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나할 것 없이 배고픈던 시절이었지요.
지게에 튀밥 기계랑 땔감을 싣고 뻥튀기 장수가 이 동네, 저 동네를 찾아다니며 자리를 깔면,
마을 주민들과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 들었어요. '뻥' 소리에 귀를 틀어막고 있다가 바닥에 흩어진 튀밥을 앞다퉈 주워먹으면 그 맛이 기막히지!
뻥튀기 장수가 찾아오는 날이 그 동네 잔칫날이었지요."
서울 성북구 이문동 부근을 돌며 매일 튀밥을 튀기는 이남열(71세) 할아버지에게도 뻥튀기는 추억의 음식이다.
튀박 한 줌에 마냥 즐거웠던 소년이 자라 어느덧 이순의 나이가 되었을 때 뻥튀기는 삶의 추억으로 다가왔다.
뻥기계를 구입해 손수레에 장착하고, 인근 뻥튀기 장수에게 술을 사주며 강냉이 튀기는 기술을 전수받았다.
언뜻보면 간단하게 보이지만, 사실 뻥튀기에도 그만의 노하우가 필요하다.
온도와 압력을 잘못 맞추면 재료가 까맣게 타거나 덜 튀겨지기 십상이다.
옥수수나 콩 등 재료가 안 좋아서 덜 튀겨지는 경우도 있다. 너무 말라도, 덜 말라도 문제가 된다.
"처음에는 튀밥을 튀길 때마다 불안하고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잘못 뒤겨서 품삯은 커녕 재료를 보상해 준 적도 있어요.
한 2년 지나니까 불안감이 사라지고, 3년쯤 되니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하대요."
몸만 따라 준다면 이 일을 계속하고 싶지만 일거리는 해마다 줄어드는 추세다.
10년 전만 해도 온종이 튀밥 기계를 돌리기도 했는데 요즘은 고작 서너 번에 그치는 날도 많다.
동네 아이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얻으며 명절 전에는 새벽까지 기계를 돌리던 일도 다 옛말이 돼버렸다.
"아, 뻥튀기 싫어하는 사람도 있어요? 맛으로 먹고, 추억으로 먹는 거죠."
한적한 토요일 오후,
뻥튀기는 소리에 기다렸다는 듯이 검은콩을 가지고 나온 중년 남성은 말한다.
튀는 맛이야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지만 뻥튀기 재료는 유행을 탄다.
예전에는 쌀과 누릉지, 옥수수, 가래떡을 튀기러 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면 최근 콩의 효능이 알려지고부터는 콩 튀밥이 인기를 얻고 있다.
시대 따라 변한 것은 그뿐 아니다.
옛날에는 땔감을 모아다 불을 지피고, 손으로 직접 기계를 돌려야 했다.
기계 핸들에 벨트를 걸어 풍구를 같이 돌리면서 장작불의 세기를 조절하는 방식의 옛 기계는 요즘 찾아 보기 힘들다.
최근에는 석유나 가스 연료로 불을 피우고 전기모터로 기계를 돌린다.
지켜 보는 사람을 초긴장 상태로 몰아넣을 만큼 요란스럽던 '뻥' 소리도 한결 점잖아졌다.
튀밥을 받아내던 죽부인 모양의 커다란 철망 대신 철제 박스가 사용되면서 어느 정도 방음효과가 생겼기 때문.
또 한 되, 한 되 반이던 용량은 두 되로 늘었다.
손님이 가져온 재료들은 깡통에 담겨 순서대로 튀겨 지는데, 뻥기계에서는 그야말로 못 튀길 게 없다.
밤, 땅콩, 은행, 율무, 현미, 호박씨, 도라지, 무 등 각종 재료들이 뻥튀기 재료로 등장한다.
어쨋거나 투박한 철통 속에 재료를 넣고 15분쯤 후면 맛 좋고 구수한 뻥튀기가 와르르 쏟아져 나오니, 지켜보는 사람으로서는 요술방망이가 따로 없다.
뻥튀기 기계는 1901년 미국에서 처음 개발됐다.
이후 독일과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와 큰 인기를 얻게 된 것이다.
뻥기계는 밥을 짓는 압력밥솟과 같은 원리로 만들어졌다.
밀폐된 공간에 곡물을 넣고 가열하면, 곡물 안에 들어 있던 수중기가 내부압력을 높이게 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곡물은 높아진 압력을 견디기 위해 점점 밀어내는 힘을 갖게 된다. 이때 뚜껑을 열면 순간적으로 주위의 압력이 낮아지게 되고, 고압을 견디던 곡물 내부의 힘이 껍질을 깨고, '뻥'소리와 함께 팽창하게 되어 나오는 것이다.
뻥튀기 장수들은 압력계를 수시로 들여다보며 최적의 순간을 포착해낸다. 재료에 따라 국산인지 중국산인지에 따라서도 압력을 달리 해야 할 정도로 압력은 맛과 질감에 영향을 주는 민감한 요인이다.
투박한 생김새의 뻥튀기 기계지만 그 안에서 얻어지는 것은 단순한 튀밥 이상이다.
어떤 이에게는 지난하던 시절의 추억이고 어떤 이에게는 따뜻한 유년의 추억이다.
비록 튀밥 튀기는 장면을 예전처럼 쉽게 찾아볼 수 없지만 여전히 뻥튀기 애호가들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많은 이들에게 향수를 자극하는 뻥튀기, 김이 모락모락나는 튀밥 한 줌으로 정을 나누던 그 기억을 되살려, 뻥튀기로 사랑을 전하는 이들이 있다.
대구의 한 봉사활동 단체는 25년때 소록도를 찾아 한센병을 앓는 주민들에게 튀밥을 튀겨 주고 있다.
외부와 단절된 채 살아가는 그들에게 행복한 추억을 선사하기 위해서다.
회원들 실력이 아마추어다 보니 뻥튀기가 실패로 돌아갈 때도 있지만 지켜보는 주민들은 마냥 즐겁다.
뻥튀기를 통해 이들이 맛보는 것은 바로 '사람사는 맛'이다.
뻥튀기의 활약은 국경마저 뛰어 넘었다.
최근 케냐, 가나, 에티오피아, 남아공 등 아프리카 전역에서 뻥튀기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선교사가 뻥튀기 기계를 처음 들여 놓은 것이 발단이 됐다.
지난 날 우리에게 그랬듯이, 뻥튀기는 전쟁과 기아로 고통받는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환한 웃음을 선사하며, 단순한 먹거리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서고 있다.
작은 것에서 얻어 지는 소소한 풍요, 그것을 나누며 느끼는 기쁨은 뻥튀기가 가진 미덕 중의 으뜸일 것이다.
출처 : 야후블로그 바다같이 넓은 마음을