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옥타비아누스의 복수와 브루투스의 죽음

작성자★율리우스 카이사르★|작성시간04.02.22|조회수473 목록 댓글 3
19개 군단을 맞아 싸우게 된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도 지난 2년을 헛되이 보내고 있지는 않았다. 브루투스는 그리스에서 카시우스는 시리아에서 언젠가 찾아올 결전에 대비하여 군비를 증강하고 있었다. 그 결과, 2만기의 기병을 자랑하는 10만 대군이 편성되었다. 쳐들어오는 쪽의 전력도 기병 1만3천기를 포함하여 모두 12만명에 이르는 대군이다.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가 맞붙은 파르살로스 회전보다 두배나 많은 병력이 충돌하게 되었다. 전쟁터는 그리스 북부의 필리피였다.

필리피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아버지인 필리포스가 세운 도시인데, 이때의 회전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필리피 평원에서 벌어진 전반전은 브루투스가 옥타비아누스를 이기고, 안토니우스가 카시우스를 이기는 결과로 끝났다. 카시우스는 패배에 절망한 나머지 자결해버렸다. 그의 나이 43세였다.

그런데 후반전이 되어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의 연합군은 승리를 거두었고 브루투스는 피신하라는 권유도 거절하고 죽음을 택했다. 43세의 나이에 자살한 것이다. 두 장수는 브루투스의 유해를 로마식으로 화장하고, 유골은 브루투스의 어머니인 세르빌리아에게 보내어졌다.

카이사르 암살의 진짜 주모자는 브루투스가 아니라 카시우스였다. 그러나 암살자들은 브루투스가 지도자가 됨으로써 비로소 움직였다.

그러나 키케로가 교양은 있되, 선견지명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브루투스의 고결한 정신도 로마인에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가리키지 못했다. 이탈리아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도 "3.15"를 이렇게 단정하고 있다.

"회고주의자들의 자기도취가 초래한 무익하고 유해한 비극"

3.15는 카이사르의 비극이라기보다 오히려 브루투스의 비극이 아니었을까? 시대에 거부당한 고결한 정신의 비극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에 눈감은 고결한 정신의 비극.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율리우스 카이사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4.02.22 트레보니우스 살해. 데키우스 브루투스도 살해.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는 손을 잡음. 절망한 아내 포르키아의 자살. 키케로도 살해. 살생부는 브루투스파 사람들을 뿌리채 뽑음. 카시우스도 자살. 마지막 남은 브루투스도 자살. 이리하여 카이사르 암살과 관련된 사건은 최종정리가 되었군요.
  • 작성자★율리우스 카이사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4.02.22 이제 남은 것은 로마제국의 진정한 지존의 자리를 놓고서 펼치는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의 진검대결이 남았군요.
  • 작성자★율리우스 카이사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4.02.22 이런 브루투스가 높은 평가를 받게 된 것은 로마가 무너진 지 1천500년 뒤에 이탈리아 르네상스인들 덕택이었다고 합니다. "줄리우스 시저"도 영국의 르네상스인인 세익스피어의 작품이죠.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