那)에 비하면 일면불이요, 겁(劫)에 비하면 하루살이 월면불이 아니겠느냐는 의미랍니다. 그러니 우리같은 필부들이야 그냥 사는 게지요.
여기 宋나라의 대시인이며 명필인 소동파의 詩 한수 붙이면서 쓰잘데 없는 야그를 마칩니다, 벗님들 내년에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人生到處知何似(인생도처지하사) 사람이 살고 가는 게 무엇과 같은지 아시는가
應似飛鴻踏雪泥(응사비홍답설이) 눈밭에 잠시 앉았던 기러기 발자국 같은 거라네
泥上偶然留指爪(니상우연류지조) 우연히 진흙 위에 발자국을 남겼다 하더라도
鴻飛那復計東西(홍비나부계동서) 그 기러기 어디로 날아갔는지 알아 무었하시게
*蛇足 : 소동파 같은 대문호라서 큰기러기(鴻) 발자취를 남겼지 우리같은 범부야 참새 발자국이라도 남길 수 있을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