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신작 에세이】
시골집 ‘머릿방 마루’의 추억
― 마루에 걸터앉아 기타 치던 넷째 형이 그리워
윤승원 수필가.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머릿방’은 머리를 깎는 이발소가 아니다. 여인들이 머리 하는 미장원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안방 뒤에 딸린 작은 방’을 말한다.
충청남도 청양군 장평면 중추리 가래울 마을.
나의 고향 옛 시골집은 디귿(ㄷ) 자 형태의 안채가 있고, 아버지가 주로 기거하시던 사랑채가 있었다.
어머니가 살림하시던 안채에는 안방이 있고, 우리 형제들이 공부하던 곳은 뒷방이었다.
그런데 뒷방에 딸린 방이 하나 더 있었으니, 그게 바로 ‘머릿방’이다. 이 방의 용도는 다양하게 쓰였다.
바로 코앞에 있는 인근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하숙방으로 쓰였고, 어느 한 시절에는 외지에서 온 손님의 숙소로 쓰이기도 했다.
머릿방엔 운치 있는 마루가 있다. 그 앞 화단에는 석류나무가 터줏대감처럼 버티고 서있었다.
화단엔 주황색 원추리꽃이며, 연분홍 봉숭아꽃도 곱게 피었다. 무궁화도 피었다.
그러니, 우리 집에서 ‘가장 운치 있는 방’이라고 하면 바로 ‘머릿방’을 가리킨다.
갑자기 시골집 머릿방이 생각난 것은 다름 아니다. 넷째 형이 이곳 머릿방 마루에서 기타를 즐겨 쳤다.
형은 나와는 세 살 차이다. 다른 형님들은 나이 차가 많아 대하기가 어려웠는데, 넷째 형과는 친구처럼 한방에서 뒹굴 정도로 늘 붙어살았다.
나는 넷째 형이 곁에 없이는 못 살았다. 유년시절, 형의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그러나 형이 30여 리 넘는 먼 지역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나는 외롭고 심심해서 견딜 수 없었다.
형이 보고 싶어 참을 수 없었다. 그 먼 길을 걸어서 통학하는 형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집에서 무작정 기다리지 않았다. 형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그 먼 길을 마중 나갔다.
가깝지도 않은 그 먼 중학교에 다니는 형을 초등학생 동생이 매일같이 마중을 나간다면 요즘 누가 이해할까?
형을 마중 가려면 큰 들판을 두어 번 거쳐야 한다. 강둑과 연결된 섶다리도 건너야 한다. 나룻배도 타야 했다.
어린 초등학생이 타박타박, 그 먼 길을 걸어 형을 마중 가다가 형의 친구들을 만나면, 무척 반가웠다.
“우리 형 어디 와요?”
만나는 형의 친구마다 물었다. 이웃 동네에 사는 병성이 형도 만났고, 영철이 형도 만났다.
만나는 형마다 또 “우리 형 어디 와요?”라고 물으면 형의 친구들이 내 머리를 귀엽다는 듯이 쓰다듬어 주었다.
“지원이 동생 승원이, 또 마중 나왔구나!”
드디어 형을 강둑에서 만났다. 나는 형이 반가워 책가방을 얼른 빼앗아 들었다.
중학생 형의 책가방에선 잉크 냄새가 났다. 연필만 쓰던 초등학생 동생은 형의 책가방에서 풍기는 이상야릇한 ‘만년필 잉크 냄새’가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시골 소년에게 그건 ‘냄새’가 아니었다.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운 고급스러운 ‘책가방 향기’였다.
형의 묵직한 책가방을 들고 집에 오는 나는 마냥 즐거웠다.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집에 오면 형과 함께 소 꼴을 베러 지게 지고 나갔다. 형과 함께라면 들에 나가 소 꼴을 베어 오는 것도 즐겁고, 산에 나무하러 가는 것도 즐거웠다.
갑자기 형과 헤어질 날이 왔다. 객지의 장형이 데려갔다. 연로하신 아버지가 그러셨다.
“이제 내가 늙어 너희들을 더는 가르칠 수 없으니 객지로 나가거라.”
그렇게 헤어진 우리 형제는 한세월 이산가족이 됐다.
막냇동생은 노부모님 밑에서 형이 한없이 그립고 보고 싶은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형을 다시 시골집에서 만난 것은 큰 기쁨이었다. 군대 가기 전에 잠시 형과 함께 지낼 수 있었다.
공부도 잘하고 머리가 명석했던 형은 바둑도 잘 뒀다. 퉁소도 기가 막히게 잘 불었다.
기타도 전문가 못지않게 능숙하게 잘 다뤘다.
재능이 뛰어난 형은 못 하는 게 없었다. 글도 잘 썼다. 동생에게 형은 우상이자 신비로운 존재였다.
이렇게 형과의 옛 추억을 마치 벽장 속 궤짝에서 색 바랜 역사책 꺼내듯 풀어놓는 것은 다름 아니다.
석류꽃 핀 머릿방 마루에서 ‘기타 치는 형 모습’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 기타를 잘 치고, 퉁소도 잘 불고, 멋과 낭만을 즐겼던 농촌 청년 - 석류꽃 핀 머릿방 마루에서 기타 치는 넷째 형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동생은 형이 곁에 있으면 든든하고 좋았다.(추억 복원 = AI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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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 한없이 그립다. 칠십 대 백발 할아버지가 됐는데도 어린애처럼 형이 그립다.
가수 배호(1942~1971) 노래를 유난히 좋아했던 형. 형이 기타를 치면 동생은 노래를 불렀다.
화단에 곱게 핀 꽃 바라보면서 기타 치며 노래하는 형의 모습은 고향 가래울 마을의 ‘청년 스타’였다.
퉁소를 불면 이웃집 청년들이 모였다.
만종이 형, 영렬이 형도 낭만적인 농촌 청년들이었다. 동생만큼이나 형을 좋아했던 동네 청년들이다.
형은 너무 아쉽게 세상을 떠났다.
무심한 세월이 흘러 이제 어느덧 백발노인이 된 동생은 형을 남몰래 그리워한다. 그리워하면서 눈물 흘린다.
문득 형이 보고 싶을 때, 앨범을 뒤적여 본다. 하지만 당시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안타깝게도 사진 한 장이 없다. 시골집 머릿방 마루에 앉아 멋지게 기타를 치던 형의 사진이 한 장도 없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있나, 그 흔했던 카메라가 시골집에 있었나, 그 당시 건장하고 멋졌던 농촌 청년, 형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없다.
팔순 누님은 요즘도 동생과 통화할 때마다 눈물을 자주 쏟으신다.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젊은 시절 우리 형제들의 모습.
그리고 고생하시면서도 지극정성으로 자식 사랑하셨던 부모님의 모습. 그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누님과 나는 눈시울을 적신다.
고향 시골집 머릿방 마루가 그립다. 그 앞 화단에서 곱게 피고 지던 봉숭아 꽃, 원추리 꽃, 석류나무꽃도 형의 얼굴처럼 그립다. ♧
2026. 6월
윤승원, 시골집 마루에서 기타 치던 형을 그리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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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이 작품은 단순한 형제 회고담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형을 그리워하는 이야기 속에 가족애, 고향의 원형(原形), 사라진 시간에 대한 애도, 그리고 기억의 문학이 깊이 녹아 있습니다.
특히 윤승원 수필가의 여러 작품 가운데서도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정서인 ‘그리움’이 가장 진하게 배어 있는 작품으로 읽힙니다.
1. 이 작품의 중심 정서는 ‘형에 대한 사랑’이다
수필의 첫머리는 시골집 구조와 머릿방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하지만, 실질적인 주인공은 머릿방도, 석류꽃도 아닙니다.
바로 넷째 형입니다.
어린 승원에게 형은 단순한 형제가 아니었습니다.
친구였고,
스승이었고,
우상이었고,
세상을 보여주는 창이었습니다.
초등학생 동생이 수십 리 길을 걸어 중학생 형을 마중 나가는 장면은 오늘날 독자들에게는 거의 전설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특히 다음 정서는 매우 인상적입니다.
“나는 넷째 형이 곁에 없이는 못 살았다.”
이 한 문장은 유년기의 절대적 애착을 보여줍니다.
동생에게 형은 혈육 이상의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형제애를 넘어선 영혼의 동반자에 대한 회상으로 읽힙니다.
2. 머릿방 마루는 ‘기억의 무대’다
문학적으로 보면 머릿방은 단순한 공간이 아닙니다.
이 작품의 상징적 무대입니다.
그곳에는
석류꽃이 피고
봉숭아꽃이 피고
원추리꽃이 피고
기타 소리가 흐릅니다.
마루에 앉아 기타를 치는 형의 모습은 현실의 인물이 아니라 마치 한 폭의 풍경화 속 인물처럼 묘사됩니다.
그래서 독자는 형을 한 사람의 개인으로 보기보다 “그 시절 청춘의 상징”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고향 가래울 마을 청년 스타”라는 표현은 형이 단순히 가족 안에서만 사랑받은 존재가 아니라 마을 공동체에서도 빛났던 청년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머릿방 마루는 결국 ‘청춘이 머물던 자리’, ‘가족의 행복이 머물던 자리’, ‘형의 웃음이 머물던 자리’가 됩니다.
3. ‘책가방 향기’는 가난했던 시절의 아름다운 감수성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빛나는 대목 가운데 하나가 바로 만년필 잉크 냄새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독자들은 쉽게 지나칠 수 있지만, 문학적으로는 매우 가치 있는 장면입니다.
“그건 냄새가 아니었다.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운 고급스러운 책가방 향기였다.”
가난했던 농촌 소년에게 중학생 형의 책가방은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잉크 냄새는 단순한 후각의 기억이 아닙니다.
그 속에는 ‘배움에 대한 동경’, ‘형에 대한 존경’, ‘어린 시절의 순수함’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마들렌 과자의 향기로 과거를 소환했듯이, 윤승원 수필가는 ‘잉크 냄새’를 통해 유년의 시간을 복원하고 있습니다.
4. 사진 한 장 없는 형의 모습이 더 큰 슬픔을 만든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울림은 후반부에 있습니다.
형이 세상을 떠난 것도 슬프지만 더 가슴 아픈 것은 “형의 사진이 한 장도 없다”라는 사실입니다.
사진은 기억을 붙잡아 두는 장치입니다. 그런데 형은 기억 속에는 살아 있으나 눈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작품은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인간은 무엇으로 남는가.
사진도 없고, 영상도 없지만, 동생의 기억 속에는
기타 치는 모습,
퉁소 부는 모습,
책가방을 메고 오던 모습이 또렷하게 살아 있습니다.
결국, 형은 사진으로 남은 것이 아니라 동생의 가슴속 이야기로 남은 것입니다.
이것이 이 작품이 지닌 가장 깊은 문학적 의미입니다.
5. 노년의 그리움은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다
작품 후반부에서 가장 감동적인 문장은 이것입니다.
“칠십 대 백발 할아버지가 됐는데도 어린애처럼 형이 그립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미래보다 과거를 더 많이 바라보게 됩니다.
특히 형제와 부모를 잃은 노년은 어느 순간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지금의 화자는 수필가도 아니고, 할아버지도 아니고, 백발노인도 아닙니다.
형을 기다리며 강둑까지 마중 나가던 그 옛날 초등학생 승원입니다.
이러한 시간의 역행은 노년 문학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특징 가운데 하나입니다.
6. 작품이 독자에게 전하는 궁극적 메시지
이 작품은 결국 독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언젠가 떠난다. 그러나 함께한 시간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머릿방 마루도 사라졌고, 석류꽃도 졌고, 기타 소리도 멈췄고, 형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동생의 기억 속에서는 여전히 석류꽃이 피고, 봉숭아가 피고, 원추리가 흔들리고, 형은 기타를 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수필은 슬픈 추모의 글이면서도 절망의 글은 아닙니다.
오히려 기억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나게 해주는 ‘추억의 부활’에 관한 작품입니다.
■ 총평
《시골집 머릿방 마루의 추억》은 형에 대한 그리움을 통해 사라진 고향과 가족, 그리고 유년의 순수를 복원한 아름다운 회상 수필입니다.
특히 ‘책가방 향기’, ‘형 마중 가던 들길’, ‘석류꽃 핀 머릿방 마루’, ‘사진 한 장 남지 않은 형의 모습’은 독자들의 가슴에 오래 남을 명장면입니다.
이 작품의 진정한 주제는 형을 잃은 슬픔이 아니라, 평생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형제간 사랑의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읽고 나면 독자들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형제, 부모,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고향의 풍경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적시게 되는 따뜻하고 품격 있는 회상 수필입니다. ♣
◆ 필자의 말
눈물로 수필을 썼는데 눈물로 작품 해설을 읽습니다. 자상하고 따뜻한 형제애 같은 위로의 해설, 감동입니다.
◆ 평자의 말
윤 선생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평자 또한 깊은 울림을 받습니다.
이 작품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윤 선생님께서 형님을 단순히 ‘회상’한 것이 아니라 아직도 마음속에서 ‘함께 살고 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세상을 떠나도 두 번 죽는다고 합니다. 한 번은 육신이 떠날 때이고, 또 한 번은 기억하는 사람이 없을 때라고 합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넷째 형님은 아직도 살아 계십니다.
머릿방 마루에 걸터앉아 기타를 치고 계시고, 강둑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고 계시고, 만년필 잉크 냄새가 배어 있는 책가방을 메고 계시고, 동생 승원이를 바라보며 웃고 계십니다.
그것은 사진보다 더 선명한 기억입니다.
사실 이 작품에서 가장 마음을 울리는 대목은 형님의 죽음 자체가 아닙니다.
초등학생 동생이 먼 들길을 걸어가며 형의 친구들을 붙잡고 “우리 형 어디 와요?”라고 묻는 장면입니다.
그 장면을 읽으며 저는 어린 승원이라는 한 소년이 형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문학에서 가장 큰 감동은 화려한 수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에서 옵니다.
선생님의 작품이 독자의 가슴을 움직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형이 좋았다.”
“형이 보고 싶었다.”
“형이 그리웠다.”
이 단순한 마음이 작품 전체를 흐르는 강물처럼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인상 깊었던 것은 사진 한 장 남지 않았다는 대목입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것을 아쉬움으로만 끝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필가는 다릅니다.
사진이 없기에 글을 씁니다.
카메라가 남기지 못한 형님의 모습을 문장이 대신 남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감 평자는 이 작품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형님의 사진은 없지만, 형님의 초상화는 이 수필 속에 살아 있다.”
독자들은 이제 형님의 얼굴은 몰라도, 머릿방 마루에서 기타 치던 청년의 모습을 마음속에 그릴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문학의 힘입니다.
특히 작품 말미의 봉숭아꽃, 원추리꽃, 석류꽃은 단순한 꽃이 아니라 형님의 분신처럼 읽힙니다.
꽃은 졌지만 해마다 다시 피어납니다. 형님도 떠나셨지만, 기억 속에서는 늘 다시 찾아오십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애도의 글’인 동시에 ‘사랑의 글’이며, ‘상실의 글’인 동시에 ‘복원의 글’입니다.
선생님께서 눈물로 쓰신 작품이라 하셨는데, 아마 독자들도 읽으며 자신의 형, 누나, 부모님, 그리고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좋은 수필은 한 사람의 이야기를 넘어 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됩니다.
《시골집 머릿방 마루의 추억》은 바로 그런 작품입니다.
윤 선생님의 넷째 형님은 사진으로는 남지 못했지만, 이 아름다운 수필 속에서 오래도록 살아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훗날 손자분께서도 이 글을 읽으며 “우리 할아버지에게는 이렇게 그리운 형님이 계셨구나.” 하고 따뜻한 가족의 역사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점에서 이 수필은 단순한 회고록이 아니라, 형님께 바치는 가장 아름다운 ‘문학적 헌사(獻詞)’라고 생각합니다. 📖
📚 (雲峯, 윤승원 수필 전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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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윤승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8 ♧ 네이버 ‘청촌수필 블로그’ 댓글
◆ kangks1950(청양 장평 고향 선배 누님) 2026.6.18. 11:24
형님은 참 행복하신 분입니다. 세월이 흘러도 그리워해 주는 동생이 있으니, 그곳에서도 외롭지 않을 거예요. 선생님 덕분에 어렸을 때 고향 생각을 많이 해 보았네요. -
답댓글 작성자윤승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8 ▲ 답글 필자 윤승원 2026.6.18. 13:05
고향 선배 누님이 저의 글을 읽어주시니, 큰 감동입니다. 글을 쓴 보람을 느낍니다. 이 글을 쓰면서 동생은 울었습니다. 형님과의 유년 시절이 생생하게 떠올라, 한 줄을 쓰고 울고, 두 줄을 쓰고 울고, 동생은 그만 만분지일도 사연을 담지 못하고 끝내고 말았습니다. 저의 글을 읽으시고 팔순 누님이 곧바로 전화하셨습니다. 누님도 말을 잇지 못하고 우셨습니다. 저는 왜 이런 글을 써서 눈물바다를 만들까요? 고향 집 화단에 곱게 핀 원추리꽃, 봉숭아꽃, 석류꽃은 알까요? 아마도 형님은 꽃이 되어 동생을 위로하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따뜻한 정과 사랑이 담긴 댓글 주셔서 크게 위로를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