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허사상 한국학을 말하다.
7회 看話禪과 話頭에 대하여 – 9
우리는 백장스님이나 황벽스님처럼 大機ㆍ大用을 바로 알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화두를 들게 되는 것이지요.
그것이 간화선입니다.
그러면 그 화두를 들어서 어떤 형태로 가느냐?
마조스님이 일할을 했던 그 알 수 없는 그 마음의 세계!!!!!
그 낙처!!!!!! 그것도 알아야 되는 것이지요.
백장스님이 귀가 멀어서 알아냈던 그 소식!!!!!!
황벽스님이 혀를 쑥~ 내밀면서 알았던 그 소식이 다 상통하는 소식
이거든요. 그것은 언어문자가 끊어진 세계이고, 말씀이전 소식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알 때까지 화두를 들고 선정삼매에 들어야 되
는 겁니다.
마조ㆍ백장ㆍ황벽! ←이 세분이, 그 다음에
임제선사 까지 내려와서 임제스님이 할을 하는데까지 이르러와서
내려올 때까지, 이러한 그 가풍이 내려오는 전통이 이 말씀 하나에
달려있다는 것은, ‘그와 같이 깊고 깊은 선정삼매에서 저 말씀의
낙처들을 다 아시게 됐다.’ 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는 오직 모르기 때문에,
숭산스님이 말씀하셨던 “오직 모를 뿐”의 마음으로 오직 할 뿐입
니다.
“오직 화두를 들고 참선할 뿐이다.” 라고 하는 것이 간화선의 전통
인겁니다. 그 분들의 마음이 텅 비어서 일념삼매가 지속되고, 무념
무심의 상태가 증득되어 있는 상태까지 우리도 ‘그와 같이 선정삼
매로 들기 위해서 이 화두를 든다.’ 이 것이지요.
저~~ 내용하나 뭐 저것,
수수께끼같은 내용을 알기 위해서 한다는 개념이 아닙니다.
저~~ 말씀을 알려고 하면, 역대조사ㆍ수없이 많은 선지식스님들과
같은 無心과 空과 無念의 九次第定(구차제정)이 있는 많은 일체삼매
를 증득을 해야만 가능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렇게 화두선이라고 하는 것이 근기가 예전만 못하게 됐을
때, 화두를 들게 된 것입니다.
임제스님이 60방망이를 맞고 대우스님에게 다시 가면서,
‘도대체 나에게 왜? 불법의 적적대의를 물어봤는데 황벽스님은
나에게 왜 60방망이를 사흘동안 때렸느냐?’
궁금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시다가 견성을 하신 거거든요.
그런데 어떤 분들은 아무리 때려도 그 낙처를 알지 못할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와 같은...
탄허스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전에는 근기가 수승해서 제자가 어느 부분이 막혀있는가를 알아
서 의심을 던져주고 난 다음에 한말 끝에 깨치게 해줬다.
그것이 조사선이다.”
조사선의 가풍은 마조스님ㆍ백장ㆍ황벽ㆍ임제로 내려오는 이런
가풍들이 전부 조사선의 가풍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聖人과의 거리가 멀어짐에 따라서 言下에 大悟하는
그런 분들이 점점 적어졌다. 그러기 때문에 그 말씀의 낙처를 알아
서 결국 그 말씀이 나온 자리까지 깊이 있게 들어가서 선정삼매에
들어간 뒤에 화두가 박살이 나면서, 마조일할. 선교결에서 서산대사가
사명대사에게 부촉한 말씀. ←이 내용들을 깨치고 계합이 되어서,
마음이 활짝 열려서 견성을 하는 수행법이 생겨 나온 것이다.” 탄허
스님 말씀이 이런 겁니다.
그러니까 화두라고 하는 것이 원래부터,
부처님 당시에는 있지 않았었지만, 근기가 상근기가 아닌 연고로,
후대에 내려오면서 점점... 스님의 표현을 빌자면,
“바이러스가 쎄져서 백신이 강력한 것이 나온 것이다.” 이렇게 이해를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부분이 화두를 드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이런 것이 1700공안이 있는 겁니다.
그 중에서도 이 마조일할의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가장 어려운
향상구입니다. 일반적인 공안하고는 다르게 가장 어려운 공안이기
때문에 서산대사가 사명대사에게 “이 공안을 점검해서 눈 밝은 사람을
찾아내서 법맥을 이어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던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