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영선사의 기도(49재)가 다른 이유... 참회의 환생을 택하신 의병장..

작성자월공스님(天人)|작성시간25.07.19|조회수250 목록 댓글 16

스님이 일반인과 다르다보니
영선사의 기도는 일반 사찰과는 다를수 밖에 없습니다.
같은 것도 있지만 때론 다른게 많아요.
이것은 '정보접근력'의 차이입니다.
 
스님은 기도를 많이한 사람이기에 이전에도 여러가지를 스스로 깨우쳤지만
(전문가가 물리가 트이는 이치)
결정적으로는 2021년 11월 항상 스님에게 상주하셨던
조언자이신 성중님의 존재를 알고 난 뒤 문답을 통해
여러가지 놀라운 사실들을 세상에 밝혀 왔습니다.
 
오늘도 그런 놀라운 일이 있어 글을 씁니다,
-------------------
2025년 음6월 20일(양력 7월 14일)...
영선사에는 한통의 소식이 전해옵니다..
여러님들과 함께 지장철야기도에서 기도정진하고 있는 홍진곤거사입니다..
'부친 홍성언님 졸...'
 
빈소가 마련 되고..
다음날 시달림을 위해 여러님들과 함께 빈소로 출발해서 기도를 마치고 왔습니다..
돌아 오는길에 10분 정도...극한의 호우도 잠시 경험하고...
다음날 장례를 마친 영가님을 49재 기도를 위해 절로 모시는
'반혼재' 의식을 준비하며 망자의 정체에 대해 다시 살폈습니다.
 
여기서 '다시'라는 표현을 쓴 것은
빈소로 출발하며 영가님의 직전생에 대해 살핀 상태에서 답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상했어요.
대개는 바로 답이 나옵니다.
질문의 내용은
 
 -이생 태어나기 직전생 어느 출신?
 -이생에서 어떤 삶? 선행점수는??
 -천상 오르기 가능 여부는?
 -특이사항은?
 
이런식인데요... 이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망자에 대해 올바로 알고
그리고 그에 맞춰 맞춤형 49재 기도를 드리니까요.
이게 영선사가 일반사찰들과 다른면입니다.
-------------------
그런데 첫 질문의 문답에서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반혼재날인 음6월 22일 계속 추적을 하다가 엄청난,
스님이 처음 겪은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홍성언영가님은 '참회의 삶을 살기 위한 환생자'였습니다.
 
티베트 처럼 불법을 위해 환생하시는 환생자는 들어봤지만..
참회의 삶을 살기 위한 환생자라니...
비슷한 사례로.. 원귀님들이나 중음신님들이 계십니다만 분명히 다르답니다.
원귀는 한이 맺혀 그것을 복수하기 위해
계속 그집안이나 단체, 국가에 인간으로 반복적으로 태어나 복수하는 것이고.
중음신은 여러 경우가 있는데 남에게 죄를 지은 것이 업장이 되어
중음신 감옥으로 떨어지기도 하지만
스스로 원한을 갚기 위해 중음신감옥을 선택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유명한 서양화가셨던 '천경자'선생님이 그사례.
자신이 그리지 않은 수준 낮은 위작의 그림을 선생님 것이라 결론짓는 것에 분노하시고
절필하신 뒤 사망하셨습니다.
사망 이후 본래 천상으로 가실수 있음에도 스스로 중음신이 되신 사례라고 해요.
이경우 당시 위작을 진품으로 강요한 자들은
사후 끔찍한 일을 당하게 된답니다.
 
이런 억울함을 하늘이 허락하시면 원귀나 중음신이 될수 있다고 하고요.
(천경자선생님이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하신  것이 진실)
천신위에 갈수 있는 분들 가운데 스스로 요청한 분들에게만 허락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특별한 사례고 많은 중음신들은 죄를 지어 자동으로 분류.
 
그런데 그런 것이 아닌
자신의 죄업을 참회하기 위해 스스로 환생하신다니...
성중님께선 이런 사례는 아주 드믈다고 하십니다..
 
중음신은...특별감옥에 속하고..
무수한 고통을 겪는 자리니 절대 가시면 안되요.
하늘의 천신위로 갈수 있는데 포기하고
한맺힘을 택하였으니 그한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천경자선생님은 중음신 감옥에서 큰 고통 받는걸 감수하고도 중음신 선택.
위작을 진품으로 판정한 자들은 사후 전원 중음신감옥으로 직행.
천경자선생님이 용서하고 허락하기까지는 저승 자체를 못갑니다.
--------------
오늘까지 계속 사연을 추적했습니다.
이생에서 '홍성언'이라는 이름을 가지신 이분은
1597년 정유재란 때 김천지역 현재 구성면 남단에서 전사하신
소규모부대 의병장이셨답니다.
면지역 규모의 의병장으로 따르는 의병은 약30여분...
 
정유재란에서 왜군의 패배가 확실해지며 일본군은 철수하게 됩니다.
당시 왜군들은 여러갈래로 철수하고 있었는데
기록을 찾아보니
 
"1597년 9월 10일에는 모리-구로다의 본대가 북상하여 안성과 죽산 일대를, 
가토가 진천을 공략하는데, 
9월 14~15일을 즈음하여 모두 청주의 본진으로 후퇴하였고, 
이후 가토가 충주로 북상했다 조령을 넘어 상주방면으로, 
모리-구로다의 본대는 보은->황간으로 남하하여 추풍령을 넘어 김천방면으로 퇴각하였다."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바로 이 김천으로 퇴각했던 왜군의 부대랍니다.
이왜군들과 의병장님이 9월 20일경 조우...
문제는 의병장님이 적에 대한 정보가 한정되다보니..
숫자에 대한 착오를 하셨답니다.
그래서 적은 규모의 왜군이 오는 것으로 착오하셨데요.
그런 정도는 막을수 있다하여 전투를 준비하셨는데...
모리-구로다의 본대가 떼거지로 온거죠..
 
여기서 의병장들과 의병들이 싸우다 모두 전사하셨는데..
이왜병들의 잔악함이 이루말할수 없었답니다.
전 지역민을 학살했고..
여인들은 능욕을 당하고 학살...
이걸 의병장님이 보신거에요.
그러면서 의병장님은 크게 절규하고 자책하셨다고 해요.
 
"내가 판단을 잘못하여 죄없는 이들이 저렇게 도륙을 당하는구나.
이 죄를 어이 갚느냐..."
 
의병장님이 스스로 잘못했다 자책하신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피난이었답니다.
왜군의 숫자가 많은 줄 알았다면 미리 알리고 피난을 시켜 전멸을 피할수 있었을거라는거..
부녀자들의 능욕을 막을수 있었을 거라는거..
 
하지만 성중님은 아니라고 확언하십니다.
그렇게 했어도 피할수 없었데요.
 
이건 실제 사례로도 나옵니다.

김천신리영천이씨정려비(金泉信里永川李氏旌閭碑)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신리 525-
김천신리영천이씨정려비는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절개를 지키기 위해 자결한 영천이씨를 기리는 비이다. 영천이씨는 남편 정유한이 선전관으로 출정한 뒤 흑운산에 숨어 있다가 왜적에게 잡혀 왜적이 욕보이려고 젖가슴을 만지자 더럽혀진 젖가슴이라며 칼로 젖가슴을 자르고 은장도로 28세에 자결하였다. 이에 왜군은 영천이씨를 칼과 활로 시신을 난도질하여 바위에 흩어 버렸다고 한다. 이후 1633년(인조 11) 조정에서 절부(節婦)의 칭호를 내렸고, 향리에서 부인이 순절한 자리에 정려비를 세우고 그 앞에 우물을 파서 귀감이 되도록 하였다.

이지도를 보시면 구성면 하단은 봉산면에서 멀지 않은 위치입니다.
성중님 말씀대로 왜군의 잔악함이 그대로 드러나있죠.
여성을
'칼과 활로 시신을 난도질하여 바위에 흩어 버렸다고 한다. '
이거.. 성중님이 맞다 하셨습니다.
이런 극악무도한 놈들과 싸우시다 전사.
그러니 피난을 시켰다해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게 성중님 판단이십니다.
 
이때의 참상은 성중님 말씀에 의하면 전체 주민의 도륙이라고 해요.
이건 맞을거라 봅니다.
이런 대참사가 벌어지면 특징이 있습니다.
'기록이 남지 않는다' 입니다...
남원성 전투가 그랬습니다.
남원성민 전체가 도륙.
당시 단 1인도 살려두지 않았다고 해요.
이런 경우 일본에 그 기록이 남습니다.
남원성 전투도 간호병으로 참전했던 한 승려가 쓴 글에 참상이 남아 있습니다.
 
이김천 구성면 하단에서도 같은 일 발생...
자료를 여럿 살폈지만 우리나라에는 정유재란 왜구 퇴각로가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김천 지역은요.
그런데 일본에 있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우리가 '임진왜란'이라 부르는 것을  '문록의 역( 文禄の役 )'
'정유재란'이라 부르는 것을 '경장의 역(慶長の役)'이라 부른답니다.
지네 연호를 따서 부르는 건데요.
이지도는  '경장의 역(慶長の役)'으로 정유재란입니다.
여기에 분명히 김천쪽으로 퇴각하는 왜군들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저 길에서 의병장이 순국하시고 지역민들이 모조리 도륙.
 

아건 또 다른 일본 지도인데요.
우리나라에는 이런 지도 자료가 부족합니다.
저위에 
" 모리-구로다의 본대는 보은->황간으로 남하하여 추풍령을 넘어 김천방면으로 퇴각하였다."
이렇게 설명하신 분과 일본지도의 내용이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정유재란 피해 지도 하나 제대로 못만들었다는 건데요.
이건 역사학자들 잘못이 아니라
전체가 전멸하면 나타나는 일입니다.
증언자가 하나도 없으니 적이 지나갔는지도 모르는거죠.
-----------------------------
이렇게 의병장께서는 울부짖으시며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하셨고..
사망 후 하늘에서 의병장의 전인생에 대해 조사하시고 결론을 내시는 단계에서
당신의 선행은 하늘의 천신으로 보내시는 그 이상으로 평가되었지만
본인이 나의 잘못을 참회한다며
그죄를 갚는 참회자로서의 환생을 택했다고 합니다.
하늘에서는 만류하셨지만 본인이 선택...
 
이렇게 의병장께서는 이번생에 6번째로 환생하셨다고 합니다.
1597년 전사....
2025년..졸하시기 까지..총 6번 같은 지역에 환생...
그 중 이번까지 5번째 49재..(1번은 후손들이 패싱)
이전 5번 환생에서 4번 천신으로 가실수 있었던 삶...
그럴 때마다 하늘이 만류하셨다는데...
참회의 환생이시니 어찌 그 삶이 편안하셨겠습니까?
뭔가 개인적 고통을 지고 평생을 사셨을듯 싶습니다. ㅡㅡ..

아드님이신 별처럼(홍진곤)님이 댓글에서 밝힌 내용입니다.
예측대로 참회자로서의 삶에 맞게 개인적인 아픔의 일이 있으셨습니다. ㅜㅜ..

" 스님의 추정처럼 아버님은 분명 핸디캡을 가지고 태어나셨습니다. 제가 알기로 8달만에 일찍 태어나셨고, 3살 때 홍역을 알아 한 눈을 잃으셨습니다. 착한 심성에 일은 열심히 하시지만 누구로부터 존경받기 보다는 가끔 깔보는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난을 스스로 선택하셨습니다."

아버님의 실제 모습과 성중님의 말씀과 통하는군요.
스스로 생각하기에 판단 미쓰.... 바로 보지 못하셨다고...눈을.. 그랬군요..
이번생만 그러신게 아니랍니다..

효순한 아드님인 홍진곤거사님이 아니었다면...
유족들이 49재를 결정하지 않았더라면 묻혔을 진실...
의병장님의 기약없는 참회가 거듭되었을 일인데.....
더욱 무거운 책임이 느껴집니다..

유족분들도 이제 진실을 알려드렸으니
깊은 존경으로 의병장님을 생각하고 기억해주십시오.
스님은 거짓말 안합니다.


그런데 이번생도 똑 같은 입장이시라네요.. ㅜㅜ...
다시 참회자로서의 환생하시겠다고.
하늘도 마찬가지고 성중님도...
이제는 그리하시면 안된답니다...
 
이분을 이제 편안히 천상으로 보내드려야 하겠군요..
내면의 사연이 이러하니
스님이나 유족들은 당연하고...
인연된 님들도..함께 마음을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공교롭게도... 49일기도 잔재중에..지장기도 회향일과 겹치기도하고..
49재도 지장기도 회향일에 겹쳤습니다..
예삿일이 아니군요...
이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밋션일까요?
...
 
성중님께서...
함께 순국하신 이들의 위패를 모셔서 같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이전에 아무도 하지 않은 일...
우리시대에 우리가 마무리해드려야 합니다..
----------------------
선망 남양후인 홍성언영가
선망 정유재란 김천구성지역(홍성언)의병장 김천구성지역 정유재란 전몰지령
 
홍성언(정유재란 의병장)님의 고귀한 뜻을 기리며..
(의병장님의 저승 시계는 1597년 9월에 멈춰있답니다.
당시와는 이름은 다르지만 동일한 분.
이후 참회의 환생자로 살은 수명이 다해 졸하면 1597년 의병장 신분으로 복귀. )

2025년 음6월 25일...
원생수행자 영선사 주지 월공 記..
 ------------------------------------
성중님께서는 임진정유 7년 전쟁은 일반 전쟁이 아니라하십니다.
풍신수길(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주군이었던
노다 오부나가를 조정했던 전생 천왕님급 아수라가 일본인들을 부추켜
세계 정복전쟁을 획책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당시 일본은 전쟁만 하던 나라였습니다.
전국시대(센고쿠시대) 내내 전쟁이었고 이후 풍신수길이 통일.
그힘으로 조선을 침공하였는데 그 전투력은 상상초월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백병전의 전투력은 최소 5대 1.
조선군 5명이 붙어야 왜군 1인 상대 가능.
이상태에서도 최종으론 조선군이 졌답니다.
6대 1로 붙어야 왜군 죽이기 가능.
 
이런 아수라군을 막기 위해
당시 충무공을 비롯하며 원포인트로 천군들이 대거 하강하셨다고 해요..
충무공을 보호하시기 위해 화신부처님 1분도 먼저 하강. 그 분이 서애 류성룡선생.
이건 업생하고 틀립니다.
의병장님도 그 천군들 중 1분.
이분에게도 해당지역민들 살리라는 밋션이 있었는데....
사망하고 보니 그게 있었다는걸 아신겁니다...
그러기에 더욱 가슴아파하시고..
참회의 환생을 선택..
 
일반 천신님들은 인간 한 생도 버거워하는데..
스님도 마찬가지고...
인간으로 산다는 자체가 고역..
우리가 살아봐서 알잖아요.. 인생 얼마나 힘듭니까...
그런데 그끔직한걸 계속 선택...
 
이젠 의병장님의 저승 시계가 정상적으로 돌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드려야 합니다.
아울러 김천시 구성면 지역의 억울하게 전멸하신 영혼들..
위령재를 모셔 함께 저승으로 보내드려야 합니다.
전쟁에서 사망하면 모두 전몰지령으로 분류된답니다.
의병장님과 함께 사망하신 지역민들.. 저승 못가신 분들이 무수하데요...

전국에 이런 분들이 무수한데...
어느 정도 심각하냐면..
스님이 성중님께 범위를 넓혀
정유재란 전국 단위 위령재를 모시면 어떻겠냐 여쭈니 불가하답니다.
전몰지령님들이 너무 많데요.
남원성만해도 '만의의총'이라 부르지만 실제는 1만 2천에 육박한다고해요.

우리의 7번 위령재로도 감당이 안되는 그정도로 심각...
그 지역민들도 함께 보내야 의병장님이 참회의 환생을 멈추실 것 같습니다.
 
양력 7월 27일 321차 지장기도를 마친날 새벽 위령재,
양력 8월 31일 322차 지장기도를 마친날 49재 대재와 위령재...
지장기도팀들은 함께해주세요.
이것도 복을짓는 일입니다.
 
악에 바친 아수라군대
(왜구 '모리수원(毛利秀元(모오리 히데모토, 모리 히데모))')  3만이 퇴각하며
김천에서 성주로 내려가는 길에서 도륙을 했습니다.
얼마나 참혹했겠습니까.
이미 바로 직전 봉산면에서 살육을 저지르고 남하하던 성태.

---------------------------------
아래는 일본 장유재란의 일본 자료입니다.
정유재란 일본군 퇴각로, 그 중 김천지역 퇴각로가 우리나라에는 자료가 적습니다.
오히려 일본에 존재.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측 '경장의 역!이라는 지도의 보라색이
김천지역을 지난 왜군들입니다.
지도에 의하면
'모리수원(毛利秀元(모오리 히데모토, 모리 히데모))'라고 나오는데요.
잘 들어보지 못한 왜장의 이름입니다. 
 
직산전투에서 이들의 병력은 약 3만명으로 나오네요.
성중님이 병력 규모가 맞다고 하시고요.
이 부대들이 거의 손실 없이 퇴각하며 김천을 지났다고 합니다.
3만명이 지나갔으니 초토화 되었겠죠.. ㅜㅜ..
더구나 항전지역이니.
 

 스마트폰은 사진을 누르시면 확대 가능합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별처럼 | 작성시간 25.08.24 잠을 많이 잤더니 아침 운전이 평화롭습니다. 영선사로 향하는 고속도로에 아침 햇볕이 비치니 푸른 나무들이 옅은 노랑과 어울려 아침의 생기를 보여줍니다.
    6.7재에 아버님을 다시 회상해 봅니다. 웃으며 보내드려야 한다고 그동안 너무 감사의 시간을 잊은 건 아닌지 차분한 마음이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거의 평생 새벽 3시~4시에 일어나 구들방에 불 때면서 쇠죽을 끊이고 우리가 일어나기 전에 들판에 나가서 한 두 시간 일을 하고 들어오셨습니다. 70 넘어서 까지 흐트러지지 않은 걸로 기억됩니다. 여름 뙤약볕에 남들은 그늘에 쉬는데도 아버지는 홀로 나가 일하셨다 하네요. 오늘 어머니께서 없는 살림에 그렇게 어렵게 일해 하나 대학 보내면 알아서 살겠거니 했는데 젤로 못산다고 한탄하시네요. 저만 홀로 아니라고 웃습니다. 받을 것 다 받고도 세심하지 못한 죄송함이 있습니다. 일주일 마다 조금씩 다른 마음입니다. 오늘은 날씨처럼 기도가 편하고 밝습니다. 스님 덕분에, 같이 동참해주신 도반님들 덕분에 힘이 되어서 인지 아버님도 밝아 보입니다. 음식이 여전히 정성스럽고 푸짐합니다. 아버님의 생애와 의병장님의 숭고함에 감사드리며, 전몰지령님들의 해탈을 기원드립니다.
  • 작성자별처럼 | 작성시간 25.08.31 스님 피곤하지 않으신지요?


    참으로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침 9시반 부터 시작해서 재를 마치니 2시가 넘었네요. 스님께서는 아시는 만큼 책임감도 더 크게 있으셨을 듯 합니다. 남들은 모를지라도 맡겨진 49재에 정성을 다하시는 모습입니다. 이번에는 더군다나 스님께서도 처음 겪는다는 참회 환생자님의 49재이며, 또한 가슴 아픈 사연의 전몰지령님들을 위한 위령제가 함께입니다. 마지막 한 분까지 외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참회의 시간이 길어지고 기도의 시간도 길어졌습니다. 그 모든 과정들을 스님의 어깨에 짊어지고 7번의 재를 이끌어 오시고 마지막 7.7재에서는 4시간을 넘게 걸려서 기도의 과정을 마무리 하셨습니다. 힘든 길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중생을 위하시는 마음에 감사 드립니다. 중생제도의 바른 일에 많은 에너지를 쏟으시면서 땀도 많이 흘리시니 피로가 있으실까 염려됩니다. 푹 쉬시고 힐링도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버님의 49재, 지역 의병장님의 참회에 따른 기약 없는 환생과 절망, 지역 전몰지령님들을 위한 기도, 이 모든 기도를 원만히 이끌어 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 작성자별처럼 | 작성시간 25.09.01 지장행자는 지장보살님의 서원을 따릅니다. 또한 가르침을 따릅니다. 응당 가르침에 따라 돌아가신 분의 49재를 지내며 음식을 정성껏 차리되 먼저 먹지 않으며, 정성껏 기도하여 죄를 가볍게 하며, 경의 가르침을 듣고 천상에 나기를 기도합니다. 그렇게 나의 주변을 아름답게 꾸미지만 이어서 방생도 하고, 인연이 닿는 기도에 힘을 보태어 중생제도에 동참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장차 지장보살님의 서원에 따라 모든 중생을 제도한 후에 성불합니다.
    이번에 스님의 인도하심을 입어 역사의 참혹한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을 함께 했습니다. 수 많은 지역 전몰위령님들의 천도에 힘을 보탠 법우님들을 생각해 봅니다. 아픔 속에서 고통 받던 지역민들이 바른 길로 나아가도록 많은 분들께 인연이 되어 주셨습니다. 서로를 위하는 길에 같이 서 있기를 바래봅니다. 같이 있어서 마음이 넉넉했습니다. 감사 드립니다.
  • 작성자별처럼 | 작성시간 25.09.01 앞의 시간들은 기억에서 사라지고 어느새 마직막 7.7.재에 도달했습니다. 다행히 여러 여건들이 잘 맞았습니다. 생활 여건들이 잠시 휴식을 취해도 될 정도로 기도의 시간을 내어 주어서 너무나도 감사한 49일이었습니다.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을 편안하게 보내드린다는 것이 뜻 깊은 일임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 과정을 기도의 도량 영선사와 함께해서 좋았습니다. 매주 참석할 때마다 편안한 안방처럼 아늑하고 따뜻했습니다. 아마도 음식을 만들고 이것 저것 빠지지 않게 하고, 재단을 아름답게 꾸며서 전체 기도를 받쳐주는 미소의 대성보살님 덕분입니다. 김홍록 거사님 덕분입니다.

    이번에 아버님 재사를 통하여 가족들이 함께 절에서 기도하는 인연을 가졌습니다. 신심이 깊지 않아서 1년에 한번쯤 절에 놀러 가는 정도의 신심인데 모두들 긴 시간의 기도를 잘 받아들이고 조금도 불편한 기색이 없네요. 모두들 아버님을 정성껏 보내드렸다는 마음인지 편하고 밝습니다. 스님께서 그렇게 오랜 시간 이끄시면 힘드실 텐데 하면서 고마움도 표합니다.
    잘 회향하면서 모두에게 감사 드립니다.
  • 작성자도솔화 | 작성시간 25.09.01 원명거사님의 글 한자한자가 너무나 많은 감사를 담고 있네요
    거사님! 아버님의 7.7재 전몰위령님들의 위령재 모두 한마음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전몰위령님들이 얼마나 한이 많으셨으면 제가 대신 울음으로 토해냈을까요
    모든 위령님들이 함께 천상으로 오르시길 다시한번 기원해봅니다
    여기까지 이끄신 스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