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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물끄러미에 대하여

작성자은빛물결|작성시간23.07.23|조회수85 목록 댓글 10

물끄러미에 대하여/이정록

 

모내기를 마친 논두렁에

왜가리가 서 있다. 이 빠진

무논의 잇몸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다

미꾸라지나 개구리를 잡으려다

어린 벼 포기를 짓밟은 것이다

진창에 처박힌 벼 이파리의 안간힘 때문에

몸살을 앓는 봄 논,

물은 저 떨림으로 하늘을 품는다

하늘을 따라 키 큰 미루나무가 문안 간다

쇠뜨기도 척추 한 마디를 뽑아 수액을 건넨다

물벼룩과 개구리와 어린 모가

가 닿아야 할 밥의 나라, 세상에

써레질을 마친 논만큼 깊은 것이 있으랴

식도를 접고 벌 받듯 서 있는 외발에게

많이 저리냐? 두렁 쪽으로 물결 일렁인다

어린 순 부러지는 줄 모르고 뛰어다니는

발길 사나운 것이 삶이라서, 늘

배부른 다음이라야 깨닫는 나여

물끄러미, 개구리밥을 헤치고

마음속 진창을 들여다본다

눈물 몇 모금의 웅덩이에 흙탕물이 인다

언제 눈물샘의 물꼬를 열고

깊푸른 하늘을 들일 수 있을까

정처만이 흙에 뿌리를 박는 것,

마음 바닥에 물끄러미라고 쓴다

내 그늘은 얼마나 오래도록

물끄러미와 넌지시를 기다려왔는가?

물꼬 소리 도란거리는 마음과

찬물 한 그릇의 눈을 가질 때까지

나는 왜가리 발톱이거나

꺾인 벼 이파리로 살아가겠지만, 끝내

무논의 물결처럼 세상의 떨림을 읽어내기를

써레처럼 발목이 젖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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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금음마을 불광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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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아송 | 작성시간 23.07.24 _()()()_
  • 작성자무량화* | 작성시간 23.07.24 _()()()_
  • 작성자청산(靑山) | 작성시간 23.07.24 _()()()_
  • 작성자자인월 | 작성시간 23.07.24 흔히볼수있는시고풍경을관심있게읊어주신시인님 덕분에들여다보고갑니다
  • 작성자일심행 | 작성시간 23.07.25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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