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동물원의 자취는 간 곳 없고..
조선 궁궐의 본래 모습을 복원하는 건 더 없이 바람직하지만 어릴적 아니 대학 댕기던 시절 추억까지 서린 창경원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뀐 데는 아쉬움이 없지 않네요. 어릴적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들어갔던 대로변 높다란 대문과 궁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연못 춘당지에서 아련히 옛 모습을 떠올리지만 턱없이 부족합니다. 옛날을 애써 떠올려 보지만 희미해져가는 기억과 함께 사라져 간 게 아쉽습니다. 많은 벗님들도 필자와 비슷한 처지일 것으로 짐작되기에 소시적 추억을 떠올리기에 도움이 될만한 사진 몇 컷을 올려 봅니다.
야간 개장한 창경궁 초저녁 전경(사진들 빌려옴)
☞ 창경궁(昌慶宮) : 본래 세종이 상왕으로 물러난 태종의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지은 수강궁이었다. 그후 1483년 수강궁 자리에 별궁인 창경궁을 건립했다.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된 것을 1616년 다시 세웠으며, 1624년 이괄의 난으로 소실된 많은 전각들이 1633년에 중건되었다. 1656년에 요화당·난향각·취요헌·계월각 등 4개의 전각을 지었다. 1909년 일제가 궁 안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었으며, 1911년에는 박물관을 짓고 창경원으로 격을 낮추어 불렀다. 1984년 일제가 철거했던 문정전과 월랑 등을 복원하고 정비하면서 다시 이름을 창경궁으로 환원했다. 이 궁궐의 전체적인 배치는 창덕궁처럼 지형의 높고 낮음을 그대로 두고 꼭 필요한 곳만을 골라 집터를 잡고 정원을 꾸민 것이 특징이다. 사적 제123호로 지정되었다. - 다음백과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弘化門)
궁궐 입구에 자리한 다리 옥천교(玉川橋)
☞옥천교(玉川橋)는 홍화문(弘化門) 앞을 흐르는 금천(禁川)인 옥류천을 가로 질러 놓여 있는 다리. 궁궐의 정전(正殿)에 들어갈 때에는 반드시 정전의 정문과 궁궐대문 사이를 흐르게 한 금천을 건너게 되는데, 옥천교가 바로 금천 위에 놓은 다리이다.
궁궐로 들어가는 대문 명정문(明政門)
궁궐(明政殿) 앞 삼도와 품계석
왕이 대신들과 정사를 논하던 명정전(明政殿)
☞명정전(明政殿)은 새해 아침 신하들이 임금께 하례를 올리는 일, 나라의 큰 행사를 치르며 외국의 사신 맞이하는 영빈관으로 쓰기 위해 성종 15년(1484)에
지었는데 임진왜란 때 병화로 소실, 광해군 때(1616) 복원한 것이다. 이
전각은 사방을 행각과 월랑(月廊·행랑)으로 둘러 조정(朝庭)을 마련하고 마당은 장방형 판석(板石)을 깔고 한가운데 어도(御道)를 냈다. 그
좌우로 24개의 품계석(品階石)을 세워 궁궐의 위용과 위계질서를 배열하였다.
통명전(通明殿)
☞통명전(通明殿)은 창경궁 창건 때인 성종 15년에 지은 왕의 침전인데 임진왜란 때 불타고, 이를 광해군 때 중건한 건물은 다시 (정조 14년(1790)에 불탔다. 지금의 건물은 순조 34년(1834)에 창경궁 대부분을 중건할 때 더불어 지은 것이다.
환경전(歡慶殿)
☞환경전(歡慶殿)은 통전전과 나란히 있는 전각으로 같은 시기에 지어진 왕비의 침전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주로 대비들이 거처했다고 한다.
양화당(養和堂)
☞양화당(養和堂)은 위의 전각들과 같이 지어진 임금의 편전이며 왕비의 생활 공간이었다고 한다.
함인정(涵仁亭)
☞함인정(涵仁亭)은 과거급제한 유생들을 접견하고 경연하던 곳으로, 인조 11년(1633)에 지었다가 순조 30년(1830)에 화재로 소실되었다 3년 뒤 중건. 인(仁)에 젖은(涵) 정자라는 현판이 시적이다.
어렴풋하게 기억속에 남아있는 연못, 춘당지(春塘池)
☞춘당지(春塘池)는 원래 활을 쏘고 과거를 보던 넓은 춘당대와 그 앞에 궁중에서 왕과 왕자들이 농사를 짓던 내농포(內農浦) 자리를 일제가 놀이공원으로 만들기 위해 크게 연못을 파서 조성한 것이다. 1983년 이 연못 주변을 울창한 숲으로 조성하여 전통 양식의 연못으로 만들었다.
춘당지는 역시 가을이라야 제맛이라는데..
옛 동물원 터엔 나무를 심어 통 기억이 나지 않는데..
여학생이 한껏 분위기 잡으며 꽃을 따는 곳엔 예전에 아마도 호랑이나 코끼리가..
옛 사진 한장
밤 벗꽃놀이 대신 밤에 개장한 고궁의 환상적인 모습. 언제 한번 가봐야 할텐데...
탐방시 직접 찎은 사진 / 춘당지 앞에서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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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유근국 작성시간 16.05.08 박영우님~~^-^ 수고 많고 고맙습니다. 걷기 힘들었을 것인데 같이 탐방하고 이렇게 역사를 찾아 다시 창경궁을 감상하고 간직하게 올려 주심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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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변호정 작성시간 16.05.11 화향백리(花香百里) : 꽃의 향기는 백리를 가고, 주향천리(酒香千里) : 술의 향기는 천리를 가지만, 인향만리(人香萬里) :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가고도 남는다.
주야창창 먹,자,싸 쓰리박자 운동과 숨쉬기만 열씨미하고 사는 인간은 아무리 용써도 향기가 안 나옴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