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전의 죄를 고백 하고자 한다.
임신 중이라 삶은 계란이 왜 그리 먹고 싶었는지....
그런데 암탉이 꼬꼬댁 울며 알을 낳기만 하면 시아버님은 알을 가져다 쌀 창고에
넣고 문을 잠그신다.
결혼을 반대한 며느리기에 모든 짓이 밉기만 할 터라
“아버님 제가 계란이 먹고 싶어요”라고 할 수 있는 처지가 못 되었기에 그저
“친정에 가면 먹을 수 있을 텐데”하는 마음에 언제나 친정에 보내줄까~
학수고대만 하고 있는 바보 같은 며느리였다.
시댁은 내가 자라온 환경과 너무 다른지라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돈이라면 벌벌 떨고 쓰지 못하는 두 어른들이고 호랑이보다 더 무서웠던
시아버님은 내 앞에 계시기만 해도 가슴이 콩당콩당 뛰고 대문을 열고 들어오시면
가슴은 벌써 뛰기 시작했고 늘 상 친정아버지랑 비교가 되고 유독 마음이 약했던
나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일철이 돌아오면 서너 시간 자는 잠에 아궁이 불을 때며 졸다가 눈썹을 태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닌 나를 보고도 한번 다녀가신 친정 엄마는 전화만 하면 그저
참고 살라는 말씀만 되풀이 하시며,
어른 말에 말대꾸 하지 말고 어른이 살면 평생을 사시냐 먹고사는데 지장 없으니
어른 말에 순종하며 잘 해드리라는 얘기만 하셨다.
아마도 엄마가 보시기엔 대궐 같은 기와집에 창고가 몇 개나 되어 부잣집 며느리
가 먹을 것 걱정 없고 모든 것이 넉넉하니 가난한 우리 집에 비하면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셨던지 어른들만 잘 모시라 하셨다.
너무나 다른 환경에 살아가고 있던 나를 돌아가신 아버지가 보셨다면 아마 딸을
다시 친정으로 데리고 가셨으리라.
생전에 연필 한 자루까지도 당신 손으로 깎아주시고 툭 하면 업어주시던 아버지.
농촌 생활이라 그리 넉넉하지도 못한 집 살림에도 다른 애들은 검은 고무신을
신고 다니던 시절,
나에게만은 운동화를 사다주시면서 기죽지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하라 하시던 분,
공부 잘 하는 내 딸 꼭 서울대학 가야 한다 하시던 내 아버지,
그러던 그 딸이 그렇게 울고만 살았으며 그 딸은 대학도 못가고 아버지를 그리며
글만 끄적이며 있었으니.....
법 없이도 사신다는 내 아버지가 그리워서, 너무 비교되는 시댁어른들을 보면서
부엌 뒷 모퉁이로 돌아가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다.
농사가 많으니 일은 또 왜 그리도 많은지 일꾼들 밥 만해도 하루가 금방 가는데
임신하여 입덧은 심하고 먹는 것이 부실하니 논둑에서 쓰러지기도 했다.
이리 힘든 시집살이를 어찌 친정에다 말하랴 내 어머니 우실까 봐 말도 못하고
베개가 흥건하도록 울다 지쳐 날이 샌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느 날 아침식사를 준비 하려는데 닭이 왜 알을 안 낳느냐고 시아버님이
어머니께 물어보셨다. 그러시기를 여러 날, 난 그런가 보다 하고 하는 일만했다.
아침을 드신 두 어른들이 인부들과 일하러 가시고 새참을 하려고 나뭇간에 나무를
가지러 갔는데, 그런데 아니 닭이 거기다 알을 낳았던 것이다.
세상에 닭이 나를 위해 여기까지 와서 알을 낳았구나 생각하며 어른들께 들킬까봐
얼른 삶아 먹어 버렸다. 예닐곱 개의 알을 한꺼번에 먹어 치운 것이다.
그날따라 암탉이 고맙고 감사하기 까지 했다. 얼마나 먹고 싶은 계란 이였는데...
닭장과 나뭇간은 내가 기거하는 행랑채를 지나야 하고 지나기 전 소 우리도있는데
참, 별일이었다. 내가 그 토록 먹고 싶어 하는 것을 아는 냥 두 곳을 거쳐서
내게 선물을 준 것이다.
가슴은 뛰었으나 얼마나 맛있던지 순식간에 먹어 치우고 어른들께는 모르는 척
지나갔다. 얼마나 세월이 흐른 뒤에 시모님께 사실을 여쭸더니 잘 했다 하신다.
하기사 “어머니 저 계란 먹고 싶어요” 하면 먹지마라 하시진 않았을 텐데 워낙에
무서운 집이라 감히 말을 못했었다
임신 중 그 계란을 먹고 싶어 한 후 태어난 아이가 바로 잘 생긴 내 아들이다.
평소 먹지도 않았던 계란이 그 토록 먹고 싶었던 것은 예쁜 아기가 뱃속에서
먹고 싶었던 것이었으리라.,
지금은 계란 한개도 겨우 먹는데...
지난날의 일들이 떠오르니 눈물이 나려한다.
지금은 그 암탉에게 고마움을 표시 할 수도 없다. 예전에 하늘나라로 갔으니...
그래도 “암탉아~너의 선물, 고마웠어 그때 정말 고마웠어!
네가 준 알 선물 참으로 맛있게 잘 먹었었어....“
그 이후 나는 지금껏 잘 참고 살아 왔다. 그런 며느리를 이해 하셨는지,
시아버님이 정식으로 사과도 하셨다. “미안하다 그 고운 마음씨로 지금까지 잘
참아 주었구나 고맙다“하시면서 오십만원짜리 수표 한장을 손에 꼭 쥐어
주시는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이러 실거면서 그 토록 내 눈에 눈물을 흘리게 하셨는지 참 많이도 울었던 날,
이사해서 뭐 하나 사라고 하시며 주신 오십 만원은 아버님은 오천만원의 돈에
버금가는 가치였었을 텐데,
그때가 11년 전 서울로 이사 오려고 날 잡아 논 상태였었다.
그 후론 시아버님을 미워하지 않고 잘 해드리려고 노력한다. 아버님도 며느리
셋 중에 내게 가장 잘해주신다. 때론 동서에게 미안할 정도로 잘해 주신다.
“아버님 닭 알을 먹고도 말씀 못 드린 며느리가 이제 서야 아버님께 죄송하다고
말씀 드립니다. 죄송합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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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39회 나형두 작성시간 13.02.14 과거를 털어놓으니 속이 후련하십니까 ? 글도 잘쓰시는 며느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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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아카시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3.02.15 30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과거의 추억입니다
지금은 너무 잘 해주시는 시어른이라서 저도 더 잘해드리고 싶지만
생활이 바쁘니 부족함이 많지요.
한가하여 써놨던 글중 하나를 올렸어요
선배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감사한 날되십시요 . ^^ -
작성자케렌 37회 작성시간 13.02.15 감동 감동~~ 아카시아 후배님!!
소설같은 스토리가 어찌나 감동스런지...
그랫엇군요.. 계란~ 임신중에 먹고싶은 삶은계란을 시어른 무서워서..
이제는 매우 사랑받는 며느님으로...
이뻐요 후배님!! 사랑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아카시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3.02.15 제가 겁도 많고 좀 모자라서 그랬나봐요
지금은 한장의 추억이죠 ^^ 스토리 중 하나를...
지금은 아버님께서 제가 좋아하는 것이면 무조건이랍니다 ^^
선배님 저도 사랑합니다 마니마니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