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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사는 이야기

아버지와 딸 그리고 장녀 콤플렉스

작성자無位子(이경란)|작성시간06.03.15|조회수1,433 목록 댓글 13

어느 책에 약간은 우스개로 나열한 신조 콤플렉스용어들을 보니...

 

장남/장녀 콤플렉스, 수퍼맨/수퍼우먼 콤플렉스, 신데렐라 콤플렉스, 온달 콤플렉스, 착한 여자 콤플렉스, 람보 콤플렉스, 컴맹 콤플렉스, 마더 테레사 콤플렉스, 영어 콤플렉스, 카인 콤플렉스, 진리의 메가폰 콤플렉스 등등... 많다.


콤플렉스란 통상적으로 억압된 관념이 무의식화되어 자아의 통제에 따르지 않는 복합적 상태를 일컫고,  다시 말해 한 관념이 명료한 의식상태에서 인식되면 곧바로 고통, 공포감, 수치감으로 직결되어 그것이 무의식 속에 깊이 잠겨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말로 남들과 비교해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껴 위축감이 드는 부분 그래서 별로 들추어 내고 싶지않은 인격의 한 면이라고 보아 열등감으로 번역하지만  위에 나열한 콤플렉스들을 보면 오히려 지나친 우월감, 에고가 극도로 팽창된 나르시즘, 완벽주의적 증세로 보아야 할 것들도 있다.


자비와 사랑, 희생과 이타행의 화신인 마더 테레사를 완벽하게 닮아 가려는 노력이 열등감은 아니지만
마더 테레사와 똑같은 마음으로 사느냐,  마더 테레사처럼 보이고 싶으냐는 다른 문제다. 

 


장남/장녀 콤플렉스란 말도 재미있다.
장남, 장녀로 태어난 것에 우월감을 느낄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열등감을 느낄 이유도 없다. 첫째 아이는 대개 부모의 큰 관심과 기대, 사랑을 받고 태어난다. 또 자라면서 부모의 기대와 관심이 크
면 클수록 장남, 장녀가 느끼는 의무감, 정신적 부담감도 크다.


장남의 심리는 또 다르겠지만 장녀 콤플렉스의 배경을 잘 설명한 한 정신분석가의 말을 인용해 보면...


" 큰딸은 살림밑천이란 말이 있다. 거기엔 (한국처럼 남아선호사상이 강한 사회에서) 딸이 아니라 아들이었으면 하는 보상심리가 작용한다. 큰딸은 그런 부모의 서운함을 보상이라도 하듯 일찍부터 어머니의 일손을 돕고 어머니를 대신해서 동생들을 돌본다. 맏이면서 남존여비사상에 깔려 장남만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 반면 부모, 형제의 갈등에는 가장 예민하며 또한 교량역할을 해야 한다. "


한마디로 장녀 콤플렉스는 맏딸로서 느끼는 책임감, 가족의 기대에 대한 중압감 또 불공평함에 대한 서운함 등등...  즉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억눌린 복합심리에서 오는 갈등, 욕구불만상태다.


요즘은 한 두 자녀만 가지는 가정이 많으니 탄생순서에 의한 의미도 서서히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부모의 관심과 기대는 그만큼 더 커지고 집중될 것이니 그런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려는 자녀의 의무감, 부담감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

 


특히 아버지와 딸 사이의 밀착, 고착관계를 말하는 '엘렉트라 콤플렉스'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8남매의 장녀로 태어나 아버지의 넘치는 사랑과 끔찍한 기대, 관심으로 완벽주의자가 되어가다 결국 31세의 젊은 나이에 의식과 무의식의 중간쯤에서 자살을 택했던 전혜린...


거의 일관적으로 <완전한 삶에의 순간>을 추구하면서도 한편 <無名으로 남을 용기>가 없었던 전혜린 - 완전한 삶의 조건과 무명으로서의 평범의 무질서를 모두 감당하려 애쓰다 스스로 놓아버렸다, 비범과 평범을 한꺼번에 소유하고자 했던 나르시스트였다고 평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 전혜린의 글에 대해서는 유독 비평가들이 큰 관심을 가져서인지 그의 작품 수보다 비평의 글이 더 많다. 전혜린은 자주 '작품다운 작품 한 편 쓰고 싶다'는 소박하고도 절실한 소망을 스스로 고백했으나 실제 번역서 외에 이렇다 할 작품집을 내놓지는 못했다. 독일번역문학의 뛰어난 선구자였던 전혜린에게 남의 글을 번역한 것은 '작품'이 아니었다. '작품'은 기존의 정신적 유산의 청산이자 무의식 속에 내재하는 갈등으로부터의 해방이어야 한다는 말에는 나도 동의한다.

 

작품다운 작품 - 무의식적 동기나 치열한 내적 욕구가 곧 바로 작품의 가치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전혜린의 '완벽함에 대한 집착'이 그 겸손한 소망을 이루지 못하게 한지도 모른다.


탁월한 언어감각으로 문학계에서 극찬을 받는 독일의 한 번역작가는 자신이 번역한 책에 원작자의 자세한 이력을 소개하고, 책 첫장에' Translated by OOO' 라고 이름 석자만 쓸뿐 자신의 화려한 이력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독자로서는그의 의도가 원작자에 대한 겸손인지, 원작자와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으려는 자기존중감인지, 아니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오만인지 구분이 안 된다.

그가 최고번역문학상을 받고 말한 수상소감을 들으면 알 것도 같다.

" 내 재산도 아닌 남의 집 살림살이를 옮겨준 이삿집센터 역할을 잘했다고 상을 주시니 아무튼 고맙습니다. "  
 

 

전혜린을 나르시스트, 완벽주의자로 만든 것은 무엇인가?


그가 회고하며 쓴 글을 보면...


" 나는 서너 살 때부터 한글책과 일어책을 전부 읽을 수 있도록 아버지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백러시아계의 양복점에서 소공녀가 입을 것 같은 원피스를 내게 사준 것도 아버지였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계실 때는 나에게 심부름 한 번 못 시켰다. 손에 물 하나 안 튀기고 내 방에서 공부만 하는 것 - 아버지가 한없이 아낌없이 사다 주는 책을 읽는 것이 내 생활의 전부였다. 나에 대한 아버지의 편애 때문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자주 말다툼을 하시는 것을 보았다. 어버지의 일방적인 기대가 어머니의 애정을 차단했다."


< 모성애! 난 그것을 얼마나 미칠 듯이 그리워 하는가! 난 그것을 받아보지 못하고 자랐고 그래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모성애의 동경은 내 가슴속에 뿌리를 내리고 말았다. ... 중략 ... 나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참으로 난 극단으로 기울어져 있다. >  - 1951년 1월 1일 일기 -


" 내 한마디는 아버지에게는 지상명령이었고 나를 무제한하게 사랑하고 나의 모든 것을 무조건 다 옹호한 아버지를 신처럼 숭배했었다.  아버지로부터 칭찬받고 싶다는 마음이 실현되는 때마다 나는 이 세상의 무엇보다도 행복했었다. 의식의 세계에서 나는 결국 언제나 아버지를 대상으로 지식을 쌓아 올렸던 것 같다. 마치 제단 앞에 향불을 갖다 쌓듯... "


전혜린은 무의식 속에서 요동치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이 고착을 단절하기 위해 독일유학을 떠난다. 그곳에서 다시 태어나려는 몸부림은 치열하다. 아버지가 원해서 택한 전공 법학으로 다져진 두뇌를 문학으로 세뇌하기 위해서 지독한 고독과 불면, 불안과 싸우는 고통을 거쳐야 했다.


5년 간의 뮌헨체류 - 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자유로왔던 정신적 고향에 다녀왔다고 회고하는 전혜린은 자신을 그렇게 끔찍히도 무제한으로 사랑하고 자신의 모든 것으로 신처럼 숭배했던 아버지에 대해 이제 이렇게 말한다.


" 나는 어머니가 나를 위해 하신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한다. 어머니는 사랑스럽고 선량한 분이다. 인간으로서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훨씬 가치를 지니고 계신다. 나는 아버지를 동정할 수 있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결코 그를 사랑하거나 존경할 수는 없다. 어머니를 존경하고 사랑한다. 아버지는 어머니같이 한 인간을 위해 공헌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아버지의 행복이고 운명인 것이다. "


5년 뒤 냉담하리만치 변한 아버지에 대한 태도...


더욱 출발하기위해 떠났다는 고국까지의 거리 9000 km 를 실감하며 아주 멀리서 자신과 아버지를 떼어 놓고 객관적으로 진실을 볼 수 있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모태에서 나오면서 첫 번째 탯줄을 끊었고, 이제 아버지의 분신이 아닌 완전히 독립된 한 인간으로 태어나기 위해 두 번째 탯줄을 자른 것이다.

 

 

 

인용 출처: 정신분석학적으로 본 위대한 콤플렉스/이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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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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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미륵골 | 작성시간 06.03.16 " 내 재산도 아닌 남의 집 살림살이를 옮겨준 이삿집센터 역할을 잘했다고 상을 주시니 ..." 한편으로 민망한 그 마음, 큰스님의 말씀 날마다님이 전수한 기술로 염화실 장경각에 올릴때 돌아오는 찬사에 대해 미륵골이 느끼는 부끄러움과 바슷한 것이겠지요.
  • 작성자묘연화 | 작성시간 06.03.16 무위자님,가서 잘 지내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세요.
  • 답댓글 작성자無位子(이경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6.03.16 이웃 나라인데요 뭐... 걱정 마세요. _()_
  • 작성자여연행 | 작성시간 06.03.16 전혜린..._()()()_
  • 작성자꽃비 | 작성시간 06.03.17 무위자님,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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